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노동자·특고·프리랜서도 근로기준법과 노조 필요해”
“플랫폼노동자·특고·프리랜서도 근로기준법과 노조 필요해”
  • 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4.02.01 23:06
  • 수정 2024.02.02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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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사각지대 노동자들, 총선 두 달 앞두고 증언 나서
“현실 열악하지만 노조 활동으로 조금이나마 변화 이끌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분류되지 않는 플랫폼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들이 좌담회를 열었다. 이들은 노동관계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현장의 실상을 증언하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외연을 넓히며 모두에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외쳤다.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 “할말 잇 수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좌담회는 플랫폼노동희망찾기와 ‘할말 잇 수다’ 기획단의 공동 주최로 1일 오후 서울 중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날 좌담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근로기준법이 필요해’라는 소제목으로 열린 1부에선 방송산업 프리랜서 노동자와 영화 제작스태프, 콘텐츠 모더레이터들이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서 겪는 열악한 현실이 소개됐다. 이어 2부에선 ‘노동조합이 필요해’라는 소제목으로 가전제품 방문점검원·배달 라이더·대리운전 기사·보험설계사·학습지 교사들이 노조를 조직해 활동하며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1일 오후 서울시 중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 “할말 잇 수다”’ 좌담회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온새봄 기자 osbkim@laborplus.co.kr

공휴일 못 쉬고 초장시간 노동 다반사지만
‘프리랜서’라며 연차·수당 없이 최저임금 받아

올해로 9년째 콘텐츠 모더레이터 일을 하는 정혜선(가명) 씨는 자신이 “무늬만 프리랜서”라고 말했다. 콘텐츠 모더레이터는 각종 콘텐츠 플랫폼·인터넷 커뮤니티 등의 게시물들을 전수검사하며 유해하거나 불법적인 내용을 골라내는 직업이다.

정혜선 씨는 프리랜서로서 도급계약을 맺었기에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한 채 일하지만 자신에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있다며, “휴게시간 없이 주 6일, 하루 8~10시간 근무하며 모니터링이 몇 분이라도 밀리면 관리자에게 협박성 경고를 받는다”고 밝혔다. 노동시간을 엄격하게 통제받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판단하는 대표적인 기준 중 하나다.

3년차 콘텐츠 모더레이터인 김민정(가명) 씨는 “이 일을 하면 잔혹한 사건사고 화상·영상을 여과 없이 보게 된다”고 했다. 김민정 씨는 지난해 8월에 일어난 신림역 살인사건 현장 CCTV 영상을 본 이후 며칠 내내 떠오르는 잔인한 장면에 시달렸다면서도, “내가 미리 보고 골라낸 덕에 사람들이 편안하게 콘텐츠를 즐긴다는 자부심으로 일을 계속한다”고 말했다.

방송 현장 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의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방송 현장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투쟁했다”고 밝혔다.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이 같은 투쟁의 결과 방송사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가 부당해고라고 인정돼 복직한 경우도 많지만, 근로자성을 온전히 인정받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라고 판정해도 방송사가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복직한 VJ(영상취재요원)에게 ‘프리랜서이니 스스로 장비와 차량을 갖추라’고 하는 등 괴롭힘의 형태로 보복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조 조합원은 “그간 꾸준한 활동을 통해 영화 제작스태프의 근로계약서 작성과 근로기준법 적용을 ‘관행’으로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영화산업이 OTT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 관행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공정 계약도 다반사고 OTT 업계에서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임금 체불도 종종 발생한다”고 호소했다.

안병호 조합원은 “영화산업 노동자들의 노동은 건설노동자들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프로젝트 단위로 계약해 한 작품의 작업이 끝나면 다른 프로젝트를 찾아가는 식”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방송도 마찬가지”라며 “일용 근로계약 등을 통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건설노동자들처럼 영화·방송산업에서도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 법령을 적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1일 오후 서울시 중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 “할말 잇 수다”’ 좌담회에서 오민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가 참석자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온새봄 기자 osbkim@laborplus.co.kr

사측 “선례 없다”며 교섭 거부했지만
노조 조직하고 투쟁하며 선례 만들어

이날 좌담회의 참석자들은 “플랫폼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들이 만든 노조의 투쟁도 결국 근로자성을 인정받고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을 적용받게 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말했다.

오수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지부장은 “학습지산업 사업체 중에는 단체협약이 아예 없는 곳도 많고 노동기본권을 보장받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서 “20여 년간 투쟁해 오면서 다른 지부가 만들어지고 교섭을 거쳐 단체협약이 체결되는 것을 보며 벅차오른 순간이 많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또 오수영 지부장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이 비단 한 사업장, 한 업종, 한 직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희망을 얻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수영 지부장은 “택배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많은 것을 참고했고 학습지업계 최초인 재능교육 단체협약도 다른 지부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김정원 민주노총 금속노조 서울지부 LG케어솔루션지회 지회장 역시 “LG케어솔루션 단체협약안을 만들면서 재능교육 단체협약을 많이 참조했다”고 말했다. 김정원 지회장은 “업계에 선례가 거의 없다 보니 사측은 처음에 교섭 주기 외의 다른 모든 것에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했지만, 꾸준한 투쟁으로 조금씩이나마 바뀌어 갔다”고 증언했다.

오창배 서비스연맹 대리운전노조 교육국장은 “플랫폼이나 알선업체에서 부조리를 겪었을 때 기사가 개인으로서 항의했을 때는 업체들이 제재 수단을 꺼내들고 입장을 관철시키지만 노조 차원에서 자료를 수집해 문제를 제기하면 상황이 달라질 때가 많았다”며 노조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일 오후 서울시 중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 “할말 잇 수다”’ 좌담회에서 오수영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지부장이 증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온새봄 기자 osbkim@laborplus.co.kr

임금, 사회보험 등 차별 다반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범위는 ‘바늘구멍’”

구교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지부장은 “배달 업계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소수 있지만 대다수는 플랫폼 노동자”라며 근로기준법에 정의된 근로자의 범위가 모든 노동자들을 포괄하지 못하는 점을 꼬집었다.

구교현 지부장은 “같은 일을 하지만 플랫폼 배달노동자는 근로자인 배달노동자가 보장받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사회보험 제도에서도 차별받는다”고 말했다. 플랫폼 배달노동자는 고용보험료를 꼬박꼬박 내지만 육아휴직 급여를 받지 못한다. 또 산업안전보건법 제128조의 2에 명시된 ‘휴게시설 설치 의무 직종’에는 배달업이 포함되지만 이 역시 근로자인 배달노동자만 누릴 수 있는 권리라는 게 구교현 지부장의 설명이다.

오세중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 지부장도 “보험설계사들은 산업안전보건법으로부터 소외돼 있고 교섭 과정에서도 노동관계법 적용을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날 사회를 맡은 오민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는 “근로기준법에 정의된 근로자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현실을 알리기 위해 이 자리를 기획했다”며 “근로기준법 바깥의 노동자들이 겪는 실상이나 이들의 요구는 69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도 중요한 의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하기도 했다.

오민규 집행책임자는 이어 “앞으로 웹툰 작가나 영상편집자 등 다양한 플랫폼·특고·프리랜서 노동자들을 초대해 꾸준히 좌담회를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현장 노동자 당사자들이 자신의 언어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를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