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노사연 기고] 주 단위 연장근로 한도 해석에 대한 우려
[한노사연 기고] 주 단위 연장근로 한도 해석에 대한 우려
  • 참여와혁신
  • 승인 2024.03.14 00:32
  • 수정 2024.03.1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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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관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 개악안 폐기하라, 국민의견 발표 및 제안서 전달' 기자회견에서 대형 현수막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 개악안 폐기하라, 국민의견 발표 및 제안서 전달' 기자회견에서 대형 현수막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1990년대 후반, 개인용 컴퓨터의 성능이 점차 향상되면서, IT(Information Technology)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일부 경영진을 중심으로 서버(Server)1) 대신 PC(Personal Computer)를 활용해 홈페이지 등 기업의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중앙처리장치(CPU, Central Processing Unit), 램(RAM, Random Access Memory), 하드디스크(HDD, Hard Disk Drive) 등 주요 부품의 성능 수치가 비슷해 보이는데 서버가 PC보다 훨씬 가격이 비싸다는 점에서 PC가 서버를 대체할 수 있을 거라 상상했을 것이다. 이 상상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당시 소규모 창업가인 소호(Small Office Home Office)를 중심으로 PC로 서버를 대체하는 시도가 추진되기도 했지만, 기업 단위에서는 사실상 대체할 수 없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 운영체제(Operating System)에서 문제가 있었다. 당시 서버의 운영체제는 유닉스(Unix)였는데, PC 운영체제인 윈도즈(Microsoft Windwos)나 오픈 소스로 개발된 리눅스(Linux)가 유닉스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

두 번째로는 하드웨어(Hardware)의 안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서버는 24시간 365일 구동되는 것을 전제로 개발된 기기라면, PC는 개인을 대상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다. 즉 PC가 서버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24시간 365일 구동돼야 하는데, PC를 이렇게 구동했을 때 하드웨어의 과부하를 일으켜 부품 손상이나 오작동으로 이어졌다.

세 번째로는 안정적 구동을 위한 환경 조성과 관련된 문제가 있었다. 서버는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안정적으로 구동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항온항습기(恒溫恒濕器)가 설치돼야 하고, 화재 상황을 대비하되 서버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분말형 소화기가 아닌 가스형 소화기(하론 가스)가 비치돼야 한다. 서버에 안정적인 전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무정전전원장치(UPS, Uninterruptible Power Supply) 등도 부수적으로 설치돼야 한다.

결국 눈에 보이지 않지만 충족돼야 할 여러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려하지 못한다면 PC가 서버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기계가 아닌 인간은 어떨까? 수험생 시절 밤새 공부를 하거나, 프로젝트 마무리를 위해서 밤새 작업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나이가 점점 들면서 늦게까지 작업하거나 책을 보는 경우 다음 날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피로가 누적되면 여러 날에 걸쳐 그 영향을 받기도 한다. 기계도 특정한 기간에만 집중해 가동하다 보면 과부하가 걸려 고장이 날 수 있는데, 사람에게 오는 과부하는 오죽할까? 위에서 다룬 서버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리 좋은 기기라도 항온항습, UPS 등 적절한 구동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수명이 단축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직원이 일할 수 있는 최적화된 작업 환경을 조성하지 않고 기계적 또는 수치상으로 가능한 범주까지 일을 시키게 된다면, 직원들이 탈진(번아웃·Burn-out)되는 일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연장근로 한도를 주 단위로 판단한 지난해 12월 7일 대법원의 판결(2020도15393)은 인간의 노동을 단순하게 수치로만 접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안타까운 판결이다. 주 40시간이라는 명목에 사로잡혀 인간이 노동할 수 있는 상식적인 한도를 뛰어넘는 노동을 사용자가 요구할 우려가 있다는 점, 예를 들어 산술적으로는 하루에 21.5시간까지 노동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국민에게 헌법 제10조에서 정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법 해석에서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일부 사용자는 이번 대법원판결과 관련해 변경된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 등을 악용해 노동자를 상식 이하의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내몰아 건강, 산업안전, 나아가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 대법원판결은 마치 CPU, RAM, HDD 성능 ‘수치’만 비교해 PC가 서버를 대신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을 가졌던 IT 산업에서 과오가 노동계에서 재현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현행 법령이나 법 해석적으로는 주 단위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합당하고 불가피하다면, 우리의 노동 현실을 고려해 법치주의가 가능하도록 근로기준법의 개정을 국회에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다.

 

1) 인터넷(Internet)을 통해 클라이언트(Client)에게 서비스나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컴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