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노사연 기고] 새로운 단계를 맞이한 노동조합 조직화 흐름
[한노사연 기고] 새로운 단계를 맞이한 노동조합 조직화 흐름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11.20 11:33
  • 수정 2023.11.2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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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이주환 한노사연 부소장

널리 알려진 것처럼 최근 5년 사이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지속해서 높아졌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경우다. 이를 어찌 해석할 수 있을까? 나는 최근의 노조 조직화 흐름이 한국 사회의 구조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힘이 될 수 있고, 행위 주체가 장기적 안목에서 추진한 전략적 실천이 효과를 발휘한 결과라고 여긴다. 그런 한편으로, 2018년을 전후해 시작된 노조 조직화의 물결은 이미 정점을 지나 쇠퇴했고, 노동운동이 새로운 물결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전략의 질적 도약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풀어서 이야기해 보겠다.

2017년 이후 ‘노조 조직화 물결’의 의미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1세기에 들어서 한국의 노조 조직률(전체 임금노동자 수 대비 노조 조합원 수의 비율)은 조금씩 감소하다가 2010년 9.6%로 최저점을 찍고 이후 조금씩 증가해 2017년 10.5%를 기록했다. 그러다가 1년 만에 1.1%p가 급증해 2018년 11.6%를 기록했고, 이후 빠른 증가 추세를 지속해서 2021년 14.1%가 됐다. 노조 조직률 수치로 보면 잘 체감되지 않을 수 있지만, 조합원 규모로 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증가율 8.9%의 고도성장으로 84만 4,000명이 증가한 것이다. 1986년과 1989년 사이 ‘노동자대투쟁’의 영향으로 인해 증가한 조합원 수가 89만 6,000명이다. 최근의 노조 조직화 흐름은 조합원 규모만 따지면 노동자대투쟁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일차적인 기준은 양적 규모 변화가 노조의 성격에 미친 영향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노조가 대기업-중년-남성-정규직 등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중상층 노동자집단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서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지 못하며, 이에 따라 구조적 불평등을 오히려 키워왔다고 비판했다. 만약 최근의 변화가 이러한 경향성을 더욱 강화했다면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중소기업-청년 또는 노년-여성-비정규직 등 노동기본권을 상대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던 이들이 더 많이 조합원이 된 것이라면 계급 대표성을 의심받던 노동운동의 처지에서, 나아가서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사회통합을 실현해야 하는 정책 당국에서도 환영해야 할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환영할 일이 맞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바탕으로 성별과 연령, 고용형태, 학력, 사업체 종사자 규모 등을 기준으로 하위집단을 구분해 살펴보면, 대기업, 중년, 남성, 정규직 노동자집단의 노조 조직률은 여전히 다른 집단보다 월등히 높지만 이러한 구조의 응집성이 약해졌다. 이를테면 2010년 이후에 ‘40대 여성’, ‘사업체 종사자 규모 30~99인’ 노동자집단의 노조 조직률이 뚜렷하게 증가하고, ‘40대 남성’, ‘사업체 종사자 규모 300인 이상’은 감소했다. 최소한 남성과 대기업 중심성은 약해졌다. ‘종사자 30인 미만 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집단이 저대표되는 구조적 문제는 여전하지만, 전체적으로 노조 조합원 구성이 노동시장 노동자 구성에 맞춰 평준화되고 노동운동의 대표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다.

노조 조합원의 구성 변화는 임금 및 단체교섭의 사회적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의 실증 연구들은 노조 활동이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개선하는 힘을 회복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임금 분포를 분석한 연구들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대략 1990년대 중반까지는 노조가 불평등을 개선하는 효과가 뚜렷했다고 평가했다. 새로 조합원이 돼 임단협을 적용받게 된 이들 중 저임금 노동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는 중위소득 이상 노동자들이 임단협을 더 많이 활용하면서 이러한 효과가 모호해지거나 오히려 노조가 불평등을 강화하고 있다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소위 ‘귀족노조’ 담론은 이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데 다양한 자료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분석한 최근 연구(이병희 2017; 황선웅 2017; 김정우 2022; 안정화 2023)는 2010년대 중반 전후해 임금소득 불평등이 노조를 통해 개선되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새로운 물결을 기다리며

종합하면 최근 노조 조직화 추세는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가장 규모가 컸고, 노조의 중년 여성과 중소기업 노동자 대표성 강화, 그리고 사회 불평등 개선에 이바지했다. 나는 이러한 거시적 변화가 민주노총 계열 일부 상급조직이 2000년대 초반부터 추진한 조직화 전략 실천의 효과에 기인한다고 본다. 한국노총 계열의 조직들도 조직화 전략을 추진했지만, 예산과 인력의 투입이나 사업 우선순위에서 그만큼 뚜렷하지 않았다. 물론 대통령 탄핵을 가져온 거대한 촛불시위, 정권 교체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최저임금 인상 등 친노동 정책 추진 등의 환경 변화가 노조 조직화 물결 형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건 틀림없다. 그러나 꾸준히 조직화 전략을 실천하여 실패와 성공의 사례들을 축적하고 그로부터 학습하여 단련된 조직활동가 집단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없었다면, 노동운동이 그러한 정치적 기회구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사회적 결과는 없었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정권이 교체되고 정치·사회적 환경이 변화했을 뿐만 아니라, 2017년 노조 조직화의 물결을 이끈 하위 부문들―공공부문 공무직, 건설산업과 물류산업 특수고용직·비정규직, 미화·경비 등 간접고용―에서 조직화 추세가 거의 완료됐기 때문이다. 요컨대 노조가 지속해서 대표성을 높이고 사회구조를 긍정적으로 바꿔가고자 한다면 다시 한번 조직화 전략의 질적 도약을 모색해야 한다. 그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여성, 청년과 노년, 비정규직, 중소기업 등 노동자집단에서 더 많은 노조 대표자와 활동가를 육성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눈에 띄게 활동하는 조직에 더 끌리는 법이다. 둘째, 소위 애자일(Agile·기민한) 방식을 조직화 전략에 도입해야 한다. ‘비정규직’이라는 용어로 취약 노동자집단을 모두 포괄하기 어려울 정도로 노동시장 구조가 매우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직화 전략을 추진하는 주체들의 활동 방식도 날렵해져야 한다. 셋째, 조직화와 관련된 노동법제도의 개선을 추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노동법제도의 적용은 관습적으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창의적인 활용이 가능하다. 사례에 기반한 실용적 연구와 학습이 제도화돼야 한다.

2017년 노조 조직화의 물결은 사회구조를 바꿨고, 이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행위주체의 실천적 변화로부터 비롯됐다. 노동운동의 실천이 사회적 결과를 내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당분간 노조 조직화는 지난 몇 년간과 같은 성과를 산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조직화 전략 추진을 중단한다면 성급하고 잘못된 선택이 될 것이다.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 방향을 신중하게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