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또 결론 없이 흩어져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또 결론 없이 흩어져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4.03.18 20:17
  • 수정 2024.03.19 0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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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방침 토론 중 대의원 다수 이석해
‘회계 공시 거부’는 과반 미달로 부결
18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노총 제80차 임시대의원대회 ⓒ 노동과세계

민주노총이 두 차례 대의원대회에도 올해 사업·투쟁 계획을 확정 짓지 못했다. 진보당 등에 대한 지지 철회·유지 등으로 내부 논의가 지연되는 모양새다. 오는 4월 10일 22대 국회의원선거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사업·투쟁에 돌입하는 게 당초 민주노총 집행부의 계획이었으나, 총선을 약 20일 앞두고도 사업계획과 예산안은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민주노총은 18일 일산 킨텍스에서 80차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었다. 이번 임시대대는 지난 2월 5일 정족수 미달로 유회된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정하지 못한 2024년도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개최됐다. 그러나 지난 정기대대와 마찬가지로 이번 대회도 정족수 미달로 논의가 중단됐고 사업계획·예산안은 또 정해지지 않았다.

총선 방침 토론 중 대의원 대거 이석

쟁점은 총선 방침이다. 이번 임시대대에선 ‘윤석열 정권 심판’ 등을 내세우며 의석수 확보를 위해 더불어민주당과 연합한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수정동의안이 올라왔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9월 77차 임시대대에서 “민주노총은 친자본 보수 양당 지지를 위한 조직적 결정은 물론이고 전·현직 간부의 지위를 이용하여 친자본 보수 양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총선 방침을 정한 바 있다. 민주노총 일각에선 이 같은 총선 방침을 어기고 민주당과 손잡은 진보당 등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한쪽에선 ‘야권 연대’를 통해 여당을 제압하고 총선에서 승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수현 대의원은 “지금 울산에서 도무지 이해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지난해 임시대대 총선 방침에 따라 진보당에 대한 지지 철회를 결정해 달라”고 주장했다 .

그는 “노동당·녹색정의당·진보당 등 울산 3개 진보정당이 울산 동구에 출마한 노동당 이장우 후보를 단일 후보로 결정하고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았고, 민주노총 중집은 이장우 후보를 3월 4일 민주노총 후보로 결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진보당은 지난 10일 민주당과 기자회견을 열어 울산 동구 출마 민주당 김태선 후보를 야권 단일후보로 지지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면서 “한 입으로 두말하는 정당”이라고 진보당을 비판했다.

반면 윤석열 정권 심판·퇴진을 위해 민주당과 연대한 것이라며 진보당을 옹호하는 의견도 있었다. 장현수 대의원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고용에서 배제당하는 등 고통을 겪는다고 말하며 “만약에 윤석열 정권이 이번 총선에서 자기 살길을 찾으면 (조합원들의) 낙심을 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어 “민중 세력이 총선 연대를 구성해서 연합비례정당을 만들었고, 국민의힘을 떨어트리자는 게 윤석열 퇴진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수정동의안을 두고 몇 차례 찬반 토론이 이어지던 중 다수 대의원이 자리를 떠났고 결국 임시대대는 유회됐다. 총선 방침을 논의할 당시 자리에 남아있던 대의원은 763명으로 과반인 898명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앞서 이날 임시대대는 재적 대의원 1,794명 중 과반인 1,002명이 참석해 성원을 충족하며 오후 1시 30분께 개최됐다.

대의원대회 진행을 맡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를 잠시 중단하고 다시 집계해도) 성원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 회의를 마무리하고자 한다”며 “총선을 20여 일 앞두고 내부에 굉장한 혼란과 어려움이 있다. 결과와 상관없이 어떻게든 (오늘) 논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조차 여의치 않은 게 현재 우리 상황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사업 계획을 논의할 수 있도록 중앙집행위원회를 통해 관련 방안을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회계 공시 거부’는 부결

‘노동조합에 대한 회계 공시 수용을 민주노총이 철회하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수정동의안은 부결됐다. 재석 대의원 1,002명 중 493명만 찬성하면서 과반(502명)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

수정동의안 발의자 대표로 발언에 나선 차헌호 대의원은 “회계 공시는 윤석열 정부의 탄압과 통제가 분명하다”며 “지난 2월 금속노조는 정기대대에서 만장일치로 회계 공시 거부를 결정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가 오늘 이 논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의원 동지들이 단호하게 노동조합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탄압과 통제인 회계 공시를 힘 있게 거부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회계 공시를 수용한 게 오히려 민주노총의 투쟁에 힘이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오세윤 대의원은 “원칙적으로는 회계 공시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노동권을 지키겠다는 궁극적인 목표를 실현하려면 전략적으로 회계 공시 결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민주노총에 회계 공시를 요구한 진짜 이유는 거절하면 민주노총이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 있고 내분을 통해 조직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며 “우리가 투쟁을 통해 시민들의 더 나은 삶을 만들려면 다수 시민의 지지를 받는 노동조합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