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위기, 변화를 요구하다
삼성의 위기, 변화를 요구하다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1.02.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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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업 전략 한계 봉착…세계 시장 선도할 전략 필요
‘관리’의 삼성이 ‘창조’의 삼성으로
[특집1] '젊은' 삼성, 무엇을 의미하나…② 삼성의 위기와 변화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010년 경영복귀 이후 ‘삼성 위기론’, ‘대한민국 위기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지난 1월 9일, 이 회장은 본인의 칠순 기념 만찬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한국이 정신을 안 차라면 또 한걸음 뒤처질 수 있다. 앞선 회사가 퇴보하는 경우가 많고 새로 일어나는 회사가 많아져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2011년 삼성그룹 시무식에서는 그룹 임원들에게 “(삼성과 한국의) 대표 제품이 1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계 봉착한 캐치업 전략

이전까지 삼성의 경영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캐치업(catch-up)’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삼성의 주력 상품인 반도체, LCD 등에서 삼성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공격적인 투자와 빠른 의사결정, 기능의 차별화, 선진적 마케팅 기법 등을 통해 세계 유수의 기업들을 제치고 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미 시장이 개척되어 있는 곳에서 기존의 1등을 따라잡는 방식은 삼성뿐 아니라 한국 대부분의 기업이 사용하고 있는 방식이었다. 캐치업 전략은 중소기업이나 개발도상국가의 기업들에게는 아직도 유용한 전략인 것은 분명하다.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소비자가 구성됐다는 것이며 구축돼 있는 소비자층을 공략할 수 있는 자신만의 포인트만 있다면 기존 시장을 파고드는 것이 오히려 안정적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한국 또한 이러한 전략으로 세계 13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이 사실이며, 현재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짝퉁이 판치는 나라’라는 비아냥을 듣고는 있지만 값싼 노동력과 국가적 지원을 바탕으로 기존 시장을 교란시키는 캐치업 전략으로 G2에 들어간 것 또한 사실이다.

문제는 한국이, 그리고 삼성이 샌드위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으로 진입하기에는 아직 모자란 반면, 개발도상국들의 약진에는 흠칫 놀라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그리고 삼성의 전략은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난해 안철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좌교수가 대통령자문 미래기획위원으로 있을 당시 “그동안 우리 경제는 세계 선진기술 제품 등을 빠르게 추격하는 ‘캐치업(catch-up)’ 전략을 통해 세계 13위권 경제대국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며 “앞으로 우리 경제가 세계 10위권 이내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을 리드(lead)하는 선도형 전략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성 내부에서도 세계 일류 기업으로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캐치업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느껴왔었던 것으로 보인다. 매년 강조되는 경영위기설이 단지 외부적 환경에 따른 재무적 문제점만을 지적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대표제품이 10년 내에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새로운 먹을거리가 필요하다”고 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아이폰의 등장, 그리고 위기감 고조

▲갤럭시탭 ⓒ 삼성전자
한때 전자왕국으로 불렸던 소니를 제치고 세계시장을 석권했고, 전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노키아 등과 시장을 분점하고 있었던 삼성을 ‘앗 뜨거’하게 만든 것은 바로 애플의 아이폰이다. 삼성은 아이폰의 등장으로 위기가 현실화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이폰의 등장이 위기감을 준 것은 아니었다. 2009년 11월, 아이폰이 국내 첫 출시되자 일부 마니아들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혹자는 냉소를 보내기도 했다. 이미 지난 2007년 출시됐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그리 큰 충격을 주진 못할 것이라는 전망과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아직 일반 사용자들이 쓰기엔 너무 복잡하고 불필요한 기능만 많다는 선입견, 이미 국내 업체들이 세계적 수준의 일반 휴대폰(피처폰) 기술을 가진데다가 불과 십년 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휴대폰을 사용하게 돼 기존 시장이 포화상태라는 점 등을 들어 아이폰 필패(必敗)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폰의 국내 출시 이후 국내 휴대폰 시장에는 일대 격변이 휘몰아쳤다. 아이폰으로 촉발된 스마트폰 시장의 확장은 2010년 말 국내에서만 1천만 대 판매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스마트폰의 급격한 성장을 예측하지 못했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뒤늦게 자체 브랜드 생산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출하량이나 시장점유율 면에서 노키아, 삼성전자의 뒤이어 세계 휴대폰 업체 중 세 손가락에 꼽히던 LG전자의 경우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또한 갤럭시 시리즈가 출시되기 전에는 옴니아로 근근이 버티는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아이폰으로 촉발된 삼성전자의 위기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은 ‘엔지니어 정신의 붕괴’로 요약했다. <참여와혁신>이 어렵게 만난 삼성전자의 직원들은 “아이폰 등장으로 이러다 회사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진 것은 사실”이라며 “삼성에서 출시하는 제품은 최고급 디자인과 강력한 스펙을 보유하고 있지만 기술적 선도제품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상품을 쫓아가는 제품”이라고 자평했다. 다른 직원의 경우 “갤럭시의 성공은 기술의 승리라기보다 마케팅의 승리”라며 “도전정신에 입각한, 창조적인 엔지니어 정신이 실종됐다”고 아쉬워했다.

이는 삼성전자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참여와혁신>이 매장에서 만난 소비자들 대부분이 삼성 제품에 대해 품질을 이야기하기보다 삼성이라는 브랜드 인지도와 A/S의 만족도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참여와혁신>이 만난 삼성 직원들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LG전자, 그리고 애플과 구글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의 약세는 이런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동안 휴대폰 사업분야에서 LG전자가 기술개발과 이를 통한 시장창출보다는 마케팅과 디자인 분야에 지나치게 치중해 스마트폰 대응이 늦어졌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지난 2005년 출시돼 2년 만에 1천만 대가 넘게 팔린 초콜릿폰이나 2007년 출시된 프라다폰 등 기존 피처폰 시장에선 LG전자 특유의 디자인 중심과 감성 마케팅(인사이트 마케팅)이 일정 성과를 거두었던 것도 사실이다. LIG투자증권 김갑호 연구원은 “LG전자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율이 07년 4.1%에서 09년에는 3.1%로 낮아지는 등 시장판단에 착오가 있었다”며 “스마트폰이 국내에선 11년 쯤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 것으로 예측해 OS에 최적화된 기기나 차세대 휴대폰 기기 개발에 여유를 두었던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창조적인 경영전략으로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기보다는 기존 시장에서 감성 마케팅을 통한 외형 변화에만 주력한 나머지 시대의 빠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진 사례라고 보는 것이다.경직된 기업문화가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가로막았다는 점 또한 지적되고 있다.

반면 창조적 경영의 모델로 제시되고 있는 애플과 구글을 보자. ‘기업문화 오디세이’의 저자 신상원 기업문화 컨설턴트는 “애플의 조직은 굉장히 단순하고 경험적으로 이뤄져 있다”며 “IBM과 같은 기업이 현재의 가톨릭과 같은 질서와 복잡한 조직을 이루고 있다면 애플은 초기의 예수 공동체와 같은 조직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애플의 기업문화는 애플이 추구하는 신념에 공감하는 사람들로 이뤄진 단순화된 조직체계로 요약되며 이는 민첩한 결정과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는 추측이다.

구글의 경우 조직의 창의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20% 룰’이라 불리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20% 룰’은 직급에 관계없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내고, 직원들에게 평가 받아 사업화로 연결되는 시스템으로 사원들이 사내 ‘아이디어 마켓’에 아이디어를 제출하면 일정 수 이상의 직원이 인정하는 아이디어는 이른바 ‘20% 프로젝트’에 등재된다. 그때부터 아이디어를 제출한 직원은 자기 업무시간의 20%를 투입해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킨다.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 구체화되면 경영진의 승인 아래 ‘80% 프로젝트’로 지정돼 사업화가 시작된다. 이로 인해 사업화가 실시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전 세계 도서관의 서적을 모두 검색할 수 있는 ‘프런트 구글닷컴’이다. 이는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해 얻게 된 지적 능력의 결과가 창의성을 발휘하는 이른바 ‘집단지성’의 긍정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김윤환 수석연구원은 “구글과 같이 임직원이 내세운 전략을 후원한다는 기업문화가 구축되면 자발적으로 전략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돼 추진력이 가속된다”며 “경영진은 임직원을 진심으로 배려한다는 가시적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스마트TV 앱스 ⓒ 삼성전자

‘젊은’ 삼성이 노리고 있는 것은?

흔히 삼성의 기업문화를 종합적으로 지칭하는 말은 ‘관리의 삼성’이었다. 그만큼 체계적이고 세밀하게 업무를 분류하고 업무 방식과 실행에 따른 결과까지 꼼꼼하게 체크된다는 점에서 한때 한국 기업문화의 표본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폰으로 촉발된, 그 이전에도 위기경영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삼성전자의 위기감은 ‘관리의 삼성’을 뛰어넘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기업문화, 즉 ‘젊음’으로 요약되는 기업문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건희 회장이 젊은 조직론을 주창하자 삼성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에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삼성 측이 이 문제와 관련한 어떠한 취재에도 응할 수 없다며 취재를 거부해 정확한 이유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한 대기업 인사노무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이러한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하다.

“삼성의 기업문화인 관리의 삼성이 변화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관리의 삼성이 부정된다는 것이 아니라 주안점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가 아니겠느냐. 대부분 기업은 인재발굴과 기업문화 혁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찌보면 삼성의 변화는 기존의 인재 양성 과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외부에서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기존 직원들에 대한 퀄리티를 높이고 공격적이고 창의적인 업무을 위한 재교육이 시작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를 통해 앞으로 10년, 20년 후의 먹고 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대부분의 기업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과 일치한다. 다만 삼성이라는 거대 조직의 변화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고 내부의 치열한 논의와 시스템 점검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당장 성과가 나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존의 고정된 기업문화, 경직된 기업문화를 창의적이고 활동적인 기업문화로 바꿔야 한다는 오너의 의지는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