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김동명-김형선 묻고 답하다①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김동명-김형선 묻고 답하다①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4.02.06 23:15
  • 수정 2024.02.07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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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혁신 창간 20주년 기념 대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김형선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

- 한국노총, 왜 사회적 대화인가? 

- 김동명 “사회적 대화, 압박에 굴하지 않을 자신 있다”

- 김형선 “현장에서 이해되지 않고 이용만 되는 사회적 대화 벗어나, 체감할 수 있어야”

- 한국노총, 이전과 다른 사회적 대화는 가능할까? 

* 참여와혁신 창간 20주년 기념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김형선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 대담은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참여와혁신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귀···
갑작스러운 결정에 놀란 현장

- 지난해 6월 7일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를 전면 중단한 뒤, 약 5개월 뒤인 11월 13일 경사노위 복귀를 결단했다. 바로 다음 날 김형선 수석부위원장은 김동명 위원장에게 항의 방문했는데.

김형선 : 현장에서 느끼기엔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관련 설명이나 절차도 없었기에 (정권과) 사전 조율이 있었던 것 아닌가 현장의 의심도 있었다. 또 여러 산별조직이 사회적 대화 참여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었기에, 예상치 못한 결정에 대한 항의 방문을 했던 거다.

김동명 : 사실 더 많은 조직에서 더 강력한 항의가 있을 거라고 봤다. 현장에선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던 만큼 정권과 사전 조율을 의심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복귀 결정 이틀 전 전국 노동자 대회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권 탄압에 맞선 투쟁을 결의했는데, 대회 이후 전격적인 사회적 대화 복귀에 대한 상실감도 컸을 거다. 살아 있는 조직, 제대로 된 조직이라면 그런 항의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일이다.

내부 다양한 목소리 속
한국노총, 왜 사회적 대화인가?

- 당시 결단까지 위원장의 고민은? 

김동명 : 내 입장에선 1년 넘게 꾸준히 고민해 온 문제였다. 현장에선 대부분 정권의 탄압에 투쟁으로 맞서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지난해 전국 노동자 대회를 준비하며 전국을 순회할 때 현장은 윤석열 정권에 대한 상당한 분노를 표출했다. ‘더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린 견뎌낼 수 있으니, 여러 압박에도 조급해하지 말고 오직 잘 버텨 달라’는 이야길 많이 들었다. 무너지지 않는 것만으로 조직은 한 뼘 성장하니까 버텨만 달라는 것이 주된 목소리였다.

반면 일부 산별조직 대표자들과 지역본부 의장들은 현실의 어려움에 대해 많이 말했다. 정권의 압박에 대한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국노총이 그간 투쟁으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해 온 조직이 아니잖나, 정권의 임기도 한참 남았는데 투쟁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나, 그러다 오히려 조직이 큰 상처를 입고 흔들리지 않겠느냐’, 빨리 사회적 대화에 복귀해서 현실 조직을 안정시키라는 요구가 있었던 거다.

물론 내 개인적인 소신은 타협하지 않는 거다. 그런데 내 소신과 다른 의견을 비판하고 억누른다면 조직은 온전히 갈 수 없다. 선명하게 하나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의견을 일정 정도 수용하면서 갈 수밖에 없는 고민이 있었다.

이런 고민 가운데 복합 위기 속에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모색하고, 당장의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국면을 전환시킬 필요도 있단 생각을 해왔다.

- 지난해 11월 13일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귀 결단 당일을 떠올린다면? 

김동명 : 복잡하지 않다. 정권이 우리를 계속 공격적으로 대할 때 늘 이야기했다.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로서 한국노총을 명확하게 존중하는 정중한 요청이 있으면 우리는 복귀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11일 전국 노동자 대회에서 이를 요구했을 때, 정권이 받을 거라고 보진 않았다. 총선도 다가오고 그쪽 입장이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틀 뒤 대통령실이 응답했다.

당시 대통령실의 한국노총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 미흡하단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혼란의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전격적으로 사회적 대화 복귀에 응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리고 경사노위 탈퇴를 결정했던 중앙집행위원회(중집)에서 사회적 대화 복귀에 대한 결정 권한을 위임받았기 때문에 심각한 절차적 민주주의 위반은 아니라고 판단해서 그런 결단을 내렸다. 

김형선 : 당시 긴급하게 발표됐기에 많은 이들이 더 충격을 받았다. 현장에선 김동명 위원장에 대한 신뢰가 컸기 때문에 더 놀랐던 점도 있다.

김동명 위원장이 재선한 가장 큰 이유는 현장 노동자들의 신뢰를 위원장이 지켜줄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동명 위원장이 선거 때 ‘정치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야합에 가까운 사회적 합의, 위원장 개인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조직을 팔아먹는 행위 등은 절대 없을 거라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현장은 이해하고 있다. 

과거 사회적 대화를 돌이켜보면 이명박 정부가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타임오프제를 밀어붙일 때 2009년 11월 30일 한국노총은 전체 조합원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 공개를 하루 앞두고 돌연 총파업 철회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한국노총은 노사정 합의문에 서명했다. *통과된 타임오프제에 따르면 당시 금융노조 34개 지부, 9만 6,536명의 조합원에 295명의 노조 전임자를 162명으로 축소해야 했다. 감축률이 45%였다. 《금융노동조합 60년사》(2020)

이런 기억이 있기에 우리가 신뢰해 온 김동명 위원장이 설명이나 설득이 부족한 상태로 사회적 대화 참여 결정을 일방적으로 내린 점에서, 다시 과거처럼 한국노총이 노동 개악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현장 대표자들은 갖게 된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는 차원에서라도 설명의 과정은 필요했다고 본다. 다만 이후 김동명 위원장의 설명으로 지금은 당시 결단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입장이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김형선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김동명 “사회적 대화, 압박에 굴하지 않을 자신 있다”

김동명 : 절차적으로 미숙함이 있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한다. 특히 투쟁을 조직하고, 조직을 걱정하며 올곧은 마음으로 노동운동을 실천하는 건강한 대표자들이 김형선 수석부위원장으로 상징됐기에 당시 항의 방문에 미안한 마음이었다. 

신뢰를 말씀하셨는데 사회적 대화에 복귀했더라도 협상 과정에서나 또는 협상 결과를 통해서 노동자들의 권리가 저하되는, 노동의 입지를 좁히는, 노동자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합의는 절대 하지 않겠다. 

김형선 : 한국노총이 지난해 6월 사회적 대화 참여를 전면 중단한 다음의 복귀이기에 다시 중단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수 있다. 문제는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명박 정부의 노동 개악, 박근혜 정부의 양대 지침 등에 반발하며 결국 한국노총은 투쟁 국면으로 가게 됐다. 윤석열 정부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이루려는 것들이 대부분 노동시간이나 임금체계 개편 등 사실상 노동 개악 아닌가. 이번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가 노동 개악으로 가는데 일정 정도 길을 열어줄 수 있지 않겠나?

김동명 : 당연히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반노동 정책을 관철시키는 통로로 활용하려는 저의가 있다고 본다. 또 한국노총과 사회적 대화를 통해 총선 국면에서 한국노총의 정권 심판 기류를 완화시키고, 한국노총 내부에서 여권을 옹호하는 세력의 입지를 넓혀주려는 의도도 있을 거다.

정부의 의도와 관계없이 나는 사회적 대화 복귀 이후 꾸준히 강조해 온 말이 있다. 들러리 서지 않겠다. 정부는 포괄적인 의제 안에 노동 개악 의제를 살짝 끼워 넣는 식으로 진행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경사노위 논의 의제나 합의 결과는 참여 주체 어느 한 쪽이라도 수용하지 않으면 현실화될 수 없다.

논의 과정에서 엄청난 압박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그래왔듯 정권은 아마 우회적으로 한국노총 조직 내부에 어떤 실익을 던져주면서, 그런 실익에 민감한 조직 또는 정권의 다른 도움이 필요한 조직을 통해 내부를 흔들어 한국노총을 압박할 거라고 짐작한다. 나는 그런 압박에 굴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 복귀를 결정한 거다. 

아울러 오는 총선이 한국노총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말로만 서비스하고 변하는 모습이 없다면 더 큰 심판으로 갈 수 있다. 지도부가 강하게 결단하면, 그 정도 해낼 수 있는 저력이 한국노총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조직을 믿고 잘 버텨 나간다면 중대한 결단도 할 수 있다고 본다.

- 김동명 위원장은 자기주장보다는 상대의 이야기를 더 듣고 묻는 것 같다. 그래서 자기주장이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각에선 답답하다는 말도 하는데. 

김동명 : 생각할 여지가 있는 지점이다. 평소엔 내 주장을 상당히 자제했다. 최대한 상대를 존중해왔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중요한 순간엔 내 결정을 관철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장을 못 편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결정을 위해 많은 것들을 양보하면서 인내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인내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인내하고 양보하면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던 시간들이, 어떤 결정적인 시기에 더 축적된 큰 힘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한다. 

전 임기 때 사무총국 인사조차 제대로 못 하고, 뭐 하나 방향을 잡고 가고 싶어도 힘들었다. 그렇지만 지난 총선과 대선 때는 다르게 판단했다. 총선 당시 한국노총은 정치적 중립 압박을 엄청나게 받았다. 또 대선에선 누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지 후보를 선언했다. 그때도 조직 안팎으로 압박이 컸다. 

그리고 조금은 답답해 보이는 사람이 한국노총 위원장을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시원시원하고 기질이 확실했으면 우리 조직에서 바람 잘 날이 별로 없었을 거다. 나도 단사 노조 위원장 시절엔 독불장군 소리도 듣고 했지만, 여기 와선 그럴 수 없다. 답답하게 인내해 온 힘이 바뀐 정치 지형, 한국노총 선거 이후 내부 고소·고발 사건 등 어려움을 견뎌온 밑바탕이었다고 생각한다. 

김형선 : 현장이 김동명 위원장을 선택한 것도 그런 버티는 힘을 믿은 거라고 본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한국노총, 이전과 다른 사회적 대화 가능할까?

- 한국노총 산하 조직 청년 간부들에게 물어보니 사회적 대화에 대한 관심은 둘째 치고, 사회적 대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단 느낌을 받았다. 한국노총은 왜 사회적 대화를 하나? 

김동명 : 사회적인 공론이 형성돼야 정책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사회 주요 주체들이 모여서 대화라는 수단으로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대화다. 

윤석열 정권 임기 5년 동안 반노동 정책에 대한 투쟁만으로는 어떤 진전을 이뤄가기는 실질적으로 어렵다. 그 5년간 노동자들은 수많은 고통을 마주한다. 저임금이라서, 일터가 위험해서, 고용이 불안해서 삶과 자부심이 무너져 내리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미 노동시장에서 이탈해 최소한의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인 사람들도 있다. 산업전환의 대상이 돼 미래가 불안으로 가득 찬 노동자들이 있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려면 결국은 제도와 정책을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한국노총 입장에선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러니까 사회적 대화에 나가는 거다. 이건 정권이 반노동 정권이냐 아니냐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할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전환에 대한 대비가 늦어지면 국가 경제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 피해는 노동자들에게 돌아온다.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도 노동의 입장에서 대안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제시할 수 있다. 

직장 내 일차적인 노사관계를 통해서만 노동의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정책을 통해 관철해야 하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취약한 노동자들의 임금, 사회 안전망, 일터의 안전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위에 있는 노동자들을 끌어 내리려 한다. 물론 고소득 노동자들도 일정 부분 역할을 해야겠지만, 구조를 바꾸기엔 한계가 있지 않나. 이런 문제를 사회적 대화 공간에서 지적할 수 있다. 경영계도 정부도 입장을 들고 대화를 해보자 이거다. 여론도 사회적 대화가 열리면 주목하지 않나. 노동은 어떤 주장을 했고, 경영계는 어떤 생각이고, 정부는 어떤 판단을 했는지 우리 사회에 알려지면서 여론이 형성된다. 그러면서 문제를 조금씩 풀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여태까지의 사회적 대화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정부 주도로 노동을 찍어 누르고 압박하면서 대화다운 대화를 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그렇지 않은 사회적 대화를 한번 해보고 싶은 거다. 이것이 내 진의다. 

주변에서 정권의 압박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내가 무결해서가 아니고 압박에 대한 공포는 없다. 회유는 뿌리치면 그만이다. 다만 걱정은 내부다. 권력보다 더 두려운 게 우리 내부다. 우리가 분열되면 아무것도 못 한다. 그러니까 개인이 아무리 좋은 뜻을 갖고 있어도, 내부의 결속을 크게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조정을 해야 한다. 그 균형점을 잡는 게 어려운 거다.

김형선 “이해되지 않고 이용만 되는
사회적 대화 벗어나, 체감할 수 있어야”

김형선 : 사회적 대화에 대한 인식이 낮은 배경엔 사회적 대화의 효능감을 느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나부터도 노동 존중 정권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에서 그나마 사회적 대화의 결실로, 노동이사제 정도만 떠오른다. 노동계조차 사회적 대화에 대한 무용론이 있는 상황에서 자본이 사회적 대화에 관심을 갖게 하긴 상당히 어려울 거라고 본다.  

그럼에도 사회적 대화를 시도하려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한층 더 발전시키는 숙의 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노사정이 숙고해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지금 성숙되지 않았다고,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현장에서 이해되지 않고 이용만 되는 사회적 대화에서 벗어나, 사회적 대화의 과정과 결과 모두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김동명 : 사회적 대화가 앞으로 지속되고 동력을 얻으려면, 중간중간 큰 주제가 아니더라도 국민이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결과물들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도 관심을 갖고 있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보호에 관한 문제부터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한 현실에서 한 번에 명쾌하게 해결되거나, 투쟁으로 박살 낼 수 있는 문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