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실험은 끝났다
②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실험은 끝났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11.07 05:22
  • 수정 2023.11.0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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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공제회 출범 2년의 성과와 과제
글 송명진 한국노동공제회 사무국장
송명진 한국노동공제회 사무국장
송명진 한국노동공제회 사무국장

4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거리 위 블록마다 생겨나던 마라탕 가게처럼 플랫폼노동이 도처에서 연구되고 논의됐다. 룰(rule)이 필요한 세계라는 데 다들 동의했지만 국가의 성장동력이 될지 모를 묘목에 엄격한 규제의 칼질보다 자율규범 형성이 바람직하다는 것으로 정부의 정책 방향은 기울었다. 대신 고용·산재보험의 적용 확대로 ‘플랫폼종사자’들에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갖추고자 했다. 노동계는 플랫폼의 사용자성과 종사자의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며 노조 조직화를 기본으로 노사교섭과 사회적 대화를 함께 추구했다. 당시 한국노총은 상징적으로든, 실질적 조직확대로든 플랫폼노동이라는 낯선 밭을 개간하며 대표성의 푯말을 꽂을 필요를 느꼈다.

파고들수록 일이 간단치만은 않았다. 같은 공간에서 이뤄지지 않는 노동의 시스템에서 자생적인 조직화는 기대하기 어려워 활동가들의 조직적 투입이 초기에 요구되는 조건이었으나 이러한 활동의 경험이나 자원도 부족했고. 투자 대비 성과도 자신할 수 없었다. 노동하는 개인들이 결국 생산활동의 모든 비용과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사교섭이나 사회보험의 적용은 일부분의 요구만을 채우는 것으로 보였고 그마저도 속도가 더뎠다. 더욱이 플랫폼노동은 각 분야에서 플랫폼노동화되고 있는 프리랜서라는 거대한 사막과 뚜렷한 경계 없이 이어져 있었다. 한국노총은 가사, 대리운전 등 업종별 노동자협동조합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경로, 새로운 틀을 고민했다. 노동공제라는 오래된 모델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경제적 위험을 상호부조의 방식으로 대비하며 이를 계기로 모이는 이들이 공통의 이해를 찾고 사회적 목소리를 키우도록 지원하는 효과적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다만 당사자 조직들의 역량이 높지 않고 풀뿌리운동과 연대 경험도 빈약한 조건을 고려할 때 초기엔 외부의 사회적 자원을 동원한 경제적 지원이 필수적이었다. 공제회가 사단법인이 아닌 재단법인의 성격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때마침 금융산업 노사가 출연해 만든 사회공헌재단인 금융산업공익재단에서 플랫폼노동자 지원에 관심을 보이며 공제회의 초기 대표 사업을 함께 설계할 수 있었다. 또한 당사자 이해대변 조직으로서의 역할을 추구한 만큼 재단의 지배구조를 좌우하는 기본재산과 설립 초기 운영 재원은 다른 곳에 손 벌리지 않고 한국노총 전 조합원 모금운동을 통해 마련하였다. 이렇게 6개월이라는 짧은 설립 준비 과정을 거쳐 2021년 10월 26일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의 출범이 공식 선포됐다.

지난 2년 한국노동공제회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쳤다. 금융산업공익재단의 지원을 바탕으로 시중은행 적금상품을 신규 개설해 납입할 때 20%의 응원금을 지급하는 목돈마련응원사업부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당초 기대했던 지원 수준이 낮아지면서 사업의 매력이 떨어지기도 했고, 공공기관을 경유한 지원시스템을 취했으나 고정된 일터가 없는 직업환경이 고려되지 않은 증빙자료의 제출방식으로 회원들도 사무국도 모두 애를 먹었다.

첫해는 공공상생연대기금, 다음 해는 사랑의 열매로부터 지원받아 이뤄진 건강검진지원사업 역시 전문기관과의 협약을 통해 마련한 검진프로그램에 대해 10만 원을 지원하는 것이 큰 호응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으나 당사자 단체가 조합원들의 참여를 적극 독려한 가사·돌봄 분야를 제외하고 기대만큼의 참여가 늘어나지 않기도 했다. 건강검진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대체로 낮기도 하고 하루의 소득을 포기해야 하는 부담도 컸기 때문이었다. 지자체 재원만이 아닌 민간 재원이 투여되고 노동당사자들이 운영의 주체로 참여하는 새로운 모델의 이동노동자쉼터를 구상하며 실제 설치를 추진하였으나 관련 법령의 부재 내지 지자체의 의지 부족으로 좌초되기도 했다. 운영 재원의 한계로 인해 수많은 사업들을 안정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사무국 인력도 부족했고 대부분 조직 운영의 경험도 많지 않아 세부 실행계획이 정교하게 마련되지 못할 때도 잦았다.

그런데도 한국노동공제회는 한 발짝씩 앞으로 전진해왔다. 노동공제운동의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검증하고, 기반을 확대한 2년이었다 자평한다. 특히 2023년은 보다 넓어지고 보다 풍부해진 한 해였다.

가사·돌봄, 대리운전, 배달, 택배 노동자로 시작한 공제회의 울타리에 통·번역사, 스포츠강사, 만화·웹툰 작가, 디자이너, IT 프로그래머 등 다양한 직종의 프리랜서들이 정회원으로 가입해 공제회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특히 7월 이후 청년 프리랜서·플랫폼노동자 목돈마련 응원 사업에 대한 큰 호응으로 청년 프리랜서들의 가입이 눈에 띄게 늘었다.

공제회 사업 역시 초기 대표사업인 자산형성·직업훈련 지원사업의 신청자가 많이 증가한 데 이어 다양한 영역에서 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한 프로젝트들이 추진됐다. 지난해 공모·선정된 현장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전국 2,000대의 택배차량에 부딪힘 방지 안전물품을 특수 제작해 부착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폭염과 혹한에 노출된 대리운전자를 위한 이동형 천막 쉼터도 당사자들의 큰 호응 속에 운영됐다. 또한 을의 위치에서 상시적으로 불공정과 갑질을 겪는 프리랜서들의 고충 해소를 위해 <프리랜서 권익센터>를 지난 6월에 설치하고 법률상담과 미수금 소송 지원, 역량강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노동공제회가 제도 바깥에 있는 비표준적 고용형태 노동자들의 기초안전망이자 당사자 조직화의 계기와 자원을 제공하는 이해대변 지원 기구이며, 비정형노동자 보호를 위한 공공정책의 전달체계이자 파트너로서 역할할 수 있음을 증명해온 것이다.

이제 한국노동공제회는 상호부조 조직으로서의 본격적인 공제사업을 추진하고자 한다. 퇴직공제에 준하는 목돈저축사업, 직종별 특성에 맞는 공제보험이나 공동구매, 생활안정을 위한 소액융자사업 등이 그것이다. 또한 공제회에 가입한 프리랜서·플랫폼노동자들의 고충과 애로를 보다 깊이 파악하고 스스로 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네트워킹하며 이해대변 조직을 결성·강화하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다.

물론 당면한 난관이 만만찮다. 당사자들의 자율적 권익 증진 활동에 요구되는 제도적 환경의 미비, 실무역량의 부족, 풀뿌리 조직을 찾기 힘든 새로운 산업환경, 안정적 사업과 운영에 필요한 재원의 빈약함은 공제회가 제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거대한 장벽이다. 무엇보다 재정적인 어려움이 가장 직접적이고 커다란 문제다. 특정 공익법인의 재원이 아직까지도 사업비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공공의 지원도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프리랜서·플랫폼노동자의 권익 보호 활동과 자율적 공제사업의 의의와 역할에 대해 노동운동을 포함한 사회 각 부문 주체들의 이해와 공감을 더욱 확산시키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프리랜서의 정의부터 제도개선의 방향, 조직화의 경로, 공제·복지사업의 설계와 실무까지의 숱한 토론거리들이 공제회 실무진 내부에서만 검토되는 것이 아쉽다.

지난 사업들을 평가하며 선택과 집중을 하고, 공제회 회원인 당사자들이 공제회 운동의 주인공으로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나감으로써 당면한 장애를 극복하고 돌파구를 열고자 한다. 한국노동공제회의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연대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