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인력 중심의 고성장 기업 육성 필요
기술·인력 중심의 고성장 기업 육성 필요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0.05.0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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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챔피언, 가젤 기업 육성으로 고용 문제 해소 가능
(주)아이디스, 기술력 하나로 세계 시장 석권
Issue in Issue 강한 중소기업이 고용의 핵심이다 ③ 한국형 히든챔피언을 찾아라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중소기업의 고용 흡수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현재의 미스매치 문제, 즉 청년 실업은 증가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에는 취직하지 않으려는 실태의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임금, 복지, 비젼 등에 대한 불안감이 중소기업 취업을 가로 막고 있는 주요 요인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인간다운 노동이 보장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히든챔피언, 가젤기업 등을 육성하기 위한 제도적, 정책적 지원 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히든챔피언은 한국에 적용 가능한가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은 1996년 출간한 ‘히든챔피언(Hidden Champion)’이란 저서에서 △ 세계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기업 △ 매출액 40억 달러(약 4조 4천억) 이하 △대중에 알려져 있지 않은 기업을 작지만 강한 기업, 즉 히든챔피언이라 칭했다.

히든챔피언은 전 세계시장을 지배하며 생존능력이 탁월하고 눈에 띠게 규모가 성장하고 있다고 헤르만 지몬은 밝히고 있다. 1980년대 미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버치는 매출액 또는 고용자 수가 3년 연속 평균 20% 이상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을 가젤 기업(Gazelles Company)이라고 불렀다. 가젤 기업은 빠르게 성장하며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고성장 기업으로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해당하는 사례가 많다.

이러한 모델들이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일시적인 불황에도 흔들림 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고용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히든챔피언이나 가젤 기업에 해당되는 기업은 기술 중심의 제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인적 자원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세계 시장에서 다국적 기업과 경쟁하며 자신만의 고유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 기업 구성원 전체가 기업의 목표와 가치관을 공유하며 공동의 목표와 최우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사적인 팀웍이 가능한 기업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성장은 경기 변동에 의해 급격한 고용 변화를 보이는 대기업보다 안정적인 고용 유지, 창출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새삼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역경제팀 김현철 선임연구원은 “히든챔피언들이 지속적인 성장으로 고용을 흡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시기에 이들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의 성장 전략을 구축하는 것은 상당히 유의미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히든챔피언이나 가젤 기업에 대해 한국 경제가 갖고 있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중소기업 발전 전략으로 차용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대부분의 사례가 유럽과 미국 등 대·중소기업의 영역이 확고하고 임금 등 근로조건의 차이가 크지 않아 인력 이동이 손쉬운 국가들에 해당돼 한국처럼 중소기업 대부분이 대기업의 하청계열화된 구조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연구원 백필규 인력기술연구실장은 “그렇기 때문에 기술인력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기업에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현철 선임연구원도 “현재 중소기업의 하청계열화는 40%대로 떨어졌다”며 “문제는 글로벌 시장과 경쟁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할 수 있는가의 문제지 하청계열화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즉, 중소기업이 한국적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는 원·하청 불공정 해소 등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한 기술 개발, 인재 양성, 기업문화 혁신 등 중소기업 스스로의 변화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대기업의 공정거래 관행, 정부의 정책적·제도적 지원 등은 당연히 부가돼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국형 히든챔피언은 자신들의 성공요인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2009년 대한상공회의소가 선정한 한국형 히든챔피언에 뽑힌 (주)아이디스를 찾아 그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해봤다.

▲ (주)아이디스 사옥 ⓒ (주)아이디스
한국형 히든챔피언 : (주)아이디스

(주)아이디스는 디지털 영상저장장치(DVR, Digital Video Recoder)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기업이다. DVR은 폐쇄회로 TV와 같은 보안 영상을 저장하는 장치로 과거에는 비디오테이프(VCR)를 저장 매체로 사용해 화질이나 보관 혹은 재생 등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DVR 기술의 발전으로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현재 (주)아이디스의 DVR은 국내 시장 점유율 35%로 1위, 세계 시장 점유율 15%로 역시 1위를 달리고 있다. 1997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의 김영달 대표이사(43)가 3명의 동료들과 같이 설립한 (주)아이디스는 2000년 30억 원 정도의 매출액이 1년 사이에 160억 원으로 급상승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결국 2005년에는 세계 DVR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과 영국의 데디케이트드 마이크로스(DM)를 제치고 세계 점유율 1위 기업으로 등극했다.

2006년 186억, 2007년 221억, 2008년 239억으로 매년 2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던 (주)아이디스도 2009년의 세계 경제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2009년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약 9%의 매출 감소를 기록해 영업이익이 155억으로 감소했다.

(주)아이디스 경영기획실 곽경필 차장은 “전 세계 경제위기로 금융권이나 관공서, 공항, 카지노 등이 보안 영상 시스템 교체를 미뤄 매출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면서도 “다행인 것은 경쟁 업체들이 대부분 20% 이상의 매출 감소를 기록했으나 (주)아이디스의 경우 10% 이하의 매출 감소로 선방했다”고 밝혔다. 경기 회복에 따라 (주)아이디스는 올해 매출 목표를 900억으로 책정했다.

(주)아이디스가 이렇게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기술·인재 중심 △고객 대응 철저 △수익 분배 철저 △수평적 조직구조 등 크게 4가지 요소로 분류할 수 있다. 이외에도 (주)아이디스가 보안 영상 저장 장치라는 미개척 분야를 공략했다는 점에서 사업 아이템 선정 또한 성공의 중요한 요소였다는 점도 분명하다.

1. 기술·인재 중심

DVR 분야는 기술력이 핵심이다. 창사 이래 보안 영상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주)아이디스는 전체 매출액의 약 10%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한 품질 개선은 2000년 호주 시드니올림픽 보안 영상 장치 독점 설치라는 쾌거를 이룩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호주 시장의 50%를 점유할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또한 높은 기술력은 기술 인재 양성에서 비롯된다는 인식하에 검증된 기술 인력을 계속해서 영입하고 있다. 대전 공장과 서울 사무소 전체 직원 230명 중 46%가 연구개발 인력일 정도다. 개발 인력의 경우 지속적인 OJT(on-the-job training, 직무에 종사하며 진행되는 사내 교육)를 통해 기술력 배가에 나서고 있다.

2. 고객 대응 철저

보안 분야는 고객의 needs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각 매장의 형태, 고객이 원하는 요소 등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이 무척 중요하다. 이를 위해 미국의 라스베가스나 영국의 에딘버러 등에서 개최되는 해외 유명 시큐리티쇼에 참가해 고객의 needs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해외 영업의 경우 ODM방식(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업체가 판매망을 갖춘 유통업체에 상품 또는 재화를 제공하는 생산방식)으로 미국의 ATT, 독일의 지멘스, 일본의 미쯔비시 등이 영업을 대신하고 있어 자칫 고객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의사전달 루트를 확보해 납품에 영향이 없도록 했다.

곽 차장은 “보안 장비의 특수성으로 인해 하나의 제품을 납품하기 위해 한 라인에서 7번까지 기종 교체를 단행한 일도 있다”며 “고객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상시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 (주)아이디스 김영달 대표 ⓒ (주)아이디스

3. 수익 분배 철저

(주)아이디스 김영달 대표의 지론은 “잘 먹고 잘 살자”다. 그렇다고 (주)아이디스의 연봉이 대기업 수준으로 높은 것은 아니다. 대신 성과가 있을 경우 그에 대해 철저하게 구성원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내부 구성원들의 만족도는 높다. 특히 매출액이 감소했던 작년의 경우에도, 수익이 있다는 이유로 성과 배분에 나서 직원에 따라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까지 성과를 배분받았다. 여기에 중소기업으로는 드물게 대학까지 자녀 학자금 지원이 이루어지는 등 직원들의 복지에도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

4. 수평적 조직 구조

중소기업의 장점이기도 하겠지만 조직의 의사결정이 매우 빠르다는 점이다. 특히 김영달 대표를 비롯한 고위 경영진이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라 직원들과 거리를 두지 않고 있다는 점은 업무 처리에 속도감을 더한다. 고객의 요구를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보고체계는 이메일, 심지어 구두보고로 전달되기도 한다. 또한 정기적인 조회 등을 배제하고 고위 경영진이 수시로 연구실과 공장에 드나들면서 직원들과의 소통에 나서고 있는 점 또한 작지만 강한 기업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4명이 시작한 작은 보안 관련 회사는 창사 13년이 지나 매출 900억 원에 직원 230명을 보유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는 DVR 기술에만 전력해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기업문화 혁신, 고객과의 커뮤니티를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체 매출의 10%를 R&D에 투자하며 기술이 중요하다고 외쳤던 김영달 대표의 선견지명과 내부 구성원의 높은 직무만족도는 중소기업의 성장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이 늘어나 한국 경제의 허리를 지탱한다면 고용 문제의 많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