“정부, 일부 사례 침소봉대···고용보험 ‘개악’ 추진 안 돼”
“정부, 일부 사례 침소봉대···고용보험 ‘개악’ 추진 안 돼”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4.02.21 14:27
  • 수정 2024.02.21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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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고용보험 부정 수급 526억 원···총지출액의 0.31%
노동계 “실업급여 개악, 취약 노동자 위협” “도덕적 해이 프레임”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실업급여 삭감·폐지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한 담당자가 인쇄된 판넬에 ‘사과’, ‘퇴진’, ‘규탄’ 등의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해 7월 1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실업급여 삭감·폐지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정부가 일부 부정 사례를 이유로 고용보험 제도를 개편할 경우, 구직자나 취약 계층의 생활고가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정부·여당은 그간 재정 건전성 등을 이유로 구직급여 하한선 폐지 등 제도 개편을 주장해 왔다. 국회에는 이와 관련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양대 노총은 “고용보험법 개악”을 즉각 중단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전념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21일 고용노동부는 고용보험 부정 수급 사례에 대한 기획조사 결과, 218명이 23억 7,000만 원을 부정하게 수급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기획조사까지 포함해서 지난해 적발한 고용보험 부정 수급액은 526억 원으로 2022년(467억 원) 대비 59억 원 증가한 규모다. 이번 기획조사는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됐다.

노동부는 기획조사를 통해 드러난 부정 수급액의 경우 추가 징수액을 포함한 44억 1,000만 원을 반환 명령하고, 사업주와 공모하는 등 범죄행위가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203명은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급여별 부정 수급액(수급자 수)은 실업급여 12억 1,000만 원(132명), 육아휴직급여 9억 7,000만 원(82명) 등이다. 사업주와 공모해 거짓 퇴사, 위장 취업, 허위 육아휴직 등의 방식으로 급여를 타갔다.

특별고용촉진장려금의 경우 4개 사업장에서 1억 9,000만 원을 부정 수급했다. 이미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를 새롭게 채용한 것처럼 신규 고용확인서를 허위로 제출하는 방법으로 장려금을 받았다.

노동부는 “‘위장 고용’, ‘허위 육아휴직’ 등 부정수급 사례에 대해 더욱 면밀히 조사할 계획이며, ‘사업주 공모’, ‘중개인(브로커) 개입’ 등 조직적인 부정수급 사례에 대해서는 제보 등을 통해 집중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기획조사와 별도로 실업급여 수급기간과 해외 체류기간, 대지급금 지급기간이 겹치는 부정수급 사례 등에 대해 상·하반기 2회에 걸쳐 특별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도덕적 해이 프레임···고용보험 개악 우려”

한편 노동계는 이번 기획조사 결과 발표를 두고 ‘고용보험 개악을 추진하기 위한 도덕적 해이 여론 조성’으로 평가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통해 “그동안 고용보험제도개선TF를 운영하며, 구직급여 하한선의 폐지(또는 하향조정), 구직급여 반복 수급자에 대한 급여 감액, 피보험 단위기간 연장 등 고용보험제도 개악을 추진해 왔던 정부가 일부 부정 수급 사례를 침소봉대해 고용보험 개악의 근거로 삼으려는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실업급여는 고용안전망이 부족한 우리의 현실에서 단기고용·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작동해 왔다. 자발적 이직에 대해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현행 제도하에서 반복 수급 증가는 수급자들의 ‘의도적 반복’에 기인한 것이 아닌 장기적이고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노동시장 상황의 결과”라며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임금체불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실업급여마저 개악한다면 취약계층 노동자들은 생계에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호일 민주노총 대변인도 “이번 적발은 구직급여 하한선 하향 등 고용보험 제도 개악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고용노동부가 까는 밑밥임이 명확하다”며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경영계의 민원을 처리해주려는 고용노동부의 의도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에도 미치지 않는 극히 한정적 규모. 이를 통해 고용보험을 수급하는 노동자 전반에 불법 수급을 일삼는 도덕적 해이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며 “특감을 통해 산재 카르텔을 운운하며 산재 피해 노동자 전반을 모욕한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양대 노총은 양질의 일자리 조성에 전념할 것을 정부에 주문했다. 한국노총은 “구직급여 수급자 증가나 반복 수급자 증가는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아닌 불평등한 노동시장 구조로 인한 것인 만큼, 취약계층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안전망을 강화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국가의 책임을 다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했다. 전호일 대변인은 “불안정 노동을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