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후퇴는 있어도 역사 되돌릴 순 없다
일시적 후퇴는 있어도 역사 되돌릴 순 없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3.11.1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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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의 역사는 곧 교육민주화의 역사
전교조 법외노조화로 억압적 교육여건 조성될 것
[전교조를 말하다] ③전교조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10월 24일,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에 법외노조를 통보함으로써 전교조는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전교조가 그동안 이뤄왔던 성과들까지 내려놓을 수는 없다. 일시적인 후퇴는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법외노조 통보를 앞두고 진행된 전교조 조합원 결의대회 ⓒ 참여와혁신 포토DB
교육민주화 성과 담은 단협 무력화

전교조가 창립돼 활동해온 지난 24년간은 우리나라 교육의 민주화 과정과 일치한다. 사회가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군사문화에서 벗어나 민주화의 길을 걸었듯이, 교육 현장에서도 민주화가 진행됐다. 전교조는 이와 같은 교육민주화의 과정을 앞장서 이끌어왔다.

전교조는 창립 초기 법외노조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학교 운영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치맛바람’ 잘 날 없던 학교에서 촌지가 자취를 감추게 됐다. 물론 지금도 학부모들이 돈을 걷어 교사들의 회식비를 지원하는 등의 다양한 형태로 돈이 오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드러내놓고 돈봉투를 전달하는 모습은 이제 사라졌다. 전교조가 촌지 안 받기 운동을 펴고, 이를 교사 수칙이나 윤리강령에 못 박은 게 큰 역할을 했다.

권위주의적이던 학교 현장도 민주화됐다. 대표적인 게 교무회의의 의결기구화다. 전교조 창립 이전의 교무회의는 교장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것이었으나, 전교조는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교무회의에서 교사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변화시켰다. 권위주의적이던 교장의 모습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전교조였다.

사학재단의 비리는 영화에도 자주 소재로 쓰일 만큼 광범위한 현상이었다. 그중 사학재단에 채용된 교사가 그 대가로 채용기부금을 납부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관행이었다. 전교조는 채용기부금 근절 운동을 펴 사학재단의 비리에도 제동을 걸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학재단에서 벌어지는 인사나 재정 비리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도 했다. 그런 전교조의 노력은 2006년 사학 비리 근절을 위한 사립학교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학생의 인권이 신장되는 데에도 전교조의 노력은 큰 힘을 발휘했다. 강제적인 보충·자율학습, 야간자율학습 폐지를 이끌어낸 것은 전교조의 노력의 결과다. 일부에서 역편향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지만, 물리적인 체벌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도 전교조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전교조는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을 탈피해 수업에서도 혁신을 추구했다. 그런 전교조의 노력으로 혁신학교가 등장할 수 있었다. 현재 전국적으로 575곳의 혁신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전교조는 이 외에도 교복과 앨범을 공동구매 함으로써 학부모들의 부담을 줄이고, 학교의 운영에서 배제됐던 학부모들을 참여시키기 위한 노력도 해왔다.

전교조가 이뤄온 이 같은 성과가 담겨 있는 것이 단체협약이다. 2002년 이후 전교조와 교육부 간의 단체교섭은 진행되지 못했지만, 다수의 전교조 지부들은 각 시도 교육청과의 단체교섭을 진행해 왔다. 단체교섭에서 전교조는 교사들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대신, 그동안 소외됐던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를 단체협약에 담기 위해 노력해왔다. 전교조가 법외노조화 되면서 이 같은 단체협약이 무력화 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학교 민주주의 후퇴 불가피

그렇다면 전교조에서 합법노조의 지위가 박탈됨으로써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먼저 전교조 본조와 각 지부는 사무실 임대료로 지원된 52억 원가량을 반환해야 한다. 각 시도교육감의 허가를 받은 76명의 전임자에게도 학교복귀명령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0월 15일, 전교조 전임자가 소속된 각 학교에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면 전임을 위해 휴직 중인 교사를 복귀시켜야 하니 전임자 대신 채용한 기간제 교사에게 해고 예정 통지를 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만약 전임자들이 복귀를 거부할 경우, 징계 절차에 들어갈 수도 있다.

물론 이 같은 조치는 각 시도교육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다. 진보교육감이 있는 교육청에서는 곧바로 임대료를 회수하거나 전임자에게 복귀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교육부와 해당 시도교육청의 마찰이 불가피하다. 진보교육감인 김상곤 교육감은 이미 학교폭력의 학생생활기록부 기재 여부를 놓고 교육부와 마찰을 경험한 바 있다. 전교조에 대한 조치를 두고도 이 같은 마찰이 일 수 있다.

▲ 결의대회 후 삼보일배를 통해 탄압 중단을 호소하고 있는 전교조 ⓒ 참여와혁신 포토DB
전교조 법외노조화의 파장은 전교조의 불이익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전교조의 성과들이 녹아 있는 단체협약이 무력화되면, 그 안에 담긴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도 근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두발이나 복장규정 같은 학생인권 보호를 위한 조항이나 학습준비물 예산 전용을 금지한 학교운영의 투명화를 위한 조항은 물론, 학교현장의 의견을 학교운영에 반영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의 정책협의회를 규정한 조항도 무력화될 수 있다. 그 결과는 학교가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김정훈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전교조의 노동운동이 학교를 민주화시켰고, 교장선생님들의 모습도 수직적, 명령적 모습이 아니라 수평적 리더십으로 많이 변화돼 왔다”면서 “전교조가 법외노조화 되면 일부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교육관료들이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체계로 전환할 수 있다고 오판해 학교 민주주의가 일시적으로 후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그동안 사학재단의 비리를 감시하고 견제해 왔던 전교조가 법외노조화 되면, 사학비리가 다시 고개를 들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도 더욱 강화될 수 있다. 그동안 경쟁교육의 강화를 막아왔던 전교조가 법외노조화 되면서 이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차등성과급 지급과 같이 학교와 교사, 학생을 서열화하는 온갖 제도들도 시행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후퇴는 일시적일 뿐이라고 김정훈 위원장은 말한다. 김정훈 위원장은 “1987년을 기점으로 하면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의 몸속에 민주주의가 배어 있고, 그 이후의 세대들은 민주화된 토양 속에서 자라났다”면서 “전교조의 법외노조화로 인한 학교 민주주의의 후퇴가 일시적으로는 학교현장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민주화된 교육을 결코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물론 법외노조가 곧 불법노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정훈 위원장의 말대로 전교조의 법외노조화로 인한 학교 민주주의의 후퇴가 비록 일시적일 뿐이라고 할지라도, 전교조가 추진해왔던 혁신학교 운동이나 학생인권조례 운동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전교조가 이런 운동을 통해 추구했던 억압적인 교육여건의 변화는 오히려 더욱 공고해질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일선 학교현장에서는 전교조 조합원뿐만 아니라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은 교사들과 학생들, 나아가 학부모들의 권리까지 서서히 침해될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전교조는 지난 24년간 이뤄왔던 우리나라 교육민주화의 상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교조가 무조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교조가 법외노조화 됨으로써 학교에서 쌓아왔던 민주주의의 성과들이 후퇴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진짜 노림수는 사태 장기화?

ⓒ 참여와혁신 포토DB
고용노동부는 끊임없이 제기된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교조에 법외노조화를 통보했다. 전교조는 이에 맞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집행정지 및 취소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여기에 노조설립 취소를 통보할 수 있도록 한 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에 대한 헌법소원도 제기한 상태다. 따라서 공은 이제 사법부로 넘어갔다.

사법부가 이 같은 소송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사태가 장기화되는 것이 정부가 전교조에 법외노조를 통보한 진정한 목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가정보원과 군의 대선 개입 의혹, 대선공약 파기 등으로 궁지에 몰린 정부가 전교조를 제물로 삼아 정국의 주도권을 쥐려 한다는 분석이다.

딱히 그런 분석이 아니더라도 전교조를 법외노조화한 이후 칼끝은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고 있는 노동계 일반으로, 시민사회로 확산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민주노총이 지난 10월 26일 열린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통해 대정부투쟁을 선언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제 전교조는 법외노조로서 험난한 길을 다시 한 번 걸어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이 전교조만의 길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이미 대정부투쟁을 선언한 상태다. 국제 노동단체들의 관심도 한국을 향하고 있다. 오는 12월이면 한국의 노동기본권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세계교원단체총연맹(EI),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 등 국제 노동단체들이 참여하는 국제공동조사단이 한국에 올 예정이다.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로 촉발된 현 상황이 어떤 결말에 도달할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전교조를 둘러싼 정국은 점점 더 복잡한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