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기본이라고? 기본부터 갖춰라
대화가 기본이라고? 기본부터 갖춰라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1.08.31 11:03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사정 모두 변화해야 문제 해결 가능
언제까지 남 탓만 하고 있을 텐가?
[특집] 노사문제 해결 능력은 어디에 ③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 참여와혁신 포토DB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노사정 당사자들에게 문제 해결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더구나 지난 1990년대 이전처럼,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에게 굴복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문제가 해결될까?

문제 해결하는 수단은 결국 대화

노사정 당사자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노사·노정간의 대화의 통로 자체가 막혀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대화는 가능하지만 어느 한 쪽이, 또는 양쪽 모두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문제 해결방안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명백하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결국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간다는 뜻이다. 어느 일방의 주장을 100% 관철한다는 것은 예외적으로만 가능한 문제 해결의 방법일 뿐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한 쪽에서는 목숨을 내걸 정도로 절박하게 이야기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이야기를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민주노총이 현 정부 들어 계속 이야기하는 바가 바로 이 부분이다. 노정간의 대화 통로가 막혀 있다는 것이다. 오래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직후 양대 노총을 방문해 수장을 만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계획에 따라 한국노총 방문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하지만 민주노총 위원장과의 만남은 끝내 무산됐다. 당시 각종 집회 등을 이유로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출석요구서가 몇 건 발부됐는데 거기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위원장이 바뀐 뒤, 김영훈 위원장이 결국 국제기구 위원들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기는 했지만, 독대도 아닌 마당에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난 5월 노조가 파업을 결정하자마자 직장폐쇄로 맞불을 놓았던 유성기업 역시, 최근 법원의 판결에 따라 조합원들의 복귀를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를 때까지 직장폐쇄를 철회하지 않았다. 나아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이유로 형식적인 대화에도 응하지 않았다. 단체교섭에 응하는 것은 의무이지만 제도에 의해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을 명분이 주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역시 대화의 통로가 막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이번 한진중공업 청문회에서 드러났듯이 어느 한 쪽이 자기주장을 굽힐 뜻이 없는 경우에도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한진중공업지회는 반년이 지나면서 파업을 철회하고 현장 복귀를 선언하며 대화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보여준 것처럼 대화에 나서면서도 정리해고를 철회할 의향이 전혀 없다는 말은 자신의 뜻을 100% 관철시키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경우라면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뿐더러 대화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대화에는 응하지만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한진중공업의 경우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기는 했지만 한진중공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수의 노사간 대화가 이렇게 진행된다. 대화에 응하는 전략에 따른 힘겨루기일 수도 있고 실제로 주장을 굽히지 않으려는 의도일 수도 있지만, 많은 대화가 초기에 난항을 겪는 것은 노사가 서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통로 막히면 문제 해결은 요원

결국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이런 대화가 이뤄지려면 노사정 모두의 태도변화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경우,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노사관계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은 ‘공정한 중재자’의 역할이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사용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정부의 입장이 노사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어렵기 짝이 없는 일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노사관계에서 어떤 점이 균형점인지, 과연 그 점이 공정한 지점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정부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노사관계의 균형추가 이동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렵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할 일인 것도 분명하다.

또 너무 깊숙이 개입해서 노사자치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지만, 그렇다고 방관자의 위치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더더욱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 뿐이라는 점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노사문제에 개입할 적절한 시점을 포착해내는 것도 정부에 주어진 역할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사용자 역시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무한경쟁의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은 정당하게 평가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 받으려면 우선 조직 내부에서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비록 당장의 경쟁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에 있어서는 불안정한 노사관계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업장의 사정에 따라, 또는 전반적인 노사관계의 흐름에 따라 합리적인 노사관계는 다른 형태를 띠고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사간의 대화를 통해 당면한 각종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그런 노력을 통해 얻은 성과물을 공정한 기준에 따라 노사가 함께 나누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용자와 정부가 대화에 응하지 않는데 노동계에 문제 해결능력이 있느니 없느니 따지는 것은 의미 없다”는 한 산별연맹 상근간부의 항변도 현재의 지형을 고려하면 잘못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노동계 역시 문제 해결을 위해 변화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언제까지 정부를 탓하고 언제까지 사용자를 탓하고만 있을 것인가?

우선 사용자·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노동계에도 요구되는 점이다.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힘부터 과시하려고 하는 태도는 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1987년 이후의 역사적 경험 속에는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가 진행돼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그 시기에 걸맞은 해결방안이었을 뿐 언제 어디서나 통용되는 전가의 보도가 될 수는 없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현재의 노사관계 지형에서 더욱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물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강력하게 투쟁한 결과 남은 것이 ‘상처뿐인 영광’은 아닌지 지난 몇 년 동안의 과정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강력한 투쟁도 대화에서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강력한 투쟁을 강조하는 흐름의 귀결점이 ‘전투적 실리주의’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그들만의 리그’, ‘대기업 이기주의’ 등으로도 불리는 전투적 실리주의가 득세하는 동안, 사회 전체적으로는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양극화는 역으로 생존의 한계에 내몰린 이들의 극한투쟁을 부채질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한편, 노동계의 정책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첫 머리에서 언급했던 ‘정리해고는 답 없는 투쟁’이라는 말은 다르게 해석하면 정책능력의 부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더구나 산별노조가 이런 말을 한다면, 그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정책능력의 부재는 다시 전략의 부재로 이어진다.

언젠가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이 “세상을 움직이는 건 진정성과 실력”이라면서 “고생은 했는데 실력이 모자라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 민주노총의 움직임을 보면, 나아가 노동계의 움직임을 보면, 정말 노동계가 실력이 있을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2000년대 들어서, 아니 현 정부 들어서 노동계가 진행했던 투쟁이 승리한 적이 있을까? 한참 동안 기억을 더듬어 봐도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열심히 뛰어다닌다는 진정성은 평가해줄 만하지만, 투쟁을 승리로 이끌 정책능력과 구체적인 전략은 아직까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노동계가 가장 먼저 보완해야 할 게 바로 이 지점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문제 해결의 왕도는 없다. 결국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그 기본이 무너지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나오지 않는다. 지금 노사정은 기본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그래서 대화의 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