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이미 너무 늦었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이미 너무 늦었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24.01.04 10:45
  • 수정 2024.01.0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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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인노무사회 연속기고①] 신동헌 에이플 노무법인 대표 공인노무사

노동관계법 전문가인 공인노무사들이 다양한 사업장에서 상담·컨설팅·조정 업무를 하며 생각해 온 ‘바꿔야 할 노동관계법·제도’를 참여와혁신과 알리기로 했습니다. 총 12명이 오는 12월까지 매달 다른 주제를 각각 다룹니다. 기고는 참여와혁신 월간지와 온라인 홈페이지에 담길 예정입니다.

신동헌 에이플 노무법인 대표 공인노무사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노동3법(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노동위원회법)이 제정된 지 70여 년이 지났다(1953년 제정). 노동3법의 목적은 열악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조금이나마 향상하는 동시에 사업장 질서를 유지해 원활한 노사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그중 개별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보호막이 되는 것은 근로기준법이다. 개별 권리(임금, 근로시간, 휴게시간, 휴일, 연차유급휴가 등)를 규율해 노동조합을 결성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근로기준법이 모든 노동자의 모든 기본적인 권리를 지켜주는 것만은 아니다.

많은 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역사가 곧 그 적용 확대의 역사로 봐도 무방하다고들 말한다. 최초의 근로기준법은 여러 조항들(근로시간, 가산임금, 연차유급휴가 등)을 15인 이상 사업장에서만 전면적으로 적용했다. 이를 두고 노동자 차별이라는 입장과 영세 사업장의 법 준수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현실적 입장 모두 일리가 있는 의견이다.

현실의 문제를 잠시 접어두고 철저하게 법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분명 모든 인간(국민)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기준을 정하라는 헌법 제32조 제3항의 취지에 반하는 조항이기는 하다. 물론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수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기는 하나 이에 대한 합리적 이유가 부족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그러한 관점에서인지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는 갈수록 확대돼 2024년 1월 현재에는 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에게 모두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연차유급휴가, 부당해고, 근로시간제한, 연장·야간·휴일근로 시 가산수당,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의 보호 등에서 열외 된다. 그런 사업장이 적다면 모르겠는데, 통계마다 다르지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대한민국에 5인 미만 사업장은 170만 개에 달한다고 한다.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상시 5인 이상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이 시작된 게 1998년이다. 햇수로 벌써 26년이 지난 만큼,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보호범위 확대를 논할 사회적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중 가장 파급력이 큰 규정은 해고제한 및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일 것이다. 많은 사업자와 외부 연구자들도 이 부분에서 많은 분쟁이 생길까 걱정한다. 물론 구제신청절차가 새롭게 적용된다면 당연히 그에 따른 사건의 건수(件數)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그 분쟁당사자의 목적이 무엇이고 그 분쟁을 어떻게 풀 것인지다.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해당 사업장을 왜 선택했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노총 연구자료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해당 사업장을 선택한 이유 1순위가 ‘집에서 가까워서’고 2순위는 다른 ‘일자리’로의 취업이 어려워서다. 임금 수준, 직무는 크게 고려요소가 아니었다. 이러한 노동자와 사업주의 분쟁은 소위 ‘끝까지 가서 복직하고 싶습니다’도 있지만 ‘잘 마무리하고 집 근처 다른 사업장 가도 됩니다’의 니즈도 상당하다.

그래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에 발맞춰 노동위원회법 개정을 통해 일본의 ‘분쟁조정위원회(개별법 분쟁 한정)’을 두는 방식을 고민할 때가 됐다. 우리나라 노동위원회의 시작은 ‘조정과 중재’기능이 주된 기능이었으나 수십 년이 지나면서 부당해고나 징계, 발령 여부를 판정하는 심판기능이 강화된 특이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동위원회는 집단적 노사갈등(회사와 노동조합 간 갈등)은 물론 개별적 노사갈등(해고 등 회사와 개별 노동자 차원의 갈등)에서도 사전 조정, 분쟁 조정 등 기능이 우선이다.

이를 사전조정 혹은 대체적 분쟁 해결(ADR)이라 하는데, 대한민국의 노동위원회도 5인 미만 사업장의 부당해고 규정 적용과 함께 이런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도 노동위원회의 조정위원은 공무원, 변호사, 교수로 편중된 심판위원과 달리 평상시 노사관계 및 사업운영현황을 잘 알고 있는 노동조합 상근자 출신, 사업자, 공인노무사 등 다양한 주체들로 구성된 만큼 그 풀을 더 잘 이용할 수 있다.

그 외 모든 조항의 확대적용이 시급하지만 무엇보다 직장 내 괴롭힘 보호 확대는 매우 시급하다. 직장 내 괴롭힘과 유사성이 있는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노동자가 1명이라도 있다면 적용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은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사업주 외 노동자 서로에게 있는, 노동법에 거의 없는 특이한 규정이다. 이는 괴롭힘과 성희롱이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인권은 물론 정신적, 관계적 안전보건까지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기 때문이다. 노동법은 사업주에게 의무를 부과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게 기본적인 틀인데 괴롭힘과 성희롱은 그것만으로 부족하여 노동자들에게도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는 괴롭힘이나 성희롱 발생 시 이를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처리할 의무를 추가로 부여해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근로환경을 보호하게 한다.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만 괴롭힘의 예외로 두고 있는 것은 법 취지에 맞지 않다. 이미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모든 규정이 전 사업장에 적용되고 있는 만큼 영세사업주 보호의 논리도 궁색하다. 이제 전면 적용을 전제로 한 사업장 지원(괴롭힘 발생 시 조사 지원 프로세스)을 고민할 때다. 각 관할 노동지청에서 전문가인 공인노무사, 변호사로 구성된 조사자 풀을 구축하고 이를 소개하며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우수 사업장에 지원하는 방안 등이 가능하다.

이렇게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어떻게 더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전 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이를 역행하려는 시도도 있어 우려된다. 대표적인 것이 임금명세서 교부 의무에 대한 퇴행 시도이다. 노동관계에서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갈등은 임금 관련(특히 임금체불) 갈등이다. 매년 수천억 원 규모의 새로운 체불임금이 발생하고 대부분의 피해는 정당하게 노동을 제공했음에도 대가를 받지 못한 노동자에게 지워진다.

다툼을 예방하고 빠른 해결을 위해 2021년 11월 근로기준법에 임금명세서 지급 의무가 추가되었다. 사업주는 이제 매월 임금을 지급할 때 그 내역을 노동자에게 교부해야 한다. 그 이후 많은 임금체불 사건들이 명확하게 해결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사회 일부에서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지금 잘 운영되고 있는 임금명세서 교부 의무를 면제해 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퇴행적 주장을 막고 모든 노동자에 대한 보호 확대 방안을 전 사회적으로 머리 맞대고 고민할 때다. 이미 너무 늦은 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