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노동자들, 여가부에 “차별 철폐·처우개선” 촉구
이주여성노동자들, 여가부에 “차별 철폐·처우개선” 촉구
  • 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4.02.16 18:22
  • 수정 2024.02.16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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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설서 일하는 선주민 노동자와 달리 호봉·수당 적용 못 받아
육아휴직·임신 초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 거부 등 위법 있었단 주장도
16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정문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결혼이주여성노동자 처우개선 및 차별철폐 촉구’ 기자회견의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온새봄 기자 osbkim@laborplus.co.kr

결혼이주자를 위한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문화가족 아동과 부모에게 이중언어 교육을 지원하는 이주여성노동자들이 여성가족부에 “임금 차별을 철폐하고 처우를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지부장 유영옥)는 16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정문에서 ‘여성가족부 결혼이주여성노동자 처우개선 및 차별철폐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주여성노동자들은 “전원 결혼이주여성인 통번역사·이중언어코치는 다문화가족 사업에 꼭 필요한 일을 수행하면서도 전문성과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기자회견 종료 후 약 90분간 피케팅을 하며 여성가족부에 차별 철폐와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여성가족부는 이주민들이 한국에 원활하게 정착하고 다문화가족이 지역사회에 적응하는 일을 돕기 위해 다문화가족지원센터 19개소와 가족센터 212개소를 운영해 왔다. 이들 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결혼이주자 통번역 서비스를 담당하는 통번역사와 다문화가족 아동·부모에게 이중언어 교육을 지원하는 이중언어코치는 전원 결혼이주여성으로 이뤄져 있다.

사회복지지부는 “2021년부터 이주여성노동자의 임금·처우에 차별이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성가족부가 기본급을 올리거나 지자체에서 수당을 추가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면서도, 본질적인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복지시설 노동자들이 적용받는 호봉·수당
이중언어코치·통번역사는 “지자체·센터 상황에 따라”

이남수 사회복지지부 전략조직국장은 “이중언어코치·통번역사의 인건비는 센터 내 선주민 노동자들의 인건비와 별도로 편성된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족센터는 사회복지시설로 분류돼, 이곳에서 일하는 다른 노동자들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호봉표를 적용받는다.

여성가족부에서 해마다 발간하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족센터 운영 지침인 <2024년 가족사업안내>에 따르면 이중언어코치·통번역사의 인건비는 각각 ‘결혼이민자 통번역서비스’와 ‘이중언어 교육지원’ 특성화 사업비에서 지출되며, 기본급을 제외한 수당은 “지자체 및 센터 상황에 따라 운영”한다고 정해져 있다. 이 때문에 이중언어코치와 통번역사들은 호봉 기준표와 직급 체계를 적용받지 못해, 경력·역량과 무관하게 동일한 기본급을 적용받는다.

이남수 전략조직국장은 “예산에 여유가 있는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중언어코치·통번역사에게도 호봉 기준표를 적용해 주거나 수당을 더 지급하기도 하지만, 여성가족부가 관련 지침을 내지 않아 지자체나 센터 측의 자체적인 조치에 의지해야 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강원도에 있는 한 가족센터에서 통번역사로 일하는 사회복지지부 조합원 A씨는 “선주민 노동자와 같이 일하고 (일부) 같은 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며, “이주여성노동자만 호봉 기준표를 적용받지 못하고 연장·휴일근로수당, 가족수당, 출장비 지급에서도 제외되는 것은 인종차별이며 노동착취”라고 주장했다.

선주민 노동자가 문제없이 쓴 육아휴직
이주여성노동자는 ‘2개월 23일’ 쪼개 사용

경기도 소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이중언어코치 일을 하는 조합원 B씨는 임금뿐만이 아니라 노동현장에서 받는 처우에도 차별이 있다고 했다. 임신 초기(12주 이내) 단축 근무, 유급 수유 시간 보장, 육아휴직 등 모성보호제도 이용을 거부당했다는 것이다. 이는 각각 근로기준법 제74조 제7항, 제75조,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 위반에 해당한다.

<참여와혁신>이 확인한 B씨의 육아휴직 사용 증명서와 메시지 내역에 따르면, B씨는 남녀고용평등법상 ‘1년 이내’로 규정돼 있는 육아휴직을 2개월 23일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이후 직장에 복귀한 B씨가 중간관리자에게 “3개월간 육아휴직을 (추가로) 쓰고 싶다”고 하자 이 관리자는 “육아휴직은 힘들 것 같다”고 답했다. “대체 인력을 못 구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유급 수유 시간을 달라고 하는 B씨의 요구에 다른 중간관리자는 “일반 회사에서는 육아휴직도 주지 않는 곳이 많고,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다 누려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안 된다고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B씨는 “육아휴직은 다른 선주민 노동자들이 당연히 보장받은 권리”라고 했다. 이어 모성보호제도 이용 거부로 인해 B씨 자신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족 자녀인 아이도 함께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울먹였다.

16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정문에서 ‘여성가족부 결혼이주여성노동자 처우개선 및 차별철폐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온새봄 기자 osbkim@laborplus.co.kr
16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정문에서 ‘여성가족부 결혼이주여성노동자 처우개선 및 차별철폐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온새봄 기자 osbkim@laborplus.co.kr

여가부, “다문화가족 특성화 사업 구조적 문제···
관리·감독 강화하고 처우개선 노력하겠다”

여성가족부 다문화가족과 관계자는 이중언어코치·통번역사들이 센터의 선주민 노동자들과 다른 임금 체계를 적용받는 이유에 대해 “다문화가족 특성화 사업을 처음 도입할 때,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족센터 사업으로서 예산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 별도의 사업으로서 예산을 확보하다 보니 인건비 체계도 분리됐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업에 참여하는 선주민 노동자 역시 호봉 기준표를 적용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당 관계자는 “여성가족부는 같은 문제를 겪는 다문화가족 특성화 사업 종사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예정이며, 기자회견에서 제기된 문제인 모성보호제도 사용 거부는 위법에 해당하기에 관리·감독을 강화해 노동자의 권리 행사를 제한하는 센터가 있는지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겠다”고 했다.

한편 사회복지지부는 지난 8일부터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족센터에서 일하는 이중언어코치와 통번역사의 노동환경 실태에 관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현재 이중언어코치·통번역사로 일하는 이주여성노동자는 590여 명으로, 이 가운데 지난 15일 기준 131명이 설문에 응답했다. 이남수 전략조직국장은 “설문조사를 계속해서 진행해 이들이 일터에서 받는 차별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