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1.5시간 노동 가능”···정부 행정해석 변경 노동계 질타
“하루 21.5시간 노동 가능”···정부 행정해석 변경 노동계 질타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4.01.22 17:05
  • 수정 2024.01.22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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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장관 “사회적 대화로 건강권, 근로시간 유연성 개선 기대”
노동계 “윤석열 정부, 압축 노동 정책 포기하지 않았어”

고용노동부가 행정해석 변경을 통해 연장근로시간 적용 단위를 ‘하루 8시간 이상’에서 ‘주 40시간 이상’으로 변경한다. 이번 행정해석 변경으로 하루 21.5시간의 ‘장시간 압축 노동’이 발생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노동부는 22일 대법원 판결에 따라 연장근로 한도 위반에 대한 기존 행정해석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번 해석 변경은 현재 조사·감독 중인 사건에 곧바로 적용된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는 하루 8시간 넘게 일한 시간의 합계가 주 최대 12시간을 초과하면 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봤지만, 이제부턴 주 40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시간이 12시간을 넘는 경우에만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

지난달 7일 대법원은 주 최대 52시간 연장근로의 한도 초과 여부를 ‘1일 8시간을 넘긴 근로시간의 합계’가 아니라 ‘1주 근로시간 중 40시간을 넘긴 만큼’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시간의 한도를 1주간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을 뿐이고 1일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게 대법원이 밝힌 판결 이유다.

고용노동부가 22일 발표한 ‘연장근로 한도 위반 기준 행정해석’ 변경 내용

문제는 장시간 압축 노동이다. 이번 행정해석 변경을 따를 경우, 이론적으론 하루 24시간 중 최대 21.5시간 노동도 가능해진다. 근로기준법상 하루 8시간마다 1시간씩 주어지는 두 차례의 휴게시간과 연장근로 휴게시간 30분을 제외한 수치다.

이날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근로자 건강권을 보호하면서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대법원 판결 이후 현장 노사, 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으며, 법의 최종 판단 및 해석 권한을 갖는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해 행정해석을 변경하는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로 현행 근로시간 제도의 경직성을 보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지만 건강권 우려도 있는 만큼 현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했다.

양대 노총은 장시간 노동의 길을 터줬다며 노동부의 행정해석 변경에 즉각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이번 노동부 발표는 사용자들에게 연장근로시간 몰아 쓰기가 가능하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며, 국민들의 반대로 잠시 주춤했지만 이 정부가 몰아서 일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압축 노동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 근로기준법으로는 근무일 간 휴게시간 보장 규정이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제도가) 악용될 경우 하루 21.5시간까지도 압축 노동이 가능한 사안에 대해 이토록 신속하게 행정해석을 변경하는 노동부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노동부의 변경된 기준을 요약하면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더라도 주당 최대 노동시간에만 미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집중 노동’의 시대를 선언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주 4일제 논의가 진지하게 시행되고 있고 과도한 노동량이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도 숱하다. 한국 정부와 법원이 노동시간을 늘리고 이를 핑계 대기 위해 아전인수격 해석을 내놓는 것은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을 넘어 인간다운 삶과 생활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반 인권적인 행태”라고 했다.

장시간 압축 노동을 막기 위한 입법 보완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한국노총은 “대법원 판결의 근본 원인은 근로기준법상 1일 총근로시간 규제가 존재하지 않는 법의 구멍 때문”이라며 “이 문제는 결국 근로기준법상 1일 근로시간 상한과 24시간 중 11시간 연속휴식권 도입이 되어야만 끝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