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산업전환 대응, ‘사회적 힘’ 모을 것”
“한국지엠 산업전환 대응, ‘사회적 힘’ 모을 것”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4.01.08 19:34
  • 수정 2024.01.0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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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기준과 투명한 집행 과정으로 조합원 신뢰 회복할 것”
[기자 간담회] 안규백 한국지엠지부 28대 지부장 일문일답

‘너희는 다를 수 있느냐?’는 현장의 물음, “증명하겠다”고 답한 안규백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지부장이 한국지엠지부의 새로운 2년을 이끌게 됐다. 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신, 전기차 전환 계획이 아직 없는 공장이라는 노조 안팎의 위기 속 한국지엠지부 새 집행부는 무엇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안규백 지부장은 지난달 28일 개최한 기자 간담회에서 내부적으론 공정에 입각한 투명한 집행으로 노조의 신뢰를 차근차근 쌓겠다고 했다. 외부적으론 부품사, 지역사회와 연대를 강화해 사회적 힘을 모으겠단 포부도 밝혔다. 

안규백 한국지엠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안규백 한국지엠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제 식구 챙기기’ 모습 벗어나
공정에 입각한 기준 마련해 신뢰 회복”

- 한국지엠지부 28대 지부장에 당선된 배경은 뭐라고 보나? 

한국지엠지부엔 수많은 부침의 역사가 있다. 엄혹한 시절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당당히 투쟁하기도 했다. 이런 역사 위에 우리가 있다. 그런데 지금 현장에서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있는지 봐야 한다. 최근 한국지엠지부가 보여준 여러 일을 보면 과연 노조가 조합원들의 든든한 보호막이었나 반문하게 된다. 이번 선거에서 나는 ‘오직 노동조합, 온통 조합원’만을 바라보겠다고 선언했다. 그래도 ‘안규백이 지부장을 하면 과거와 같지 않은 새롭게 변화된 노조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노조가 정말 나의 백(Back·배경)이 돼주지 않을까’ 이런 조합원들의 기대가 득표로 이어졌다고 본다. 앞으로 오직 조합원들의 힘과 지혜를 믿고 담대하게 협상하고 투쟁할 계획이다. 

- 노조가 조합원들의 신뢰를 잃은 일이 뭐였나? 

우리 얼굴에 침 뱉는 이야기지만 솔직하게 말하겠다. 한국지엠지부에는 여러 의견그룹이 있다. 현장조직이란 이름으로 노조에 다양한 의견을 제기하고 때로는 비판도 하는 그룹들이다. 

2022년 11월 한국지엠 부평 2공장이 가동 중단되고 부평 2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상황이 왔다. 공장-집-공장-집을 오가며 인천이라는 삶터를 벗어나 본 적 없는 노동자들이 오직 고용을 보장받기 위해 창원 공장으로 이동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공조직인 노조는 소위 말해 제 식구 챙기기에만 급급했던 모습을 보여줬다. 창원으로 가야 했던 363명의 인원은 그야말로 백 없고 힘없는 이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조가 어떤 기준과 원칙으로 회사의 일방적인 발령에 개입했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는 내가 스스로 창원 공장 파견자가 되겠다고 나선 이유이기도 했다.

- 선거 운동 과정에서 접한 현장 조합원들의 화두는?

집행의 공정성이었다. ‘너희는 다를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28대 집행부는 공정한 노동, 공정한 임금, 공정한 부서 이동 등 공정에 입각한 기준을 마련하고 원칙을 세우는 데 사활을 걸 것이다.

예를 들자면 자동차 공장의 꽃이라고 불렸던 조립 라인이 이제는 ‘아오지’라고 표현된다. 컨베이어 라인의 특성상 단순 반복 작업이 계속된다. 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우리 조합원들 평균 연령이 53세다. 관절과 연골이 망가지는 상황에서 과연 이들을 컨베이어 라인에서 작업하게 두는 것이 맞는지 회사에 문제 제기를 할 거다. 나도 16년차로 컨베이어 라인에서 일해봤기에 더 절실하다. 창원지회에서는 나름의 원칙과 기준을 만들어서 컨베이어 라인에서 고생하셨던 분들을 다른 부서로 이동시킨 사례가 있다. 이 과정을 어떻게 투명하고 공정하게 할 거냐가 숙제인데, 이를 한국지엠지부가 해보겠다는 것이다.  

원칙과 기준을 정확하게 만들고 이를 적용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간이 천천히 쌓이면 무너진 노조의 신뢰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28대 집행부 첫 상집(상임집행위원회) 회의 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조합원들에게 위임받는 2년의 집행 기간을 마치고 현장으로 돌아갈 때 상집 간부의 자리를 이용해 더 나은 부서로 이동할 사람은 같이 할 수 없다고 명확히 이야기했다. 우리부터 더 철저해지도록 노력할 거다. 

전동화 계획 확정 안 돼
산업전환, ‘사회적 힘’ 모을 것

- 2022년 11월 가동 중단된 부평 2공장의 전기차 생산시설 전환 추진 논의가 이뤄지고 있나? 

한국지엠에서 전기차를 생산한다는 소문은 무성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확정된 사안은 없다. GM 미국 본사 차원의 전기차 생산 계획은 내부적으로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국지엠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도 부평 2공장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한국지엠이 인천에서만 약 15만 명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GM 미국 본사가 향후 한국지엠에서 플러그드인 하이브리드(PHEV) 등 과도적인 미래차 생산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다. 구체적으로 기존에 생산해 온 내연기관차를 포기하고 PHEV로 갈지, 아니면 혼류 생산으로 갈지 등에 대해선 파악하지 못했다. 이는 단체협약에 규정된 미래발전위원회 등을 통해서 확인할 계획이다. 2024년 임금·단체협약 협상에서도 주요한 문제로 다룰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전기차 생산은 대규모의 투자를 전제하고 있기에 GM 미국 본사 차원에서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산업은행에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갖고 접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GM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선거 국면에서 정부에 ‘고용을 지킬 테니 투자를 해달라’는 식의 작업을 많이 한다. 부평 2공장은 설비도 그대로 있다. 노조도 이에 맞게 공세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기존처럼 GM이 정부를 압박해서 돈 뜯어내는 일에 노조가 동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어떻게 노조는 산업전환에 대응할 건가?

글로벌 GM에서 한국지엠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고려했을 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지엠지부만의 힘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보다 큰 힘을 만들어 가야 한다. 부끄럽지만 그간 지역 안에서 대공장 노조로서 여러 사회적 역할을 방기해온 것도 사실이었다. 흩어져 있는 사회적 힘을 모으기 위해서 한국지엠지부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작은 변화지만 기존 대외협력실을 사회연대실로 개편했다. 사회연대실이 총괄해 단순히 한국지엠 공장만 전기차 공장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부품사까지 전체를 아우를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한국지엠을 연구해 온 연구자를 비롯해 여러 관계자들과 함께 힘을 모아 나가려고 한다.

안규백 한국지엠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안규백 한국지엠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르망 세대’ 떠나는 공장···
“인원 충원, 양보할 수 없는 문제”

- 한국지엠의 정년퇴직자도 늘고 있다.  

신차종 생산과 더불어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도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문제다. 1986년부터 1990년대 초반 대우자동차 시절 입사한 세대를 ‘르망* 세대’라고 표현한다. 르망 세대는 1962년~1965년생이 중심이다. 2024년 한국지엠 내 사업장 즉, 직영 정비와 부품 물류를 포함한 창원 공장, 부평 공장의 정년퇴직자는 596명에 이른다. 2023년엔 희망퇴직자를 포함해서 463명이 퇴직했다. 회사의 계획대로라면 한국지엠에서 60만 대를 밑도는 생산량이 당분간은 유지될 텐데, 이를 위해서도 인력 충원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1986년부터 1997년까지 생산된 한국GM의 전신인 대우자동차의 첫 번째 전륜 구동 승용차

- 한국지엠이 비정규직을 발탁 채용하고 있는 인원은?

이미 한국지엠은 불법파견 인원을 정규직화하는 과정에서 불법파견 소지가 있는 업체들에 대부분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제 한국지엠에 남은 1차 하청업체는 딱 한 곳이다. 이곳 역시 계약 해지를 앞두고 있으며 해당 인원은 모두 정규직화될 것이다.

- 한국지엠은 불법파견 비정규직 문제 관련해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취하를 전제로 발탁 채용하고 있지만, 금속노조 한국지엠 비정규직지회는 “소송 취하는 체불임금, 근속 등 기본 권리 포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발탁 채용하는것은 불법파견 범죄 은폐이며 노동자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것”이라며 투쟁하고 있다. 이 가운데 2023년 한국지엠지부 단체교섭을 보면 불법파견 비정규직 문제 관련해서 정규직인 한국지엠지부가 사측과 ‘별도 실무 협의를 통해 논의·협력’하기로 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한 입장은?

28대 집행부의 원칙은 비정규직 단위 주체의 자주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먼저 법원의 최종 판단에 따라 접근하는 방법이 우선이라고 본다. 다만 비정규직지회와 일상적인 소통과 연대를 통해 비정규직지회가 하나 된 입장과 방향성을 결정한다면 다양한 협상을 할 수 있도록 자주성을 존중하며 지원할 계획이다. 비정규직지회는 같은 금속노조 조합원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문제 관련해서 한국지엠지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하거나 밀고 나가는 일은 없도록 할 것이다. 

- 2022년 12월 창원 공장으로 파견된 노동자들의 부평 공장 복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현재로선 175명이 복귀한 상황이다. 향후 2024년 11월 30일까지 총 360명이 부평 공장으로 복귀할 계획이다. 2024년 1월에 76명, 3월에 69명, 9월에 22명, 11월에 18명이 부평 공장으로 돌아온다. 복귀 후 공정 배치에 대해서도 원칙과 기준을 만들어서 회사의 계획에 개입해야 한다고 본다.

“조합원들과 함께 선 넘겠다”

- “한국지엠의 위상을 단순 생산 하청기지가 아닌 종합 자동차 회사로서 과거의 명성과 위상을 되찾겠다”고 선거 운동 과정에서 말했다. 이는 어떻게 가능한가? 

현재로서는 연구·개발(R&D)을 담당하는 GMTCK*와 생산을 맡은 한국지엠이 분리된 상황이다. 연구·개발과 생산이 분리된 체계에선 종합 자동차 회사로 나아갈 수 없다. 금속노조 GMTCK지회와 공동의 대응 전선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 또 ‘9BXX’ 생산 플랫폼에 4개의 파생 차종(트랙스 크로스오버·뷰익 앙코르·뷰익 엔비스타·트레일블레이저)만을 생산하는 것으론 종합 자동차 회사라고 볼 수 없다. 다양한 차종을 생산하는 계기를 임기 2년 동안 반드시 만들어 낼 것이다. *미국 GM 본사가 2019년 1월 한국지엠의 R&D부문을 인적분할해 국내에 설립한 법인

- 덧붙일 말은? 

나는 조합원들과 함께 선을 넘겠다고 약속했다. 공정하고 투명한 집행을 실현하는 안정된 집행부, 끊임없이 학습하고 조직하는 집행부, 간부다운 간부를 구성하는 집행부, 직접 소통하며 내 편이 되는 집행부를 구성해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선을 넘어보려 한다. 노조가 할 수 있는 일, 너머의 일까지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그러나 한쪽 노를 저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조합원들이 노조의 주인으로서, 미래를 꿈꾸는 동료로서, 일상적 안녕을 누려야 할 엄마·아빠로서 당당히 참여할 때, 함께 손 맞잡을 때만이 과감히 선을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글로벌 GM의 한국지엠 축소 전략 분쇄와 노동의 인간화, 지속 가능한 미래라는 우리 노조의 커다란 과제를 쟁취하기 위해 힘차게 투쟁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