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고용안정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없나?
유연성·고용안정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없나?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1.01.0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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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4천만 원 공방 … 핵심 벗어난 논쟁
유연성 문제, 유연하게 받아야
[특집]사내하청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② 어떻게 풀어야 하나?

ⓒ 참여와혁신 포토DB
지난해 11월 22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울산1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자동차 강호돈 부사장은 가정통신문을 통해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근로자 4~5년차 평균연봉은 4천만 원 수준으로, 이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올해 전국 근로자 임금평균의 1.4배나 되는 금액”이라고 밝혔다. 이후 현대자동차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연봉 4천만 원에 대한 진실 공방이 이어졌다.

4천이냐, 3천이냐

현대자동차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근속년수 4년인 정규직 노동자는 기본급 133만 원, 통상임금 144만 원, 총 연봉 5,400여만 원을 받고 있으며, 월 총액임금은 453만 원이다. 이에 비해 근속년수 4년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기본급 119만 원, 통상임금 121만 원, 총 연봉 4천여만 원을 수령하고 있으며 월 총액임금은 338만 원이었다. 이를 근거로 해서 현대자동차는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볼 때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정규직 노동자의 84%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자동차는 이 자료에서 1차 부품사의 평균임금과 2차 부품사의 평균임금을 비교한 뒤, 사내하청 노동자가 이들 1차, 2차 부품사 노동자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하면 1차 부품사는 정규직 노동자의 76%, 2차 부품사는 65%를 각각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주장대로라면 사내하청 노동자가 받는 월 총액임금 338만 원은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0년 3/4분기 국내 전체 노동자 월평균 총액임금 284만 원을 상회하는 금액이다. 현대자동차는 이 자료를 통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결코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당사자인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말도 안 된다’며 반발했다. 현대자동차울산비정규직지회는 강호돈 부사장의 가정통신문이 발송된 직후 “현대자동차 측의 주장은 실제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금액이 아니라 도급 단가이기 때문에 연봉 4천만 원이라는 주장은 현실을 왜곡하는 허위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비정규직지회는 소속 조합원의 지난해 10월분 급여명세서를 공개하면서 현대자동차의 주장을 반박했다. 비정규직지회가 입사 4년차라고 공개한 이 조합원의 시급은 4,569원의 시급을 적용 받는다. 이 조합원이 잔업과 월 3회 특근을 해 받는 급여는 월 1,763,195원이다. 여기에 2달에 한 번 받는 상여금 1,109,356원을 더하면 월 2,872,551원을 받는다.

▲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가 공개한 4년차 조합원의 2010년 10월분 급여명세서
이 급여명세서를 기준으로 해서 10+10 임금과 월 특근 2회를 기준으로 연봉을 계산하면 대략 2,800만 원 정도이다. 여기에 성과급 등이 더해진다 하더라도 현대자동차가 밝힌 금액과는 큰 차이가 난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 측에 문의한 결과, 4년차의 평균 시급은 4,900원 가량이라고 답했다. 또 년차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중간에 도급업체를 변경한 경우 자기 시급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이동한 도급업체에서는 1년차가 되므로 실제로 4년째 근무하고 있더라도 계산에서는 1년차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업체마다 지급 항목이 다를 수 있으나, 성과급과 일시금, 귀향비, 휴가비 등을 모두 합하면 시급 4,600원으로 계산해도 총 연봉은 3,800만 원 가량 된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임금의 많고 적음을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문제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장시간노동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이야기돼야 한다.

만약 임금의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누가 많고 누가 적은지보다 왜 같은 작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임금을 받아야 하는지가 중심이 돼야 한다. 같은 일을 사내하청업체로 외주화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유연성의 핵심인지에 대해서 이제 노사가 답해야 할 때이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유연성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물량이관도 전환배치도 고용불안으로 인식

지난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에서도 드러났듯이, 사내하청 노동자는 언제 계약이 해지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항상 노출돼 있을 뿐만 아니라 상시적인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단지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고 있다. 비핵심업무라고는 하지만 고용불안과 차별을 안고서는 업무효율성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일 기업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내하청 문제는 다수의 기업이 관련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 해결 방법도 단일 기업 차원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수준에서, 전 사회적 차원에서 모색돼야 한다.

하지만 문제 해결의 방법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한쪽에서는 사내하청 사용이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고용형태를 유지하면서 파생되는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사내하청이라는 고용형태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쪽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보다는 극단적인 대립과 법원의 판결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10월 18일 경총이 여의도 CCMM빌딩에서 주최한 ‘사내하도급,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는 사내하청 문제를 바라보는 경영계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 토론회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생산의 유연화가 반드시 필요하고, 사내하도급은 생산 유연화를 위한 경영전략”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토론회에서 숭실대 유한주 교수는 “사내하도급은 정당하고 합법적이고 효율적인 제도임에 틀림없다”면서도 “생산유연성과 고용안정이라는 두 가지를 어떻게 원만하게 달성할 것인가는 과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유 교수는 이어 “사내하도급을 불법파견 형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문제이지 사내하도급 자체가 잘못은 아니며, 사내하도급 활용 자체를 ‘악’으로 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고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것”이라면서 “사내하도급을 부정하기보다 긍정적 효과가 있음을 알고, 원청과 수급업체가 동반 성장하도록 노사, 정부, 학계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에서도 고용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은 “노동유연화에 대해서도 다양화와 관련 있는 얘기이므로 기능적인 유연화에 대해선 노동계도 논의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면서도 “다만 정부와 경영계가 노동계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생산적인 논의가 불가능한 구조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덧붙였다.

고용유연성을 이야기하면 항상 해고의 자유와 같은 수량적 유연성으로 논의가 국한되고, 정리해고 요건 완화와 같은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계는 고용유연성 이야기만 나오면 곧바로 수량적 유연화로 인식해 고용유연성에 대한 논의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 내부에서도 이 소장과 같이 기능적 유연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2007년에 문제가 됐던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 단독파업 같은 경우는 노동계 내부에서도 기능적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물량이관 문제를 놓고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중 1공장만 파업을 벌인 사건이다. 2007년 당시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은 소형차를 주로 생산했다. 그런데, 소형차는 다른 차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판매가 부진했고, 이는 울산1공장의 물량 감소로 이어졌다.

이렇게 되자 현대자동차는 아산공장에서 생산하던 중형차 물량의 일부를 울산1공장에서도 생산하도록 하는 대안을 마련했고, 현대자동차지부 울산1공장위원회와의 협의도 마쳤다.

그런데 중형차와 준대형차를 생산하던 아산공장에서는 생산하던 중형차의 일부 물량을 울산1공장으로 넘기면 이번에는 아산공장의 물량이 줄어들어 고용이 불안해질 수 있다면서 물량 이관을 거부했다. 울산1공장은 합의하고도 물량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불만이 팽배했고, 결국 1공장만의 단독파업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대화부터 하자

경영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처럼 여러 차종을 생산하다 보면 잘 나가는 차종이 있고 상대적으로 덜 나가는 차종도 있기 마련인데, 이럴 때는 남는 인원을 재배치하거나 반대로 남는 물량을 나눠야 한다”면서 “그러나 노조에서는 이런 물량 재배치나 전환배치도 고용불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를 이행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따라서 사내하청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면서 무조건 원청이 직접 고용하라고 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유연성과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범위 안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까지 이와 관련한 해법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이 문제가 단일 기업 차원의 문제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결은 단일 기업에게 내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특정 기업에서 이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기업의 노사·노노갈등이 극한까지 치닫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사내하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회적 대화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현재의 노사정위원회와 같이 이미 마련돼 있는 사회적 대화기구는 이 문제와 관련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구조로의 개편이 필요하다.

아울러 정부에서는 인력부족을 핑계로 수수방관하고 있는 현재의 태도에서 벗어나, 실제 사업장에서는 사내하청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부터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모든 대안과 해법은 정확한 실태에서부터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의 장이 마련되고 정부가 역할을 하더라도, 노사 당사자들이 ‘무조건 정규직화 해야 한다’거나 ‘직접 고용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므로 나는 책임 없다’는 극단적인 입장만을 고집한다면 문제 해결은 요원할 수 있다. 따라서 노사 당사자들에게는 우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 위에서 사내하청 문제와 유연성 확보라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나아가 유연성을 확보하는 목적은 결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기업의 성과를 극대화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기업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 노와 사는 각각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시작돼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