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지부 떨어진 신뢰 회복? ‘기본’과 ‘현장’에 방점
기아차지부 떨어진 신뢰 회복? ‘기본’과 ‘현장’에 방점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4.03.11 06:42
  • 수정 2024.03.12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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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의 집행 중요한 시기··· 장기 발전 위해 기초 제대로 다질 것”
[인터뷰] 하임봉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지부장

기본은 중요하다. 기본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기본의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벌어진 ‘단체 티셔츠 뒷돈’ 사건 이후 불투명한 조합비 사용 문제가 불거졌다. 투명한 운영이라는 노조의 기본이 흔들린 것이다. 내부뿐 아니라 외부 비판도 거셌다. 이 가운데 하임봉 28대 기아차지부 지부장이 신임 지부장으로 당선됐다. 임기 시작 직후 노조혁신특별위원회를 설치한 하임봉 지부장은 “어느 때보다 성과의 집행보다 과정의 집행이 중요한 시기”라며 “외부로부터 노조의 자주성과 민주노조를 강화하고 내부로부터 조합원들에게 신뢰받는 노조를 만들고자 하는 열의를 담아 기본에 충실하게, 현장에서 실천하는 노조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2월 19일 기아 오토랜드 광명 기아차지부에서 진행했다.

하임봉 기아자동차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하임봉 기아자동차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무너진 신뢰 변화와 혁신으로 다시 세울 것”

- 임기 시작한 지 두 달이 흘렀다. 어떻게 보냈나?

1월 2일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 참배를 시작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28대 집행부의 올해 사업 계획을 준비 중이다. 노조혁신특별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위원회와 회의체에 대한 구성을 마치고 사업 진행을 세부 계획을 짰다. 또 역대급 최대 성과에 대한 공정 분배를 실현하기 위해 설 연휴의 마지막 2월 13일부터 양재동 1인 시위를 비롯한 현장 투쟁을 통해 특별성과금 쟁취를 위한 투쟁 중이다.

- 늦었지만, 지부장이 세 명의 후보 중 당선된 이유는 뭐라고 보나?

선거 과정에서 지난해 이른바 ‘기아차지부 단체 티셔츠 비리’ 사건으로 투명한 조합비 운영이 주요 화두였다. 공교롭게도 선거에 출마한 3명의 지부장 후보 중에서 두 분은 전에 지부장직을 역임했지만, 나는 새로운 인물이었다. 노조 운영의 신뢰성 문제가 발생한 상황에서 지부장으로서 집행 경험이 없는 후보에게 조합원들이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며 내게 기회를 부여해 준 게 아닌가 싶다.

- 28대 기아차지부는 ‘기본에 충실하게 현장에서 실천하는 노동조합’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물론 노조가 기본에 충실한 건 당연한데, 28대 집행부의 모토로 삼을 수 있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현재 기아차지부는 대내외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다. 대외적으로 윤석열 정권으로부터 범죄 집단처럼 매도되고, 각종 언론을 통해 진실과 다른 정보로 호도되고 있다. 노조를 악마화하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가 무너지는 지경까지 오게 됐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성과의 집행보다 과정의 집행이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한다. 기아차지부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차근차근 기초를 다시 제대로 다져야 한다. 이에 외부로부터 노조의 자주성과 민주노조를 강화하고 내부로부터 조합원들에게 신뢰받는 노조를 만들고자 하는 열의를 담아 기본에 충실하게, 현장에서 실천하는 노조를 28대 집행부 슬로건으로 정한 거다.

- 28대 집행부는 임기 시작 직후 노조혁신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노조혁신특별위원회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

기아차지부의 무너진 신뢰를 변화와 혁신으로 다시 세우기 위해 노조혁신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크게 보면 세 가지 핵심 과제를 이뤄야 한다. 세 가지 모두 무거운 주제다. 무너진 노조 신뢰 회복 방안, 조합원과 노조 소통 강화를 위한 사업 혁신 방안, 노조 운영 관련 혁신 자구 방안을 최선을 다해 마련할 계획이다.

노조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현장과 소통하고 의견을 받아들여 기초부터 새롭게 노조를 재건하려 한다. 2월 25일에는 이와 관련해 ‘노조 혁신 기획 공개 토론회’를 실시해 현장 조합원, 활동가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의견 수렴 과정은 단발성이 아니라 앞으로도 이어나갈 예정이다.

회사 ‘재량’ 특별성과금?
“주는 대로 받으려고 노조 존재하는 것 아냐”

- 기아차지부는 역대 최대 성과에 맞는 특별성과금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특별성과금은 경영진이 재량으로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영역이긴 한데, 기아차지부가 임기 초부터 강하게 특별성과급을 요구하는 이유는?

기아는 2023년에 99조 원의 매출액과 11조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만 해도 지난 실적보다 60% 이상 상승한 결과다. 이런 역대급 실적은 조합원들이 현장을 지키며 피땀 흘려 맡은 바 역할을 다한 결과다. 회사의 주인은 조합원이다. 실적에 걸맞은 보상을 조합원들이 받아야 한다. 회사에서 주는 대로 받기 위해 노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노조는 현장 조합원의 요구를 안고 앞장서서 당당하게 성과에 대한 공정 분배를 요구하는 거다.

- 물론 현대차·기아의 지난해 실적은 ‘역대급’이라고 평가할 만하지만, 계열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지난해에도 계열사 노조들이 현대차·기아와 특별성과금 수준이 다른 점에 반발하며 투쟁을 벌였다. 현대제철은 아직 지난해 교섭을 하고 있기도 하다. 사측도 이런 갈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을 텐데.

현대차와 기아의 역대급 실적에는 현대차지부, 기아차지부 조합원들의 역할도 있지만 완성차를 만들기 위한 주요 부품을 제공하는 계열사의 역할도 있다. 기아차지부는 계열사에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양재동(현대차그룹 본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의 산하 조직으로서 기아차지부는 미래차 시대에 급변하는 산업체계 전환에 대한 파도를 같이 겪는 동지로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교섭을 진행 중인 계열사 노조의 투쟁을 지지한다.

- 회사가 이른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고임금 노동자들을 끌어내리려는 정부의 눈치도 보지 않겠나?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순 없겠지만, 기아는 사기업이다. 노사 자율과 판단에 맡겨야 한다. 기아는 정부 눈치보다 회사 차원의 정확한 판단을 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중구조 이야길 했는데,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처우 관련해서도 기아차지부와 더불어 완성차 노동자들도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이에 대한 고민을 완성차 3사(현대차·기아·한국지엠) 지부장들과 함께 가져갈 예정이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하임봉 기아자동차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교섭 핵심은 ‘공정한 성과 분배’
폭력적 원·하청 관계 깨기 위한 공동 투쟁도 모색

- 올해 기아차지부 단체교섭의 핵심 목표는?

무엇보다 매년 역대급 성과를 거두고 있는 실적의 주체는 조합원들이다. 역대급 성과에 걸맞은 특별성과금을 비롯한 각종 보상에 대해 사측은 노조가 요구하기 전에 조합원들에게 제시했어야 한다. 역대급 성과에 대한 공정한 성과 분배를 해야 한다.

또 노조는 정년 연장, 단체협약 복원(25년 이상 근속 퇴직자 차량 구입 할인 조건 ‘75세 이하, 재구입 연한 3년, 할인폭 25%’ 제한), 중식시간 1시간 확보 및 주 4.5일제, 병원비 지원 확대, 조합원 건강권 확보, 상여금 및 명절 귀향비 인상 등 선거 기간에 조합원들에게 약속했던 핵심 공약을 빠짐없이 이행하기 위해 철저하게 임단협을 준비하고 있다.

- 기업의 실적이 좋다는 것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통한 고용의 보장, 임금 및 복지 향상의 가능성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불공정한 원·하청 관계 개선,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요구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차지부에선 사회 연대를 위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기아가 최근 역대급 성과를 이룬 것에 대해 기아차지부 지부장으로서 그룹사 및 협력업체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기아차지부는 산별노조 소속인 만큼 산업별로 쌓여 있는 불공정한 거래와 폭력적인 원·하청 관계를 깨기 위해 공동 투쟁을 모색하고 있다. 해외 자본에 의한 해고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이 진행 중인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를 사수하기 위한 투쟁도 준비 중이다. 기아차지부는 지역과 사회적 연대를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하임봉 기아자동차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하임봉 기아자동차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깊어지는 산업전환 고민···
“열린 마음으로 충고와 응원해달라”

- 글로벌 완성차들은 현지 생산을 늘리는 추세다. 국내공장 고용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조합원의 고용 안정을 위한 기아차지부의 전략은?

사측은 전동화 시대의 급격한 도래에 따른 조합원 미래 고용 안정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내공장 투자가 우선돼야 하는데도 해외 생산과 외주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기아를 이룬 국내 노동자들의 미래 고용을 외면한 처사다. 기아차지부는 미래차 산업 관련 국내 공장에 미래차 핵심 부품 전개, 미래차 신사업 및 신공장 전개를 요구할 거다. 또 내연기관의 단종을 앞둔는 시점에 PT(Power Train·내연기관차 엔진·변속기 등) 부문 중장기 미래 고용 확보를 위한 조합원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쟁취할 거다.

- 나아가 다양한 형태의 목적 기반 차량을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으로 만들기 위해선 기존의 컨베이어벨트 생산 방식으로는 어렵다. 셀 생산 방식으로 가게 될 텐데, 기아차지부로서는 곧 당면하게 될 문제다.

현장에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조합원들의 스트레스도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 완성차 5사에서는 하나의 컨베이어벨트의 흐름 속에 다수의 인원이 각자 맡은 부품을 장착해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소수의 공정과 인원으로 생산 구역을 구분지어 생산하는 셀 생산 방식의 도입에 따른 현장의 우려에 대해 노조는 깊이 고민하고 있다. 셀 생산 방식이 적용되면 개별 노동자들에게 다기능적인 작업이 주어지게 돼 피로도 증가는 물론 실적을 두고 작업자 간 이기심이 발생하는 것도 우려된다. 조합원 간 갈등으로 인해 노조 단결력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 전동화와 함께 ‘자동화’는 자동차 산업의 고용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적절한 로봇의 활용이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나 산업재해 예방에 도움 된다는 시각도 있다. 자동화의 방향성에 대한 입장은?

노조 입장에서 모든 설비의 변경과 도입은 작업자들의 편의를 위해 시행돼야 한다. 일례로 기아차 조립라인에서는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해 웨어러블(wearable) 로봇 시범 운영을 통해 로봇을 도입한 바 있다. 작업자가 직접 작업 시 중량물, 신체 상해 요소, 근골격계 질환 유발 공정에 대해 자동화가 현장에선 이뤄지고 있다. 기아차지부는 조합원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관점에서 자동화에 대한 논의를 열어두고 있다.

- 지부장 개인 이야기도 궁금하다. 1995년에 입사해 기아 화성공장(오토랜드 화성) 조립1부 소속이다. 노조 활동 계기는?

입사한 뒤로 얼마 안 돼서 노개투(노동법 개정 투쟁)가 일어났고 회사는 부도에 직면했다. 그때 여러 집회에 참석하면서 노조 활동의 첫 발걸음을 뗐다. 본격적으로 노조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당시 화성공장에서 외자 스트립이라고 차 외부에 고무 부품을 끼는 과정에서, 가루가 얼굴에 많이 떨어졌다. 일을 마치고 나면 코 주변이 까매지고 건강도 걱정됐다. 그때 라인 관리·감독을 하던 ‘직장’에게 어필했는데도 해결이 안 됐다. 그래서 더 강하게 항의했더니 주위 동료들도 많이 공감하고 동조해줬다. 그 일 뒤로 노조에서 대의원 출마를 제안받았다. 대의원을 시작으로 선배들에게 많이 배우고 다양한 활동 경험을 쌓으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다.

- 조합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28대 집행부는 기아의 주인인 조합원들의 안정된 고용, 공정한 성과 분배, 최강의 복지를 이뤄내기 위해 출범했다. 노조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노조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따끔하게 충고해 주고 응원해달라. 조합원에게 신뢰받는, 조합원과 함께하는 노조를 만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