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있는 요구를 하고 원칙을 지켜라
명분 있는 요구를 하고 원칙을 지켜라
  • 최영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 승인 2005.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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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사례1  :  P사 노조는 노조설립 이후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첫 단협체결이라 노조의 주장이 많다 보니 명분이 약한 것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이것이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음으로써 협상력 약화를 초래하였다.
 

사례2 :   필수공익사업인 S사의 노조는 이번 단체협상에서 4조 3교대로의 교대제 변경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였다. 며칠 뒤 노동위원회에서 직권중재를 결정하였으나 노조는 이를 무시하고 파업을 계속하였다.

 

 

지난해 S사 노조가 파업을 하자 어떤 신문에서 ‘연봉 7천만원 노조가 파업을 한다’고 제목을 달았다. 연초 고임금을 받는 P사 노조가 파업을 하자 이번에는 ‘연봉 1억 받는 노조가 파업을 한다’고 여론몰이를 한다. 임금을 많이 받는 노조는 파업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많이 받기 때문에 파업의 명분이 약하다는 것인가. 신문기사는 그런 의미로 씌어졌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노조의 파업은 말로 하는 단체협상이 더 이상 진전이 없을 때 힘으로 자기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도록 헌법에서 보장해 준 노동조합의 권리행사일 뿐이다. 연봉을 많이 받는 노조의 파업을 비난한다면 사규에 의해 근로자를 해고하는 회사측의 징계권 행사를 문제 삼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노사협상에서 자기의 주장이 강한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 주장의 명분이 뚜렷해야 한다. 과거에는 비록 이치에 닿지 않고 ‘떼 쓰기식’의 요구를 하더라도 기업내부사정을 일반인이나 제3자가 잘 알 수 없어 외부인의 시각이 그리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노사협상의 달라진 환경은 조직내부사정이 그대로 밖으로 공개되고 이를 통해 비교적 정확하게 여론이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정보사회에서의 달라진 노동환경이다.

 

파업의 동력을 얻기 위해 조합원을 삼삼오오 짝지우고,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시키고, 이념공세를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명분을 상실한 요구는 더 이상 탄력을 받지 못한다. P사의 협상과정에서 나타난 것을 보면 업무수행상 영어가 필수적인 직무인데도 불구하고 영어시험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누구의 공감도 얻지 못 하였고 결국은 이러한 ‘명분 없는 주장’으로 인해 ‘명분 있는 요구’까지도 요구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긴급조정권의 발동으로 끝나버린 노사협상을 잘된 협상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례1에서 P사 노조는 영어시험을 폐지하자는 등의 명분 없는 요구사항은 애초부터 교섭사항에 포함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협상전략상 필요해서 처음에는 포함시켰다면 협상시작 후 이것이 쟁점화되기 전에 재빨리 교섭사항에서 제외시키거나 아니면 양보카드로 사용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사례2에서 S사 노조의 교대제 변경 즉, 인력충원 요구는 근로시간단축 이후 나타나는 노조의 자연스런 주장으로서 명분 있는 정당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관철하기 위한 파업과정에서 룰을 무시함으로 말미암아 정당한 요구를 관철시키기는커녕 불법파업으로 인한 민ㆍ형사상의 문제에다 사규상의 징계책임까지 져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주장의 정당성과 명분이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이를 관철하려는 과정에서 룰을 위반하면 협상상대에게 결정적인 약점을 잡히고, ‘Lose-Win 협상’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노사협상에서 주장이나 반대의 명분을 확실히 하라. 명분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적극적으로 개발하라’.
명분이 약하거나 명분이 있더라도 절차적 정의가 수반되지 못하면 강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 오히려 상대에게 하지 않아도 될 많은 양보를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