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삼성은 위기와 기회의 상징
‘젊은’ 삼성은 위기와 기회의 상징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1.02.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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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경영을 위한 ‘꼼수’로만 보긴 힘들어
창의적 경영과 인재양성은 주요 기업들의 현재 목표
[특집1] '젊은' 삼성, 무엇을 의미하나…③ '젊은' 삼성의 의미

변화는 단지 3세 세습을 위한 것일까?

▲ 2008년 삼성특검에 출석하는 이건희 회장 ⓒ 참여와혁신 포토DB
이건희 회장의 ‘젊은’ 삼성 발언 이후 사장단 인선이 이루어지자 이러한 변화에 대해 외부의 시각은 조금 냉소적이었다. 창의 경영이라는 화두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젊은’ 삼성이란 슬로건이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이냐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없기 때문에 단지 이재용·이부진 사장을 통한 3세 경영을 앞당기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란 시각이었다. 성공회대 최인이 교수는 “결국은 자신들의 그룹 내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기위해 2세들에 대한 파격 인사를 단행하려는 논리 만들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대구대 이상협 교수 또한 “본격적인 이재용시대의 개막을 위한 사전 정비작업 정도로 보인다”며 “반도체산업을 주도하며 등장한 이건희가 ‘이병철의 삼성’을 ‘이건희의 삼성’으로 변모시켰던 것처럼 ‘이재용의 삼성’을 만들기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삼성 내부에서조차도 이러한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삼성전자에서 15년을 근무한 한 직원은 “회사 내에서도 이재용 사장을 승진시키기 위한 행보로 보는 시각이 있다”며 “이 회장이 ‘젊은’ 삼성을 외치고 사장단 인선을 했지만 현장에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젊고 창의적인 조직으로의 변화를 요구한 ‘젊은’ 삼성을 경영권 세습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협소한 해석이 될 수 있다. 이는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수뇌부들이 지속적으로 위기경영을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이전까지는 외부적 조건(경제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에 대응하기 위한 삼성 내부의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위기론이 등장했다면 현재의 위기론은 그 양태가 조금 다르다. 막강한 적수, 그것도 현재 삼성의 주력 기업인 삼성전자를 위협할 적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요구하고 만들어지는 시장 상황에 삼성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조직의 재편과 새로운 기업문화 설계를 통한 세계적 리딩 기업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젊은’ 삼성은 이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이며 채찍질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의미에서 대구대 이상협 교수는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승계는 단순히 재벌가 내부의 상속 문제가 아니라 향후 삼성그룹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위기 타개의 측면보다는 Post-이건희 시대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모색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단순한 경영권 승계가 아니라 삼성그룹의 주력 업종을 새로운 스마트/웹 시대에 맞추어가기 위한 조직 및 인적 혁신이라는 더 큰 목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경영승계 또한 현재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이며 이 모든 것이 ‘젊은’ 삼성이란 코드에 녹아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 삼성 아산공장 전경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젊은’ 삼성이란 것이 구호로서만 존재할 뿐 실체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부분적 세대교체 정도로 대기업의 조직문화가 바뀌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리의 삼성’이란 기존의 조직문화와의 조화적 측면에서 보면 아직 구체화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변화의 양상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임원진들 중 많은 수가 염색을 해 젊게 보이게 하려고 한다든가 복장 등 직원 각자의 외형적 모습에 철저했던 삼성이 자유분방한 스타일도 허용한다든가 삼성의 사내방송인 SBC가 직원들의 고충 문제, 조직 문제 해소를 위해 연예인이 대거 등장하는 시트콤을 제작한다든가 하는 식의 조그만 변화도 있다.그렇다고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거대한 삼성이 현재까지 유지됐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조직 관리방식이 이미 직원들 사이에서 내성화된 상황에서, 획일적 조직문화로 인해 기존의 하부조직들이 자체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구조에서 ‘젊은’ 삼성이 쉽게 조직문화로 정착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예상은 당연하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문제는 ‘젊은’ 삼성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가 단지 삼성이라는 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기업 문화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봐야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기업들이 보여주는 조직문화는 거의 획일적 구조시스템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일부 기업에서는 몇 해 전부터 창의적 조직문화를 위해 팀제 전환과 같은 다양한 방식을 구축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이는 창의적 조직문화가 어떤 결과를 갖고 왔는지에 대한 구체적 결과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기업 인사노무팀의 한 관계자는 “위에서는 창의적 조직문화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요구하고 있으나, 어떤 조직문화나 시스템이 어떤 결과를 갖고 왔는지 구체적인 수치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거다라고 보고를 드리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다만 애플과 삼성의 영업이익 차이, 즉 2009년 삼성전자는 39조의 매출에 3조 7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낸 반면 애플은 18조의 매출에 4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는 점을 들어 창의력과 다양한 아이디어가 바탕이 된다면 기업실적 개선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예측만 가능할 뿐이다. 결국 한국 기업 경영전략의 핵심 축이었던 캐치업 전략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매출의 극대화가 아닌 순이익의 증대를 위한 창의적 조직문화의 도입은 필수요건이 됐다는 것을 ‘젊은’ 삼성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 윤영수 수석연구원은 구글의 성공 사례에서 보면 조직 내 비공식 채널 활성화가 기업에 창의성을 불어넣는 과정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윤 수석연구원은 “혁신적 발상은 경계를 초월해 이종(異種)간 아이디어의 결합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다수의 사람이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투입된 자원의 효율성 측면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구성원과 구성원 간, 부서와 부서 간, 부문과 부문 간의 약하고도 다양한 연결을 이어 상호 생각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의 기업은 기업과 기업의 관계에서는 재무적 투자가 관여된 강한 연결,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는 업무연관성이 높아 매일 함께 일하는 강한 연결만 중시되고 있으며, 이것이 기업의 창의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 풀HD 3D 스마트TV를 선보이고 있는 삼성전자 윤부근 사장 ⓒ 삼성전자

변화는 곧 시작될 것

삼성의 조직문화 변화 조짐은 삼성이 갖고 있는 한국사회내 발언력을 감안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곧 다른 기업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높다. 한 예로 보수적인 경영으로 잘 알려진 제약업계가 이건희 회장의 ‘젊은’ 삼성 발언 이후,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확인되지는 않지만. 최고경영자(CEO)의 연령대를 60대에서 50대 초반으로 급격하게 낮추었다. LG생명과학은 김인철 사장 후임으로 정일재(51세) 사장을, 한미약품은 임선민 사장 후임으로 이관순(50세) 사장을, 태평양제약은 이우영 사장 후임으로 안원준(53세) 대표를 선출했다. 이는 한·미, 한·EU 자유무역협정으로 국내 경영환경이 어려워지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젊은 피를 수혈함으로서 조직의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렇다고 다른 기업까지 급격하게 퍼질 것이란 예측은 성급한 면이 있다. <참여와혁신>이 대기업 인사노무 담당자들에게 ‘젊은’ 삼성이 다른 기업 문화로까지 퍼져나갈 것으로 예상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다수의 응답자는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각 기업의 조직문화, 기업문화가 이미 어느 정도 구축이 되어 있고 ‘젊은’ 삼성의 다른 말이 창의적 기업문화라면 이는 대부분의 기업이 추구하고 있는 바여서 구체적인 시스템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이를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다.

그렇지만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부분의 기업 인사노무 담당자들이 직선적인 조직문화에서 탈피한 창의적 조직문화와 그에 걸맞은 인재 양성을 주요한 화두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젊은’ 삼성으로 대변되는 변화는 이미 한국 기업의 위기 징후와 그에 따른 대처법을 동시에 제기하고 있는 것이란 판단이다. 위기가 곧 기회이듯이 한국의 기업들도 자신의 체질 변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