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가 안전 민원 넣자··· 경찰은 민원인 소환 통보?
건설노동자가 안전 민원 넣자··· 경찰은 민원인 소환 통보?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10.18 18:44
  • 수정 2023.10.18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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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인에 불법행위 여부 판단한다며 출석 요구한 경찰
건설노조 “행안부 대상으로 인권위에 진정”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이 18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안전신문과 민원인 전수조사해서 경찰조사 행정안전부 장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광수 기자 kskim@laborplus.co.kr

건설 현장 안전 문제에 관한 민원을 제기한 민원인들이 건설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경찰 수사를 통보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위원장 장옥기, 이하 건설노조)에 따르면 건설노동자 A 씨는 지난해 4월 18일 영등포세무서 청사 신축공사 현장에서 안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정부 안전신문고에 민원을 넣었다. 안전신문고는 시민들이 안전 위험 요인을 신고할 수 있는 웹 사이트와 앱으로 행정안전부가 운영하고 있다.

신고 18개월 후인 지난 10일 A 씨는 영등포경찰서에서 경찰조사를 통보받았다. 영등포경찰서는 A 씨에게 “민원 내역을 영등포구청으로부터 회신받아 민원대상자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건설노조에 대한 불법행위 여부에 관한 판단을 위해 조사가 필요하니 출석”해달라고 했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건설노조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A 씨 외에도 3명의 조합원이 안전 관련 민원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경찰로부터 조사 통보를 받았다.

A 씨가 영등포경찰서로부터 지난 10일 받은 문자메시지 ⓒ전국건설노동조합

이에 건설노조는 안전 관련 민원을 제기한 민원인에 대한 경찰조사가 인권침해라고 주장하며 18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안전신문고를 운영하는 행정안전부의 장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진정을 제기했다.

진정서를 제출하기 전 인권위 앞에서 건설노조가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손익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변호사는 “해당 경찰조사는 법률적으로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익찬 변호사는 “공익신고자를 범죄 수사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너무 황당한 경우”라며 해당 경찰조사에 대해 “공익신고자 보호를 우선으로 하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사항도 있다. 안전신문고 운영 주체인 행정안전부는 신고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고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라며 “제3자(경찰)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려면 ‘범죄의 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여야 한다. 그런데 이 사안 어디에 범죄혐의가 있어 동의도 없이 개인정보가 제공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건설노조는 “안전 민원 내용은 폭발 위험이 있는 가스통에 마개를 씌우지 않은 경우, 콘크리트 잔여물을 방치해 수질 오염이 우려되는 경우, 추락 방지망이 없어 노동자의 추락 위험이 있는 경우 등 신고가 절실한 사안들”이었다며 “민원인들이 위험 상황을 알고도 모른 척했어야 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민원인에 대한 경찰조사가 노동자의 안전보건 활동을 위축시켜 시민에게도 큰 피해가 될 것이란 목소리도 나왔다. 건설노조는 “위험 상황에 대한 노동조합의 감시가 위축되면 최근 논란이 됐던 ‘철근 누락 아파트’나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 같은 부실시공 사고가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건설 현장의 안전을 지키고 부실시공을 막는 역할을 하는 건설노조의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해당 사안은 지난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도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에 의해 질의됐다. 당시 김광호 서울경찰청 청장은 “특별한 혐의가 있어 수사한 것으로 보고 받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