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타이드 붕괴? “동의 못 해···인플레 시민 분노 이용한 것”
핑크타이드 붕괴? “동의 못 해···인플레 시민 분노 이용한 것”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12.27 15:26
  • 수정 2023.12.27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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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리아노 다비드 바스케스(Mariano David Vázquez)
아르헨티나 기자가 답한 좌파 정치와 노동
새로운 기술로 나타난 ‘새로운 노동’ 제도화, 아르헨티나 노조 과제
마리아노 다비드 바스케스 씨를 지난 11월 25일 노동당 ‘2023 사회주의대회’가 진행된 서울 국제청소년센터 유스호스텔에서 인터뷰했다. ⓒ 노동당

바다 건너 라틴아메리카. 인플레이션율이 세 자릿수를 넘어가는 나라들이 있다. 마트들은 아침에 문을 열었다 점심에 문을 닫고 가격을 다시 매긴다. 자고 일어나면 주머니에 있던 돈의 가치는 3분의 1로 뚝 떨어진다.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할 정도로 제조업이 발전했었지만 지금 제조업 공장을 두고 사람들은 “그냥 폭파 시켜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하나의 직업만으론 생활을 감당할 수 없어 투잡, 쓰리잡을 뛰고 그 직업은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된다. 길어지는 경제 위기에 놓인 라틴아메리카의 모습이다.

아르헨티나에서 기자로 일하는 마리아노 다비드 바스케스(Mariano David Vázquez) 씨는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을 이해할 때 미국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그간 미국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백야드(뒷마당)” 정도로 여기며 자원을 빼내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의 움직임은 좌파 세력들에게 동력을 안겨줬다. 다양한 계층의 시민과 노동자들이 광범위한 민중운동을 벌였고, 노동자·원주민 출신 대통령이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 임기를 시작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주의 파도라 불리는 ‘핑크타이드’다.

핑크타이드는 계속될 수 있을까. 지난 11월 1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극우 성향인 하비에르 밀레이가 당선되자 핑크타이드가 종말을 맞을 수 있단 전망이 쏟아졌다. 하비에르 밀레이의 취임을 앞둔 지난 11월 25일 노동당의 소개로 마리아노 씨와 대화했다.

중남미에 친미 정부 세우려는
미국 노력이 좌파 동력 만들어

- <참여와혁신> 독자들에게 인사를 부탁한다.

나는 마리아노고 아르헨티나 출신 기자다. 중남미의 국제 정치에 관한 분석 기사를 많이 쓴다. 나 역시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문제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아르헨티나에 기자 노동조합이 있기도 하지만 나는 아르헨티나독립노동자중앙회(CTAA)라는 곳의 일원이다. 조금 더 젊었을 때는 청년 조합원으로 활동을 했다. CTAA에 가입한 청년들은 지역 민중의 교육을 담당했다.

-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지형은 어떻고, 어떤 역사적 맥락을 거쳤나?

중남미와 카리브 지역은 미국과 관계에 대한 내용을 배제하고는 이해할 수가 없다. 12월 2일은 미국 5대 제임스 먼로 대통령의 독트린이라고 하는 사상이 발표된 지 200년이 되는 날이다. 먼로 대통령은 ‘미주 지역은 미국인들에게’를 주창했다.

이후 미국은 200년 동안 자본주의와 식민주의를 전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중남미를 자국의 백야드(뒷마당) 정도로 삼으려는 노력을 해 왔다. 중남미에 친미 정부들을 세우려는 활동을 했고 아주 체계적으로 인권을 위배하기도 했다. 중남미 독재 정권에 대한 지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 미국은 중남미의 천연자원을 탈취하고 친미 기업들을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중남미에 뿌리내리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 라틴아메리카는 좌파와 극우 정당이 번갈아가며 집권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각각의 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우파들에게 미국의 지원이 동력이 돼 줬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좌파가 반항하는 동력을 또 만들어줬다고 할 수 있다. 중남미의 많은 민중이 (미국에) 대항을 하고 운동을 일으켜서 민중운동, 좌파운동들이 크게 일어났다. 21세기 초 중남미 국가들에서 좌파 대통령들이 당선이 되는 역사가 있었다. 전례 없는 지역 통합주의가 확산되고 반제국주의적인 정신을 가진 운동이 시작됐는데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잘 알고 있는 핑크타이드다.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지도. 빨강이 좌파, 파랑이 우파다. ⓒ 마리아노 씨 제공   

- 이번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극우 성향인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당선됐다. 한국 언론들은 핑크타이드가 붕괴되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는데, 현장 분위기와 이 전망에 대한 생각이 듣고 싶다.

핑크타이드가 붕괴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리고 밀레이라는 인사는 어떻게 보면 전례 없는, 약간 실험적인 인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그냥 보수도 아니고 극우파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국민의 대다수가 투표로 이분을 뽑지 않았나? 이번이 두 번째 라운드로 투표를 해서 나온 결과인데 56%대 44%로 이겼다. 아르헨티나는 8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경제 위기에 놓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하고 있고 빈곤율이 높아진 나라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은 분노했다. 그 분노를 (밀레이 당선자가) 유리하게 이용하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사실 인플레이션의 배경엔 199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 정책이 있다. (미국은) 외채를 바로 회수하기를 원했다.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에 돈을 많이 빌려 쓰고 있었는데 회수하려고 하니 어떻게 되겠나. 달러의 씨가 마르고 달러 가치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그게 인플레이션으로 또 연결됐던 상황이 있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위험에 노출됐다고 다들 생각한다. 선거운동에서 주요 위협 대상이 노동자 계층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조합에 대한 권리, 시위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1차 핑크타이드 이후
시민 진영 운동 활발해져

- 그럼 중남미의 경제 위기에 대한 좌파 정당들의 대안은 뭔가?

이어서 1990년대에 신자유주의가 중남미를 지배하게 됐다. 많은 실업이 야기됐고 거주지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좌파는 사회주의 운동을 일으켜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들은 노동자 또는 원주민 출신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 민중과 조금 더 가까운 위치였다. 그랬기에 민중의 권익을 더 확대하고 보장하는 정책들을 수립했다. 1차 핑크타이드라고 부르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다.

- 시민의 정치 참여도는 높은 편인가?

역사적으로 중남미 시민의 정치 참여도는 항상 높았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다만 중남미에서는 한때 정당이 강화돼 있었고 많은 정당들이 공존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당들이 ‘나를 대표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생겼다. 약간의 쇠퇴 또는 위기를 맞은 거다. 정당과 상관없는 사회주의 움직임과 운동, 노동조합과 같은 조합의 움직임들, 지역주의 운동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최근 들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 여성 페미니스트, 다양성주의 운동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청년 계층의 정치 참여도 굉장히 높다.

그런데 최근 약간 기이한 현상이 있다. 좌파 또는 극좌파들의 고유 유산이었다고 생각했던 반항이란 용어가 우파와 극우파에게로 넘어간다고 느껴지는 현상들이다. 대중 매체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과거에는 파시즘, 나치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개방적으로 옹호를 하지 못했지 않나. 요즘은 대중 매체들이 편하게 대화를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상황이라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인종차별주의 같은 것은 ‘내 생각인데 뭐’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게 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 정당 중심보단 시민 진영의 운동들이 더 활발해진 거라고 봐도 되나?

어떻게 보면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말씀하신 대로 시민들이 주체가 된 즉흥적인 운동들이 일어나는 건 사실이다. 즉흥성의 장점도 있지만 단점은 제대로 조직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는 것이며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거다.

마리아노 다비드 바스케스 씨 ⓒ 노동당

노동자 출신 하원 의원 배출하고
기본권 법제화한 아르헨티나 진보 정당

- 마리아노 씨는 당에 가입했나?

페론당에 가입했다. 아르헨티나의 페론 대통령이 창당한 당이다. 우리는 페론주의라고 부른다. 기본적인 주축은 노동자들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최초로 노동자들의 기본 권리를 합법화해 낸 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8시간 근무가 합법화됐고 유급휴가, 성과급, 남녀의 동일한 급여 등을 다뤘다. 아르헨티나에는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무런 제도가 없었다. 그 사람들의 노동권을 보호할 제도도 마련했다. 보건이라든지 교육, 주택 등에서 사회주의적인 내용들을 정책에 도입을 해서 실현해 낸 당이라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다. 조부님과 조모님이 굉장히 빈곤층이었다. 조모님은 거리에서 물건을 파시는 분이었고 조부님은 막노동을 했다. 안정적인 급여 수입이 없으신 분들이었는데 페론 정권 덕분에 두 분이 합법적인 제도하에서 노동을 할 수 있게 됐고 주택을 구입을 할 수 있게 됐다. 페론당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아르헨티나에서 그런 현상은 불가능했을 거다.

- 페론당은 노동조합과 어떻게 연대하고 있나?

태생부터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탄생한 당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항상 노동조합들과의 협력을 최우선시해 왔다. 앞으로도 아마 계속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페론당으로 출마해서 당선된 조합 출신 하원 의원들도 있다. 다양한 노동 조직들과 우리가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연대하는 노력을 해오고 있었는데,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지금으로는 우리 노동자들의 권리를 방어하는 데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우파 정권 수입 허용 정책·외국 기업
자원 추출, 아르헨티나 산업 위기 불러

- 아르헨티나의 산업 구조는 어떻고, 어떤 노동 이슈들이 주로 있나?

아르헨티나는 과거엔 산업적으로 많이 발전돼 있었던 나라 중 하나였다. 특히 중남미 중에선 2차 산업 쪽이 발전돼 있었는데, 자동차 공장에서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점차적으로 그 산업들이 전부 쇠퇴하고 있다. 중남미에서 가장 큰 조선소인 리오산티아고가 아르헨티나에 있는데 마크리 대통령 시절 이 조선소를 그냥 폭파시켜버리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적자가 심하다.

최근 제조업이 조금 회복이 됐고 고용이 더 창출되기도 했다. 문제는 아주 높은 인플레율 때문에 급여가 충분한 소득이 되지 못해 결국 투잡, 쓰리잡을 하는데 그것은 사회 안전망에 포함될 수 없는 비정규직에 해당된다.

- 산업이 쇠퇴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결론적으로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업들은 전체적으로 코스트를 낮추려고 한다. 특히 우파 정권 때는 항상 수입을 허용을 하는데 자국 산업은 보호되거나 충분히 양성이 돼 있지 않은 상태다 보니 그 분야 산업은 더 약화된다.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외국 기업들은 자국 천연자원들을 추출해서 가지고 가고, 아르헨티나엔 아무런 부가가치 창출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점점 더 쇠퇴할 수밖에 없다.

- 외투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어떤가?

다 그대로 똑같이 보호를 받는다. 아르헨티나는 노조가 잘 조직이 돼 있고 노동조합의 권리가 강하다. 조직률은 27% 정도다. 급여 협상할 때도 산업별로 한다. 각 기업이 마음대로 하기보단 산업별로 정해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선 노동자들의 권리가 상당히 잘 보호된다.

마리아노 다비드 바스케스 씨 ⓒ노동당

노조, 신종 업종 노동자 법 테두리 넣는
활동 계속해야···노동자 ‘교육’ 특히 중요

- 조직되지 않은 70%의 미조직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조합은 어떤 활동을 하나?

CTAA 같은 경우 미고용 상태라 하더라도 조합 가입을 허용한다. 일을 하든 안 하든 노동자라는 원칙이다. 또 많은 조합들이 노력을 해야 하는 부분이 이미지 개선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노동조합은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서 생기는 노동 행태들에 대한 지식을 확산할 필요가 있다. 우버 기사 등 노동 행태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코로나19 이후에 아르헨티나에서 요양보호사 같은 신종 업종들이 좀 많이 생겼다. 우파는 이것이 아주 미래의 직업인 것처럼 선전을 하지만 폐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업종들은 아직까지는 노동자 카테고리에 못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사회안전망에서 제외된 상황이다.

그들을 노동의 카테고리로 포함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그것을 홍보해서 우리 조직에 가입할 수 있도록 시도하고 있다. 중남미 몇 개 국가에서는 소송을 통해 (노동관계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던 노동자들이) 노동자로 인정을 받은 케이스들이 있다. 산재를 보상해주는 것처럼 요구 사항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런 것들을 제도화하는 게 지금의 도전 과제다.

- 한국 사회는 진보 또는 노동세력이 위축되고 양당 체제가 고착화된 상태다. 한국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제일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전통적인 제조업 종사자, 공무원, 서비스업을 떠나서 노동자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다.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건 교육이다. 지속, 그리고 평생교육이 굉장히 우리에게 중요하다. 쿠바에서 1860년도에 담배 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 우리에게 글을 읽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던 그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노동자들은 지식을 확보하고 고급문화를 접하고 이를 양성해서 사회화할 필요가 있다. 부유층들은 책을 구입하면 자신의 도서관이나 책장에 갖다 꽂아 놓을 거다. 노동자들은 책을 구입하면 읽고, 옆에 친구에게 넘겨주면서 지식을 사회화하는 정신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