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건폭 몰이’ 1년간 건설 현장 안전보건 후퇴해”
“윤 정부 ‘건폭 몰이’ 1년간 건설 현장 안전보건 후퇴해”
  • 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4.01.12 18:49
  • 수정 2024.01.12 1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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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문제 지적한 건설노동자 실직, 경찰 조사 등 불이익 겪어
안전·생계 위협당하며 정신 건강 악화되기도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노조 탄압이 건설현장 노동안전보건에 끼치는 영향 국회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노조 탄압이 건설현장 노동안전보건에 끼치는 영향 국회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해 2월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업 노동조합을 겨냥해 ‘건폭’ 근절을 위한 특별 단속을 지시한 이래 안전 문제를 현장에서 제기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경찰 조사를 받거나 불이익을 겪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건설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정부의 행보가 건설 현장의 안전·보건 후퇴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위원장 장옥기, 이하 건설노조)과 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는 지난 11일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노조탄압이 건설 현장 노동안전보건에 끼치는 영향’ 토론회를 열고 이같이 주장했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노조를 적대시하면서부터 건설노동자들은 현장의 미흡한 안전에 대해 (회사에) 개선을 요구하다 해고당하고, 정부·지자체에 민원을 제기하다 경찰조사까지 받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많은 조합원이 생계를 위협받고 심리적 위기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위험 공법 개선 협의에
‘협박·강요’ 의혹 제기한 경찰

이날 토론회의 참석자들은 정부의 ‘건폭 몰이’ 이후 노동안전보건 실태 파악·개선을 요구하는 건설노조 조합원에게 불이익이 가해지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김용기 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건설지부 대외협력부장은 “노동안전보건 개선을 목적으로 현장을 직접 방문해 관리자들에게서 개선 약속을 받았다는 이유로 경찰로부터 소환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김용기 대외협력부장은 2021년부터 지역 현장 관리자들에게 새로운 타설 공법 도입을 제안했다. 노동자가 타워크레인에 매달린 시멘트 용기(호퍼)를 직접 손으로 잡고 작업하는 방식보다 안전한 CPB(Concrete Placing Boom) 활용 공법을 대한으로 제시한 것이다. CPB 공법은 타워크레인을 이용한 작업에 비해 추락·끼임 등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공사 기간을 단축하는 데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용기 대외협력부장은 2021년부터 2023년 3월까지 모든 관할 현장을 직접 방문해 CPB의 효과를 홍보하고 현장 관리자들과 논의한 끝에 시공사를 설득해 협약서를 작성했으나, 경찰로부터 해당 협약서를 공갈·협박으로 받아낸 게 아니냐며 소환조사를 당했다고 밝혔다.

공익제보 건설노동자 개인정보 유출 의혹

손익찬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변호사는 “건설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표적 수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지자체·공공기관이 경찰에 공익신고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2022년 4월 조합원 A씨는 정부 안전신문고를 통해 자신이 건설노조 조합원임을 밝히며 ‘현장에 유독성 자재가 방치돼 있다’는 민원을 접수했다. 그런데 신고 후 18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경찰은 A씨에게 “건설노조에 대한 불법행위 여부에 관한 판단을 위해 조사가 필요하니 출석해 달라”고 통보했다.

손익찬 변호사는 “경찰은 A씨가 ‘증거자료 확보 중 건조물 침입 등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는지’ 조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A씨의 제보는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공익제보이므로 만일 증거 확보 중 건조물 침입이 발생했더라도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로서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개인정보 유출 또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손익찬 변호사는 “제보 내용이 사실인 이상 합당한 이유 없이 안전신문고가 공익신고자의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유출한 것”이라며 안전신문고가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12조(비밀보장 의무)와 개인정보보호법 제17조(동의 없는 개인정보 제3자 제공 금지)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노조 탄압이 건설현장 노동안전보건에 끼치는 영향 국회토론회’에서 장경희 심리치유단체 두리공감 상임활동가의 ‘노조공안탄압과 국가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위기 긴급점검 실태조사’라는 주제의 발제를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노조 탄압이 건설현장 노동안전보건에 끼치는 영향 국회토론회’에서 장경희 심리치유단체 두리공감 상임활동가의 ‘노조공안탄압과 국가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위기 긴급점검 실태조사’라는 주제의 발제를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언론 제보했더니 해고”

법 위반을 언론에 제보했다가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도 있었다. 형틀목수로 일하는 이영춘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조합원은 “폭염이 일찍 닥쳤던 지난해 6월 동료 조합원 B씨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휴게시설 설치·관리 기준을 지켜 달라고 회사에 요구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아무런 조치가 없자 이를 언론에 제보했고 사건이 보도된 직후 해고당했다”고 말했다.

이영춘 조합원은 해당 현장의 원청사가 휴게시설과 정수기 위치가 표시된 표지판을 현장 입구에 비치했지만 실제로는 표시된 자리에 휴게시설·정수기가 없는 경우가 많았으며, 있더라도 냉방시설 없는 옥외 그늘막이나 컨테이너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고 설명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28조의2와 시행규칙 제194조의2에 따르면 공사 금액 20억 원 이상인 건설 현장은 휴게시설에 적정온도(18~28도)를 유지할 수 있는 냉·난방시설을 갖추고 식수 설비를 비치해야 한다.

이영춘 조합원은 B씨가 제보한 사진이 지난해 6월 27일 기사로 보도되자 하청사는 3일 뒤 B씨에게 갑자기 해고를 통보했다고 전했다. 형틀목수의 경우 팀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는데, 해당 하청사는 팀 전체의 계약을 해지한 뒤 ‘B씨를 팀에서 제외해야 재계약해 주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이영춘 조합원은 “윤석열 정부에서 ‘건폭 근절’ 방침을 내세우기 전에는 사업장 내에서 위법 사항을 지적하면 지방고용노동청·지자체·경찰 등이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조치했기에 조합원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서도, 지금은 ‘문제제기를 하면 일자리를 잃는다’는 불안이 현장에 만연해졌다고 주장했다.

류현철 재단법인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은 “정부에선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를 감축하기 위해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예방의 주체여야 할 노동자를 배제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며 “중대재해를 감축하고 노동안전보건을 강화하기 위해선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의 참여권을 적극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노조 표적 수사에 조합원 정신 건강 저해”

장경희 심리치유단체 두리공감 상임활동가는 “건설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무분별한 수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정신 건강도 저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리공감이 경찰·검찰·법원 등에 출석한 경험이 있는 건설노조 조합원 4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37명(57.7%)이 고위험 스트레스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험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우울장애나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 발생 우려도 그만큼 커진다. 전체 응답자 중 277명(67.4%)은 불안 증세를 겪고 있었으며 269명(65.4%)은 사법기관 출석 이후 편두통·가슴 통증·호흡곤란 등 신체 증상이 생겼다고 응답했다. 출석 전에 비해 알코올 섭취량이 늘었다는 응답도 255명(62.0%)이나 됐다.

장경희 상임활동가는 “노조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표적 수사와 사법기관 소환, 실직 등은 노동자들에게 강력한 심리적 외상이 되고 이는 그 자체로 삶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