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노사 담합’의 고리를 끊을 때다
이제는 ‘노사 담합’의 고리를 끊을 때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4.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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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업체·비정규직까지 껴안는 ‘연대’가 문제해결의 출발점
[작심 인터뷰 전문①]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 펴낸 박태주 박사

한국 사회에서 현대자동차의 위치는 아주 특별하고도 독특하다. 덩치로 보자면 이제 국내를 벗어나 세계 무대에서도 첫 손 경쟁을 벌이는 삼성전자가 있지만 ‘입방아 지수’로 보자면 현대자동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분명 덩치는 산만 한데 왠지 동네북 느낌이다.

품질이나 서비스 논란이야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기업 내부의 문제인 임금이나 단협 같은 것들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집중포화의 대상이 된다. 가끔은 파파라치에 쫓기는 연예인의 모양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너도 나도 현대차 전문가다. 품질은 엉망이면서 신차 내놓을 때마다 찻값만 올려댄다, 국내 소비자를 역차별한다, 소비자 주머니 쥐어짜서 내부에 다 퍼준다, 철밥통에 귀족들이 일 한다더라에 이르기까지 말 한 마디 안 보태는 사람을 찾기가 드물 지경이다. 현대차나 현대차 구성원으로서는 억울한 부분도 꽤 있을 것이다.

사실 밖에서 보는 현대차의 모습은 ‘코끼리 다리’다. 대표적인 현대차 공격의 소재인 임금만 하더라도, 생산직의 평균 임금이 올해 1억을 넘어설 것이 확실해 보인다. 고임금 맞다. 하지만 그 임금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게다가 고임금 논란의 이면에는 생산직 노동자의 육체 노동에 대한 멸시라는 고약한 정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오해와 편견’이라며 넘겨버릴 수는 없다. 실제로 문제가 있는 부분도 꽤 있고,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문제도 많다. ‘만만한 현대차’는 한국 사회에서 결코 만만하지 않은 존재감을 지닌다. 수없이 많은 기업과 노동자들이 현대차와 연관되어 있다. 이들은 현대차의 선택과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고용, 노동의 분야는 현대차가 한국 사회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진짜 현대자동차 전문가이자 노사관계 전문가인 박태주 박사를 만났다. 박태주 박사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노동경제학을 전공했다. 박사 학위는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받았다. 산업연구원 시절 정부출연연구기관 최초로 노조 결성을 주도했고, 이후 전국전문기술노조연맹 위원장을 지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청와대 노동개혁TF팀장을 지냈다. 그리고 2004년 현대자동차의 의뢰를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노사정을 두루 거친 경력이다. 현재는 고용노동연수원(옛 한국노동교육원)에 적을 두고 있다.

박태주 박사는 2004년 처음 현대차 연구에 참여한 이래 2006년부터 주간연속2교대제 실현을 위한 노사전문위원회, 2011년부터 노사자문위원회 대표를 지냈다. 노사 합의에 의해 초빙한 전문가로 현장을 두루 살펴본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매일노동뉴스)는 책을 냈다.

박태주 박사의 표현을 빌자면 ‘한국에 있으면 현대차에도 있다. 그것이 최소한 노사관계의 문제라면 그렇다.’ 그리고 회사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아무리 현대차 노조가 세다고 한들 노사관계에서 회사가 강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책임을 느끼고 노사관계 변화를 주도하라고 주문했다. 노조에 대해서는 사회적 연대를 강조했다. ‘전투적 경제주의’를 버리라고 했다.

박태주 박사는 자신의 책이, 그리고 주장들이 ‘현대차 노사에 갖고 있는 애정의 표현이자, 현대차에 드리는 헌사(獻辭)’라고 설명했다. 애정 표현이자 헌사 치고는 꽤 독하고 맵다. 현대차 노사관계의 본질은 ‘담합’으로 규정했다. ‘파업 과정에서는 높은 임금과 연대의 포기를 교환했으며, 비정규직은 고용안정과 유연성을 교환한 결과’라는 것이다.

박태주 박사 책과 관련해 인터뷰 전에 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다. 주요 현장조직 정책통으로 불리는 이들과는 거의 다 이야기를 나눴고, 회사측 반응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했다. 각양각색의 반응이었지만 대체로 현대차 이야기가 담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우려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공은 이미 던져졌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어떻게 받을 것인가에 있다. 모난 돌이 되지 않기 위해 적당히 덮어두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적어도 박태주 박사의 책이, 그리고 이 글이 치열한 논쟁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언제건, 어떤 의견이건 환영한다.

인터뷰는 4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3시간이 넘어서자 ‘진을 다 빼 놓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시종일관 정열적으로, 또 때로는 ‘전투적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사실 인터뷰는 전반전이었다. 바로 이어진 술자리는 6시간 동안이나 계속됐다. (골뱅이 하나 시켜놓고 6시간 동안 꼼짝 않고 앉아서 진행된 ‘후반전’ 탓에 매출에 지장을 받았을 가게 주인장께는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다만 ‘후반전’에 나온 얘기들은 담아두기로 한다. 인터뷰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최대한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현대차 노사관계 변화의 발화점 되기를

27년에 걸친 현대차 노사의 ‘계급 전쟁’은 양측이 패배한 싸움이었다. 서로가 ‘지는 전쟁’, ‘지기 위한 전쟁’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13p)

현대차 노사관계의 본질은 담합이다. 파업 과정에서는 높은 임금과 연대의 포기를 교환했으며, 비정규직은 고용안정과 유연성을 교환한 결과였다. … 노사갈등은 담합을 위한 과정이었거나 담합을 포장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현대차 노사관계는 ‘갈등적 담합관계’에 해당된다. (16p)


- 책 내용이 상당히 셉니다. 표현의 강도도 그렇구요. 더구나 노사 양측을 모두 겨냥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노사 양측을 향해 ‘엿 먹으라’는 의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가장 먼저 대체 왜 이 시점에, 왜 이 책인가에 대한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현대자동차 연구를 시작한 지 정확히 10년 됐습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풍향계라고 할 수 있는 현대차를 10년 동안 보면서 이제 한 번은 정리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간결산이라고 그럴까. 어떻게 보면 저만큼 현대차 노사관계를 오래 들여다 본 사람도 없고, 또 저만큼 깊이 들어가 본 사람도 없으니 저라도 한번은 정리해야겠다고 느낀 거죠. 책에서도 강조했지만 저는 현대차 노사관계가 바뀌기를 원했어요.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바꿔야 한다면 현대차가 바뀌는 것이 발화점이, 촉매가 될 수 있겠다고 봤습니다. 내가 바라본 현대차, 내가 들어가 있으면서 느낀 현대차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래서 하나의 논쟁을 위한 디딤돌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는 물개박수를 쳐달란 얘기는 아닙니다. (웃음)

현재 현대차 노사관계에 대해서는 사 뿐만 아니라 노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봅니다. 현대차 노사관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등잔 밑’일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박태주라는 거울을 통해서 스스로의 모습을 비춰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박태주라는 거울이 그렇게 질이 나쁜, 수준 이하의 거울은 아닐 겁니다. 그러니 박태주라는 거울에 비치는 모습들을 문제제기 형태로 한 번 확인하자는 겁니다. 얼굴이 삐뚤게 나온다면 얼굴 자체가 삐뚤어진 것일 수도 있고, 거울이 삐뚤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까지도 토론하고 논쟁 해보자는 겁니다. 노나 사나 모두. 이제는 현대차 노사관계의 변화를 위한 문제제기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생각했습니다.

표현이 굉장히 세다고 했는데 제 말투가 좀 그렇습니다. 굳이 둘러대고 표현을 ‘마사지’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다. 오히려 현장성을 살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Why I Write)>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서 오웰이 ‘사회의 변화를 욕망하는 글은 다 정치적이다’ 라는 표현을 써요. 그리고 오웰은 ‘정치적인 글의 예술화’ 라는 표현도 씁니다. 정치적인 글을 쓰더라도 좀 예술적으로 쓰고 싶다는 얘기거든요. 저는 그렇게 거창한 말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회과학이라는 것 역시 사회의 변화를 욕망하는 학문이고, 사회 변화는 기본적으로 대중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면 저는 글이 대중적이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사회과학적인 글의 대중성’이랄까. 사실 사회과학의 대중성이라는 표현은 형용모순이긴 합니다. 사회과학이라는 전문성과 일반 사람들의 가독성이라는 것 자체가 모순되죠. 저는 이 책을 쓰면서 표현이 세다, 안 세다가 아니라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 신경을 썼습니다. 일반 사람들, 물론 이 일반 사람들이 대부분 노사관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그 사람들이 이해하는 글을 한 번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표현이 촌스럽다거나 거칠다든지 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 당사자들인 현대자동차 노사 양측의 반응도 거칠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앞두고 두루 확인해 본 노사 양측의 반응은 ‘다소 직선적이기는 하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라며 책의 내용에 동의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알 만한 분이 서운하다’에서부터 ‘등에 칼을 꽂았다’는 격렬한 반응까지 존재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오랜 기간 현대자동차 노사의 의뢰를 받아 연구와 자문 활동을 해 오신 분’으로서 현대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신중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인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대차 노사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2004년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제일 큰 목표는 현대차 노사관계를 분석해 봐야겠다는 거였습니다. 현대차 노사관계가 개별기업의 노사관계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요한 사회적 관계이기도 합니다. 개별기업의 노사관계가 되기에는 현대차나 현대차 노조가 우리 사회에서 갖고 있는 영향이 너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이 의제를 사회화시키는 것도 변화를 위한 또 하나의 우회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목을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라고 정한 것도 개별기업의 문제를 뛰어넘어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는 의미를 담은 겁니다.

현대차 노사관계는 담합적인 관계입니다. 담합이라는 용어 자체가 현대차 노사관계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돼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담합이라는 것은 흔히 말하는 ‘갑질’입니다. 재벌 노사가 ‘을들’을 상대로 벌이는. 이거 또 표현이 거칠어집니다. (웃음) 담합이라는 것은 노사 간의 담합인데 이 문제를 노사가 자율적으로 풀만한 여건이 되어 있는가 하는 거죠. 앞서 사회화라는 표현을 썼는데, 외부의 어떤 자극이 변화를 위한 방아쇠로 필요할 수 있겠다고 봤습니다.

▲ 사진은 인터뷰 특정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모두들 울산만 쳐다보는 현실

현대차는 한국 노사관계가 안고 있는 모순의 집적지이자 그 중심이다. 한마디로 한국 노사관계의 각종 문제가 고스란히 원형(原形)을 간직하고 있는 노동운동 생태계의 보고(寶庫)다. (10p)

- 현대자동차는 한국 사회의 노사관계에 있어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린 듯 싶습니다. 현대차 노사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노동계와 재계를 대표하는 대리전을 치른다고들 합니다. 이러다보니 노사 양측 모두 자신들의 의지와는 다른 선택을 할 때도 있다고 토로합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요?

현대차 노사관계가 우리나라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거죠. 지금 통상임금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울산만 쳐다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습니까. 통상임금이 아니라도 노동시간 단축도 마찬가지고 하다못해 임투까지도 현대차가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그러니까 대리전이라는 것은 현대차 노사관계가 사회적 관계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말이라고 봐야하지 않겠어요.

- 지난 3월 24일 신차 발표회장에서 현대자동차 김충호 사장은 ‘안티 현대차’ 분위기에 대한 질문에 “현대차가 매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노사문제가 주요인”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차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누수 문제와 연비 과장 등 품질과 신뢰도에 대한 불만과 어우러져 모델 변경 때마다 오르는 차량 가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른바 ‘안티 현대차’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노사관계 이외의 지점까지 건드리기에는 제 자신이 전문가도 아니고 논의의 폭도 너무 넓어질 것 같습니다. 이건 이야기 합시다. 마침 이 글이 ‘안티 현대차’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하지 않겠나 라는 우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제가 현대차 노사에 갖고 있는 애정의 표현이자, 현대차에 드리는 헌사(獻辭)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독하게도 현대차 노사관계의 변화를 바랐던, 그런 비원(悲願)을 담았달까.

제가 아까 문제제기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간 노사관계 담론은 언론이 주도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은 노조가 문제가 많다고 접근했습니다. 언론이 주도하는 담론은 건강하지도 못할뿐더러 사실에 입각한 담론도 아니라고 봤습니다. 언론 자체가 더 큰 ‘갑’의 또 다른 ‘을’일 수도 있겠고. 문제는 이것이 도움이 되는가라는 건데, 저는 도움 안 된다고 봤습니다. 현대차 노사관계를 봤을 때, 어느 일방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관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저는 노사의 변화를 위해서는 사측의 변화가 선행해야 한다, 사측이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사측이 강하기 때문이죠. 대부분은 그렇게 안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조가 바뀌어야 하지 사측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화두일 수 있습니다.

유연해서 불안한 임금 구조

현대차 노동자들이 높은 임금을 받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들이 현대차에 입사했다는 사실이다. (40p)

- 우선 임금 얘기부터 해볼까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은 ‘배부른 노동자’ ‘귀족노조’라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고임금에 대한 부분이 많습니다. 책에서는 현대자동차가 금융감독원에 보고한 사업보고서 공시금액에 따르면 직원 평균 연봉이 9,400만원이라고 했는데 올해 임단협을 위한 기초자료를 보니 기술직(생산직)이 9,944만원이더군요. 거의 1억원에 근접했습니다.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 보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그만큼 받으면 안 되는 걸까요?

많이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저는 불만이 없습니다. 잘 나가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서 많이 받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현대차가 1억 가까운 돈을 준다고 경영에 심각한 부담을 느낀다는 얘기도 들어 본 적 없지 않습니까. 충분히 줄 수 있다는 거죠. 더 줘도 좋습니다. 다만 제가 질문을 던졌던 것은, 거기에는 당신들만 열심히 일한 것이 아니라 하청업체 노동자들, 협력업체 노동자들, 같은 금속노조 조합원인 사람들의 피땀과 한숨도 녹아있다는 겁니다. 물론 소비자의 부담도 포함되겠지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사람들의 피땀과 고통과 한숨도 당신들의 임금에 녹아들어가 있다, 하는 사실을 인정해 달라는 얘깁니다.

현대차의 임금구성에서 변동급 비중은 끊임없이 높아졌다. 2000년 통상임금이 임금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3.8%였으나 2011년에는 27.7%로 줄었다. (36p)

- 현대자동차의 임금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계십니다. ‘유연해서 불안한’ 구조라고 표현했는데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어떤 기자가 인터뷰를 와서 “현대차 임금이 높지 않습니까?” 묻더군요. 제가 되물었어요. “그래서 회사가 허리가 휘청한다 그럽디까?” 그 다음 질문이 뭐냐하면 “자동차산업은 롤러코스터 탄다고 해도 좋을 만큼 경기변동이 두드러지는 산업인데 앞으로 경기가 나빠졌을 때 현대차의 임금은 회사에 부담이 되지 않겠습니까?”였어요. 그래서 “그런 것까지 당신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현대차 임금이 어떤 구조냐를 보면 됩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현대차 임금은 통상임금, 시간외 수당, 상여금, 성과급이 거의 1/4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경기가 나빠지면 우선 잔업과 특근, 즉 시간외 근무수당인 1/4이 날아갑니다. 그리고 성과급이 대충 1/4인데 사정이 나빠지면 100% 다 받기는 어렵지 않겠어요. 진짜로 나빠진다면 성과급 전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임금교섭 할 때도 성과급에 대해 노조는 전부를 추가적으로 획득한 부분으로 하지 얼마가 올랐다고 하지 않거든요. 다시 말해서 언제든지 날아갈 수 있는 임금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현대차 임금구조가 유연하고 불안하다고 했던 겁니다. 현대차는 전반적으로 노동의 유연성이 없는 회사입니다. 그래도 임금만큼은 굉장히 유연해요. 이것을 회사에서 보면 유연하다고 표현할 수 있고, 노조 입장에서 보면 임금구조 자체가 불안하게 구성돼 있는 겁니다. 그래서 경기변동에 노동자들은 굉장히 민감합니다.

경쟁력은 생산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현대차의 경우 높은 임금이 높은 생산성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발견되지 않는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높은 임금은 회사는 물론 노조로서도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지속가능성이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회사는 노동절약적인 생산방식이나 외주화, 또는 비정규직의 활용을 통해 인건비 절감을 추진할 것이다. 노조로서는 고용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39p)

- 낮은 생산성과 파업친화적인 임금교섭이 문제라는 지적도 하셨습니다. 파업 관련 부분은 뒤에 다시 거론하기로 하고, 우선 생산성 문제를 한 번 살펴볼까요? 2012년을 기준으로 국내공장의 편성효율이 53% 수준인데 비해 해외공장은 90% 안팎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그런데 현대차는 해마다 물량 목표를 설정하는데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해는 거의 없었습니다. 물량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셨는데, 그게 가능한 것은 ‘잘 나가기’ 때문 아닌가요? 그렇다면 생산성이 낮다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생산성과 경쟁력을 직선적으로 등치시킬 것은 아닙니다. 경쟁력이라는 것은 임금 이외의 부분들이 개입되는 겁니다. 지금 현대차가 잘 나간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말이에요. 경쟁력이 생산성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R&D, 디자인, 생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의 총합으로서 성과를 나타내는 부분이거든요. 생산성은 생산의 한 파트일 뿐이죠. 그래서 생산성이 이렇게 낮은데도 경쟁력은 높다는 것은 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현대차가 왜 잘 나갈까. 생산 외적인 요소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이 좋다, 엔지니어링이 좋다, 마케팅 기법이 창의적이고 설득력이 있더라, 하는 요소일 수 있습니다. 운도 작용했겠죠. 어떤 임원은 언론에다 대고 회장님의 손은 마이다스의 손이라고 했다가 열나게 깨졌다고 합디다만(웃음). 국내 시장 자체가 누가 뭐래도 독과점 구조라는 것도 현대차 수익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제가 노동조합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리고 노사관계를 보면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거기에 CR(Cost Reduction)로 대표되는 불합리한 원하청 구조가 작동했을 거라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통도 현대차의 성장에 일조를 했을 거라고 보고 있거든요. 그래서 ‘회사가 잘나가는데 생산성이 낮다는 것은 어폐(語弊)가 있지 않느냐’고 하시면 경쟁력이 생산성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 그런데도 임금이 높고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경쟁력이 없다는 지적은 계속 나오는데 이런 질문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현대자동차의 2013년 순이익 9조원 중 국내공장은 5조2천억원으로 57.8%를 차지했습니다. 미국, 인도, 체코, 러시아공장을 포함한 현대자동차가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종속기업’의 순이익은 2조2천억원(24.4%), 중국공장, 기아자동차, 다이모스, 위아 등 현대자동차가 지분 20~50%를 보유하고 있는 ‘관계기업’은 1조6천원(17.8%)이었습니다. 이 내용을 놓고 보자면 국내공장이 경쟁력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국내시장은 독과점 시장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생산구조에서 나타난 특성이라기보다는 시장구조에서 나타나는 특성이 거기에 반영돼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사진은 인터뷰 특정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고임금은 연대 단절의 대가 

가치사슬의 고리로 연결돼 부가가치는 하청에서 원청으로 이동하지만 성장의 열매가 원청에서 하청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 낙수효과는커녕 현대차 노사가 다른 사람의 노동을 가로챈다는 혐의를 자아낸다. (44p)

현대차에서 높은 임금은 다른 노동자들의 희생을 포함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가 추구해 온 노동운동의 이념이 사실상 실리 이외에는 없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노동운동에서 이념의 부재는 연대의 상실로 나타났다. (45p)

- 원하청 불공정거래나 사내하청을 포함한 비정규직 문제 등은 현대자동차의 오래된 이슈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와 고임금이 연결된다고 보시는 겁니까?

의도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차 노조가 연대를 포기한 대가로 고임금을 획득한 것은 아닌가 하는 혐의가 있을 수 있겠죠. 이 부분은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박사의 표현을 빈 것인데 저도 동의합니다. 회사로서는 현대차 노동자에게 돈 많이 주는 것이 비용이라는 측면에서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차 노조가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들과 연대해서 전체임금을 올리려고 들면 회사는 더 피곤해지는 거죠. 임금격차를 벌려 연대의 고리를 끊어 버리는 것이 싸게 먹힌다는 얘기죠. 그래서 조성재 박사는 이를 ‘소수를 포섭하면서 다수를 배제하는 전략’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이 역시 결과상 담합이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연대를 포기한 대가로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이죠. 고임금의 내면에는 협력업체․하청들의 피와 땀이 녹아있을 뿐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연대를 단절한 대가일 수 있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회사에도 남고 정규직 노조로서도 도움이 되는, 하지만 그 희생은 제3자에게 전가시키는 담합일 수 있겠다, 라고 얘기하는 거죠.

현대차 노동자의 임금극대화전략은 따지고 보면 돈에서 삶의 존재이유를 찾는 삶의 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돈에 대한 욕망이 현대차 노동자에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면 이들에게 마냥 돌을 던질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50p)

-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임금에 목을 매는 이유에 대해 ‘돈에서 삶의 존재이유를 찾는 삶의 한 과정’이라고 분석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현대차 노동조합만의 문제로 이해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현대차 노동조합이 우리나라 노동운동에서 차지하는 리더라는 역할 때문에 조금 더 욕을 많이 먹는 건 어쩔 수 없겠지요. 우리나라 노동계 전체가 실리주의, 경제적 조합주의라는 일종의 적폐(積弊)에 빠져 있거든요. 우리는 저승에 가기 위해서도 노잣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살아서는 말할 것도 없고 돈이 없으면 죽어서도 저승에 못 간다는 것은 돈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고 그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제가 묻고 싶은 것은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지금이야 잘나가니까 좋단 말이죠. 그런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돈을 밝히는 실리주의가 자칫하면 ‘실리조차도 못 챙기는 실리주의’로 나타날 가능성, 속 빈 강정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거든요. 임금도 높고 고용도 보장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구조는 아니라는 얘기죠. 연대도 필요하고, 노동조합이 생산성과 경쟁력 개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다, 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죠.

장기적으로 노동조합이 추구하는 가장 대표적인 가치는 누가 뭐래도 고용안정입니다. 그 다음이 임금이겠죠. 만일 임금이 고용안정에 역효과를 낼 것 같다면 당연히 고용안정이라는 가치가 우선으로 나서야 하고 나설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현대차도 98년에 당했고, 쌍용차 사례도 있었습니다. 외국에는 GM을 비롯한 미국 빅3가, 그리고 폭스바겐에서 도요타까지 휘청휘청하는 걸 봤어요. 고용안정에 대해 굉장히 많은 안전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산업의 경쟁구조가 그만큼 치열하다는 겁니다. 제도가 시장을 이길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시장 그 자체가 ‘악마의 맷돌’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맷돌은 하늘과 땅을 맞붙여 세상을 갈아버립니다. 시장은 그만큼 잔인합니다.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면 자비가 없다는 얘기죠. 그래서 악마의 맷돌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런 일을 우리도 상정해야 합니다. 우리도 당할 수 있어요. 그러면 회사가 시장을 거스르면서까지 고용을 보장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또 그렇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회사는 제도가 시장을 못 이기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시장의 흐름에 동승하려 들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다 알고 있잖습니까. 시장상황이 나빠지면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경쟁력이라는 게 생산성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유연성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고용안정이 중요하지 임금은 덜 중요한 겁니다. 장기적으로 경쟁력이라는 아젠다를 노동조합도 수용하는 것이 노조로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고용안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임금에도 도움이 되겠죠. 우선 빼먹기는 곶감이 답니다. 나는 몇 년 있다가 퇴직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돈 많이 받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후배들, 또 우리 사회가 현대차에 의존하는 부분이 크다고 한다면 이것은 달리 생각할 지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보는 거죠.

이중임금제는 실패한 모델

- 현대자동차 기술직의 경우 40~50대가 전체의 84% 가까이 되고, 10년 내에 정년퇴직하는 조합원 수가 13,796명입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녀의 취업과 결혼 등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퇴직이 10년도 안 남았는데 돈 외의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과연 이들에게 연대임금을 비롯한 사회적 연대라는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먹혀 들겠느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현대차만 고령화 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현장, 노동시장 자체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현장의 불안은 두 가지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가 자녀문제라면 다른 하나는 노후문제예요. 은퇴 후 20년, 30년을 소득 없이 살아야 되는데 살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는 현대차 조합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리고 조합원들이 실제로 ‘현대차가 지금 꼴아 박는다 한들 최소한 내가 있는 동안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할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고용안정이 아니라 임금이 최고의 가치인 것이 당연해요.

그러면 노동조합 간부까지 편승해가지고 ‘그래 네 말이 맞아’ 하면서 포퓰리즘으로 가야하는 건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노동운동이 실리로 기운 데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만큼 개인화 됐습니다. 그런데 노조 간부들이 그걸 인정해 버린다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죠. 노조 간부로서는 당연히 문제제기 해야 하는 거죠.

- 회사측에서는 올해 임단협에서 ‘이중임금제’외 ‘임금피크제’를 제시했습니다. 그 근거로 2013년 입사한 1,639명의 평균 연봉 총액이 63,032,000원이라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물론 앞서 지적하신대로 이 금액 역시 변동급의 비중이 높습니다. 통상임금은 20,132,520원으로 31.9%인 것이 비해 일시금을 포함한 성과급이 19,037,880원(30.2%), 연장근로 수당이 5,821,116원(9.2%)입니다. UAW가 2008년 미국 빅3 파산 이후 기존 조합원의 임금은 그대로 두고 신입사원 초임 대폭 삭감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폭스바겐도 2000년대 중반 주 28.8시간이던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늘리면서 신규 인원에 대해서는 임금 보전을 하지 않는 방식의 이중임금제를 도입했습니다. 회사가 제시하고 있는 이중임금제와 임금피크제가 고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앞에서 질문하실 때도 느꼈습니다만 저보다 자료가 더 많습니다. 자료 구하는 비법을 저한테도 좀 알려주시죠(웃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자료를 못 구했습니다. 회사에 요청했다가 망신만 당하고. 할 수 없어 옛날 통계를 썼습니다. 그렇다고 논리가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만. 다시 질문으로 들어가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없습니다. GM과 폭스바겐이 도입했으니 현대차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당연히 사측은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거라 봅니다. 그런데 그 전에 이중임금제를 시행해 본 곳이 있거든요. 이명박 정부 때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을 펴면서 공기업들에 이중임금제를 강요하면서 초임을 동결하거나 삭감했습니다. 그게 어떤 결과로 나타났습니까. 양대노총 공공부문 공대위가 그 문제 때문에 결성됐고 초임 삭감 제도도 결국 폐지됐습니다. 안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겁니다.

왜 안됐는가. 독일이나 미국에는 연공임금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연공에 따른 격차를 인정 합니다. 능력이나 직무에서 아무 차이가 없어도 1년 먼저 들어왔기 때문에 그만큼 더 주는 것에 동의해 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신입사원들은 1년 늦었다는 이유로 초임 삭감되고, 그뿐입니까, 연공급 체계에서 1년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평생 손해 보고 사는 거니까 도저히 못 받아들입니다. 결국 노동자 내부의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위화감을 형성하는 주범이 됩니다. 사측으로서도 굉장히 피곤해져 버립니다. 이중임금제는 우리나라 임금체계 내에서 수용하기 힘들고,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연장형이라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상식적으로 노동자들이 임금에 목 매달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가 동의 안 해주면 정년 때까지 다 받는데 그냥 임금피크제 하자고 하면 수용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62세까지 정년을 늘릴테니 58세부터 임금을 줄여가자는 식은 가능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라면 논의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노조도 단기주의에 갇혔다

집행부가 ‘민주노조’이든 ‘실리노조’이든 별반 차이가 없다. 설사 민주노조가 보다 전투적으로 임금인상을 추구했다고 해도 그 인상 폭에서 의미 있는 차이를 얻어낸 것도 아니었다. 집행부의 성격이 어떻든 ‘협소하고 낡은 실리주의’의 테두리 내에서 개별화․탈이념화된 조합원의 바람을 실현한다는 점에서는 매일반이었다. (48p)

재벌기업에서 돈과 타협해 버린 노조는 더 이상 시대와 불화하지도, 세상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런 점에서 현대차 노조는 더 이상 불온(不穩)하지도, 위태롭지도 않다. 현대차 노조의 패배는 바로 이 성공의 정점에서 시작된다. … 현대차의 임금투쟁은 패배한 노동운동의 상징이다. (52p)


- ‘현대차 노조가 임금투쟁에서 승리하는 순간 패배하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선출직 노동조합 집행부의 입장에서 조합원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어떤 현장조직이라 할지라도 임금투쟁에 적극적이지 않고서는 다음 선거를 기약할 수 없는, 즉 아예 집행의 기회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선택이 가능한 걸까요?

저는 현대차 노조일 때부터 금속노조 지부로 바뀐 후까지 여러 위원장, 지부장들을 상대했습니다. 지금이, 그러니까, 일곱 번째 집행부입니다. 징그럽죠. 그런데 안 쫓겨난 것 보면 대단한 사기를 쳤다는 거겠죠. (폭소) 좌파부터 실리주의 집행부까지 현대차 내부의 여러 스펙트럼을 두루 경험 했습니다. 어떤 지부장이 선출된 직후 둘이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지부장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했어요. “다음에 출마하지 맙시다.” 뜬금없는 얘기죠. 어제 당선된 사람한테 오늘 만나 이번만 하고 끝내라고 했으니, 이건 뭐 저주도 아니고 진짜 엿 먹이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럽니까?” 합디다. 그래서 두 가지 이유를 댔어요. 첫째는 현대차 노조 어느 집행부도 연속으로 집행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당신도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어요.

그것보다도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겁니다. 실제로 어떤 위원장이나 지부장도 노동운동가로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고 문제의식도 갖고 있어요. 이야기를 해보면 진짜로 건전해요, 모두. 그런데 막상 집행해 보면 아무 것도 안 돼. 왜 안 되는가. 조합원의 표를 의식하는 집행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운동은 운동대로 죽도 밥도 안 되고, 결과적으로는 떨어지는 거죠. 그래서 둘 중에 하나는 포기하라고 한 겁니다. 노조 집행부는 당선되는 그 날부터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겁니다. 노조도 정치운동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출마하지 말고, 진짜 당신이 노동운동가로서 생각해 왔던 문제들, 예를 들어 주간연속 2교대제는 어떻게 하고 비정규직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해외공장, 그리고 산별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를 운동의 관점에서 접근 해보자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선거에서 분명히 떨어질 겁니다. 그렇게 안 해도 떨어질 거잖아요. 두 번 연속 집행한 선례가 없는데. 그렇다면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 쉬면 오히려 기회가 온다고 생각하라 그랬어요.

회사만 단기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노조도 굉장히 좁은 시야 속에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단기주의의 포로입니다. 불신임 받아서 쫓겨날 정도만 아니라면 조금 더 길게 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는 겁니다. 현대차 노조의 집행부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 노동계의 리더입니다. 리더에 걸맞게 운동 좀 하자는 겁니다. 조합원을 무시하라는 게 아니라. 주간연속2교대제를 볼까요? 노조에서 내세웠던 3무 원칙(실질임금 삭감 없는, 노동강도 강화 없는, 고용불안 없는)을 실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알면서도 요구하고, 결국 시행이 늦춰지는 겁니다. 3무 원칙을 지킨다는 공약이 부메랑이 돼서 한 집행부는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 당시 집행부가 3무 원칙을 포기했더라면 주간연속2교대제를 좀 더 일찍 도입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아마 처음에는 욕 먹었을 겁니다. 당연히 반대가 나올 거고 ‘노조 팔아먹었다’는 소리까지 들었겠죠. 그리고 선거에서 떨어질 겁니다. 그런데 시행 1년, 아니 6개월만 지나면 그것이 가진 엄청난 장점이나 메리트가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지금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되면서 회사는 돈 벌고 노동조합과 조합원들도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현장에서 전임 집행부를 다시 평가하는 거죠. 이렇게 해서 다음 선거에 다시 나설 수 있는 겁니다.

갈등이라는 터널 통과해야 담합 이루어지는 ‘갈등적 담합’

파업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경제적인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이는 파업타결 격려금 등 다양한 명목으로 상당 부분 상쇄된다. … 파업 이후 잔업과 특근에 따르는 할증금 역시 임금소득 증대로 이어진다. 임금인상은 덤으로 따른다. 파업하면 돈 버는 구조가 항상적이고 구조적이라면 현실적으로 파업을 막을 방도는 없다. (70p)

파업이 노사관계에서 정상적인 관행이 됨으로써 현대차의 고유한 풍토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 현대차가 임금교섭에서 택한 전략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속한다. 임금인상을 막지도 못한 채 돈을 주고 파업을 샀지만 결과적으로 산업평화조차 달성하지 못했다. (71p)


- 파업은 어느새 현대자동차 노사관계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2003년~2012년까지 우리나라 전체 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일수의 28.3%가 현대․기아차 노조의 파업입니다. ‘회사가 파업손실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올려주면서까지 노조의 파업을 구매’한다고 하셨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이 통계 28.3%에는 현대자동차가 파업하지 않은 4년도 포함돼 있습니다. 2009년~2011년 3년간은 파업이 전혀 없었고, 2007년에는 연초 성과급 투쟁만 있었어요. 사실상 4년 동안 파업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현대차가 차지하는 파업의 비중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안정 됐나 안 됐는가는 현대차가 파업 했는가 안 했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겁니다.

파업한다고 해서 물량보전이 안 된 적이 있습니까. 파업이 끝나고 나면 잔업, 특근 해서 물량을 다 맞춰 줬어요. 그러면 노조가 파업한다고 해도 회사는 별로 겁을 안 먹어야 해요. 노조로서도 그렇게 욕을 얻어먹어 가면서까지 파업을 해봤자 별로 효과가 없다면 파업을 안 하는 게 상식이죠. 그런데 노조는 해마다 파업을 하잖습니까. 몇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어요.

노조로서는 파업을 해보니까 돈이 되더라는 거예요. 파업을 하면 할수록 사측이 제시하는 임금인상 폭이 높아져요. 파업하기를 기다렸다가 임금인상안을 제시한다는 느낌이 들죠. 그 뿐입니까. 명목상으로는 무노동 무임금이라고 하지만 각종 격려금이니 장려금이니 하는 기상천외한 작명을 해서 보전해 줍니다. 오죽 했으면 제가 이름이라도 좀 폼 나게 지어서 돈을 주라고 했겠어요. 거기다 물량 맞추기 위해 잔업, 특근 하면 그만큼 시간외 근무수당을 많이 받게 됩니다. 어쨌거나 노조는 돈 되는 파업이니까 파업을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면 회사는 왜 돈 되는 파업을 만들어 주는가. 현대차 조합원을 만나보면 올해 임금이 얼마나 오를 것이라고 감을 대충 잡고 있습니다. 그럼 회사는 모를 것인가. 굳이 컴퓨터 프로그램 돌려봐야 아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사측이 처음부터 ‘올해는 10만원 올려주겠다’ 이 말을 못하는 분위기라는 겁니다. 임금교섭 목표를 세우면서 윗선에 보고를 ‘올해는 무분규로 임금동결 하겠습니다’ 하는 겁니다. 임금은 올려줄 수밖에 없고 어느 정도 올려줘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데 올려주자고 보고할 명분이 없으니까 노조의 파업이 필요해지는 겁니다. ‘노조가 파업해서 미치겠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이런 식으로 사측이 면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파업을 활용한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가설은 사측이 파업을 관리하는 능력이 없다고 봅니다. 좀 건방지게 들릴 수 있겠습니다만 전문가가 없다는 거죠. 게다가 파업을 해야 노무관리자가 붙어날 수 있다면 이는 지독한 역설이죠.

거기에 노조로서는 한편으로는 돈 되는 파업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합원들에게 ‘열심히 투쟁했다. 우리가 따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다’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파업을 해야만 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투쟁=민주라는 등식이 성립되면서 투쟁을 못하는 집행부가 되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조합원들에게 호소하기 위한 일종의 플래카드로서 파업을 내거는 겁니다.

의사(疑似)전투주의, ‘짝퉁’전투주의인 겁니다. 본질은 담합이라는 것에 있어요. 그런데 갈등이라는 터널을 통과해야만 담합이 이뤄지는, 그러니까 갈등적 담합인 겁니다. 회사로서는 돈 풀어 파업을 구매하면서도 파업은 파업대로 다 하는 참 엉터리 같은 행태가 해마다 되풀이 되는 겁니다. 이 외에 다른 요인이 있다면 토론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노조를 인정하는 데서 변화가 시작된다

노조를 믿는 것도 아니지만 회사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기댈 것이라고는 노조밖에 없으며 그 수단은 투쟁밖에 없다고 믿는다. 결국은 투쟁이 고용을 지켜준다고 믿고 노조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것이다. (69P)

현대차에서 노조의 강경투쟁을 끄집어내는 것은 사측의 노동배제적 노무관리정책과 단기성과주의에 바탕을 둔 물량중심주의다. 전자가 파업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면 후자는 노조에게 파업하면 이긴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여기에다 회사의 교섭 및 파업전략의 부재가 파업을 부추기는 데 한몫을 한다. (79P)


- 많은 노동조합들은 ‘파업 투쟁’을 마지막 카드로 생각하고 부담감을 가집니다. 그런데 현대차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해마다 노무관리의 최우선 순위를 ‘무파업’에 두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그 원인제공자가 사측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2007년에 사실상 파업이 없었습니다. (현대차가 2006년 말 그해 생산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성과급 50%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007년 1월 3일 시무식에서 회사 경비대와 노조 간부가 물리적 충돌을 빚으면서 파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노사는 2006년 생산목표 미달대수를 2007년 1월 중에 만회하고, 회사는 그 시점에 미지급 성과급 50%를 지급하기로 합의하면서 1월 18일 갈등을 봉합했다. 결국 연초 짧은 기간 성과급을 둘러싼 파업이 있었지만 그해 임단협은 무파업으로 지나갔다. 성과급 투쟁을 이끌었던 민노회 박유기 집행부는 투쟁 이후 사퇴했고, 보궐선거를 통해 민투위 이상욱 집행부가 들어섰다.)

이른바 가장 강성이라는 민투위 집행부였는데 파업이 없었습니다. 왜 없었을까. 그해 임금교섭에서 사측이 처음부터 동결로 시작한 게 아니라 줄 만큼 주는 걸로 시작했습니다. 회사 내부에서도 만약 노조가 안 받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브레이크가 많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집행부가 받았어요. 파업 없이 교섭이 타결됐습니다. 역으로 얘기하면 민투위 집행부니까 파업 안 할 수 있었어요. 노조가 약하면 어용도 못합니다. 강한 노조였기 때문에, 그리고 노사의 교섭전략이 예전과 달랐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때 노조가 받아주면 교섭이 시작되는데 안 받으면 회사는 뒤통수 맞는 거였어요. 처음부터 줄만큼 제시했는데 파업 하면 뒤통수 맞는 거죠. 그런데 봅시다. 회사가 강자입니다. 설사 뒤통수 맞아도 회사는 충격이 적습니다. 덜 아픕니다. 그러니까 회사가 양보하라는 겁니다. 언론에서는 현대차 노조가 힘이 세다고 하는데, 사실 노사관계에서 노조는 약자입니다. 힘도 없는 노조가 먼저 양보 했다가 뒤통수라도 맞으면 뇌진탕으로 쓰러집니다. 그래서 노조가 먼저 양보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또 회사는 관료조직이기 때문에 명령이 통하는 조직입니다. 노조는 지부장 혼자 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이 책 전체에서 하고 싶은 말을 딱 한마디로 하자면 회사가 노조를 인정하라는 겁니다. 거칠게 얘기하면 노사관계에는 신뢰라는 게 없습니다. 노사관계가 같은 배를 탄 운명공동체다? 내 이익을 위해,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 서로 손 잡는 것뿐입니다. 단체교섭이라는 것 자체도 타협의 과정이잖아요. 노사관계는 이해를 달리하는 그야말로 계급 간의 세력다툼이고 계급 전쟁이거든요. 그런데 회사는 노조가 뒤통수를 칠 경우 보복능력이 있기 때문에, 즉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응징할 힘이 있기 때문에 회사가 먼저 손을 내밀라는 겁니다. 

[작심 인터뷰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