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규제완화는 진정한 대안인가?
금융 규제완화는 진정한 대안인가?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01.0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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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활성화, 각계각층 우려
가계부채 천 조, 금융정책 갈피는?
[특집_ ‘규제완화’ 디스토피아] ② 누굴 위한 금융 규제완화인가?

지난 11월 25일, 금융위원회는 향후 금융산업의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금융발전심의회 전체회의의 최종 논의를 거쳐 확정, 발표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 금융산업은 성장성과 역동성이 크게 저하됐으며, 최근 반복되는 금융사고로 국민들의 신뢰도도 추락하는 등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했다는 진단 때문이다.

ⓒ 금융위원회
금융업 경쟁력 강화, 걱정도 그만큼

이번에 발표된 강화방안은 경쟁과 혁신을 통해 금융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실물경제 지원의 효율성을 제고하여 실물경제와의 동반가치를 창출하고, 시장안정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통해 국민의 축적된 재산(가치)을 보호한다는 세 가지 측면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울러 세부적으로는 이의 실현을 위해 3대 미션과 9대 목표를 설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안들이 금융산업 혁신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주로 지적하는 부분은 규제완화를 통해 금융산업의 변화를 꾀하겠다는 대목이다. 특히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의 공개 이후에 사모펀드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승일 정치경제학 박사는 “새 정부는 핵심 공약 중 하나인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서 창업 생태계 조성과 함께 중소벤처기업을 위한 창업자금과 기술금융, 지식재산금융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면서 벤처캐피탈 산업의 육성을 꾀하고 있는데, 이것 자체는 일리 있는 판단”이라며 “중소벤처기업을 위한 벤처캐피탈 육성과 사모펀드 육성은 별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혁신 금융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 산업 발전방안을 제시하며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사모펀드가 활성화되어 금융산업의 부가가치 창출 및 경제의 역동성 제고에 크게 기여했던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론스타 등 일부 외국 사모펀드의 투기적 행태 등에 대한 반작용으로 부정적 인식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외국에서는 규제가 거의 없는 데 반해, 우리의 경우 엄격한 규제의 틀 내에서 사모펀드를 운영해야 하므로, 일종의 모험자본 성격인 사모펀드의 규모와 역할이 크게 미흡하다고도 덧붙인다.

정승일 박사는 “금융위의 기본 인식이 잘못됐다”며 “사모펀드, 헤지펀드가 활성화된 선진국은 미국과 영국이며, 이 두 나라는 이미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바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급진적인 기술혁신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나가는 국가이니만큼, 벤처캐피탈과 관련한 제도와 환경이 가장 발전됐지만, 영국의 경우엔 오히려 독일이나 스웨덴 등의 국가보다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한다. 또한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산업의 발전이 “금융시장의 안정성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의 안정성도 크게 해칠 것”이라며 “고령화와 저성장, 저금리 지속 등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고수익을 창출하는 사모펀드의 투자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아등바등 힘겹게 살고 있는 서민들의 경제 사정이나 인구 고령화, 양극화 등의 사회문제를 생각해 볼 때 고액 자산가나 금융회사들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헤지펀드의 신용파생상품 투자를 허용하는 등 자산운용에 있어서 여러 가지 규제 완화를 제시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금융위기가 발생한 주요 요인 중 하나가 헤지펀드의 신용파생상품 투자였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와 금융시장의 안정과 같은 공적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기업들의 경우,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면서 3~5년 정도 비교적 단기 투자에 집중하는 사모펀드의 투자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규제돼야 마땅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은행과 보험사 등이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릿지캐피탈, 한미은행을 인수한 칼라일 등의 사례에서 경험했던 바대로 은행과 보험사를 지배하는 대주주는 준공공기관으로 간주되는 만큼 그에 걸맞은 능력과 자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는 “주가의 단기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모펀드는 기업을 황폐화시킨다”며 “펀드 투자자에게 단기실적을 통한 보상 지급이나 펀드매니저에게 지급하는 고액의 보상 때문에 기업의 투자 확대나 장기 연구개발비 지출 등 장기 성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이러한 폐해는 금융기관뿐 아니라 사모펀드가 인수했던 제조업, 통신업 등 사업장에서 이미 반복적으로 발생했으며, 대량의 정리해고로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어왔다고도 덧붙였다.

금융사고, 파장 크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이한진 전국사무금융노조 연구실장 역시 “금융기관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국민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일반 기업에 비해 높게 요구된다”고 밝혔다. 일반 기업들도 고객, 직원, 퇴직자, 현 경영진, 납품업자, 주주,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어 문제가 발생할 경우 파장이 큰데, 금융기관에서의 문제는 이런 다수의 이해관계자는 물론 산업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이한진 실장은 최근 문제가 된 동양증권 사태를 예로 들며 이와 같은 문제점을 설명한다. 동양그룹은 금융 자회사인 동양증권과 대부업체를 동원해 재무건전성이 의심되는 주요 계열사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고객들에게 위험성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잉 유통시켰고, 그 결과 5만여 명의 투자자가 2조 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한국의 경우 산업자본의 은행소유에 대한 규제가 존재하지만, 증권, 보험, 대부업체 등 제2금융권의 경우 금산분리가 이뤄지지 않는다. 더욱이 2009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이후 산업자본과 금융계열사 간 거래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 회사채와 CP 발행의 급증, 대부업체를 통한 순환출자로 동양증권 사태가 불거지게 된 배경에는 금융당국이 이러한 규제 공백 문제를 방치해 온 결과가 놓여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의 특수목적회사인 라이프투자가 ING생명을 인수하는 것을 최종 승인했다. 그와 함께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완화 문제는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이한진 실장은 ING생명의 총자산은 약 23조 원에 이르고 전체 임직원 수는 7,683명, 2013년 6월 말 기준으로 보험 계약건수가 189만4,923건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만약 부실경영이나 고용 불안정의 문제가 발생할 때 저축은행이나 동양증권 사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여파를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보험업법에도 명시된 공공적 역할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모펀드의 인수 시 ‘지속가능성’ 면에서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양극화 해소 위한 금융정책 실종

지난 대선 과정에서 가장 화두가 되었던 키워드는 복지와 경제민주화였다. 각 후보마다 핵심 공약으로 이와 같은 내용을 반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 복지,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공약은 실종되고 규제완화를 통한 경기활성화 방안만이 추진되고 있다고 각계에서는 진단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가계부채 1,000조 원 시대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발표에 의하면 2013년 2월 기준으로 제도금융권에서 담보 없이 돈을 빌린 사람들 중 94만 명이 6개월 이상 연체 중이다. 금융감독원이 2012년 말을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사람들 중 4만 명이 하우스푸어로 분류된다.

지난 3월 금융위원회는 새 정부의 공약이었던 국민행복기금의 구체적 내용을 발표했는데, 대략적으로 아래와 같다.

박찬홍 사회민주주의센터 간사는 “국민행복기금은 파산·면책, 개인회생, 워크아웃 등 기존의 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며, 특별히 고유할 게 없는 땜질식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파산과 면책이라는 가장 명확한 길을 피해가려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6개월 이상 연체된 다중채무자는 안 갚는 것이 아니라 못 갚는 것인데, 이를 유예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결국 국민행복기금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지연하는 제도가 됐다는 진단이다.

박찬홍 간사는 “이미 세금의 투입이 불가피한 규모로 문제가 커진 상황에서, 채무자와 채권자 중 어느 쪽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냐는 담론보다는 현 구조 자체가 가계부채 문제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은행들이 민영화되면서, IMF가 요구하는 주주자본주의의 체계를 철저하게 흡수하게 됐다. 따라서 은행들은 단기 수익을 중시하게 됐으며, 고위험이 따르는 기업대출보다 담보가 확실한 가계대출에 집중하게 된다. 박찬홍 간사는 “삶이 몰락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복지인데, 복지로 해결해야 할 것을 대출로 막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범죄”라고 지적한다.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입장이나 정부 정책에 우려의 시각을 보내는 이들의 입장이나 금융산업의 혁신을 도모해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게 한다는 취지는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규제완화를 통해 금융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해묵은 방안이 과연 ‘혁신’의 방법이 될 수 있을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국에서는 금융규제의 추세가 강화되고 있는 것과는 왜 차이가 나는지, 저축은행 사태, 동양증권 사태에 이어서 은행권까지 후진적 금융사고가 연잇는 가운데 대비책은 마련돼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갈수록 심해지는 경제 양극화로 일반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점점 더 여의치 않은 가운데 규제완화 정책이 과연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불충분했다는 점은 충분히 우려스러운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