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한국노동공제회 2년, 모래알들을 연결하다
① 한국노동공제회 2년, 모래알들을 연결하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11.07 05:22
  • 수정 2023.11.07 0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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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 연결해 낸 2년
상호부조 기능 위해 본격 공제사업 추진 예정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지난 10월 25일 열린 한국노동공제회 출범 2주년 기념식에서 회원들의 문예전이 열렸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어? 좀 사기인가? 프리랜서한테 뭘 해주는 곳이 있을 리가 없다. 국가도, 누구도 안 해주는데 뭘 해주는 데가 있을 리가 없는데. 이런 의심을 먼저 하다가 잘 알아본 다음에야 가입했어요.” 홍명원 프리랜서(번역가)

“그동안 혼자였다면 연결된 느낌이 들어요.” 송하연 프리랜서(영상 애니메이션 제작자)

“의지가 되는 것 같아요. 뭔가 기댈 곳이 있는 느낌?” 권태진 프리랜서(은둔 고립 청년 생활지원강사)

“‘당신은 직업이 있는 분입니다’라고 인정해 주는 것 같았어요.” 윤상연 프리랜서 (영화·연극 배우)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이하 한국노동공제회)에 함께하는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들이 더 다양해지고 있다. 초기 가사·돌봄, 대리운전, 배달, 택배 노동자에서 나아가 통·번역사, 스포츠강사, 웹툰·웹소설 작가, 디자이너, IT 프로그래머, 배우 등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프리랜서한테 뭘 해줄 리가 없다”는 생각부터 먼저 하던 이들은 이제 한국노동공제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혼자가 아닌 “연결”됐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2년 전 10월 26일 출범한 한국노동공제회는 이제 1만 명(가입회원 기준) 규모로 성장했다. 매달 공제회비를 내는 정회원은 약 1,100명이다. 한국노총이 비정형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조직하기 위해 처음 내딛은 길, 한국노동공제회가 우여곡절을 거쳐 2년 만에 어엿한 규모를 갖춘 조직이 된 것이다.

김동만 한국노동공제회 이사장은 “한국노동공제회가 노동 공동체 운동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며 닻을 올린 지 두 해가 지났다. 우리의 항해가 뜻한 바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지, 얼마나 더 많은 사람과 교통하며 외로운 섬과 같은 이들에 희망을 전달해 왔는지 돌아보게 된다”며 “이윽고 마주할 대양의 규모에 비하면 지나온 궤적이 여전히 소소해 보여도, 제도 바깥에서 일하는 다양한 계약 형태와 직종의 사람들을 더 넓게 조명하며 서로를 연결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해 온 날들이었다”고 출범 2주년 소회를 밝혔다.

한국노동공제회가 더 넓어지고, 더 풍부해진 배경은 특히 올해 7월부터 시행한 청년 목돈마련 지원 사업에 있다. 이 사업은 공제회 정회원이 시중은행에 월 10만 원 또는 20만 원 적금상품을 개설하면, 6개월마다 12만 원(월 10만 원 납입 시) 또는 24만 원(월 20만 원 납입 시)을 지원한다. 한국노동공제회에 따르면 7월 이후 3개월간 391명의 회원이 이 사업에 신청했다. 김동만 이사장은 “7월 이후 목돈마련 응원 특별 사업에 대한 큰 호응으로 청년 프리랜서들의 가입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현장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들에 공제회의 이름과 사업이 알려지며 수도권을 넘어 전국 각지로 참여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노동공제회는 목돈마련 지원 사업 외에 지난 2년간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해왔다. 지난해 공모(현장이 묻고 현장이 답하다 캠페인)에서 선정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전국 2,000대 택배차량에 머리 부딪힘 방지 물품을 부착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또 여름 더위에 이어 겨울 추위에 거리 위에서 일하는 대리운전자를 위한 이동형 천막 쉼터도 곧 재개한다.

경력 5년 가사관리사 조영자 가사·돌봄유니온 부위원장은 “올해 공제회와 녹색병원의 지원으로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며 “회사 건강검진이 없고 종합검진은 비싸서 엄두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정말 좋았다. 동료 중에 건강검진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질환을 조기발견한 분도 있다. 공제회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 마음 한편이 든든하다”고 이야기했다. 

아울러 한국노동공제회는 프리랜서들의 고충 해소를 위해 ‘프리랜서 권익센터’를 지난 6월에 설치하고 법률 상담과 미수금 소송 지원, 역량 강화 교육도 하고 있다. 프리랜서의 고충에 대해 배우 윤상연 씨는 “배우 생활을 하다 보면 당일 일정이 취소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런 점에 대해서 따로 도움받기가 어렵다”고 했다. 번역가 홍명원 씨는 “일이 끊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일을 하고서 돈을 못 받으면, 소송을 걸기도 애매하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이러한 성장 위에 한국노동공제회는 내년 이후 본격적으로 공제사업이 가능한 조직적 기반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애초 공제란 함께 공(共) 건널 제(濟), 고비를 함께 건너 어려움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한국노동공제회의 핵심 역할도 노동자로서 법·제도적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회원 간 상호부조를 통해 서로를 경제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물론 우여곡절은 남아 있다. 김동만 이사장은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사업을 추진하고 홍보해 왔다”면서 “하지만 워낙 당사자들이 제각각 떨어져서 힘들게 일하기 때문에 참여를 끌어내기가 어렵다. 모래알 같은 조직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했다. 

이어 “한국노동공제회 출범 초기엔 노동계에서 많은 도움을 줬는데, 점점 관심이 떨어지고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공제회는 “지난 2년 소외당하고 고립된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들을 위해 끊임없이 두드리고 노력해왔다”며 “앞으로도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가족 같은 존재가 돼드리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