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정치 참여’ 보장해야 하나?
‘교사 정치 참여’ 보장해야 하나?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4.02.14 12:23
  • 수정 2024.02.14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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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학부모·청소년 단체, 교사 정치 참여 제한 규제 과도하단 지적
“교사가 말 한마디 못 하는 게 정치적 중립 지키는 건 아냐”

[리포트] ‘교사 정치 참여’ 보장해야 하나?

교사의 정치 참여는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등 현행 법률로 제한돼 있다. 정당 가입·활동, 선거운동, 정치자금 후원 등을 할 수 없고 근무시간 외에도 특정 정당을 지지 또는 반대하거나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 제한된다. 교사가 개인의 정치적 의견을 앞세워 학생을 지도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교사의 정치 참여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법 규제가 과도하다는 불만과 지적은 계속 나온다. 교사나 공무원에 대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가 지나치게 강조돼 헌법상 기본권인 참정권을 제대로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는 불만이 있다. 또 학생들을 정치적으로 선동당하기 쉬운 미성숙한 존재로만 보기 때문에 교사의 정치 참여 길을 옥죄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참정권 행사와 학교 수업은 별개···
교사 근무시간 외 정치활동 보장돼야”

교사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일부 법률에 대한 위헌 소송도 몇 차례 제기됐다. 하지만 그때마다 헌법재판소는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과 교육이 특정 정파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규정된 법률 대부분은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2020년 4월 국가공무원법 65조 1항 중 교원이 ‘그 밖의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는 내용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정치단체 개념이 모호해 교사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및 결사의 자유가 과도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헌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 구성원의 모든 사회적 활동은 정치와 관련된다”며 “단체의 목적이나 활동에 관한 어떠한 제한도 없는 상태에서는 정치단체와 비정치단체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을 도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헌재 결정이 나오자, 교사들이 직접 힘을 모아 교사의 정치기본권 회복에 나서보자는 취지에서 2021년 11월 교사정치학교가 출범했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강신만 교육정치그밖에 대표 등과 함께 출범 때부터 활동해 온 설진성 교사정치학교 교육과정 위원장은 교사도 선거권이 있는 시민으로서 정치 활동할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교사의 참정권은 교실에서 교사의 발언 자유가 아니다. 교사의 참정권은 수업을 파당적으로 운영하는 것과 전혀 무관하다. 교사가 근무시간 밖에서 (정치 참여할) 자유를 준다고 해서 근무시간 안에 직무를 수행하면서 수업을 파당적으로 하리라고 헌법재판소 혹은 국회나 행정부가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파당적이라는 것은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발언이나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교육기본법 6조는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돼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14조는 교원은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해 학생을 지도하거나 선동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와 관련해, 설진성 교육과정 위원장은 “이미 교육기본법 등에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가 규정돼 있다. 교사의 참정권 보장은 이와 별개로 다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윤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도 교사의 정치 참여가 폭넓게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윤경 회장은 “특정 직업이라서 정치적 발언이나 입장을 표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학교 수업에 한해 적용되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삶이 정치를 떠나 있지 않은데 교사라는 이유로 정치에서 완전히 배제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청소년 참정권, 학생 인권 등 보장을 위한 활동을 펼쳐온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공현 활동가도 “교사의 정치 참여를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현행법은 과도한 인권 침해”라면서 “이는 청소년이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기에 미성숙하고 권리를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없다는 편견에 기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사의 정치적 권리 제한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절대적이고 수직적인 것으로 보며 교사가 학생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각종 자의적 지시를 할 수 있는 구조로 유지하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자의적인 지시나 강요, 통제를 할 수단이 줄어들고 학생이 자발적으로 교육에 참여하도록 하고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민주적으로 될수록 교사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의 설득력도 약해질 거라고 본다.”

이에 대해 이윤경 회장은 “18세 미만 아동이라도 하나의 인격을 가지고 생각하는 주체라고 믿어야 한다”며 “이들의 생각이 교사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전제하는 한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발목까지 잡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윤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이윤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명분으로 현행법은 교사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정치적으로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공정하게 처신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편향된 교육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교사의 정치 참여 제한은 불가피한 것일까?

설진성 위원장은 “지금 같은 정치적 중립은 정치·역사적으로 논란이 되는 내용을 말하지 않게 하는 배제적 중립”이라며 “이는 정치적 중립이 아니라고 본다. 이러한 중립성을 지키는 것은 교육을 포기하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교사가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 아래에서 교사는 배제적 중립을 취할 수 있다고 했다. “학생이 정치적 이야기를 해도 교사가 ‘내 수업에서 그런 얘기 하면 안 돼’라며 정치 혐오를 가르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설진성 위원장은 “제가 생각하는 정치적 중립은 참여적 중립”이라며 “교사는 수업 시간에 사회적 현안에 대해 논쟁할 기회를 만들고 아이들의 시민성을 키우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교사가 자기 의견을 함부로 주장하거나 결론 내리지 않고 교실 현장에서 아이들이 충분히 판단하고 자기 결정이 나올 수 있도록 장을 열어줄 수 있다. 이것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고 교육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윤경 회장도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정치에 대해 한마디도 못 하는 것을 뜻하지 않고 여러 가지의 객관적인 주장,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면 어떤 역사에 대해서도 A 사관, B 사관, C 사관이 있을 수 있다. 이를 다 알려주면서 교육하는 게 중립이라고 생각한다. 또 정치적 중립성에 따라 지방선거, 총선, 대선에 대해 학교에서 활발하게 토의되도록 장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독일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학생들에게 정치에 대해 가르치고 판단력을 길러주는 것을 교육이 담당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게 부족하다.”

공현 활동가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법에 명시된 이유는 “교육이 정치권력의 도구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라며 “교사나 학생의 정치 활동을 억압하기 위한 취지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학교장이나 교사가 수업·평가 권한 등을 활용해 정치적 입장 및 활동을 강요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지, 교사 개인이 업무 및 직위와 무관하게 당적을 가지고 선거운동을 하고 후원금을 내는 등의 활동을 금지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했다.

또한 공현 활동가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한 취지를 정말로 잘 살리고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가나 지자체 등이 교육을 강압하는 것부터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며 “국가가 교육과정을 강제하는 현행 교육제도도 재검토해야 한다. 정부나 국회에서 특정한 책이나 교육 내용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또 학교나 교사가 학생에게 정치적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혹은 하게 하는) 강제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 공현 활동가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 공현 활동가

“정치와 담쌓는 학교, 개선해야”

교사의 정치 참여뿐만 아니라 학교의 정치 교육도 과도하게 규제받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정치와 담쌓는 학교 현장이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윤경 회장은 “선거를 할 수 있는 연령이 18세로 낮춰졌음에도 학교 안에서 모의 선거를 못하게 한다. 우리 학교가 속해 있는 지역에 나온 공보물들을 수업 시간에 살펴보고 청소년은 뭘 요구하면 좋을지 등을 이야기하고 일 잘할 것 같은 사람을 뽑아보는 교육은 학교에서 할 수 있지 않나”라며 “이런 교육이 부족한 것도 교사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현 활동가도 “학칙으로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사례나 입시교육 등을 이유로 정치적 활동을 부정적으로 대하는 문화는 여전하다”며 “학교가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고 의견을 표출, 토론하고 모임을 만들어 활동할 수 있게 여유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처럼 정치와 담을 쌓는 학교의 교육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 학부모, 청소년 단체의 의견이 모였다. 이와 관련해, 설진성 위원장은 “교육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주체에서 교사가 제외돼 있다. 학교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시선으로 교육정책이 만들어져 교육 현장과 괴리가 되는 정책이나 공약이 나오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교사들이 정당 가입, 후원, 선거운동 등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면 현장 교사들이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을 제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