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대로라면 죽을지도 모른다
지금대로라면 죽을지도 모른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1.11.3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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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의 단일화 노동체계일 뿐
“관료화된 중앙 아닌 건강한 지역지부에서 답 찾자” 주장도
[특집] 산별노조, 길을 묻다 ④ 산별노조는 답인가?

<주> 이글에 나오는 김태현 원장의 의견은 <민주노총 정책포럼>에서 발표한 ‘민주노총 산별노조 운동에 대한 평가와 과제’를, 하부영 대표와 임승철 집행위원장의 의견은 <새롭게 다르게>에 발표한 ‘제2민주노조운동을 주장한다’를 참조하였다.

산별노조가 되면 외롭지 않게 싸울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의 유성기업 조합원은 “나는 개다”를 복창하며 회사 정문을 통과해야 했고, 조합 탈퇴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 탈퇴한 조합원의 문제였을까? 산별노조의 역사가 10년을 넘어섰다. 산별노조가 되면 기업의 담이 무너질 줄 알았다. 그런데 기업의 담이 무너지기는커녕 기업 안의 노동자 사이에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커다란 담이 더욱 높게 세워졌다. 무엇이 문제인가? 답 없는 질문인 줄 뻔히 알면서 딴죽을 걸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대한민국에 산별노조 있나

민주노총에는 현재 25개 산별노조가 있다. 여기에 소속된 조합원은 553,715명이다. 민주노총 전 조합원이 677,780명이니 80.3%가 산별노조에 가입되어 있다. 이처럼 한국의 노동조합은 이미 기업별 노동조합이 아니다. 이 말에 동의하는가?

“지금 산별노조는 산별이 아니잖아.”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김승호 이사장은 한국에 산별노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의 단일화 노동체계밖에 안 된다. 그야말로 (노동자 계급에 대한) 보편적 정당성은 약화되고 기득권화된 특권노동자의 보호 도구에 불과”하며, “이걸 산별노조라고 인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는다.

현대자동차 제2민주노조운동실천단 하부영 대표는 ‘제2민주노조운동’을 주창한다. “지난 17년의 투쟁은 무언가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대중들의 요구와 지향을 벗어난 노동운동은 결국 경제투쟁에 매몰되고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말하면서도 실리주의와 노사협조주의가 강화되는 모순에 빠진 것이 현재의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이며 한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며, 스스로도 “노동운동을 왜곡하는데 자의건 타의건 전면에 섰다”는 반성과 함께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하 대표는 노동운동의 대안으로 제시된 산별노조운동은 “여전히 계몽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채 동원방식과 내리 먹이기식 사업으로 현장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하면서 동력이 고갈된 상태”라고 진단한다. 이는 “한국의 현실을 무시하고 유럽형 산별노조의 조직형식에 끼워 맞추려는 소모적인 논쟁”의 결과라는 것이다.

전국혁신네트워크 임승철 집행위원장은 자본과 정권은 “신노조법(복수노조와 타임오프)을 통하여 노동3권을 제약하고 기업별 노사관계를 강화하여 산별노조와 민주노총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009년 11월에 금속노조 평 조합원이 아닌 대의원을 상대로 금속노조 신뢰도를 조사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93%의 대의원이 신뢰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임승철 집행위원장은 “산별노조 관료들을 조합비나 축내는 운동 귀족들로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지난해 한 언론사에서 민주노총이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느냐’고 물었다. 52.2%의 응답자들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금속노조 조합원은 2011년 11월 현재 145,479명이다. 2007년 조사에 따르면 금속노조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85,459명이다. 이들 가운데 금속노조로 조직된 사람은 5,002명에 불과하다.

산별노조가 만들어진 뒤 산별교섭이 제한적이나마 진행되고 있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줄어들기는커녕 임금불평등 수치는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다. 당연히 시민들의 눈에는 민주노총이 ‘제 밥그릇만 챙기는’ 대기업, 그 중에서 정규직의 조직으로만 보일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가 비정규직을 채용한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이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 노동자와 대기업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를 벌인 것도 아니다. IMF 이후 급속히 확산된 신자유주의 물결은 노동의 유연성만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일자리는 비정규직의 양산이었다. 빈부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했다. 민주노총의 죄라면 노동운동 세력이 무력했다는 사실뿐이다.

이 무력함은 2009년 정리해고에 맞선 쌍용자동차의 77일 옥쇄파업에서 드러났다. 금속노조에서 일했던 박점규 씨는 말한다. “어려운 시기를 산별노조로 이겨 나갈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 쌍용차 투쟁에서 금속노조가 한 일은 투쟁의 주체가 아닌 마무리를 위한 중재만 했다. 이번 한진중공업 투쟁 관련 희망버스에서도 금속이 중심이 아니었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금속노조 간부가 한 명도 없지 않는가. 분명 하나의 노조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박점규 씨는 산별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완성차 노동조합이 금속노조에 들어오기 전인 “4만 금속노조 시절을 여전히 빛나는 순간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는 “산별노조 운동에 대한 환상까지는 아니어도 거의 맹목적 추종자”라고 말한다. “신분보장기금이나 장기투쟁대책기금은 중소영세 사업장이나 투쟁 사업장에는 주요한 자원”이고, 이는 “15만 금속노조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금속노조의 경우에는 해고가 될 경우 12개월 동안 통상임금을 지원하고 있고, 장기파업 조합원에게도 기금을 지원한다. 하지만 워낙 많은 장기투쟁사업장 때문에 현재는 기금이 거의 소진된 상태기는 하다. 보건의료노조도 장기투쟁 사업장 조합원에게는 1인당 월 30만원, 해고자에게는 생계비로 월 1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산별노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공공운수노조의 한 조합원은 “산별노조가 되어 재정적 물질적 지원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형식은 갖췄지만 실질적 내용은 없는데 무슨 산별이냐? 생계지원금 없을 때도 이보다 잘 연대해서 싸웠고 승리했다”고 반발한다. 형식적인 산별노조나 산별 교섭구조에 힘쓰기보다는 “현장의 조직력을 복원하는 데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점규 씨도 “현재의 금속노조 중앙의 삼분의 일은 지역으로 내려가 현장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중앙은 “비대화, 관료화 되어 있으나 지역지부는 여전히 건강하다. 대기업 노조의 관료화, 노사협조, 대중영합을 막아내는 길은 지역지부를 강화하면 가능하다”며, 산별노조의 혁신을 지역에서 찾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대기업 노동자가 걸림돌인가

산별노조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걸림돌로 지목한다. 지난 11월 12일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에서 만난 한 자동차사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래도 노동자가 하나냐!”고 분노한다. “한 자동차 노동조합 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야제 참가하기 위해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서울에 내리자마자 여관으로 들어갔다. 노동조합에서 일비, 밥값, 모텔비 해서 한 사람 당 오만 원씩을 주었다”며, “저기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생계비를 마련하려고 오뎅을 팔고 있지 않느냐”며 분개한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현재 산별노조는 “기업별 노조의 조직전환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보건의료산업 안의 전체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조직이 되지 못한 채 정규직 중심의 일부 조합원의 입에 불과하다”고 혹평한다.

김승호 이사장은 이와 같은 상황은 이미 예견된 것이라고 한다. “산별 전환을 한다 할 때 완성차와 흡수통합하면 기존 조직도 없어진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대다수 모든 정파의 활동가들이 찬성했다. 그런데 현재는 어떤가? 2만 민주금속만이라도 살아있었으면 좋지 않았겠냐”며, 현 위기는 “민주노총이나 산별노조 상층 지도부가 주도해서는 변화가 어렵다”고 회의적으로 진단했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산별노조를 건설하자고 했는데, 산별이 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산별 만능론이나 조직 형식주의에 빠졌다”고 현 상황을 말한다.

이런 비판에 대해 금속노조 관계자는 “이런 비판들은 산별노조 운동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라기보다는 신뢰받는 사회적 운동의 중심에 산별노조가 서라는 비판적 자극”이라며, “산별운동을 과거로 돌리거나 무용론으로 갈 것이 아니라, 무너진 대기업 안의 운동, 현장 운동을 살려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지도부, 현장을 살려라

박점규 씨는 문제를 지도부에서 찾는다. “이번에 현대자동차 집행부 선거에서 후보 중 가장 강성인 문용문 후보가 당선된 것을 보면 현장 조합원의 열정은 아직 살아 있다”며, “상당한 기간 동안 관료화”되었지만 지도부가 열정을 갖고 끌어간다면 산별노조의 건강성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전망한다. 박점규 씨는 2006년 금속노조 파업을 예로 들었다. “2006년 대의원대회에서 하이닉스, 기륭전자와 같은 비정규사업장 문제를 가지고 금속 총파업을 결의했다. 당시 총파업을 꺼내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김창환 금속노조 위원장이 20일 간 단식에 들어갔다. 중집도 동조 단식에 들어가서 몇몇 사업장을 제외한 2만 명이 넘는 조합원이 파업에 참여했다”며, “지도부가 결의하면 된다”고 지도부의 혁신을 주장했다.

하부영 대표는 산별노조운동은 “재벌중심의 산업경제 질서 앞에 저항력을 상실하고 무력화 되어감에 따라 노동 존중 사회를 실현할 친 노동자 정권을 창출하기 전에는 힘들다”며, 산별노조운동이 정착하려면 “친 노동자 정권의 창출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임승철 집행위원장은 ‘산별교섭 법제화’를 주장한다. “민주노총이 기업단위 노조의 교섭을 포섭하는 경쟁력 있는 산별노조 교섭구조를 확보”하는 것을 우선하자고 한다.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연구원장도 ‘산별교섭의 제도화-법제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개별 산별노조 차원의 활동에 머무르지 않는 민주노총 차원의 총괄적 제도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산별교섭의 의무화, 사용자 단체의 구성 등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법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노사, 또는 노사정간의 협상을 통해 산별교섭을 현실로 강제하고 이를 승인”하게 해야 하는 두 가지 경로를 제시했다.

또한 “금속노조는 통합 금속노조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4년째 대기업노조의 산별교섭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2만 대오의 산별교섭에 머무르고 있으며, 보건의료노조의 산별중앙교섭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사용자단체가 해산하면서 산별교섭은 해체되고 특성별 교섭으로 축소됐으나 이마저도 일부 분과에 한정”되고, “공무원노조와 교원노조는 비타협적 정부에 의해 산별교섭이 무산”되었으며, 아울러 “공공운수노조는 출범 이후에도 산별교섭의 진전”이 전혀 없는 현실의 벽을 이야기했다.

김승호 이사장은 산별교섭의 법제화로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노동자의 힘으로 집단교섭을 하도록 해야지 법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잘못이다”며, “법으로 산별교섭 단체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성공하지 못 한다”고 못 박는다. 또한 “정권이 바뀌거나 해서 다시 법을 바꾸면 어떡할 거냐”며 물으며, 산별교섭은 법이 아닌 “노동자의 힘으로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시궁창에 고인 물이 될 건가

산별노조의 한계를 짚고 전망을 세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현재 정체되어 있는 산별노조의 조직력이다. 앞에서 2011년 11월 현재 산별노조 전환율이 80%를 넘어섰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2006년 12월에 산별노조 조합원은 589,637명(76.7%)이었다. 전환율은 높아졌지만 실제 조합원은 축소되었다.

민주노총은 조직력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비정규직, 중소영세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내세운다. 김태현 원장은 “민주노총은 10%에 지나지 않는 조직률을 20%로, 비정규 중소영세 사업장 조직력을 10%대로 끌어올리는 조직화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김승호 이사장은 “지역에서 금속노조 지역지부가 중소 노동자를 대표하고 조직화해야 한다”며, “초기업 교섭을 통해 지역 공통성에 기반 한 요구를 모든 사업장에 일반적 구속력을 갖도록 하는 운동을 통해 돌파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한 “처음부터 노조는 초기업적인 노동자 단결체라고 활동가부터 머리에 각인하고 사업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점규 씨는 “지역지부 전환 실패가 산별노조 운동을 더디게 만든 요인”이라며 “1사 1조직을 통해 대기업 내에 있는 비정규직부터” 정규직 노조와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대기업 주변의 많은 부품사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까닭은 “금속노조에 가입하면 나를 보호해 줄 건가 하는 두려움에 주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공장 내에서 “경조사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지역지부로 나와 “공단에서 선전물을 나눠주고 조직화”하는 모습을 보이면, “지역 공단 노동자의 대변자”의 역할이 되어 조직이 확대될 거라고 한다.

지난 두 달 동안 ‘산별노조가 답인가’라는 질문을 들고 여러 사람을 만났다. 어떤 답을 기대하며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산별이 있냐’는 냉소에서부터 산별 맹목적 추종자까지 다양했다. 문제의 지점은 비슷했지만 출구는 다양했다.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재에 머물면 추락 정도가 아니라 사멸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무금융연맹도 2011년 11월 산별노조를 완성하겠다고 한다. 건설산업연맹과 서비스연맹도 2012년 산별 완성을 외치고 있다. 예정대로 된다면 민주노총은 2013년에는 산별노조 전환을 마무리할 수 있다. 하지만 물이 흐른다고 모두가 바다에서 만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흘러가는 물길이 바다로 향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인 시궁창에 모여 썩어버리고 말지, 되새겨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