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②] “노동공제회와 노동조합 긴밀히 연결될 때, 노동운동 강화될 것”
[커버스토리②] “노동공제회와 노동조합 긴밀히 연결될 때, 노동운동 강화될 것”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10.26 12:52
  • 수정 2021.11.08 2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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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형노동자 집단화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필요성,노동공제회 모델에서 찾아”
[인터뷰] 김동만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이사장

30년 넘도록 달려온 노동운동, “잠시라도 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던” 김동만 전 한국노총 위원장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의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이하 한국노동공제회) 초대 이사장직 제안에 “노동운동의 현장에 다시 서는 것이 숙명인가” 싶었다. 

김동만 이사장이 결국 숙명으로 받아든 한국노동공제회는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형·불안정노동자들 간 상호부조를 통해 서로를 경제적으로 보호하는 협동 경제 조직이다. 나아가 공제회 회원으로 묶인 노동자들이 스스로 이해대변 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6일 한국노동공제회의 공식 출범을 앞두고 김동만 이사장을 만났다. 김동만 이사장은 <참여와혁신>과 인터뷰에서 한국노동공제회 출범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전, 혁신적 시도”라며 “넓게 구축된 노동공제회라는 노동자 자조적 보호망이 노동조합 운동과 긴밀히 연계돼 상호 지원할 때 노동운동의 영향력이 훨씬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만 이사장에게 노동운동 내에서 한국노동공제회의 역할뿐 아니라 출범 과정,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더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22일 한국노동공제회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김동만 한국노동공제회 이사장 ⓒ 참여와혁신 포토DB
김동만 한국노동공제회 이사장 ⓒ 참여와혁신 포토DB

“노동운동의 본질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연대의 실천”

- 금융노조에서 노사대책본부장·상임부위원장·위원장을, 한국노총에선 대외협력본부장·부위원장·위원장을 지냈다. 그 사이 전태일열사 기념사업회 이사, 김태환 열사 기념사업회 이사장직을 수행했다. 돌이켜봤을 때 지난 노동운동 과정을 어떤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겠나?

돌아보면 한일은행노조 쟁의부장을 맡은 1985년부터 2017년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을 맡기 전까지 쉼 없이 노동운동 현장에 있었다. 산업인력공단에서 직을 맡은 것도 개인적으론 노동운동의 영역을 확장한다는 차원이었기에, 최근 새롭게 몸 담은 한국노동공제회까지 줄곧 이어졌다고 볼 수도 있겠다. 

30년 넘도록 해온 노동운동은 결국 ‘인간다움’을 실천하고자 했던 과정이지 않나 싶다. 노동조합 운동을 하며 만난 역사 속 ‘전태일’과 현실의 ‘이소선’은 노동운동의 본질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연대의 실천임을 일깨워줬다. 거대한 이념 이전에 내 주위의 동료, 노동자, 어려운 이들이 처한 현실의 안타까움에 공감하고 미력하나마 내 손을 내어주는 것이 노동운동의 밑바탕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또한 사람 사는 세상의 상식이기도 하다.

- 한국노동공제회 이사장직을 맡게 된 배경은?

한국노총에서 비정형노동자들을 위한 노동공제회 설립을 추진해나가는 것을 보며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산업인력공단에서 산업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직업세계도 빠르게 달라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지켜보며, 현재의 노동운동이 포괄하지 못하는 새로운 고용형태의 노동자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함을 절감한 바 있다.

사실 이와 별개로 산업인력공단 이사장직에서 올해 초 내려왔을 때, 그간 한순간도 쉼 없이 달려왔다는 생각에 잠시라도 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 시기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난 저녁 자리에서 한국노동공제회의 초대 이사장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노동운동의 현장에 다시 서는 것이 숙명인가 싶기도 했다. 지금의 노동조합 운동, 친정인 한국노총이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 새로운 도전을 하려는데 내 역할이 필요하다면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 도리겠다고 판단했다. 

비정형노동자 조직의 새로운 방식,
노동공제회 모델에서 찾아  

- 한국노총이 직접 비정형노동자들을 위한 공제회 설립에 나서야 했던 배경은 뭐라고 보나? 

한국노총이 명실상부한 노동자 대표조직이 되기 위해선 아직도 전체 노동자의 90%에 달하는 미조직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고 조직화를 전면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과거엔 미조직 노동자들이 기간제·파견·용역·단기알바·영세사업장노동자 등이 주였다면,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플랫폼노동자, 특수고용직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은 일 자체의 특성상 스스로 조직하기 어렵다는 점이 공제회라는 또 다른 방식의 노동조직을 구상하게 된 일차적 배경이라고 본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공통의 문제에 대해 특정 사용자에게 함께 요구할 수 있었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라는 효과적인 방식을 택해 조직하는 것이 가능했다. 반면 대다수 비정형노동자들은 흩어져 일한다. 집단적 정체성과 단일한 이해가 자생적으로 형성되기 힘들다. 조직화를 위해서 자신의 생업과 소득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 아래 선뜻 앞장서는 초동 주체가 나타나기도 어렵다. 이들을 위한 조직화 계기와 자원이 마련될 필요가 커지는 상황이다.

아울러 많은 비정형노동자들이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이들은 기업의 요구와 통제에 따라 노동을 제공해 소득을 얻는 노동자임에도 우선 노동계약 등의 형식에 얽매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노동조합에 가입해 기업과 교섭을 통해 노동조건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대리운전노동자나 음식배달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조금씩 조직률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규모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조합 조직화 이전에 비정형노동자들을 집단화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것을 노동공제회라는 모델에서 찾은 것이다.  

- 한국노동공제회 모델을 간단히 설명해달라. 

한국노동공제회는 실직과 사고의 위험, 소득의 불안정을 노동자들 간 상호부조를 통해 공동으로 대응하는 협동 경제 조직이다. 기업에서 받지 못하는 복리후생의 혜택을 회원들에게 갹출된 회비로 만들어 갈 수도 있다. 

경제적 이익을 목표로 한 공제회로의 결집은 노동자로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확인하고 목소리를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자본주의 형성 초기에 만들어진 노동공제회와 차이는 있을 것이다. 자본의 사업영역과 영향력이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하는 상황에서 초기 회비만으로 공제회의 확대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점에서 조직노동의 사회적 자원을 동원해 비정형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업을 만들면, 빠르게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한국노총이 공제회 설립을 위해 전 조합원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금융노조가 한 축인 금융산업공익재단이 목돈마련 응원사업을 위해 사업비를 지원하게 된 것도 이러한 구상이 현실화돼 나타난 결과다.

- 모금운동 과정에서 현장 목소리는 어땠나?  

모금운동이 일차적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한국노동공제회를 준비하는 간부들의 내부 평가를 보니 처음엔 예상대로 현장에선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플랫폼노동’이나 ‘노동공제회’가 아직 현장에선 생소한 개념이라 얼마나 동의와 참여가 이루어질지 가늠하기도 어려웠을 거다. 또한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모금운동을 결의한 뒤 바로 코로나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돼 홍보나 각급 조직의 의결도 쉽지 않았을 터다.

당초 설정한 목표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국노총 산하조직의 상당한 호응과 동참이 이루어졌다. 노동공제회의 개념과 운영방식에 대해 정확하게는 모르더라도 미조직 취약노동자들에 대한 연대, 새로운 조직화 경로와 시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조직적으로 넓게 형성돼 있었던 거다. 

- 한국노동공제회 출범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공제회 설립을 준비하면서 한정된 인원과 재원으로 사업기획, 모금, 회원단체 조직, 법인인가 실무, 사무실 설치, 공모사업 신청 등의 방대한 활동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다. 모금운동을 통해 마련된 대부분의 재원은 재단법인 설립에 필요한 기본재산으로 들어가고 추가적인 일부 자금에만 의존해 운영되다 보니 힘든 것이 사실이다. 내가 이사로 있는 금융산업공익재단에서 공제회 초기의 대표사업인 자산형성지원사업으로 연간 30억 원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 큰 도움이 되지만, 그 결정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30억 원 중 공제회 운영비로 지원되는 부분이 없어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노사가 함께 조성한 사회연대기금이 미조직 취약노동자를 위해 크게 쓰이는 것은 대단히 의미가 있고 노사공동기금이 사회연대의 지평을 확장하는 모범 사례라고 평가한다. 

김동만 한국노동공제회 이사장 ⓒ 참여와혁신 포토DB
김동만 한국노동공제회 이사장 ⓒ 참여와혁신 포토DB

남은 과제는?
운영 안정화와 노동공제회 위상 정립

- 26일 한국노동공제회 출범 이후 계획은? 

오는 11월부터 공식적으로 회원 모집 사업을 진행한다. 초기엔 가사서비스, 대리운전, 배달, 택배, 프리랜서강사 등 5개 직종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모집하다가 차츰 직종을 넓혀갈 계획이다.

금융산업공익재단이 지원하는 목돈마련 응원 매칭 지원 사업도 시작한다. 한국노동공제회 회원이 시중은행의 적금상품에 가입(월 10만 원)하면 연 최대 24만 원의 매칭이자를 지급하는 사업이다. 지원이 가능한 1만 명까지 회원 수를 확대시키는 것이 목표다. 

아울러 공제회는 안전한 노동, 건강증진, 직무능력 향상을 주된 초기 사업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성 사업을 수탁하거나 기업, 공익재단 등에서 사회공헌기금을 지원받아 자체의 사업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관련 부처나 기관과 협의할 계획이다. 이미 올해 서울시의 배달라이더의 안전교육 공모사업에 신청해 11월 중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비정형노동자 건강검진지원사업으로 공공상생연대기금에서 지원받기로 했다. 

또한 여러 취약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사업으로 생활안정을 위한 소액융자나 직종별 특성에 맞는 저렴한 보험 등이 있다. 공제회 내에 관련 준비단을 구성해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할 계획도 있다. 

물론 이러한 사업들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초기 운영비 마련이 절실하다. 한국노동공제회가 지정 기부금 단체로 선정되지 않은 조건에서 기업들의 후원이 용이하지 않은 문제도 있지만 우리 공제회의 설립 취지에 공감하고 지원할 수 있는 곳들도 분명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 한국노동공제회의 남은 과제들은? 

앞서 말했듯 추가적인 재원을 확보해 운영을 안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기업이나 기관들의 후원을 유치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지만, 본격적으로 회원들을 모집해 회비를 기반으로 공제회가 운영을 해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공제회의 인지도와 신뢰성을 빠르게 확립하는 것이 큰 과제다.

또한 노동운동 내에서도 공제회 운동의 위상을 정립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공제회 운동의 국내·외 사례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조사와 연구, 토론, 사회적 대화가 더욱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론적 접근보다 실제 사업을 통해 가능성을 검증해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내년까지는 여러 시범사업을 통해 공제회 사업의 영역과 역할을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다.

- 그 외에는?

공제회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노동조합 운동과 협동조합 운동 조직들이 공동의 지향점을 보다 분명히 설정하고 서로 다른 운영 방식과 문화의 차이를 조화롭게 통합시켜 공제회가 흔들림 없이 가도록 하는 것도 필수 과제다.

나아가 직종별 맞춤형 공제사업을 개발해 더욱 많은 노동자들이 공제회로 가입할 유인을 갖도록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제회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의 마련이 필요하다. 지금도 근로복지기본법에 노동자들의 공제회 설립과 운영 및 정부지원에 대한 근거 조항을 포함시키는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입법 논의가 확대되고 빠르게 현실화되도록 우리 공제회도 풀빵을 비롯한 다른 노동공제 조직들과 적극 노력할 것이다.

“노동공제회와 노동조합 긴밀히 연결될 때, 
노동운동의 영향력 강화될 것”

- 임기 안에 이루지 못하더라도 이사장이 그리는 한국노동공제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중장기적으로 플랫폼·프리랜서만 아니라 영세사업장노동자 등 불안정 노동 계층 전반을 포괄할 수 있는 조직으로의 발전을 그리고 있다. 공제회가 비단 비정형노동자들에게만 유용한 조직이 아니며 고용관계가 분명하더라도 처우나 노동조건이 열악한 노동자들의 보호와 조직화의 방안이 될 수 있어서다. 

일본의 경우 최대 노조인 렌고가 주도하는 노동공제회는 노조 조합원뿐 아니라 매우 많은 노동자를 회원으로 두고 있다. 그 수준까지 도달하기에는 상당한 세월이 필요하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넓게 구축된 노동공제회라는 노동자 자조적 보호망이 노동조합 운동과 긴밀히 연계돼 상호 지원할 때, 노동운동의 영향력이 훨씬 강화될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국노동공제회는 26일 출범식을 시작으로 이제 첫발을 뗀다. 아직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지금 공제회를 직접 만드는 사람들의 힘만으로 헤쳐가기는 불가능하다.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전, 혁신적 시도를 많은 현장 노조와 우리 사회가 함께 응원하고 지원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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