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실천’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0.07.0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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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 실리 추구 관점에서 문제 바라봐야
대화와 투쟁은 다른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
Special Reports 반성과 도약…③ 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

노조운동이 위기라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노조법이 개정되고 타임오프제도가 도입된 지금은 노조운동의 존망이 걸려있다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노조운동진영은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강력한 투쟁을, 다른 한편으로는 노사정 간의 대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쉽게 극복될 위기는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대화하는 게 소통은 아니다

노조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소통이 강조되고 있다. 노조활동가들은 현장 조합원들과 소통해야 하고, 다른 정파와도 소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로 소통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일방적으로 내세우면서 노조운동의 위기가 커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수의 노조들이 소통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은 조합원들에 대한 선전을 강화하는 것이다. 물론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것만으로 소통한다고 할 수 있을까?

소통 전문가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신인아 박사는 “소통과 대화는 다르다”고 말한다. “대화가 상대방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라면, 소통은 상대방의 말의 의미뿐만 아니라 그 말 속에 담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는 게 신 박사의 주장이다.

신 박사는 이어 “흔히 눈치를 챈다는 말을 하는데, 눈치는 자기 나름대로 읽어내는 상대방의 마음”이라면서 “그러나 자기가 읽은 상대방의 마음과 실제 상대방의 마음은 다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서로 다를 수 있다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것.

신 박사는 이어 “이런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침해되면 저항하게 되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결국 정파 간의 갈등도 따지고 보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꼽는다.

조합원이나 다른 정파를 설득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에서 벗어나, 그들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만 비로소 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다.

장기적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지난 1월 노조운동의 나아갈 바를 모색하는 한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박태주 노동행정연수원 교수는 “노동운동은 밥 먹여주는 것에서부터 벗어날 수는 없지만, 개별화된 단기적 관점에서의 실리가 아니라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동안 노조운동이 자기 사업장의 범위 안에서, 자기 조합원들만의 실리를 추구하는 데 지나치게 집착해왔다는 비판이다. 박 교수뿐만 아니라 많은 노사관계 전문가들이 “노조운동이 그동안 겉으로는 비정규직이나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당장 눈앞의 조합원들의 실리를 챙기는 데에 역량의 많은 부분을 집중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토론회에 청중으로 참석했던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정규직 고용에 대한 위협만 가지고 비정규직과 양극화 문제에 소극적인 노동운동을 옹호할 수 있겠냐”며 조합원들의 이익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현재의 노조운동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박태주 교수는 “노동운동이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장기적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조가 조합원들의 실리를 추구하되,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꿈을 꿔야 한다. ‘위원장’이라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꼭 필요한 전문가가 되기 위한 꿈을 꿔야 한다. 한 노동계 원로 인사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조합원들의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과정의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전문성을 키워나가야 한다. 이는 자신의 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성 확보를 통한 미래 비전 제시는 현실의 어려움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 레이스에 나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공부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참여와혁신>이 창간6주년을 맞아 조사한 노사관계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학계의 한 응답자는 “‘잘못된 노사관계를 바로잡겠다’는 신념과 ‘노조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이 집약되어 정부정책이 이루어진다면, 한국노총은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란 이름으로, 경총은 ‘사용자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동참하는 구조인 반면, 민주노총은 전략적 정책판단을 놓치면서 역할마저 놓치고 있다”는 평가를 보내왔다.

이 응답자의 의견은 민주노총의 정책역량이 뒤처진다는 것이지만, 이는 꼭 민주노총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노조법 투쟁 국면에서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이나 ‘노사자율’ 외에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한 적이 있느냐”며 “당장 눈앞의 문제를 따라가기에도 급급한데 중장기적인 비전을 고민하고 제시하는 것은 현재로선 가능하지 않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20년 전에는 노동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이른바 사회과학을 학습하는 것만으로도 현장에서 먹혀 들어갔지만, 지금은 그런 논리로는 조합원 한 명 조직하기도 힘들 것”이라면서 “그래도 그때는 그렇게 학습한 활동가들이라도 배출됐는데, 요즘은 활동가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각급 노조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일에 치여 책 한 줄 들여다보기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노조운동의 정책역량이 뒤떨어진다는 지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앞의 관계자는 “공부해야 한다는 당위와 시간이 없다는 현실 사이에서 활동가들이 끊임없이 단진동하고 있다”며 고민을 전했다.

대화와 투쟁, 둘 다 중요하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노조법 개정 과정에서 양대 노총의 대응 방식은 극명하게 갈렸다. 한국노총은 총파업을 이야기하면서도 어떻게든 정부와의 대화 창구를 유지한 반면, 민주노총은 처음부터 대화에서 배제된 채 강경투쟁만을 강조했다.

이런 현상은 노조법 개정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그동안 계속해서 나타났던 현상이다. 민주노총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한 이후 몇몇 지도부들이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조심스레 제기했지만, 번번이 사회적 대화 무용론과 강경투쟁을 강조하는 목소리에 묻히곤 했다. 그 결과 민주노총은 현재 ‘공식적으로는’ 정부와의 대화 채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반면 한국노총은 지나치게 대화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내부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 장석춘 위원장이 총파업을 철회하고 노조법 개정에 합의한 이후, 몇몇 산별연맹들은 장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11월 노동자대회 당시 여의도공원을 가득 메웠던 12만 조합원들의 염원을 배신했다는 이유였다.

양대 노총이 이처럼 현안에 대응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그 결과 얻은 것은 거의 전무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지속적으로 총파업을 강조하며 크고 작은 ‘투쟁’을 벌였던 민주노총도, 총파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정부와의 협상에 나섰던 한국노총도 결국 노조법 개정과 타임오프제도 도입 국면에서 노동부의 강공에 제대로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끌려 다닌 형국이었다. 지금이야말로 노조운동이 교섭과 투쟁이라는 두 가지 수단을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노조운동 안팎의 지적이다.

하나라도 실천하자

김정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조운동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느냐는 질문에 “말한 대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지금껏 노조운동이 크고 작은 위기상황이 아닌 적이 있었느냐”며 “그때마다 이런저런 대안들은 무수하게 나왔지만 제대로 실천되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의 말대로 그동안 노조운동이 처했던 숱한 위기상황에서 수많은 대안이 제시된 바 있다. 일례로 올해 초 있었던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는 지난해 성폭력사건 이후 침체된 민주노총을 혁신하는 문제가 선거의 최대 쟁점이 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노조운동진영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했고, 그 대안들 하나하나에는 노조운동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실제로 실천해본 경험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민주노총의 보궐집행부를 이끌었던 임성규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 안에 ‘혁신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여러 차례 대의원대회에서 지지부진한 논의가 진행된 끝에 혁신위원회는 끝내 설치되지 않았다.

김 연구위원은 “말만 무성했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면서 노조운동의 위기가 지속적으로 확산돼 왔다”며 “말로만 노조운동의 위기를 극복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서부터 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스스로 인정하는 것처럼 지금 노조운동은 커다란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때로는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이도 노조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을 달지 않는다. 김정한 연구위원의 지적처럼 지금 노조운동에게는 이러저러한 위기 극복의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처방이라도 실제로 행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