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갈밖에…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갈밖에…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0.07.0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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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함이 없는 현재 노조운동, 대처할 방법도 없다
‘뻥’ 파업은 이제 그만
Special Reports 반성과 도약…② 그동안 뭘 했나?

노조운동 위기론은 이제 전혀 새롭지 않다. 이미 10년 전부터 거론되는 해묵은, 아주 뻔한 스토리일 뿐이다. 계속되는 노조 조직률 저하, 전략 혹은 정책의 부재, 지도력 부재, 활동가 부족, 국민적 신임 하락, 단결과 연대 의식 실종. 이러한 노조운동의 현상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에 대해 노동계 스스로뿐 아니라 학계까지 나서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말뿐이다. 그렇다. 현실 인식이 잘못됐거나, 무엇이 문제인지를 몰라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절박함이 없다

노동계와의 지지부진한 대화에 답답해하던 한 경영계 인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도대체 노동계 생각이 뭐래요? 종잡을 수가 없네. 뭘 먼저 내놓거나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슨 이야기할지 듣고 반대 아니면 찬성이니, 뭐 전략을 짤 수가 없네요. 논의가 될 만한 사람과 이야기를 진행해도 돌아가선 감감 무소식이고.”

많은 경영계 인사들이나 기업 노무담당자들은 하나 같이 노조운동의 지도력 부재, 정책 부재를 가장 답답한 측면으로 꼽는다. 일단 노동계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경영계는 노사관계의 파트너다. 파트너가 이 정도로 말할 정도면 현재 노조운동이 봉착한 위기의 일면은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노동계 스스로도 매번 위기론을 언급하며 새로운 노조운동, 혹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논한다. 그러나 위기론에서 배우는 것이 없는 듯하다.

노동운동, 혹은 노조운동의 위기론에 대한 토론회가 열리면, 관심도 높지만 토론회에 참가하는 열정도 대단하다. 다들 발제자와 토론자의 이야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뭐가 변하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이후에 나아지는 것은 별로 없다. 이에 대해 노동계 일부에서는 현재 노조운동을 주도하는 활동가나 정파들에게 현실에 대한 절박함이 없다고 말한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노조법 개정 투쟁 당시 노조 간부들의 얼굴을 봐라. 그들의 얼굴에서 절박함이 보이는지. 정말 절박한 사람들은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들”이라고 말했다.

절박하지 않다면 미리 움직일 필요도 없다. 잘못을 반성할 필요도, 사회적 의제를 선점할 필요도, 조직화에 목 매달 필요도 없다. 당연히 장기적 전망보다 당장 정치적 이해관계나 실리를 따져봐야 한다. 문제가 발생해도 그 시기만 넘기고 나면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예전의 관성대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지난해 초 민주노총 고위 간부에 의해 일어난 성폭력사건의 경우에서 이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당시 구속 수감돼 있던 이석행 전 위원장을 비롯한 전 임원들이 사퇴할 정도로 충격은 컸지만, 사건 발생 1년 반이 넘어가도록 진상보고서조차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절박한 것은 피해자뿐이었다.

노는 젓지 않고 방향만 가리키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길을 알려주는 것은 좋지만 모두 길만 알려 주려하고 노를 젓지 않으면 배는 나가지 않는다. 하물며 길이라도 제대로 알려주던가. 앞서 예로 들었던 민주노총 성폭력사건의 경우,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민주노총의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심지어 민주노총은 각 산별연맹들과 의견그룹들로부터 의견을 듣고 혁신을 도모하기 위해 ‘혁신대토론회’를 열기까지 했다.

종일 진행된 토론회에서 각 산별연맹들과 의견그룹들은 저마다 민주노총이 뭐가 문제고 어떻게 변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각 토론자들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도 한 권의 책자가 될 정도였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혹은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각 의견그룹은 각각의 입장을 제출한다. 의견그룹에 속해 있지 않아도 저마다 입장을 낸다. 너도나도 입장을 제출하기는 하지만, 토론을 통해 입장들을 조율하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가지는 못하기 일쑤다. 민주노총이 혁신대토론회를 통해 각 의견그룹들의 의견을 모아내기는 했지만 그 이후의 실천은 흐지부지 된 것처럼.

이는 한국노총도 마찬가지다. 작년 노조법 개정 과정에서 한국노총은 내홍을 겪었다. 장석춘 위원장의 11.30 기자회견과 12.4 노사정 합의에 대해 일부 산하 연맹과 단위사업장 노조는 크게 반발했다. ‘한국노총을 탈퇴하겠다’ ‘정책연대를 파기하라’ ‘장 위원장은 사퇴하라’ 등 매우 격렬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게 끝이었다. 누구도 그 말에 책임지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지만 뒤가 찝찝한 것은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한국사회는 상대방을 비판함으로서 자신을 정립시키는 ‘못된’ 습성이 만연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본 모습은 드러낼 필요 없이 공격할 대상을 선정해 대상과는 반대 위치에 있다는 점을 부각해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또한 이들은 이미 빠져나갈 궁리가 끝난 상태다. 반대만 했을 뿐 다른 제안이나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장기적 전망이나 발전과정에 대한 고민 없이 현실에 펼쳐진 결과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평론만 한다는 점에서 노조운동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뻥’ 파업, 현실운동의 가벼움

‘평론가들’과는 정반대지만 노조운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또 있다. 관념적 현실인식과 그에 따른 과도한 당위 부여, 그리고 마찬가지로 실천이 따르지 않는 구호 남발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노조운동진영에게 가장 큰 이슈는 전임자 문제였다. 노조법 개정 문제에 대해 노동계는 ‘전임자 문제는 노사자율이 원칙’이라며 입법적 강제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미 13년 전에 법에 명시된 내용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노동계가 꺼내든 무기는 ‘총파업’ 카드였다. 노조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무기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총파업은, 그러나 구호로만 외쳐졌을 뿐 현실화되지 못했다.

한국노총은 11월 노동자대회를 통해 여의도공원에 10만 명이 넘는 조합원을 집결시켰다. 한국노총이 출범한 이래 가장 대규모 인원이 모인 집회였다. 거기에 총파업 찬반투표까지 진행하며 결의를 모았지만, 11월 30일 지도부의 대국민선언과 12월 4일 합의를 거치면서 총파업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양대 노총 연대 총파업이 성사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당시, 한국노총의 입장 선회로 민주노총은 곤경에 빠졌지만 총파업 카드를 접지 않았다. 하지만 총파업을 성사시키지 못한 것은 민주노총도 마찬가지였다. 노조법의 국회통과를 막기 위해 12월 말 총파업을 예고했던 민주노총은 정작 12월 말이 되자, 몇 차례의 간부 결의대회와 천막농성을 진행한 끝에 총파업을 접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올해 1월 1일 새벽 노조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였다.

민주노총은 그 이후에도 4월 총파업, 6월 총파업을 이야기했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물론 그 시기마다 이유는 있었지만, 핵심적으로는 파업의 동력이 모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외적으로는 총파업 카드를 내밀었지만, 민주노총의 고민은 정작 총파업을 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이 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이미 경영계와 정부는 노동계의 ‘총파업’ 카드에 콧방귀도 안 뀐다. 당시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총파업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노동계가 더 잘 알지 않나. 그리고 정부에서는 노동계의 총파업 경고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뻔히 그래왔던 것처럼 흐지부지 될 것이 뻔하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그의 말처럼 됐다. 다들 예상한 것이지만.

때만 되면 남발되는 총파업 카드로는 더 이상 조합원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조합원들도 더 이상 총파업 선언을 믿지 않는다. 더 나아가 사용자들과 정부도 더 이상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마다 총파업이 선언되지만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파업은 여전히 노조운동진영에게는 위력적인 무기임에는 틀림없지만, 말로만 선언되는 파업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할 뿐이다. 나아가 한 번도 제대로 이뤄진 적 없는 총파업은 일부 노조활동가들의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어느 광고에 나온 문구처럼 ‘생각대로 해’라고 해서 그것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오해는 하지 말자.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안 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래야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해 더욱 분주해질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