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배신감, 못 잊을 거예요”
“지금의 배신감, 못 잊을 거예요”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9.07.06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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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떨어진 신뢰·갈라선 동료들…무너지는 공동체
치명적 정리해고 상처, 공장 정상화 된다고 치유 될까
[특집_ 정리해고를 정리해고하라] 정리해고 앞둔 쌍용자동차

손쉬운 길인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인가?
경제위기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2009년 대한민국에 거센 정리해고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한적인 ‘최후의 수단’으로 도입된 정리해고는 어느덧 위기극복을 위한 ‘손쉬운 수단’을 넘어 ‘유일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일일이 셀 수도 없이 많은 곳에서 정리해고가 통보되고,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는다. 정리해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리해고는 ‘그들의 문제’일 뿐이다.

정리해고가 과연 ‘천국에 이르는 황금열쇠’일까? 경험한 이들은 정리해고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정말 다른 길은 없을까? 혹시라도, 정리해고 돼야 할 대상은 ‘정리해고 그 자신’은 아닐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 6월 15일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싸움이 한창인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컨테이너박스로 차단된 공장 정문 안쪽엔 여러 개의 천막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중 한 천막 앞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아빠 힘내세요. 울 남편 짱’이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 천막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를 위한 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족대책위)의 천막이다.

악에 받친 가족대책위

쌍용자동차는 지난 6월 2일 1056명의 정리해고 대상자들에게 해고통지서를 발송했다. 회사는 ‘여유인력’ 2646명 중에서 그날까지 희망퇴직을 신청한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를 정리해고 하겠다고 했다. 해고통지서를 받아든 가족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고 한 가닥 기대를 버리지 않았건만 결국 받아 쥔 건 해고를 알리는 ‘노란봉투’였다.

정리해고 통보 후 쌍용차지부의 파업대오는 더욱 단단해졌다. 가족대책위도 더 분주해졌다. 남편이 해고된다는데 차분히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었던 이들에겐 갈 수 없는 곳이란 없었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을 찾았던 6월 15일은 비해고 직원들이 “이러다간 다 죽는다”며 파업을 철회하라는 궐기대회를 열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은 때였다.

가족대책위는 궐기대회를 지켜보며 더욱 악에 받쳤다. 궐기대회에 나온 이들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남편과 형님, 동생 하던 ‘동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쌍용차지부는 공동법정관리인을 살인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중간, 100여 명의 비해고 직원들은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파업 철회, 회사 정상화’를 외쳐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됐다. 공장 밖에서 대기하던 가족대책위 회원들은 이들 앞으로 달려가 “함께 살자”며 눈물로 호소했다.

이날 이후에도 가족대책위는 ‘출근’을 시도하는 비해고 직원들을 막아섰다. “왜 이 자리에 나왔습니까? 당신은 이 자리에 나오면 안 되지 않습니까?”라며 때론 눈물로, 때론 소복으로 호소했다.

가족대책위 회원들도 얼마 전까지는 평범한 주부요, 평범한 노동자의 아내였다. 그들을 이런 자리로 몰아세운 것은 자구안이라는 ‘정리해고’였다. 법정관리인은 쌍용자동차가 회생하려면 오로지 정리해고 외에는 길이 없다고 했다.

쌍용차지부가 무급순환휴직까지 고려할 수 있다며 고통을 분담하자고 했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더 이들을 분노케 했는지도 모른다. 쌍용차지부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기만 했어도, 아니 듣는 시늉만 했어도….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저 어린 것이 뭘 안다고

6월 15일, 기자회견도 끝나고 정문 앞에서 파업 철회를 외치던 이들도 돌아갔다. 공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고 하늘엔 따가운 6월의 햇볕만이 내리쬐고 있다. 공장 안 가족대책위의 천막에서 한 회원을 만났다. 입사 14년차 노동자의 아내라고 했다.

그녀는 ‘살아남은 자’의 아내였다. 이번 정리해고 명단에 그녀의 남편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와서 가족대책위 천막을 지키고 있다. “박영태 법정관리인이 어디선가 2차, 3차 정리해고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인터뷰를 한 걸 봤어요. 이번엔 정리해고 대상에서 빠졌지만 다음에도 빠진다고 보장할 수 있겠어요? 살아도 산 게 아니죠.”

그녀의 남편이 입사 10년째 되던 해, 회사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정리해고가 통보되기 전, 그녀는 박영태 관리인에게 ‘공로패를 반납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관리인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답장이.

그녀가 털어놓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가족의 삶은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다. 지난해 12월부터 급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적금을 해지하고, 보험을 해약했다. 내 집을 마련하겠다고 꼬박꼬박 붓던 청약통장을 해지하는 집도 부지기수란다.

“살던 집을 팔고 전세로 이사했지만 그나마 우리 집은 나은 편이죠. 얼마 전에 이사하고 아직 짐도 다 못 푼 상태에요. 하지만 워낙 상황이 안 좋아 이렇게 나오고 있어요. 다 마찬가지 상황일 거예요. 파업하고 있는 조합원들이나 관제데모에 나오는 직원들이나.”

그녀는 “노동자들이 뭘 그리 잘못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일 하라면 하고 쉬라면 쉬고, 예전엔 새 차 나오면 거의 강매하다시피해서 새 차 샀던 노동자들이에요. 그래놓고 이제 와서 자르겠단 거예요. 가족들마저 심장마비 걸릴 지경입니다. 본인들은 오죽하겠어요? 우리 애 아빠는 평소에도 혈압이 높아 혈압약을 늘 가지고 다니는데, 얼마 전 조사된 걸 보니까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이래요. 그게 더 걱정이에요.”

가족대책위 천막 앞에는 그 시간쯤이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있어야 할 아이들도 눈에 띈다. 아이들 ‘학원을 끊은’ 지는 이미 오래고, 유치원도 못 보내고 있단다. “이젠 아이들도 왜 이래야 되는지 아는 것 같아요. 저 어린 것이 뭘 안다고….”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처음 몇 달은 그래도 이래저래 마련한 돈으로 부족하지만 생활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돈도 지금은 이미 바닥났거나 거의 떨어졌다. 이젠 가족들이 나서서 반찬값이라도 보태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가족대책위 회원 100여 명 중에서 고정적으로 천막을 지키는 20~30명을 빼고 나면 나머지는 다들 부업을 하고 있단다.

“이 싸움이 잘 끝나도 아마 힘들 것 같아요. 수십 년을 한 솥 밥 먹던 동료들이 ‘나는 살아야겠으니 너는 나가라’고 하는데 그 충격은 영원히 못 잊을 거예요. 다시 같은 공장에서 일 하면서 상대방을 대했을 때 어떻겠어요? 지금의 배신감이 떠오르지 않을까요?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요?”

쌍용자동차 직원 가족들의 고통은 그러나 아직 시작일 뿐이다. 쌍용차지부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모두가 함께 살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미 일부는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쌍용자동차를 떠났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쌍용자동차를 떠날지는 알 수 없다.

평생을 자동차 공장에서 볼트 조이고 용접하면서 보냈던 이들이 공장을 떠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신과는 무관했던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삶이 이제 곧 그들의 미래가 될 것이다. 해고된 이후의 삶의 모습이 지금 무겁게 쌍용자동차를 짓누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