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처우 개선, 배달대행업체와 지역 단위 집단교섭으로” 
“라이더 처우 개선, 배달대행업체와 지역 단위 집단교섭으로”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4.02.13 07:09
  • 수정 2024.02.13 0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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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대행업체 라이더들, 불투명한 수수료 체계 등 개선 필요성 느껴
라이더유니온지부 “지역 모든 업체와 교섭으로 처우 개선해 나가야”

[리포트] 배달대행업체 라이더들이 교섭 요구하는 이유는?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음식 주문·배달 앱을 통해 소비자가 음식을 주문하면 이후 배달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음식점에서 직접 배달하거나 △앱을 운영하는 플랫폼업체의 배달대행 전문 자회사를 통해 배달하거나 △자회사가 아닌 배달대행업체를 통해 배달하는 것이다. 플랫폼업체의 자회사나 배달대행업체는 개인사업자 신분의 배달노동자에게 배달업무를 위탁한다.

배달대행업체는 대형 플랫폼업체가 급속히 성장하기 이전부터 지역별로 지사, 즉 대리점을 두고 음식점과 배달노동자를 연결하는 배달 중개 사업을 영위해 왔다. 지금 같이 주로 앱을 통해 주문받는 것 외에 음식점으로 직접 전화 주문 온 경우 등 배달을 배달대행업체에 위탁하면 업체가 배달노동자를 배차시키는 방식이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2년 기준 배달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역 배달대행 영업점(지사)은 7,749개소에 달한다.

대형 플랫폼업체들은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배달노동자 대상으로 서면계약서 작성, 안전교육 등 라이더 안전과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조처를 늘려왔다. 반면 배달대행업체는 그러한 조처가 여전히 미비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는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배달대행업체 대리점들과 교섭을 통해 해당 지역 배달노동자 처우 전반을 개선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 1월 11일부터는 시흥 지역 일부 배달대행업체들과 상견례 후 교섭을 진행 중이다.

도로 위의 배달노동자들
도로 위의 배달노동자들 ⓒ 참여와혁신 DB

대리점 임의로 변경되는 수수료
“교섭 통해 수수료 제도 마련해야” 

경기 시흥시에서 한 일반대행업체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일하는 하헌수 라이더유니온지부 시흥지회 지회장은 배달 수수료가 일방적으로 바뀌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대리점 측과 교섭에 나섰다고 말했다.

하헌수 지회장은 “시흥 지역에서는 업체 간 경쟁 등으로 라이더에 지급하는 배달 수수료가 계속 낮아졌다. 라이더들이 조금이라도 수수료가 높은 업체로 이동하자 어느 순간부터 업체들이 수수료 수준을 비슷하게 맞췄다”면서 “지금은 (건당) 2,500원까지 떨어졌다. 4,000원까지 올라갔던 시기도 있는데 라이더들의 수입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상 물가가 다 올라가는 시기에 배달 수수료만 낮아진 상황이다 보니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잡아보자는 의견이 나왔다”며 “3,800원보다 더 낮추지 않는 걸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배달노동자들은 거리 할증, 우천 할증, 야간 할증 등에 따라 추가 수수료를 지급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대리점은 지도상에서 임의로 구역을 나눠서 추가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실제 배달 거리에 따른 할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하헌수 지회장은 “거리 할증 개념이 지사장(대리점 사업주) 마음대로다. 기준점이 없이 지도상에서 여기까지 이 정도 할증 붙여주겠다 하면 그만”이라며 “점점 기본 구역(할증 없이 건당 최저 수수료 지급받는 구역)도 늘어나고 있다. 수수료와 할증 기준을 낮추니 라이더만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천 할증의 경우 비나 눈이 오면 보통 500원 할증을 붙여준다. 하지만 지사장이 비 오는 등의 날씨를 확인하지 못하면 기본 배달 수수료만 받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라이더유니온지부는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고 밝혔다. 배달대행업체 라이더들은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배달 수수료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고 불투명한 수수료 체계를 교섭에서 공개적으로 다뤄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라이더유니온지부는 경기도 안산시, 경상남도 창원시 등에서 배달대행업체 대리점들과 교섭을 통해 최저 수수료 등을 포함한 단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러나 교섭에 참여했던 대리점이 폐업하거나 교섭에 참여하지 않았던 대리점이 최저 수수료를 지키지 않으면서 협약의 실효성이 저하되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흥 지역의 경우 규모가 큰 대리점 중심으로 교섭을 다시 요구했으며 한 곳을 제외한 대리점들과 교섭을 지난 11일부터 진행 중이다. 한 곳은 배달대행업체 바로고의 시흥 지역 대리점으로,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일 해당 대리점 사업주 A씨·B씨가 라이더유니온지부와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판정한 바 있다. A씨·B씨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한 상태다.

하헌수 라이더유니온지부 시흥지회 지회장 ⓒ 라이더유니온지부
하헌수 라이더유니온지부 시흥지회 지회장 ⓒ 라이더유니온지부

“계약서 미작성, 소득세 축소 신고 등
교섭 또는 정부 제도 보완으로 개선해야”

한편 라이더유니온지부는 배달 수수료를 포함해 배달노동자 처우 전반을 개선하기 위해 배달대행업체 대리점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하헌수 지회장은 다수의 배달노동자들이 대리점과 배달업무 위·수탁 계약서를 안 쓰고 일하는 현실을 밝혔다. 배달 일을 처음 시작할 때 계약서를 쓰고 다시 계약을 갱신할 시점이 되면 별도의 계약서 작성 없이 그냥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회사가 일방적으로 근무조건을 변경하거나 계약을 해지해도 배달노동자가 대응할 방법이 없다. 지난해 9월부터 10월까지 라이더유니온지부와 노동공제연합 풀빵이 배달대행업체 배달노동자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면접 등을 실시한 결과 응답자 549명 중 40.3%(221명)가 계약서 미작성, 미교부를 겪었다고 답했다. 아울러 배달을 시작할 때 이륜차 운전면허증 보유, 유상운송보험 가입 등 정보를 대리점이 확인하는 절차가 없었다고 답한 비율이 각각 28.6%(157명), 23.9%(131명)로 나타났다.

대리점이 소득세 신고를 대신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기장료 즉 일종의 수수료를 배달노동자 수입에서 공제한 사례도 있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27.5%(151명)는 대리점이 종합소득세 신고를 누락하거나 배달노동자 소득을 축소 또는 과장하는 등을 겪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18.8%(103명)는 사업주가 3.3%를 징수하고 국세청에 종합소득세를 신고하고 내지 않거나 소득을 축소해서 신고하는 일을 당했다고 했다. 현재 고용 관계없이 독립된 자격으로 일하는 배달노동자 등 인적용역 소득자는 수입금액의 3.3%의 소득세가 원천징수 된다.

하헌수 지회장은 대리점이 소득세 신고를 대행해 준다는 명목으로 한 달에 9만 원씩 배달노동자로부터 걷어가는 일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헌수 지회장은 “세금 신고 명목으로 기장료(일종의 수수료)를 사무실에 내야 한다고 하니까 대부분의 배달 기사는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해가 바뀔수록 기사들이 연말정산이나 세금 신고 내용을 확인해 보니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을 떼어가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후 9만 원에서 4만 5,000원까지 떨어졌는데 배달노동자 수입 변화를 고려해 보면 대리점이 일정 부분을 자기 수입을 챙겨왔던 걸로 보인다”고 했다.

또한 배달노동자 소득을 부풀려서 신고한 경우도 있었다. 하헌수 지회장은 “지역 특성상 취업비자 없이 불법으로 배달 일을 하는 외국인들이 꽤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이들의 소득을 국내 배달노동자 소득에 포함해 같이 신고한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 8.7%(48명)가 수익보다 많은 금액을 기준으로 소득세가 납부된 것을 확인했다고 답했다. 배달노동자 C씨는 “배달지사장(대리점 사업주)이 세금 신고를 할 수 없는 외국인이 번 돈을 본인 소득으로 잡아서 세금 신고를 하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며 “그러다 보니 국내 노동자들에게 분산해서 세금 신고를 하는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부 배달노동자들은 소득이 부풀려서 신고돼 정부로부터 근로장려금 지원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입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라이더유니온지부는 교섭을 통해 계약서 작성·교부, 세금 신고 내역 공개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또한 정부의 제도적인 보완도 요구된다고 했다. 기존 배달노동자들의 안전과 수입 보전을 위해서라도 일정한 자격을 갖춘 이들만 배달하게 하는 라이더 자격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대리점들의 탈세 등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일정한 법률을 준수해야 사업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대행사 등록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부, 모범 단체협약안 마련
“배달대행업체 교섭 시 요구할 것”

라이더유니온지부는 법·제도 변화 이전에 교섭을 통해 배달대행업계의 질서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모범 단체협약안을 마련했다. 단체협약안에는 △임금(배달 수수료)체계의 명문화 △세금 신고 명목 등으로 임의적인 배달 수수료 공제 금지 외에도 △배달노동자 귀책 사유 아닌 이유로 배달 중 사고 발생 시 사고 책임 분산 △투명한 배차 시스템 도입 △감정노동 보호 조치 마련 △안전교육 의무화, 산업 안전·보건 조치 의무화 △소규모 사업장의 배달노동자 대상 노동공제회 가입 지원 등이 포함됐다. 라이더유니온지부는 대행업체 배달노동자 대상 설문조사 및 면접 조사 결과, 법률 상담 내용 등을 바탕으로, 국토교통부가 마련한 배달대행 위·수탁 표준계약서, 대형 플랫폼업체의 약관 등을 참고해서 단체협약안을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내용을 바탕으로 배달대행업체와 교섭에 임할 것이라고 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지부 조직국장은 향후 배달대행업체 본사도 라이더 처우 개선 관련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찾아보고 대화를 시도해 볼 것이라고 밝혔다. 박정훈 조직국장은 “본사는 B2B(Business-to-Business)를 주로 수행한다. 이 경우 수수료 면에서 다른 기업과 협상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지 생각된다”며 “라이더 최소 수수료 보장 관련 사안이나 라이더 안전을 위한 앱 공지 등에서 본사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