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금호타이어’ 무슨 일 있었나?
워크아웃 ‘금호타이어’ 무슨 일 있었나?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4.06.0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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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인수합병, 유동성 위기 초래
워크아웃으로 임금 40% 깎였다
[특집 2] 워크아웃 기업의 경쟁력 ① 금호타이어 워크아웃 과정

ⓒ 참여와혁신 포토DB
지난 5월 23일, 금호타이어 노사는 상견례를 갖고 올해 임·단협을 시작했다. 노사 대표자들의 발언에서도 드러나듯이 워크아웃 졸업 문제는 올해 임·단협을 좌우할 핵심이슈다. 올해 임·단협에서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졸업을 위해 노사는 어떤 결론을 이끌어낼까?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금호타이어

금호타이어는 지난 2009년 유동성위기를 겪은 끝에 그해 말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산업은행을 필두로 한 채권단은 이듬해인 2010년 1월 6일 워크아웃 개시를 결정했다.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금호타이어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안에서도 꾸준히 수익을 내던 알짜배기 기업이었다. 그런 금호타이어가 2009년에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가 놓여 있다.

지난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을 인수합병함으로써 그룹의 몸집을 불리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재무투자자를 모집하면서 주가가 3년 내에 특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그 차액을 보전하는 ‘풋백옵션’을 제시했다. 하지만 약속한 3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주가는 약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재무투자자들이 풋백옵션을 행사할 조건이 조성됐다. 풋백옵션이 행사될 경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떠안아야 할 손실금 규모는 2010년 풋백옵션을 변제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모두 1조2천억 원에 달했다. 이에 따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가용한 모든 자금을 동원했고, 이로 인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속한 계열사들은 급격한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됐다.

금호타이어 역시 대우건설 인수합병의 여파에 휘말려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됐다. 더구나 풋백옵션이 행사되던 2009년에 금호타이어는 그다지 양호한 경영실적을 내지 못했다. 워크아웃을 신청하기 전인 2009년 8월에 관할 노동관청에 정리해고 계획을 신고하는 등 금호타이어의 위기상황은 이미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던 상황이다.

결국 2009년 임·단협에서 금호타이어 노사는 정리해고 계획을 철회하는 대신 임금을 동결하는 데 합의했다. 이런 내용의 잠정합의안은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가까스로 통과되기는 했으나,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불만은 높은 상황이었다. 조합원들은 정리해고 예고 통보까지 받은 상황에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임금동결에 찬성한 것이다.

이 같은 조합원들의 분위기는 2009년 10월 벌어진 임원 탄핵 논란으로 이어졌다. 비록 정리해고는 철회시켰지만 임금을 동결하고 각종 복지를 축소하는 데 합의한 집행부에 대해 조합원들이 불신을 보인 것이다. 조합원들의 불신은 임원 탄핵 조합원 총회에서 63%에 이르는 조합원들이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데서도 나타난다. 탄핵을 가결하기 위한 조건인 2/3 찬성에 육박하는 결과는 조합원들의 집행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얼마나 높은지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정리해고는 철회됐지만 갈등 커

이런 2009년의 논란을 거쳐 금호타이어는 결국 2009년 12월 30일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됐다. 앞서 지적했듯이 금호타이어 워크아웃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리한 대우건설 인수합병에 따른 유동성 위기다. 거기에 금호타이어의 2009년 경영실적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악화된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금호타이어는 2009년에 영업적자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2007년 이후 누적적자가 7,477억 원에 이를 만큼 경영실적이 악화됐다. 이 같은 금호타이어의 위기 상황은 당시 12월 급여를 1월 초에 지급하기로 미룬 데서도 나타난다. 유동성 위기를 메우기 위해 금호타이어는 1개월짜리 기업어음을 발행했다가 이를 막지 못해 부도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금호타이어는 1년 미만의 단기차입금을 끌어다 썼고, 그 규모는 2008년 말 4,239억 원에서 2009년 3분기 말 8,070억 원으로 급격히 늘었다. 설상가상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한 금호생명과 대우건설의 매각도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의 지분 50%+1주를 산업은행에 매각하고,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의 워크아웃을 신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명예회장의 보유지분 모두를 출연해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키로 했다. 워크아웃이 채무재조정을 통해 기업을 회생시키는 절차인 만큼, 신규자금 지원, 변제기한 유예, 이자감면, 출자전환 등의 조치가 이뤄져 급한 불은 끄게 된 셈이다.

하지만 워크아웃 과정에서 또 다른 요소가 발목을 잡았다.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에 따른 자구안으로 1,377명의 인력 구조조정과 임금삭감 계획을 채권단에 제출했다. 채권단은 노조의 동의서를 요구했고, 당시 금호타이어지회 집행부가 이를 거부하면서 워크아웃 절차가 진행되지 못한 채 표류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인력 구조조정은 2009년 3분기 말 기준 전체 직원 수 3,880명 중 35%에 대해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는 계획으로, 그 중 371명을 정리해고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채권단은 금호타이어에 운영지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대주주인 박삼구 명예회장의 사재 출연과 노조의 동의서를 요구했다. 동의서의 주요 내용은 ‘채권단의 요구를 조건 없이 수용한다’는 내용과 ‘워크아웃 졸업 시까지 생산에 차질을 주는 일체의 쟁의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요구 또한 인력 구조조정을 포함한 자구안과 마찬가지로 노조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결국 금호타이어 노사가 이 같은 내용들을 놓고 합의에 이르기까지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절차는 상당기간 지연됐다. 논란이 이는 동안 178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함으로써 회사의 인력 구조조정 계획이 이후 193명을 정리해고 하고 1,006명을 아웃소싱하는 것으로 변경됐지만, 금호타이어지회는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워크아웃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2010년 2월에 조기 임·단협을 진행했던 금호타이어 노사는 결국 2달 넘는 교섭 끝에 합의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파업과 정리해고 통보, 잠정합의안 부결이라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금호타이어 노사의 합의안에는 ▲ 취업규칙과 사규 준수 개별확약서 제출을 단서로 정리해고 철회 및 해고자 원직 복직 ▲ 개별확약서 위반 시 정리해고 철회 취소 ▲ 워크아웃 기간 중 쟁의행위 중단 ▲ 광주공장 12.1%, 곡성공장 6.5% 생산량 증대 ▲ 단계적으로 597개 직무 도급화 ▲ 기본급 10% 삭감 및 워크아웃 기간 중 5% 반납 ▲ 상여금 200% 반납 등이 포함됐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인재 유지하려면 충분한 보상 필요

이미 2009년에 한 차례 임원 탄핵 파동을 겪었던 금호타이어지회는 2010년 임·단협 이후 다시 임원 탄핵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정리해고 철회와 임금 삭감을 맞바꾼 집행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임·단협 합의에 따라 연봉을 기준으로 40%에 이르는 임금이 삭감됐고, 정리해고는 철회됐지만 도급화와 희망퇴직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일터를 떠났으며, 생산량 증대에 따라 노동강도는 높아진 데 대한 불만이었다. 결국 두 번째 임원 탄핵은 가결됐다.

당시 희망퇴직을 신청한 이들 중에는 금호타이어 연구소 소속의 연구원들도 있었다. 이들 연구원 중 일부는 희망퇴직 이후 경쟁사인 넥센타이어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금호타이어로서는 당장의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희망퇴직을 실시한 것이지만, 미래의 먹을거리를 개발할 핵심인재를 경쟁사에 내준 꼴이 됐다. 금호타이어는 최근 넥센타이어로 옮긴 연구원을 다시 데려온 상태다.

이 연구원이 금호타이어를 떠나 넥센타이어로 옮긴 것은 결국 보상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보상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던 차에 워크아웃까지 신청하게 되니 더 이상 비전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호타이어가 이 연구원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는 결국 더 많은 보상을 약속해야만 했다. 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적절한 보상이 기본이라는 점을 이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워크아웃이 개시되고 그 해 임·단협에서 워크아웃 기간 중 쟁의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함에 따라, 금호타이어 노사는 그동안 무분규로 교섭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올해는 그동안의 양상과는 다를 수도 있다. 워크아웃 약정서 상에는 2014년 말로 워크아웃이 종료되는 것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교섭이 어떻게 진행될지 안팎의 시선이 금호타이어를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