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사업동반자관계 돼야 한다
노사관계, 사업동반자관계 돼야 한다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0.10.0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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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노사정위원회의 중요 고객…존중하지만 따라가진 않는다
미래지향적 노사관계 위해 예방적 의제 필요
인터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최종태 위원장…①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노사관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노조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이 금지되고 대신 타임오프제도가 도입된 것을 두고 신임 최종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은 이 같이 표현했다. 비단 타임오프제도뿐만은 아니다. 내년이면 본격적으로 허용되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도 노사관계의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사관계가 격변하는 가운데 사회적 대화기구로서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이하 노사정위원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변화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고 갈등을 조정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지난 9월 8일 최종태 위원장이 제10대 노사정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온화한 성품과 균형 잡힌 시각으로 갈등 조정에 적임자라는 평을 받고 있는 최종태 위원장으로부터 앞으로 어떻게 노사관계 현안을 풀어갈지 들어봤다.


전통적 관계 보완 속에 미래가치 내다봐야

이전부터 사회적 대화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서울모델 등 공익위원으로도 활동하셨고 중재 역할도 오래 해왔는데,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을 맡는다는 것은 그것과 또 다른 의미일 것 같습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노동 분야에 대해 학계에서도 공부해왔고 현실에서도 많은 참여를 해왔다. 최저임금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서울시 노사정모델 협의회 등에 참여했다. 공부하던 것, 현실참여 하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특히 대통령 자문기구를 맡게 된 것을 굉장히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노사정위원회에 주어진 자원, 권한은 유한하고 기대는 크다. 이걸 어떻게 엮어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걱정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면 학자로서 한국의 노사관계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여기저기서 변화해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다들 의견이 다른 것 같은데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우선 노사관계를 보는 데 크게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마르크스, 엥겔스적인 계급투쟁의 연속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막스베버와 같이 사회진화론적, 발전적 측면에서 보는 것이다. 양쪽 다 장단점이 있고 구분이 필요하겠지만, 기본은 역시 노사관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그것도 생명을 지닌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다.

생명을 지녔다는 말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변하면 거기에 적응·도전해서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다. 노사관계는 결국 하나의 생물체다. 그것도 이성과 의지를 가진 인간의 모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사관계는 생존하기 위해서 이념을 가지고 추진해야 하겠지만,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계속해서 적응·도전해 나가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사관계를, 학문적 용어인데, 신조적 규범주의에서 전개시키는 것보다는 실천적 규범주의에 의해 전개시켜야 한다. 그러니까 현실을 굉장히 존중해야한다.

노사관계의 주요목적은 노사 공영을 통한 사회발전 아니겠나.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현실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다. 우리의 현실을 봐야 한다. 한국의 노사관계는 다른 나라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노사관계라는 것은 말했듯이 경제, 기술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이 결합돼 있다. 한국 노사관계 특성을 규정짓는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적 측면과 관련돼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놀랄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우리 세대들은 그런 과정을 겪었다. 내가 69년도 해외 유학을 위해 여권을 얻으려 할 때도 반드시 안보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때 북한과 남한을 비교해서 제시한 자료가 아직까지 기억난다. 그때 우리가 국민총생산에서도, 산업적으로도 (북한에) 뒤져 있었다. 철강, 전기생산량에서 북한보다 남한이 못했다. 사실 우리가 북한을 능가한 게 72년도부터다. 그런 역경 속에서 한국이 지금 이렇게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온 것은 경이적이다.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압축경제성장’이다. 압축경제성장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역시 정부가 경제 주도적으로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한 것이다.

압축경제성장에서 나오니까 산업사회 초기에서 일어났던 문제부터 시작해서 선진산업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산업화 과정을 보면 민주화 이전에 성장이 있었고 그 다음에 민주화가 진행됐다. 이런 특성 때문에 한국 노사관계는 산업사회 초기 갈등문제가 남아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2만 불 되는 나라에 걸맞은 노사문제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선진사회에서 하듯 노사 공동체, 노사 협력적 관계를 추구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안 된다. 우리나라 노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결할 무기가 전통적 무기도 있어야 하고 최신 무기도 있어야 한다. 최신 무기만으로는 실패한다. 임금문제, 근로조건문제,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노동운동도 지금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주 선진노사관계를 추구하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전통적인 계급투쟁적인 측면도 있고. 그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한국 노사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총체적으로 노사관계 문제를 정리하긴 위해선 일단 우리가 선진사회에 발돋움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현실적으로 전통적인 문제를 보완해나가면서 해야 한다. 우리 노사문제는 이슈가 복합화 돼 있고, 가치가 혼재돼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간 노사정위원회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앞서 언급한 상황 속에서 그간 노사정위원회는 10년밖에 안 됐지만 중요한 일을 많이 해왔다 한국사회가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의 과정 속에서 노사관계를 이끌어 가는데, 노사정위원회가 변화 주도자로서, 촉매자로서 부족한 자원 속에서도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자꾸 주변에서 (위원회가) 약화된다고 한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최근에 와서 그렇다는 말도 들리고. 그런데 처음에는 초창기니까, 초창기엔 조금만 해도 성과가 보이니까 조금만 성과가 있어도 바로 눈에 띈다.

이젠 출발기를 지나 성장기로 접어들어서면 시스템적 구축을 하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친다. 전임 위원장도 이런 제도적 구축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노사정위원회가 그간 굉장히 국민들이 고통당하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 사회적 대화를 이끌고 국민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예를 들면 1998년의 IMF는 대변화였다. 그때 노사정이 고통을 같이 분담하는 이런 변화를 주도한 것이 노사정위원회다. 그때 여러 가지 작업을 했는데, 제도개선을 하고 구조조정을 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합의를 하기도 하고, 조정하고, 합의 안 되는 사항은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꼭 합의가 돼야만 결과가 아니다. 정보 공유를 해도 된다. 결정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보를 공유하고 협의하는 데 참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서로 일치가 안 돼도 서로의 애로사항에 대해 공감하는 것도 굉장한 성과다. 많은 사람들이 노사정위원회에서 반드시 합의를 해야만 기억하는데, 합의라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고, 그것이 나중에 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굵직한 일뿐 아니라 제도적으로 많은 일을 해왔다. 근로시간단축, 직권중재폐기문제, 산재보험문제, 필수유지업무제도, 복수노조, 타임오프, 구조조정 문제 등. 어떤 것은 합의를 봤고, 어떤 것은 못 봐도 상대방의 애로사항들을 아는 것이 발전의 기초가 됐던 것이다. 이런 일을 쭉 해왔다.

전임 위원장도 굵직한 일을 많이 했다. 복수노조 문제, 선진화의 걸림돌이었던 노조전임자 문제, 합의는 못 봤지만 일·가정 양립 문제, 고용촉진서비스 문제, 이런 걸 많이 해왔다. 그런데 보면 체감활동이랄까, 그런 부분을 좀 못 느낀다는 거다. 너무 기대가 큰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정부 존중하되 따라가진 않는다

노동계 쪽에선 노사정위원회가 노동계의 얘긴 안 듣고 정부의 얘기만 듣는다고 볼맨소리를 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위상문제를 많이 얘기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정부는 정책에 끌려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앞으로 그런 부분에 유의해서 일해야 하겠지만, 노사정위원회가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그 다음 조율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정책에 대한 대안과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엔 여러 가지 한계가 있는데, 노사정위원회 주요 고객이 노, 사, 정 아닌가. 그중 정부가 큰 고객이다. 또 대통령 직속으로 돼 있기 때문에 정부의 방침을 존중하지 않을 수는 없다.

현대의 노사관계는 노사 양자관계가 아니고 3자 관계다. 정부가 노사관계자의 주요 당사자다. 왜냐하면 첫째, 노사관계는 이해관계이기 때문이다. 노동이라고 하는 상품을 서로 거래하는 이해관계다. 거래하는 관계에 있어서 노동시장이 형성된다. 구조적 시장이든 추상적 시장이든. 그리고 그 시장에 수요 공급자가 나온다. 오늘날 정부는 노동시장에서 핵심고객이자 핵심 행위주체자다.

우선 수요적 측면에서 보면 공무원과 공기업 등 공공분야 취업인구가 전체 고용의 20%가 넘는다. 전체 고용에 1/5 내지 1/4에 가까운 인력을 정부가 고용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큰 수요자이고 영향을 준다. 또한 공급에 대해서도 정부가 큰 영향을 주는 고객이다. 노동의 질을 결정하는 교육 문제를 장악하고 있고, 노동의 양을 결정하는 인구정책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정부가 참여를 해야만 돌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로 노동 상품의 가격, 직접적 가격이 임금이고 간접적 가격은 근로조건인데, 노동 상품의 가격, 임금을 결정할 때 원가 계산을 해야 하지 않겠나. 이 원가가 생계비다. 생계비를 측정하는 데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생계비를 결정할 때 노사 양 당사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효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한테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 중 노사 당사자가 아무리 해도 해결할 수 없는 게 교육비, 주거비, 교통비 같은 것이다. 이것은 당사자들이 임금 조금 올리고 내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 교육비가 얼마나 들고 있나.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 할 때 교육비가 약 20% 이상 들어간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는 60%다. 봉급 좀 받아가지고 전부 들어간다.

주거비도 그렇고 교통비도 그렇다. 이런 문제는 노사 당사자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하는 것이다. 그런 결정을 하는 정부가 노동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당사자다.

또 현대 노사관계의 이해 당사자들이 경쟁을 하지만 경우에 따라 담합을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봉급을 이만큼 올릴 테니 지하철 요금도 이만큼 올리겠다, 이런 암묵적인 담합을 해버릴 수도 있다. 지금 대기업에서 그러지 않나. 정규직 임금 올려주는 대신 하청업체에 떠넘기지 않나.

그래서 선진국, 북구에선 지역에 따라 산별로 하는 단체교섭에 소비자단체가 참여하고 NGO도 참여한다. 그래서 명실 공히 오늘날 노사관계는 양자관계가 아니라 다자관계고, 그 다자관계에서 양 당사자의 이해가 아닌 다른 국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부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3자 관계다.

3자 관계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노사관계를 당사자 문제라고, 나는 모르겠다고 하면 직무유기다. 정부가 직접적인 교섭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기초적인 당사자다. 정부의 역할이 커지고 중요해진다. 나라에 따라서는 직접적인 교섭당사자로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ILO 회의는 반드시 노사정 대표자가 참석한다. 더 중요한 것은 각국 노사가 참여해 중요한 문제 결정하는 투표를 할 때 다 한 표만 받는데 정부는 두 표를 받는다.

노사정위원회 입장에서 볼 때 정부가 중요한 고객이고 정부의 입장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정부정책, 정부 입장을 당연히 고려해야 하지만, 거기에 따라서 정부입장에 종속되면 대화가 안 된다. 이끌어줘야 한다.

정부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지만 정부의 의견이 타당성 있는지 노사정위원회가 조정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점에선 정부를 설득하기도 해야 하고. 우리보고 정부에 끌려간다 하지만 어떤 점에선 정부를 윽박질러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에 노조전임자 문제하고 복수노조 문제다. 사실 정부는 표 잃으니까 연기하자 하는데, 공익위원들이 13년간 축적됐던 것을 이제는 안 하면 국제기준에서도 어긋나고 노사관계에서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딱 잡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따라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정부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