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놀이패 들고 일단은 관망
꽃놀이패 들고 일단은 관망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11.1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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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파이팅” 외치며 정치권 예의 주시
복수노조 입장차 있지만 큰 틀에선 현행법 지지
Special Report 카운트다운 시작된 복수노조·전임자 문제 ② ‘절절한’ 경영계

자귀물론(自歸勿論). 경영계는 복수노조·전임자 문제에 있어 저절로 말할 필요가 없게 됐다. 노동계의 절박함에 비해 경영계는 아쉬울 것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찌 보면 올해 6월과 정반대의 입장에 섰다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법 개정문제로 노사정이 맞붙었던 당시에는 노동부와 경영계, 한나라당은 ‘100만 해고대란설(결국 사실이 아님이 입증됐지만)’을 주장하며 비정규직법 개정이 필요성을 주장한 반면 노동계와 야당은 법 개정에 동의해줄 수 없다고 버티기에 들어갔고 결국 법 시행일이 지나 그대로 시행됐다.

이제는 위치가 역전돼 정부와 경영계, 한나라당은 현행 노조법을 그대로 시행할 것을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와 야당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법 개정, 또는 조항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뒷짐 진 경영계, 일단 치고 빠지기

한마디로 경영계는 ‘꽃놀이패’를 들고 상대의 다음 패를 지켜보고 있는 형국이다. 선택폭이 다양해졌다는 말이다. 일단 정부와 노동계의 공방에 경영계는 조금 떨어져 관망 중이다. 경영계가 요구하는 전임자 임금지급 완전 금지, 교섭창구단일화는 정부의 입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알아서 해주니 일단은 나서지 말고 지켜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상이라는 것이다.

대기업 B사의 노무 관계자는 “경영계 입장에서야 지금 괜히 나섰다가 노동계 화만 돋우는 일을 할 필요가 있겠나”며 “정부와 노동계의 입장들을 지켜보며 자칫 현행법보다 후퇴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러나 경영계가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반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경영계도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심하다. 이 문제도 자칫 노동계와 정치권이 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수노조·전임자 문제에서도 대부분의 기업은 ‘될까?’라는 의문을 표시했었다. 이 문제가 구체화되기 시작한 올해 중반 쯤 경영계 한 인사는 기자에게 “복수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그대로 시행될 확률이 얼마나 되는 것 같나? 60%? 50%? 우리 회사에서는 42% 즉, 유예될 확률이 더 높다고 본다. 정치권에서 대강 합의 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괜히 정치권이 잘못 건드려서 노사 분란만 더 늘어나게 하지 말고 아예 건들지 말라는 것이 이 인사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인사의 최근 ‘정세 판단’은 확 달라졌다. “정부가 확고한 의지를 보이는 것 같아서 유예는 힘들지 않겠나”라며 “현행법대로 시행하고 추가로 전임자 임금지급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을 만들면 금상첨화”라고 한술 더 떴다.

이렇게 되자 경영계에서 노사관계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10월 18일, 성명을 통해 “사용자와 노동조합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회복시키고 선진 노사관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이 완전하게 금지되어야 한다”며 “경영계는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를 통해 산업현장에서 노사관계의 기본 원칙을 확립하고 왜곡된 노사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전면 공격에 나섰다. 변화된 지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변화는 노사 간의 협의에서도 나타났다. 한국노총과 경총은 복수노조·전임자 문제에 관한 비공개회동을 여러 차례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합의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시간이 점차 흐를수록 경영계가 노사 회동에 소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 자리에 참석했던 노동계 인사의 증언이다. 이 인사는 “매번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이었다”며 “경영계가 회동에 대한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아 결국 흐지부지됐다”고 밝혔다.

경영계 입장에서는 정부의 강경 드라이브에 겉으로는 드러내지 못하지만 속으로 박수를 보내면서 정치권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복수노조엔 점차 관심이 뚝뚝

그렇지만 경영계 내에서도 각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계산을 하면서 꿈틀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먼저 복수노조와 관련해서 보면 이런 상황은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의 지난 10월 8일 기자회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장 위원장은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의 주도하에 기획재정부의 고위 정무직인 N씨가 국내 굴지의 L그룹, S그룹, P그룹 등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들에게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는 현행법대로 시행하겠다며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이니셜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L, S, P그룹이 어딘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현재 경영계 내에서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하고 있는 기업은 무노조 경영을 지향하고 있는 삼성과 포스코, 안정된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LG 그룹 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이른바 강성노조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대·기아차 그룹 등 제조업 관련 대기업들은 복수노조 허용에 찬성하는 입장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장석춘 위원장은 정부의 경제 관료들이 노사관계에 개입한 증거라고 폭로했지만 거꾸로 보면 현재 경영계 내에서 복수노조 허용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증한 것이다.

경영계 또한 이러한 상황을 인정하고 있다.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은 <참여와혁신>과의 인터뷰에서 “소위 ‘강성노조’ 사업장, 기존 다수노조 존재 사업장 등에서 복수노조가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 기업도 일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이러한 입장을 ‘복수노조 허용에 찬성한다’는 입장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복수노조 허용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고 일부 기업에서는 현장 상황상 허용에 찬성을 한 것이지 복수노조라는 원칙에 찬성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항변에도 취재결과 각 기업의 이해관계는 경총 입장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법 시행이후 각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즉시 생길 것인가에 대해서는 <참여와혁신>이 지난 10월호(64호)에서 일반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나온 결과(즉시 설립될 것이란 응답은 8.4%)와 비슷하다.

기업들도 복수노조가 바로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관심은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라는 것이다.

전임자 급여 지급은 절대 안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관해서 경영계도 노동계와 마찬가지로 단호한 입장이다. 노조의 자주성이니 후진적 노사관계니 하는 원론적 이야기를 다 떠나서 임금지급을 금지할 경우 일단 노무비용을 줄일 수 있고 전임자 활동 축소로 노조활동이 위축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유형·무형의 이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경영계는 오랜 숙원이 해결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복수노조가 허용돼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생기더라도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이 금지될 경우 노조 활동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타임오프제’는 경영계에게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경총의 한 관계자는 “타임오프제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전임자 임금지급은 당연히 금지되어야 할 것이지 주고받는 문제는 아니다”고 강경한 입장을 전했다. 한 대기업 임원도 “노조가 힘이 센 현장의 경우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노조의 합법적 활동이라며 유급을 요구할 것이 뻔한데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반면 일부 사업장의 경우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주장도 있다. 지방에 위치한 한 기업의 노무담당자는 “노조에서 노무 활동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며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주더라도 크게 무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구태여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전임자가 소수고, 사업장 규모가 크지 않은 곳에서는 전임자 임금을 주더라도 노사분쟁은 피하고 싶다는 것이 이 담당자의 주장이다. 노조가 있는 중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이 담당자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곳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한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업장 특성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일단 원칙을 확립하고 그에 따른 현장의 이해관계는 개별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강경한 입장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 규정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도 “정부도 사용자들이 원칙대로 전임자 급여를 지급하지 않을 수 있도록 명확하게 법률로 규정될 수 있도록 하고, 행정지도를 통해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그래도 꽃놀이패는 유효

그럼에도 이러한 경영계 내부의 논란은 실제 그리 커보이지는 않는다. 현재 상황이 경영계에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이 제안한 ‘노사정 6자대표자회의’에 참석하는 경영계 입장은 그리 달갑지는 않다.

지난 10월 29일 열린 1차 회의에서 이수영 경총 회장과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공히 ‘대화와 타협’을 이야기했지만 속으론 씁쓸한 마음을 금치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경영계의 한 관계자는 “얼마나 의견접근이 이루어질지 모르겠다”며 “괜히 서로 마음만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회의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전했다. 경영계가 쥔 꽃놀이패를 굳이 보여주거나 흔들 필요는 없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