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대법원, 연장근로 기계적 해석에 논리도 문제”
노동계 “대법원, 연장근로 기계적 해석에 논리도 문제”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12.27 20:51
  • 수정 2024.01.0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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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근로 ‘1일 8시간’ 아닌 ‘1주 40시간’ 기준 대법 판단에
노동계 반발 이어져···국회에 입법 보완 촉구도

주 최대 52시간을 넘기지 않는다면 하루 단위로 몰아서 일하는 것은 위법하지 않다고 판결한 대법원, 이에 따른 행정해석 변경을 예고한 고용노동부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주 최대 52시간의 연장근로 한도 초과 여부는 ‘1일 8시간을 넘긴 근로시간의 합계’가 아니라 ‘1주 근로시간 중 40시간을 넘긴 만큼’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지난 7일 밝혔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시간의 한도를 1주간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을 뿐이고 1일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다”며 연장근로시간을 하루가 아닌 한 주 단위로 계산한 배경을 설명했다.

근로기준법에서 ‘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제50조). 당사자 간 합의가 있으면 ‘1주 12시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제53조). 1주에 12시간 넘게 초과근무를 시킨 사업자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다만 대법원은 이번 판시는 사업주를 형사 처벌할 때 적용한 기준으로 연장근로수당 계산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연장근로수당을 계산할 때는 하루 단위로 연장근로시간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대법원판결을 환영했다. 노동부는 지난 26일 입장문을 통해 “바쁠 때 더 일하고 덜 바쁠 때 충분히 쉴 수 있도록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합리적인 판결”이라며 “대법원판결은 그간 행정해석으로만 규율됐던 연장근로시간 한도 계산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동부는 대법원판결에 따른 행정해석 변경도 예고했다. 그간 노동부는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시간을 합산해 1주 12시간을 넘기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판단해 왔다. 노동부는 “정부는 행정해석과 판결의 차이로 현장에서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문가 등 의견을 수렴해 조속히 행정해석 변경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부는 향후 “근로시간 개편 관련 노사정 사회적 대화 시 이번 대법원판결의 취지를 반영해 근로시간의 유연성과 건강권이 조화를 이루는 충실한 대안이 마련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최근 중앙 사회적 대화 복귀를 선언한 한국노총은 근로시간 개편을 사회적 대화 의제로 정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 개악안 폐기하라, 국민의견 발표 및 제안서 전달' 기자회견에서 대형 현수막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4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 개악안 폐기하라, 국민의견 발표 및 제안서 전달' 기자회견에서 대형 현수막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장시간 노동 외면한 기계적 해석론”

노동계는 대법원의 판단이 “장시간 노동문제를 외면한 기계적인 해석론”이라고 비판했다. 

금속노조 인천지부 부평공단지회는 27일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하루 21.5시간씩 이틀만 일해도 1주 총 노동시간이 43시간인데 초과 노동시간은 3시간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다”며 “공단의 5인 미만 사업장이나 중소영세 사업장은 안 그래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번 판결은 합법적으로 과로사를 하라고 만드는 것 아닌가”라고 밝혔다. 

부평공단지회는 “(원청 한국지엠 생산량 증가로) 조합원 주 평균 64시간, 전반조 근무시간 62시간 노동을 한 지 벌써 1년이 넘어간다”며 “(원청과) 직서열 업체의 특성상 몇 명 빠지면 라인이 가동되지 않는 시스템에서 사측은 조합원의 장시간 노동을 사실상 방치해왔다. 이 와중에 대법원은 현장의 정서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판결을 한 것”이라고 전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도 27일 “대법원판결을 근거로 노동행정이 이뤄진다면 방송현장에서 A팀이 17시간씩 3일 촬영하고 B팀이 17시간씩 3일 촬영하는 것도 정당화된다는 뜻”이라며 “촬영이 있는 날이면 새벽 6시에 여의도에 모여서 촬영장으로 이동해 자정까지 촬영하고 여의도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미 방송 제작 현장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스태프들 스스로가 장시간 노동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목소리를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며 “대법원의 판결과 고용노동부의 행태는 방송현장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 논리에 대한 문제 제기도 

대법원판결의 논리 자체에도 문제가 있단 지적도 나왔다. 금속노조법률원 충남사무소는 27일 “근로기준법 제53조 제1항은 ‘제50조의 근로시간’을 12시간을 한도로 했지 ‘제50조 제1항의 근로시간’이라고 하지 않았다”며 “즉, 문언상 1항(주 40시간)과 2항(1일 8시간) 모두에 대한 연장근로시간을 12시간으로 제한하는 의미인데, 대법원은 이를 근거없이 축소 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제50조(근로시간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 제53조(연장 근로의 제한)
①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금속노조법률원 충남사무소는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연장근로수당 계산과 선을 그은 점에 대한 문제도 지적했다. 

금속노조법률원 충남사무소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은 연장근로수당 가산 규정의 취지가 ‘사용자에게 금전적 부담을 가함으로써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억제하는’ 데 있다고 했지, 금전적 보상만이 취지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며 “설령 근로기준법 제53조 제1항이 ‘1주 40시간을 초과한 12시간’만 금지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더라도, 이 경우 연장근로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이 입법 목적과 관련 규정들의 취지에 부합하는 해석이 된다”고 설명했다.

ⓒ 한국노총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밤샘노동 논란 부추긴 대법 판결 악용하려는 고용노동부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한국노총

노동계, 입법 보완 요구

노동계는 관련 입법 보완을 국회에 촉구했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27일 이수진(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노총이 함께 개최한 국회 기자회견에서 “오히려 이번 판결로 1일 최장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현행법상 규정이 전무한 입법적 불비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며 “대법원판결이 실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시대적 과업에 역주행하도록 악용되는 것을 막고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해 1일 최장 노동시간 제한, 1일 11시간 연속 휴식권 전면 보장 등 입법 보완에 나서 줄 것을 국회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지난 26일 “노동자 건강권 확장,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개악 흐름에 규탄과 함께 명백한 반대의 입장을 밝힌다”며 “노동시간 단축과 장시간 노동 금지를 위한 ‘일일 노동시간 상한 규정’과 함께 ‘11시간 연속 휴식제’를 실현하는 동시에 노동시간 개악이라는 치밀하고 집요한 반노동 기류와 정책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