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달려오는 열차, 멈출 수 있을까
마주 달려오는 열차, 멈출 수 있을까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11.1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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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 대표자회의에 대한 회의적 시각 많아
‘밀리면 끝’이란 생각은 노사정 모두 똑같아
Special Report 카운트다운 시작된 복수노조·전임자 문제 ④ ‘절충선’ 찾을까

오리무중(五里霧中). 안개 속에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노사정이 그렇다.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노동계, 원칙을 지키겠다는 정부, 눈치작전에 돌입한 경영계. 2개월 앞으로 다가온 법안 시행일자까지 이들이 합의에 이를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어떤 제안과 ‘딜’이 오갈지 자못 궁금하다. 양대 노총도, 정부도, 경영계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는 이야기하고 있지만 속내는 어떨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6자대표자회의, 시작은 했지만…

지난 10월 8일,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은 “정부와 여당이 무시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에서의 논의는 더 이상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에서의 ‘복수노조 시행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관한 논의를 오늘부로 중단할 것”을 선언했다.

이로서 그간 노사정위원회에서 복수노조·전임자 문제를 다뤘던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에서 근로자위원은 모습을 감추게 됐다. 단, 민주노총까지 참여하는 노사정 대화를 위해 장 위원장은 한국노총, 민주노총, 경총, 대한상의, 노동부, 노사정위원회의 대표가 참여하는 ‘노사정 6자 대표자회의’를 제안했다. 이 제안에 10월 23일, 임태희 장관이 참여를 언급하면서 6자 대표자회의는 급물살을 탔다.

결국 10월 29일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 경총 이수영 회장, 대한상의 손경식 회장, 노동부 임태희 장관, 경제발전노사정위원회 김대모 위원장 등 6명이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이날 대표자들은 11월 25일까지 합의도출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한 정도에서 논의를 마쳤다.

그러나 이날 회동이 노사정 대표자들에게 희망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임태희 장관은 10월 30일, 취임 한 달을 맞아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노조법 시행은 현실적인 문제로 유예됐다가 ‘정상으로 회복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며 “본질로 가면서 적응해 가는 과정의 문제로 봐야 하지 않겠냐”고 밝혔다. 또한 “노조는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도 함께 제시해야 할 것”이라며 “유예나 폐지 주장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다만 공익위원안을 바탕으로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해 ‘절대 불가’ 입장에서는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노사 모두가 공익위원안에 대해 수용 불가를 주장했던 것을 비춰봤을 때 임 장관의 발언이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도 회동 결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임 위원장은 <참여와혁신>과의 인터뷰에서 “회의에 공익위원을 참석시켜 설명을 들어보자고 해서 계속 반대했다”며 “정부는 공익위원안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대화에는 끝까지 참석하도록 노력하겠지만 우리가 요구한대로 합의가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해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도 “노동부가 유예를 전제로 한 대화는 안 된다고 했는데 모든 것을 열어놓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특히 공익위원안을 들고 나오면 우리는 단호하게 거부할 생각”이라고 말해 임 장관과의 온도차를 드러냈다.

경총 또한 공익위원안은 결국 노조에게 다 내주는 것이라며 계속해서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회동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심케 한다.

정부 의도는 뭘까?

이런 부정적인 분위기에도 한 달이라는 촉박한 시한만을 정한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진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노사정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먼저 정부의 입장에서는 계속적인 강행 처리를 주장하다 노동계의 반발, 특히 정책연대를 통해 정부를 지지하고 있던 한국노총까지 등을 돌리게 했다는 점과 청와대 경제라인과 사회라인의 암투(?)가 드러났다는 점, 10.28 재보궐 선거에서 민심이 한나라당과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 등에서 방향 선회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재보궐 선거 이후 이런 분위기는 한나라당내에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당내 소장파 모임인 ‘민본 21’도 복수노조·전임자 문제와 관련해 대화를 요구했고, 재보궐 선거 이후 안상수 원내대표, 허태열 최고위원 등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거를 앞두고 세종시 문제, 노동법 문제가 제기된 것은 적절치 못했다”고 지적한 것에 비춰 한나라당 내에서 소장파들이 주장했던 노사정 합의 처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방향선회가 선거를 앞두고 일종의 유화 제스처일 뿐이며 청와대와 정부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재보궐 선거 이후 정부가 희생양을 찾을 수도 있다”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이기 위해 노동계를 먼저 때려잡을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민주노총에서도 재보궐 선거 결과와 공익위원안 제시 등을 유화 제스처로 보고 있다.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은 “선거 결과로 인해 갈라치기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갈라놓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거나 반대급부로 회유하면서 민주노총을 고립시키려는 전략 중 하나”라고 평했다.

또한 정부 측 관계자와 노동계 고위 인사들 사이에서는 청와대가 이미 선 시행 후 보완을 지시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일단 노조법을 그대로 시행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그때 보완책을 제시하자는 것. 이는 올해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야당과 노동계가 쓴 전략, 즉 버티기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겠다는 것이 아니냐는 게 노동계의 중론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한국노총, 부정적 여론 차단…민주노총, 노정대화채널 복구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대한 양대 노총의 입장은 약간 다르다. 한국노총은 노사정 대표자회의 제안자라는 측면에서 대화로서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회의에 임하고 있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모든 것을 열어놓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진행한다면 의미는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한 한국노총 입장에서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단 대화를 제안했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대화와 타협을 추구했지만 의견차를 좁힐 수 없었다는 명분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향후 극단적 투쟁으로 이어졌을 때 불어 닥칠 여론의 예봉을 미리 피하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당장 정책연대를 파기하고 총파업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한국노총 내 강경파와 투쟁보다는 정부와의 협상력에 더 기대를 걸고 있는 온건파 양자를 공히 다독여야 하는 입장에서 투쟁과 대화를 병행하는 모습을 보이며 조직 내 결속력을 다지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이와 달리 민주노총은 이번 6자 대표자회의에 크게 기대를 걸고 있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를 통해 그동안 단절됐던 노정 대화를 복원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지난 6월말에 진행된 ‘비정규직법 5인 연석회의’는 정치권과의 논의 테이블이었기 때문에 정부와의 지속적인 대화 테이블을 만들기에는 미흡했다. 그렇지만 이번 6자 대표자회의는 정부(노동부)가 주요 협상 파트너로 참여하기 때문에 이러한 기대가 가능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10월 12일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취임인사차 민주노총을 방문할 당시부터 솔솔 흘러나왔다. 이 자리에서 임 장관은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을 버린다면 대화와 소통을 통해 풀지 못할 것이 없다고 본다”며 대화 가능성을 지적했고, 이에 임 위원장은 “민주노총을 협상파트너로 보고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정착하고자 한다면 선입견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지속적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임 위원장은 6자 대표자회의가 끝난 후 <참여와혁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대표자회의가 아주 모양 없이 끝나지만 않는다면 노동부와의 대화채널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결국 힘과 힘의 대결될 듯

경영계도 6자 대표자회의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은 모양새다. 현재 아쉬울 것이 없는 경영계 입장에서는 대화 시도 자체가 현재 정부나 경영계의 주장보다 후퇴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라 그리 달가울 것이 없다.

그러나 대화를 거부할 경우 역풍에 휘말릴 수도 있어 일단 대화테이블에는 참가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경영계의 한 관계자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며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에 따라 방향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큰 틀에서는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이 현재 입장”이라고 밝혔다.

현재 각 주체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노사정 6자 대표자회의’는 공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나라당과 정부의 태도변화가 있지만 아직도 노동부 내에서는 양대 노총의 연대투쟁에 대해 회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복수노조·전임자 문제에 대해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한 노동부 관계자는 한국노총 지도부의 삭발에 대해 “시원하게 이발(?)을 하셨다”며 비아냥댔다. 이는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 선언이 매번 공염불로 그쳤다는 점에서 커다란 파급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여기는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줬다.

결국 복수노조·전임자 문제를 중심으로 한 하반기 노동현안은 힘과 힘의 대결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와 정부가 만약 이 문제를 노동계의 주장처럼 전임자 임금지급 노사 자율 교섭으로 정리하거나 예전과 같이 유예로 돌아설 경우 세종시, 4대강처럼 정책적 후퇴만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 향후 국정 운영에 커다란 타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또한 노조 전임자 문제의 경우 일반 국민의 정서가 노동계에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라 정부 입장에서는 밀어붙여도 사회적 저항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계산도 깔려 있다.

반면 노동계는 향후 노동운동의 존립 문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장을 관철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이는 경영계도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크게 변화를 이끌만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이상 노정·노사 간의 일전은 불가피할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