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사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
현대차 노사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4.08.0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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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업체·비정규직까지 껴안는 ‘연대’가 문제해결의 출발점
[작심 인터뷰 전문②]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 펴낸 박태주 박사

[작심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숙련과 노동에 덜 의존하는 생산구조

회사와 노조․조합원 사이에 일종의 저숙련 동맹이 맺어진다. … 실제로 현대차는 주말특근 부족인원을 메우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투입한다. 그들은 금요일 오후 오리엔테이션을 겸해 4시간의 교육을 받는 것이 고작이다. 주말특근의 생산효율은 평일과 동일하다. (89P)


- 저도 현대자동차 생산 라인에서 작업에 참여해 본 적이 있습니다만, 적응하는 데 1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고숙련이 생산성 향상이나 고용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상식적인데 현대차 노사는 어째서 저숙련을 방조 내지 조장하는 걸까요?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현대자동차는 다른 어떤 완성차 업체보다 자동화가 진전된 회사예요. 자동화라는 것이 일부의 숙련공을 필요로 할지 모르지만, 전반적으로는 숙련 자체를 해체하는 기능이 강한 거죠. 가지고 있던 숙련조차도 필요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현대차는 더구나 외주화․모듈화가 많이 진전돼 굳이 내부의 숙련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만큼 생산방식이 급속히 바뀌고 있습니다.

일전에 한 완성차 노조 위원장한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논에서 모 심는 아지매들을 데려와서 투입해도 라인 잘 돌아갑니다.” 일종의 허무개그죠, 숙련이 필요 없어졌다는 걸 말하는. 현재 주말 특근 때는 아르바이트생을 넣습니다. 금요일 오후에 오리엔테이션 4시간 하고 다음날 바로 투입하거든요. 주말에도 평일과 동일한 UPH로 돌리는데 아무 문제 없습니다. 숙련 그 자체가 별로 필요 없는 생산방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겁니다.

90년대만 해도 회사가 직능급 도입한다고 하면서 숙련에 대한 시도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노동조합의 반대로 실패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회사도 포기를 하고 숙련에 덜 의존하는 구조로 갑니다. 모듈화, 외주화, 자동화 하는 거죠. 설사 숙련이 필요하다고 해도 회사는 사람을 뺄 여력이 없습니다. 원체 잘 돌아가니까 차 한 대 더 만드는 게 중요한 거죠. 노조도 반대해요. 숙련향상을 유도하려면 인센티브를 줘야 하는데 이건 차별이고 조합원의 단결을 해친다는 거죠. 그러다보니 개인적으로는 인센티브는커녕 일이 더 많이 와요. 고장이 나도 배운 게 있으니까. 일을 많이 해서 승진을 한다? 승진은 필요 없는 거예요. 아니 승진하면 안 되는 거예요. 조합원 자격을 잃게 되거든. 그러니까 숙련이 필요가 없는 거죠.

울산대 조형제 교수랑 미국에 있던 유종성 교수가 미국의 현대차에 관해서 논문을 썼어요. 미국의 현대차와 도요타의 생산방식이 어떻게 다른가. 결론은 현대차의 생산방식이 더 낫다는 거였습니다. 두 가지 이유였는데 첫째는 현대차 미국공장이 도요타 미국공장보다 수량적으로 유연하다는 거였습니다. 두 번째로 도요타는 숙련에 많이 의존하는 생산방식입니다. 그래서 미국 노동자들에게 돈과 시간을 들였지만 생각만큼 숙련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겁니다. 이게 딜레마예요. 반면 현대차 미국공장은 숙련이 덜 중요한 방식이라 더 유리하다는 겁니다. 애써 교육훈련을 시킬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이제 생산성은 숙련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강도의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M/H(맨아워)나 편성효율이 바로 노동강도를 둘러싼 갈등이죠. 그래서 노사가 더 첨예하게 맞붙는 겁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내부적 유연성은 고용의 완충장치 역할

현대차의 내부노동시장이 갖는 특징의 하나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다. 해고의 자유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내부적 유연성도 제한적이다. … 내부적 유연성의 약화는 제품의 경쟁력은 물론 경기변동에 따른 대응력을 떨어뜨림으로써 고용불안을 심화시킨다. (96p)

-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현대자동차는 물량 이관 문제에 관한한 노동조합 집행부조차 어쩔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공장 간에 배타적입니다. 어떤 공장은 주말 없이 특근을 풀로 돌리고도 물량을 못 맞춰서 비정규직을 대거 투입하기도 하는데, 또 다른 공장에서는 일이 없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해 자신의 일거리를 내놓지 않으려는 노동자들만 탓할 수도 없는 것이 ‘98년 노란봉투의 악몽’이 워낙 선연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간 인터뷰해 본 많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기조차 싫어할 정도였습니다. 그날 이후 더 이상 회사도, 노조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내부적 유연성에 대한 거부감을 마냥 비판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문제 아닐까요?

비판적으로 볼 수 없는 문제입니다. 자동차는 전체적으로 물량변동이 심한 산업이에요. 같은 자동차 내에서도 차종에 따라서 잘 팔리는 차와 안 팔리는 차가 극명히 갈리는 상품의 특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거기에 회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유연성의 문제가 따르거든요. 생산과 관련한 경쟁력이라고 한다면 생산성과 유연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는 생산성보다 유연성이 오히려 더 중요한 변수라고 보고 있습니다.

물량의 변동에 대응해 나가는 과정은 크게 보면 물량을 이관시키는 방법이 있고, 사람을 이동시키는 방법이 있어요. 또 같은 차종 내에서는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늘릴 수 있죠. 예를 들어 주간연속2교대제가 되면서 이제는 평일에 한 시간의 잔업 밖에 없어요. 예전에 비해서 물량이관에 대한 저항이 적어지겠죠. 평일 10시간에다 주말엔 14시간을 일하는 시스템이 아니거든요. 옛날엔 두 시간분의 물량이 옮겨갔다면 이젠 한 시간 분의 물량이 옮겨가는 거잖습니까. 그래서 수요변동에 따르는 물량 대응이 필요하다면 전환배치 하기 이전에 물량 이관을 하는 것이 필요하고 노조로서도 동의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졌죠. 그것이 안 되면 전환배치도 필요하고, 노동시간 유연성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겠다고 봅니다.

이건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경쟁력 측면에서 중요하기도 하지만 이 자체가 이른바 ‘외부적․수량적 유연성’, 즉 해고에 대한 내부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위기 상황이 왔을 때 고용의 안정을 보장하는 이른바 범퍼 역할을 할 거라는 말입니다.

유연성이라는 말이 나오면 노동조합은 민감한, 때론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정확하게 외부적 유연성과 내부적 유연성은 구분해야 합니다. 둘은 상충되는 지점도 있겠지만 상호보완적인 측면도 있는 겁니다. 내부적 유연성을 늘리면서 외부적 유연성을 제어하는 측면이 있다면 유연성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원칙’은 강자의 언어이자 소통을 단절하는 언어

고용불안의 탈출구로서 대두된 것이 임금질주본능이고 비정규직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이었다. 높은 임금과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의 보증수표였다. 그러나 이는 실패의 연장이며 실패를 다른 실패로 덮는 ‘누적된 실패’의 악순환을 낳을 뿐이었다. (104p)

현대차 비정규직은 회사와 정규직 노조 사이에 이뤄진 암묵적 합의 내지 담합의 산물이다. 회사는 노동의 유연성(해고의 자유)을 확보하고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사내하청을 사용하고 있다. … 정규직 노조는 정규직의 고용안정과 노동강도 완화를 겨냥해 사내하청을 용인했다. (295 - 296p)


- 비정규직 문제는 불법파견 관련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긴 하나 노사 모두가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법대로 하면 됩니다, 그 좋아하는 법대로. 제 주장은 그거에요. 현대차를 오랫동안 들여다 봤지만 이해가 안 가는 대표적인 지점이 비정규직 문제에요. 현대차로서도 회사 내부의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고, 노사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비정규직 문제를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아가서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만큼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사회 갈등의 중심이 되어 왔던 의제도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해결 기준인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문제가 안 풀린다면 어떻게 봐야하는가라는 거예요. 그 이후에 조립의장부분의 생산직만 관계되는 게 아니라는 GM의 판례도 나왔고, 아산공장은 고법 판결도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최병승 씨 관련 재판에서는 대법 확정판결 이후에도 중노위, 행정소송도 회사가 졌는데 또 계속 법적으로 문제를 가져가고 있어요. 이건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지금 통상임금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노사문제를 법원으로 떠넘기는 노사관계의 사법화(司法化)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법은 안 지키고.

노사문제에 법과 원칙이라는 표현을 쓰고 이 말을 좋아하는 높은 분들이 많습니다. ‘법’은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서 결정된, 어쨌거나 형식적이지만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만들어진 규정사항이에요. 또 그 내용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법이 어떻게 되는지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원칙’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측이 원칙을 지키겠다고 하는데 원칙이 뭔지 말 안하면 모릅니다. 원칙은 합의과정도 절차도 다 생략되어 버렸어요. 자기 입맛대로 자기들이 정한 거죠.

그래서 원칙이라는 것은 강자의 언어고 권력의 언어입니다. 힘 센 사람이 힘 약한 사람한테 강요하는 거죠. 한마디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입니다. 짧으면 늘리고, 길면 자르고. 원칙이라는 것은 소통의 거부에요. 내 가치의 일방적인 강요입니다. 소통의 단절을 의미하는 가장 대표적인 언어가 원칙입니다. 지금 비정규직 문제도 그렇고, 통상임금 문제도 그렇고 현대차의 원칙이라고 하는데 그 원칙이 뭔지를 모르겠다는 겁니다.

다시 법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노사관계라는 것은 이해의 다툼을 전제로 하는 거거든요. 서로 갈등되는 이해관계를 타협하고 조율해 내는 일종의 노동 정치에요. 법이 다 할 바에야 노동조합은 왜 필요합니까. 노사관계는 그 자체가 노동정치의 과정입니다. 옛날에는 정부가 다 해결해 줬습니다. 때로는 육해공군을 동원해서 폭력적으로 노사문제를 다 풀어줬거든요. 그걸 우리는 탄압이라고 불렀죠. 지금은 그나마 민주화 되어서 훨씬 세련된 게 법을 통해 대응하는 거거든요.

그 과정에서 공통적인 것은 노사관계의 실종입니다. 노사관계는 자율적으로 서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경험도 축적되고 상호이해도 축적되고 하면서 발전됩니다. 노사관계의 사법화는 노사관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장애물입니다. 그게 노사관계의 실종인 거죠. 노동조합은 그나마 의존할 게 법 밖에 없어서, 특히 비정규 노조는 의존할 게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법이 자신들 편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으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법원에 뛰어 가거든요.

얼마 전에 단국대에 있는 신은종 교수가 재밌는 표현을 썼습니다. 사법화(司法化)의 사법화(私法化). 앞의 사법은 Justice고, 뒤에 사법은 Private입니다. 제가 해석하자면 강자들이 걸핏하면 법을 들먹이고 게다가 제 입맛대로 법을 활용하더라는 겁니다. 김남주 시인의 시구에 이런 게 있죠. ‘부자들에게는 목걸이가 되고, 가난뱅이들에게는 밧줄이 되지요.’(<법 좋아하네>). 굳이 이 시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법이라는 것은 권력의 언어입니다. 원칙이 권력의 언어이자 강자의 언어 듯이. 법도 강자의 언어입니다. 그래서 높은 분들이 이 말을 좋아하죠.

지금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고 통상임금 문제에서도 노사관계의 사법화를 현대차가 선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차 내부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현대차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문제를 푸는 방안이 아닙니다. 세계 굴지의 다국적 기업이 비정규직 한 명을 가지고 법의 이름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있는 거거든요. 최병승 씨가 철탑에 올라갔을 때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그 위에서 한 발짝만 내디디면 해결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주 비극적인 해결이겠지만요. 실제로 전화로 최병승 씨가 결단하겠다길래 얼마나 쫄았던지. 그 한 발자국을 견뎌준 최병승 씨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모든 비정규직이 정규직화 되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식당이나 경비는 말할 것도 없고 분명히 합법적인 도급으로 남는 영역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일단 법으로 판결한 부분에 대해서는 최병승의 개인소송으로 보지 말고 대표소송의 개념으로 보자는 거죠.

현대차가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날 생각이 있다면 GRI 보고서(현대차는 2003년 이후 해마다 ‘지속가능경영 국제표준 제정기구(GRI, Global Reporting Initiatives)’ 기준에 따라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쓰는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노사관계 문제 특히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비정규직이라는 것은 우리 정부와 사회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이고, 회사로부터도 배제된 사람들입니다. 진짜로 안타까운 것은 노조로부터도 배제된, 삼중의 배제를 경험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규직이 왜 비정규직을 껴안을 수 없는가. 누누이 얘기했지만 이제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고용 안전판이 아닙니다. 그런 시대는 지나가고 있어요. 위기가 닥치면 오히려, 아니 언제든지 경기가 나빠지면 노조의 교섭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노조의 약점이 드러나거나 위기가 오면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고용 대체인력’이 돼 버립니다. ‘고용 안정판’이 아니에요. 고용안정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비정규직을 껴안아야 합니다. 그런 위기가 닥치지 않았을 뿐이에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채필 노동부장관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현대차에 대해 비분강개한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야당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 의원까지 나서서 회사를 융단폭격 했습니다. 정치권은 어떻습니까. 지난 대선 때 야당 대통령 후보들이 줄줄이 철탑 농성장을 찾았습니다. 하나 같이 현대차가 잘못하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자, 그러면 입법, 사법, 행정부가 한 목소리로 문제 제기하고, 정치 영역의 대통령 후보들조차 나섰는데 문제가 안 풀린다? 그래서 현대차가 오만하다는 소리를 듣는 겁니다.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거죠. 솔직히 절망입니다.

법 위반적인 장시간 노동체제에 누구도 저항하지 않는다

장시간 노동, 일상화된 야간․연장 근로 외에도 현대차의 노동시간체제는 법을 위반하면서 이뤄진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 근로기준법 위반과 관련해 특기할 만한 사항은 현대차 노사 누구도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노조와 그 많은 현장조직은 물론 4만5,000여명의 조합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회사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발한 적이 없다는 것은 차라리 기적에 가깝다. … 현대차에서 장시간 노동은 이처럼 노사 간의 ‘완벽한’ 공모로 성립된 법 위반 체계이다. (118 - 119p)

한국의 노동운동은 임금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강한 집착을 보이면서도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노동시간의 단축에 대해 노조는 침묵하거나 방조하는 것을 넘어 때로는 적극적으로 연장에 나서기도 했다. 임금의 극대화를 노린 탓이었다. 노조와 회사가 담합함으로써 장시간 노동의 주범 내지 공동정범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140p)


- 현대자동차 기술직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011년 2,678시간으로 정점을 기록했습니다. 2011년 OECD 평균 1,765시간, 한국 평균 2,090시간보다 월등하게 많습니다. 물론 2012년 2,443시간, 그리고 주간연속2교대제가 도입된 2013년에는 2,220시간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장시간 노동체제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특근이 줄어드는 것을 반대하고, 심지어 노동조합 집행부나 사업부 대표가 특근 거부 투쟁을 하는 것도 수용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자발적 장시간 노동’에 나서는 것은 임금구조 때문이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없을까요?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있다고 봅니다. 외부적 요인은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부적 요인입니다. 장시간 노동은 노사 간 담합의 산물입니다. 회사는 장시간 노동을 통해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고, 또 설비투자, 감가상각비를 절감하는 수단이 됩니다. 노동조합은 당연히 임금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죠. 그래서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경우로 보고 있습니다.

외부적 요인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노동시간이라는 의제를, 특히 실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의제를 한 번도 자기의제로 삼아본 적이 없는 독특한 노동운동을 해왔습니다. 말로는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고 합니다. 메이데이가 미국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하려는 총파업에 나서면서 시작된 것 아닙니까. ILO 제 1호 규약이 노동시간 단축 규약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실노동시간 단축을 아젠다로 삼아본 적이 없는 노동운동이었습니다. 최소한 주간연속2교대제 하기 전까지는요.

이 장시간 노동이 법 위반적인 장시간 노동이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2011년에 노동부가 완성차의 근로시간에 대해 수시감독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해 봤죠. 다 걸렸습니다. 그 다음에 식료품업체를 근로감독 했습니다. 다 걸렸습니다. 2012년에는 자동차부품업체를 대상으로 근로감독 해봤습니다. 48개 업체 중에 46개 업체가 걸렸습니다. 이때 기준은 52시간이 아니라 68시간입니다. 표준근로시간 40시간에다 연장근로 한도 12시간을 더하고 거기에다 토․일요일 8시간씩 16시간을 합법으로 본 거죠.

두 군데 안 걸린 게 오히려 신기한 거예요. 그래서 알아봤더니 한 군데는 물량이 줄어서 하고 싶어도 못해요, 다른 한 곳은 스웨덴 투자업체였는데 모회사의 기본방침이 법은 지키라는 거였대요. 쉽게 말하면 68시간 기준으로 해도 우리나라 업체들, 적어도 노동부가 근로감독한 업체들은 다 걸렸습니다. 그런 사실을 노동부가 외면해왔거든요.

정부가 지금 노동시간 단축한다고 나섭니다. 법을 새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건 68시간을 전제로 해서라도 근로감독 하는 겁니다. 정말 노동시간 단축의 의지가 있다면, 고용률 70%를 달성하는 데 있어 노동시간 단축이 정말 중요하다고 한다면 초점은 시간제 근로가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일자리 나누기가 아니라는 거죠. 중장기적으로 고용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노동시간이 굉장히 길어서 줄이기도 쉽고. 법을 안 만들어도 가능합니다.

장시간 노동체제에는 내부의 담합이 있습니다. 외부적으로 볼 때는 노동운동 자체가 이걸 자기 의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 중요한 것은 법이 종이호랑이로 전락해 아무런 규제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정부가 사실상 방치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겁니다. 지금도 현대차에 근로감독이 들어가면 근로기준법 위반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이건 기적입니다. 4만5천명의 조합원 중에 단 한 사람도 회사를 고발한 적이 없다는 것은. 기적 같은 담합이 내부적으로 진행돼 왔고, 정부는 직무를 유기해왔던 거죠.

그러면 장시간 노동이 노사담합인데 어떻게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졌냐고 묻는데, 간단합니다.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은 노사 간의 합의에 의해 이뤄진 건 물론 틀림이 없지만 결정적인 계기 하나가 근로감독이었습니다. 공식적, 공개적으로 법 위반이 드러나 버렸고 이렇게 된 이상 현대차로서는 대응책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그때도 법 개정 문제가 논의되고 있었고 앞으로 법이 바뀔 거란 것은 기정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현대차의 교대제 변경에 대해 ‘외부적으로 강요된 자주성’이라는 표현을 썼거든요.

주간연속2교대제에서 핵심적인 주체는 회사입니다. 노조가 아니에요. 현대차의 경우를 봐서도 드러나지만 노사한테 맡겨서 노동시간 단축을 해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기업들이 노사 자율로 노동시간 단축하기에는 굉장히 많은 걸림돌과 내부적인 어려움을 갖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 거죠.

주간연속2교대제는 호황기 노동시간 단축으로 의미 있다

주간연속2교대제에 관한 현대차의 노사합의는 ‘경향설정적인 단체협약(trend-setting collective agreement)’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노동시간 단축을 외면했던 노조들이 잇달아 교대제 변경에 나서면서 노동시간 단축이 노조의 중요한 의제로 자리잡게 된 것도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152p)

- 주간연속2교대제가 2013년 3월 4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생산성과 임금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1998년 정리해고 대응책으로 현장조직에서 제기된 이래 2003년 단체교섭에서 근무형태변경추진팀 구성을 합의한 것을 출발점으로 보더라도 10년이 걸렸습니다. 그토록 오랜 기간 진통을 거듭하던 주간연속2교대제가 시행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도입의 성과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가장 큰 의미는 실노동시간 단축을 사회적 아젠다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하나의 전범을 제시했다는 데 진짜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현대차 노동시간 단축은 독특한 것이 호황기의 노동시간 단축이에요. 폭스바겐이 93년에 주당 노동시간을 35시간에서 28.8시간으로 줄인 것은 불황 때였습니다. 불황 때는 노동시간 줄이기도 쉽고 임금삭감을 해도 상대적으로 반발이 적습니다.

2009년 쌍용차에서도 보듯이 때로 노동조합이 임금을 포기 할 테니까 노동시간 줄이자고 요구를 하지 않습니까. 이건 불황기 때 나타나는 현상인데, 현대차는 호황기에 했거든요. 물건이 없어 차를 못 파는데, 노동시간 줄였다는 것은 이 자체가 획기적인 사실입니다. 장시간 노동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호황기에 물량보전과 임금보전의 교환이라는 원칙 속에서 노동시간을 줄였다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삶의 질에 관한 관심들이 환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일과 가정의 조화라는 개념이 현장으로 먹혀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점도 의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사진은 인터뷰 특정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M/H 산정기준 도입한다고 현장권력 위축되지 않는다

획기적인 사실은 노사가 ‘8/8’ 근무형태를 도입하면서 M/H 산정기준을 도입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이다. 만일 그게 실현된다면 이는 본격적인 작업장 혁신의 출발점이자 노둣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52p)

- 현재 시행되고 있는 주간연속2교대제는 과도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10’에서 ‘8/8+1’로 변경했지만 궁극적으로는 ‘8/8’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간 여러 차례 합의되었던 M/H 산정기준 도입도 유예됐습니다. ‘8/8' 도입 때 함께 도입하기로 했다지만 과연 가능할까요? 지금까지 노조는 현대자동차 자체 기준인 모답스(MODAPTS : Modular Arrangement of Predetermined Time Standards) 기법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에서 광범위 하게 사용되는 MTM(Methodof Time Measurement) 기법에 대한 노사의 반응도 예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M/H 산정기준 도입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겁니까?

M/H(맨아워) 산정기준 도입은 노사 간의 이해가 그야말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지점입니다. 노조가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장권력의 상실입니다. 노동강도가 높아질 수 있고, 생산성이 높아지면 오히려 고용불안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노동시간이 줄어 임금이 깎일 수도 있죠. 그래도 제일 큰 것은 현장권력이 날아간다는 겁니다. 일리가 있죠.

현장에서 M/H 도입이 필요한 이유부터 살펴봅시다. 첫째는 노동강도의 평준화입니다. 이건 노조도 필요성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공장별로, 라인별로 대충이라도 노동강도를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계속 문제가 돼왔고, 그걸 부분적인 로테이션으로 풀어왔지만 임시봉합일 뿐입니다. 노동조합이 거부하는 것은 이게 결국은 생산성 증대, 노동의 강화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불안이 있는 거죠.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생산성 향상도 이제는 노조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내부적 유연성을 높이는 것도 그 출발점은 M/H 기준을 도입하는 겁니다.

그런데 M/H가 뭐냐 하는 것부터 다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흔히 M/H 기준을 도입한다고 할 때는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좁은 의미에서 M/H인데 그 산정 기준을 정하고 거기 맞춰 인원을 정하고, 신차 생산에 따르는 작업 일정을 맞춰내자는 의미가 있거든요. 노동강도를 평준화시키고 거기에 맞춰 인원산정 하면 문제 없지 않느냐는 겁니다. 인간공학적인 투자를 하려고 해도 어디가 애로(bottleneck)인지를 알아야 하거든요. 그러면 현장대의원들은 바지저고리냐는 얘기가 나와요.

독일은 MTM 방식에 따른 산별차원의 노사합의가 있습니다. 미국이나 도요타는 그게 없이 회사가 기본적으로 정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충처리 차원에서 대의원들이 개입을 합니다. 기술적인 요인이 잡아내지 못하는 개인적 특성과 같은 요인들이 있을 수 있거든요. 결국 현장에 대의원들이 개입한다는 말이에요. 대의원들이 할 일이 있는 거죠.

두 번째로 더 중요하게는 M/H를 실제로 산정하는 절차입니다. 지금은 남양연구소에서 일방적으로 M/H를 정하고 외주화와 모듈도 정하고, 파일럿 라인에서 돌려보고, 그게 울산으로 오거든요. 이런 과정을 다 마친 후에 신차의 대량생산을 앞두고 노사가 협상을 하다 보니 그것이 길어지면 대량생산 자체가 차질을 빚는 일들이 나타난단 말입니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남양에서, 즉 설계 과정부터 외주화, 모듈화 과정에 이르기까지 노사가 처음부터 같이 협의하자는 거거든요.

그러면 현장대의원의 역할이 줄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조합의 다른 권력은 늘어나는 거예요. 자, 그런데 노조의 주장대로 남양에서부터 M/H 협의가 시작된다면 그 기준은 뭐냐는 이야기입니다. 배추장수 흥정 하듯이 교섭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노조가 주장하던 것이 남양에서 교섭을 시작하자는 거였는데 그걸 위해서라도 M/H 기준이 필요하다는 거죠.

GM에 가서 라인을 돌아봤는데 라인별로 편성효율을 표시해놨어요 그게 80%대에서 60%대까지 편차가 심합니다. 근사치라고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노동강도의 편차가 굉장히 심하고 또 높다는 얘기에요. GM지부에서 핵심적인 요구사항으로 M/H 산정기준을 만들자고 나섰습니다. M/H 기준이 없다 보니 회사가 일방적으로 노동강도, 즉 편성효율을 결정하고 노조는 대응할 힘이 없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M/H 위원회를 설치하자고 노조가 요구했습니다. 노사와 외부 전문가까지 참여했는데 회사가 할 마음이 없었어요. 현대차와 정반대입니다. 결국 아무 결론도 없이 끝나버렸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현대차 노조가 힘이 있을 때는 현장 투쟁으로 돌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GM이나 쌍용차에서 그런 상황이 오리라 예상 못했지 않습니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그리고 M/H 협의를 하기 위해서라도 M/H 기준은 필요하다는 겁니다. 노동강도 강화를 우려하는데 지금 그나마 노조 힘이 있으니까 남양에서부터 그걸 차단시킬 수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M/H 산정기준을 도입하자는 겁니다.

- 그런데 이 책에서 지금까지 제기한 임금, 파업, 노동시간, 비정규직 등의 문제를 둘러싼 노사 간의 이른바 담합의 내용들을 보고 있지만 ‘작업장 혁신’이라는 것이 대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진짜 가능한 겁니까?

전 주간연속2교대 실현을 위한 노사전문위원회와 자문위원회에 참여했습니다. 그 전에 2005년 9월부터 2006년 3월까지 현대차의 용역을 받아 작업을 한 게 있어요. 많은 학자들이 참여한 이 작업은 회사의 용역이었지만 노조와 현장조직들의 협조약속까지 받았어요. 거기서 확인한 바로는 노사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변화의 계기를 뭘로 잡을 것인가입니다. 위에서 내려꽂기 방식으로 그림 그려 가지고 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당시 노사 간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주간연속2교대였는데 이것은 단순히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끝나는 부분이 아니라고 봤어요. 노사 간의 많은 문제점들이 여기에 녹아있어요.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면 생산방식은 물론 숙련, 생산성, 유연성, 고용안정, 비정규직 등 여러 부분을 건드려야 합니다. 많은 작업장의 이슈들이 주간연속2교대제와 연결돼 있어요.

이렇게 보면 주간연속2교대제는 공장자체를 리모델링하는 과정이고, ‘조용한 혁명(Silence Revolution)’에 해당됩니다. 많은 지점들을 바꿔야 한다면 이른바 그물코이자 벼리 역할을 주간연속2교대제가 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데 그칠 일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노사관계 전반을 한 번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자는 거였습니다. 이걸 노사한테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외부 전문가가 때로는 개입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고 해서 노사전문위원회가 만들어진 거죠.

결과적으로 보면 노동시간 단축 그 자체는 잘 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M/H는 아젠다로 올렸지만, 생산 부분들, 특히 내부노동시장의 유연화 부분은 아젠다로도 못 올렸습니다. 이건 비정규 문제하고도 직결되는 거거든요. 그 부분은 지금도 아쉽습니다.

해외공장 먼저 폐쇄? 가능하지도 않고, 잘못된 발상이다

노사전문위원회가 갖는 장점은 적지 않다. 노사가 추천한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업 차원의 사회적 대화기구라는 점, 토의민주주의적인 합의형성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 조직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200p)

-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과정에서 박사님이 참여한 노사전문위원회와 노사자문위원회가 역할을 했습니다. 이 모델이 향후 M/H 산정기준 도입 과정에도 활용될 수 있을까요?

저는 기술적으로 M/H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지금 현대차의 모답스가 완전히 엉망은 아닙니다. 전문가한테 물어봤더니 국제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기준을 모답스도 따르고 있다는 거예요. 실제로 M/H 산정방식으로는 모답스나 MTM 외에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지만 기술적으로 크게 차이 나는 건 아니거든요.

제일 중요한 것이 여유인력 부분인데 여유인력을 몇 %로 산정할 것인가가 노사 간의 쟁점입니다. 이렇게 부분적으로 손봐야 될 지점이 있지만 전체를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 한다면 가장 큰 변수는 노조가 할 의사가 있느냐 입니다. 노조 내부에서 의견그룹 간에 이른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노사는 2016년 ‘8/8’형태로 이행하면서 M/H 기준을 도입하기로 합의해 두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사가 믿을 수 있는 M/H 전문가가 외부에서 개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봅니다.

노조가 세계화의 덫에 걸려 있다면 회사의 세계화 전략은 노사관계의 덫에 걸려 있다. 현대차의 글로벌 전략에 직면해 노사가 서로의 발목을 잡으면서 다시 한 번 공동의 패배를 기록한다. 세계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노사가 장기적인 발전전망을 공유하는 일이다. 장기 비전은 노사 어느 일방이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사가 합의를 통해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 (229p)

-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미 글로벌 기업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현대차가 미국, 중국, 인도, 터키, 체코, 러시아, 브라질 등 7개국에 해외공장을 가동하고, 기아차는 중국, 슬로바키아, 미국에 해외공장을 두면서 2013년 기준 해외공장 생산비중이 60%를 넘어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 노사는 어떤 세계화 전략을 추진해야 할까요?

노동자 국제주의(labor internationalism)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학계의 논란거리입니다. 다른 업체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회사 내의 자회사들끼리도 물량경쟁을 해야 하는 냉엄한 현실에서 어디까지 협력과 공존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죠. 그렇지만 최소한의 노동기준, 다시 말해서 국제기본협약(IFA, International Framework Agreement) 정도는 아무리 경쟁 하더라도 필요한 것 아닌가에 대해서는 합의를 보고 있습니다.

현대차 단체협약에 수요가 줄어들면 해외공장부터 물량을 줄이거나 폐쇄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지켜질 수 없는 단협입니다. 회사가 그럴 마음이 있느냐는 것도 관건이지만 그 나라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 녹아있는 노동조합의 발상입니다. 예를 들어 이것은 경기가 나빠지면 비정규직 먼저 자르라는 것의 국제판인 셈입니다. 똑같은 조항입니다.

국내에서는 비정규직을, 국제적으로는 해외공장 노동자들을 고용의 안전판으로 삼겠다는 발상인데 이 발상이 있는 한 국제 연대는 안 된다고 봅니다. 상대의 고용을 방패삼아 내 고용을 지키겠다는 것은 연대를 해나가는 자세가 아닙니다. 최소한의 고용안정을 위한 노동자 간의 연대는 때로는 ‘나도 손해 좀 보겠지만, 그래도 네 고용은 지켜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상호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가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있는 건가에 대해서 학계에서도 아직까지 논의가 분분합니다.

둘째는 발상이 굉장히 단기주의적입니다. 현대차 노조가 해외생산이 갖는 의미, 거기에 대한 노조의 대응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단협의 한 장(章)이 해외공장 관련 내용이고 엄청나게 많은 조항이 있지만 그 단협조차도 안 지켜지고 있고, 단협이 안 지켜지는 데에 대한 문제제기도 안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해외물량이 늘어난다고 우리 물량이 줄어들 기미도 안 보이고, 고용불안도 없고 임금도 다 받고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참여적 형성전략입니다. 폭스바겐처럼 노조가 힘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참여전략을 써야 합니다. 이 참여전략에는 당연히 회사의 세계화 정책에 대해서도 때로는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참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최소한의 국제 연대 기준을 지켜야 합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이도 저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노동조합이 해외생산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해외생산은 단순한 위협이나 협박이 아니고 현실적인 고용 불안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실체입니다. ‘유령’이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봅시다. 경기가 죽어버렸을 때 회사가 미국공장의 생산을 줄일 것인지, 한국공장의 생산을 줄일 것인지. 한국공장의 물량을 줄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미국공장은 설비가 좋아 생산성도 좋습니다. 시장도 더 크구요. 회사는 그 준비에 들어갔고 물량이 줄면 언제든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차 고용안정 문제는 국내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실리 위주로만, 단기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연대의 관점으로 때로는 중장기적인 관점으로도 봐 달라는 겁니다. 그런데 집행부는 그렇게 볼 여유나 여력이 없는 거죠. 세계화 전략과 관련해서 노조가 이를 스스로의 의제로 삼아야 합니다.

회사측에 산별교섭 들어올 ‘당근’을 주라

산별교섭구조는 대기업 노조가 주도할 수밖에 없지만 대기업에는 내부노동시장이 발달돼 있다. 내부노동시장은 그 자체가 이중노동시장에 바탕을 두고 있고 이를 강화하는 매커니즘이 된다. 또한 내부노동시장은 높은 임금과 고용의 안정을 통해 기업의 성과를 배타적으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기업별 교섭체제와 친화력을 갖는다. (278p)

- 현재의 금속 산별교섭은 완성차 업체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대차 입장에서 볼 때는 이중교섭 구조와 정치투쟁 우려 등 산별교섭에 참여할 유인은 전혀 없이 부정적 문제만 불거집니다. 노조로서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일텐데, 그렇다면 산별교섭은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요? 그리고 현대차 노사가 산별교섭에 참여토록 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첫째, 산별은 사측이 참가할 만한 유인이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들어가면 남는 장사’가 아니라면 사측으로서는 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어요. 두 번째는 노조의 이른바 압박 전략입니다. 당근과 채찍이라고 유인과 압박이 동시에 필요한데, 중요한 것은 유인이라고 봅니다. 산별교섭이 어떤 장점이 있는가, 사측이 뭘 우려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 현대차가 안 들어가려고 하는가에서 시작해야 되거든요. 흔히 이중교섭이다, 이중파업이다, 하는데 현장에 파업권까지도 다 주고 있단 말이죠.

이건 산별의 원칙하고 어긋나는 부분이거든요. 산별은 기본적으로 교섭권뿐만 아니라 쟁의권도 중앙이 갖는 거예요. 그것이 이른바 산업평화에 중요한 버팀목이 돼주는 겁니다. 현장에 교섭권은 안 주면서 파업권을 준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왜 독일의 대기업들이 산별을 선호하는가. 첫 번째는 산업평화기능입니다. 산별하고 이야기 잘 되면 파업 안 하고, 자주 하는 건 아니지만 파업할 때는 다 같이 하니까 상대적으로 손해도 더 적어요. 두 번째는 임금인상을 막아주는 기능이 있어요.

사측이 우려 하는 것은 교섭비용의 절감이 아니라 이중교섭에 따르는 교섭비용의 증대, 노사갈등이 오히려 대형화 되고 일상화이 될 가능성이 크고 산업평화에 역행한다는 지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누구도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해주지 못합니다. 두 번째로 현대차가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자동차산업의 구조에서 현대차가 교섭에 참가하면 노사 양측의 타깃이 될 거라는 점입니다. 모든 노와 사가 현대차 입만 쳐다보겠죠. CR문제까지 불거져 나올 수 있어요. 결국은 노동조합만 상대로 교섭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자동차업체까지도 상대해야 하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여기에 대해 노조가 어떻게 할지 답을 달라는 겁니다.

그러면 임금문제를 산별체제에서 다뤄 주는가. 산별체제의 가장 큰 장점이 작업장의 갈등 이슈를 외부로 뺀다는 거거든요. 내부는 생산을 위한 협력의 공간으로 만들고, 갈등요소는 외부로 빼버리겠다, 이게 산별의 기본취지인데 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는 거예요. 여기에 대해서도 노동조합이 확실하게 답을 못주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음으로 현대차 노조라고 산별에 대한 생각이 있는 건가. 별로 없어요. 임금교섭 한다고 하면 당연히 노조 내부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얘기 나올 거고, 그래도 임금 올려주려고 하면 다른 협력업체들이 발목을 잡을 것 아니냐는 겁니다. 그리고 단협의 수준 자체가 협력업체와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현대차는 매우 발달한 내부노동시장을 갖고 있거든요. 외부요인들이 개입하면, 다시 말해서 시장요인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내부노동시장이 흔들려 버립니다. 내부노동시장의 벽을 현대차 노조가 허물고 싶은 마음이 없죠. 오히려 노조의 활동 목표가 내부노동시장의 유지고 강화였어요. 그래서 현대차 지부가 교섭시기도 금속노조와 안 맞춰 버리잖아요.

산별에 대한 회사의 질문에 노조가 답을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은 그렇잖아도 ‘난쟁이들의 행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난쟁이조차도 떨어져 나가고 있는 상태죠. 현대차 노조가 사실상 기업별체제와 동시에 가는 실리주의에 빠져있고 이것이 계속 간다면, 그리고 연대의 개념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안타깝지만 산별체제는 어렵다고 봅니다. 물리적 투쟁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사측에 산별의 장점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 압박보다 더 중요한 노조의 전략이 돼야 합니다.

회사도 이제 노조배제정책 버려야 한다

노사 간 계급타협은 회사가 노조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노조를 인정한다는 것은 참여와 성과의 공유를 의미한다. 그런데 노사 파트너십은 역설적이게도 강한 노조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 힘이 있어야 양보도 가능하며 그것을 미래이익으로 실현할 수도 있다. 노조를 인정한다는 것은 ‘강한 노조’를 인정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337p)

- 현대자동차 노사관계의 변화는 사측의 선도적인 변화에서 비롯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겁니까? 그리고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는 건가요?

비전에 합의해라, 그리고 글로벌 허브전략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노조를 인정하라는 겁니다. 물론 노조도 잘못한 게 많습니다. 하지만 누구한테 책임이 있는가를 따질 것이 아니라 변화를 모색한다면, 그리고 노사 간의 힘 관계에서 불균형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면 현대차 노사관계에서 노조는 여전히 약자고 강자는 현대차라는 겁니다. 강자가 먼저 바뀌자, 노조를 인정하자는 겁니다.

한심한 수준이긴 하지만 노조 인정하는 방식이 뭔가 묻는다면 부당노동행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솔직히 현대차 노사관계가 지금 이 수준입니다. 노동조합을 인정한다는 것은 강한 노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강한 노조를 인정해야 해요. 폭스바겐 노조는 강하기 때문에 협력할 수 있는 겁니다. 약한 노조는 협력도 못하고, 노조가 힘이 없으면 어용도 못합니다. 구체적으로 선거에 개입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노조 의사결정 과정에 맨투맨 방식으로 개입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것부터 안 하는 것이 노조를 인정하는 첫걸음입니다. 이 수준에서 글로벌 허브 전략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 다음은 노조를 의사결정과정에 참여시키는 거겠죠.

전 세계적으로 완성차 노조는 힘이 셉니다. 첫째는 생산이 기본적으로 컨베이어 벨트 방식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2명만으로도 라인을 세우고 공장을 세울 수 있습니다. 파업파괴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죠. 두 번째는 자동차산업은 자본집약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집약적입니다. 특히 울산은 세계에서 제일 큰 단일 자동차공장입니다. 대규모로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죠. 세 번째는 산업연관효과가 큽니다. 그래서 파업에 들어가면 사회에 미치는 충격이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노조가 힘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현대차 노조만 그런 게 아니라 폭스바겐도 GM도 도요타도 다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제조업의 노사관계에서는 자동차산업이 전략적인 관제고지로 등장합니다. 노조의 전략도, 노사관계 이론도, 노무관리 전략도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현대차는 굉장히 독특한 기업입니다. 폭스바겐이나 GM은 어떻게 하면 노조와 협력적 공존을 할까 고민을 해 왔어요. 노조를 포용하는 전략을 써왔죠. 이를 중심으로 해서 노사관계 이론이 발달해 온 거죠. 독일을 보더라도 교섭은 바깥으로 빼고 내부는 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합니다. 공동결정제도는 계급협력전략입니다.

그런데 현대차는 87년 노조가 만들어진 이래 지금까지 계속 노조 배제정책, 노조 무력화정책을 써왔어요. 노조를 껴안고 같이 가는 파트너로 보는 전략이 아니었어요. 한편으로는 담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조를 배제하는 전략이 적대적 공생관계로 나타난 겁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습니까. 현대차 노사관계 자체가 괴물이 돼버리지 않았습니까.

노조는 노조대로 문제가 있고, 노사갈등은 끊이지 않고, 그러면서 회사는 또 줄 건 다주고,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나쁘고. 27년 간 죽으라고 계급전쟁 해왔는데,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노가 이긴 것도 아니고 사가 이긴 것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노사가 노사관계에서 패배했다면, 이제 한 번 변화를 시도해보자는 겁니다. 변화 안 하면 언젠가는 시장이 들어 올 겁니다. 잔인한 시장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산불이 번지지 못하도록 맞불전략을 펴자는 겁니다. 회사가 잘못 했다기보다는 기본적으로 회사가 강자의 역할을 못 했다는 겁니다. 기초가 안 돼 있고 대화가 안 되는데 글로벌 허브 전략이니 고용안정과 경쟁력을 교환하자?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회사가 강자로서 책임을 느끼고 노사관계 변화를 주도해야 합니다, 강자는 인적자원, 물적 자원, 사회적 자원까지 훨씬 자원이 많잖습니까.

노동운동의 금지어, ‘경쟁력’은 ‘사면’ 받았다

고용이 제도(법․노조)가 아니라 시장상황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고용은 경쟁력의 변수라고 할 수 있다. 노조가 스스로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품질 확보와 생산비용 절감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이른바 ‘공동책임 노조주의’다. (346p)

- 노조의 기업 경쟁력에 대한 협조는 노동운동 내부에서 일종의 금기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전면으로 제기하셨습니다. 노동계로부터 욕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는 주장인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2004년에 울산에 갔을 때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 현장조직 의장들을 개별적으로 다 만났습니다. 그 때 한 커피숍에서의 일이었습니다. 둘이 앉아서 대화를 하고 있는 중간에 제가 “그래도 경쟁력이 중요합니다” 라고 얘기했는데 이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려요. 행여 누가 들었을까봐 그러는 거죠.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현대차 노조에서 경쟁력이라는 말은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 노사협력이라는 말도 입에 담으면 ‘노조 국보법’에 걸린다는 겁니다. 아예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말이었던 거죠.

그런데 2007년 성과급 투쟁 때 1월 18일에 노사가 합의를 하죠. 거기 첫마디가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 노사가 협의한다’는 말이 들어 갔습니다. 이후 단협에도, 고용안정협약에도 들어갑니다. 가령 2008년 주간연속2교대제 합의서를 보더라도 “노사는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통한 국내자동차 산업의 영속적 성장과 전조합원의 고용안정 및 삶의 질 향상”이라는 구절이 들어가요. 한때는 금기어였던 말이 이제는 ‘사면’을 받은 거죠. 경쟁력이라는 말만 들으면 몸을 부르르 떠는 그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선언적인 말에 불과하지만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거죠.

경제침체가 장기화할 경우를 대비해 고용안정기금을 마련하는 방안과 더불어 초과노동의 제한, 시간당 생산대수(UPH)의 축소, 한시적 단축노동, 정규노동시간 단축에 이어 무급 순환휴직 등 대응수단에 관한 기준․범위․절차를 마련해 두는 것은 중요하다. (364p)


- 최근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위기대응 매뉴얼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업의 것이고, 또 노사가 함께 마련해야 하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일전에 국내 외투기업 노동조합 위원장이 들려준 얘기는 그런 면에서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외국 기업 인수 이후 회사가 잘 나가고 있는데 구조조정 관련 노사협의를 하자고 해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장기적으로 위기가 닥쳤을 경우에 대비하자는 것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는 구조조정이라고 하면 당장 정리해고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거죠. 이처럼 위기가 아닌 시점에서 위기 대응 준비는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혹독한 정리해고를 겪은 현대차 구성원들로서는 더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을까요? 실제로 조합원들이 올해 기준 평균 44.5세로 상당히 고령화 되어 있고, 이들은 “내가 정년퇴직까지 얼마나 남았다고, 설마 그 안에 회사에 위기가 오기야 하겠어”라는 말을 합니다. 거의 매년 위기라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이제 위기론에 면역이 생겨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또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외부에서 보기에 불안불안하다고 하거든요. 내부에서는 위기를 못 느끼는 모양인데, 수십 년간 단 차례를 제외하고 승승장구 해 온 것이 어찌보면 불가사의하다고까지 말합니다. 운도 많이 작용했다는 거지요. 어쨌든 현재와 같이 잘 나가는 시점에 위기대응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요?

쉽지는 않겠지만 ‘현재’니까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는 시장상황에 의해 노조의 교섭력이 그나마 강할 때에요. 힘이 있을 때 하자는 이야기에요. 예를 들어봅시다. 98년에 현대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무 매뉴얼이 없었어요. 그냥 회사 방식대로 했습니다. 2009년에는 쌍용차 투쟁이 있었습니다. 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위기가 닥치면 제일 먼저 잔업, 특근이 줄 거고, 그 다음에 조업시간 줄이고, 이런저런 단계 후에 그래도 안 되면 폭스바겐이나 일본처럼 다른 계열사로 보낸다든지 하는 단계로 가겠죠. 일본의 출향(出向)이라는 제도가 계열사로 파견 보내는 것 아닙니까.

현대차도 쌍용차도 그런 매뉴얼이 없었습니다. 힘이 없을 때, 위기가 닥쳤을 때는 매뉴얼을 못 만듭니다. 노조의 교섭력도 그렇고, 노조 내부의 현실 이해관계가 추상화 돼있지 않으면 개인적인 이해가 얽히기 때문에 어려워지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지금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위기가 닥치면 매뉴얼대로 하면 됩니다. 무조건 총파업으로 돌파하겠다? 맨땅에 헤딩 해도 할 수 없다? 해봤잖아요. 그리고 안 된다는 것 봤지 않습니까. 앞서 말한 M/H도 마찬가지지만 노조가 힘이 약해졌을 때 이런 것들은 노조를 방어해주는 중요한 보루가 될 수 있습니다. 위기대응 매뉴얼이라는 것도 힘이 있을 때 만들어두면 혹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노조가 의존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도 명분이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국민기업과 국민노조의 출발점은 ‘연대’다

현대차와 현대차 노조 사이의 관계가 삐걱거린다지만 두 조직이 일반 시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또는 한국의 경제를 떠받치는 두 조직을 어느 누구도 “국민노조”라거나 “국민기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재벌기업” 혹은 “귀족노조”라는 말이 일상적이고도 익숙하다. (385p)

- 마지막으로 종합 정리를 한 번 해 보죠. 현대자동차는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입사하고 싶어하고 부러워하는 대표기업입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노조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 노동운동을 이끌어 온 대표노조입니다. 하지만 현대차를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현대차 노조도 ‘좋은 노조를 넘어 위대한 노조로’ 받아들여지지 못합니다. 오히려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혔습니다. 현대차 노사가 ‘Good to great’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낙수효과라는 말을 많이 써왔는데 실제로는 아무 쓸모없는 용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현대차일 수도 있겠다고 봅니다. 현대차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으로 잘 나가는 회사의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현대차의 성장이 얼마만큼 사회 전체적인 혜택으로 돌아갔는가는 별개입니다.

현대차가 있는 곳은 따뜻한 아랫목일지 몰라도 협력업체들과 거기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냉골에 있어요. 성장의 과실이 기업의 바깥으로 전혀 흘러들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고용이 중요한 아젠다인데, 현대차가 해외공장 제외하면 고용을 얼마나 늘렸습니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사회적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본 적이 있습니까.

노사 모두 기부사업을 많이 합니다. 고아원에도, 양로원에도 갑니다. 하지만 이건 연대활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면죄부를 사는 행위인 거죠. 성장의 과정에서 자기들이 독식한 결과의 일부를 나눠주는 거거든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연대에 나서야 합니다. 성장의 과실을 나눠야 합니다.

어느 성서학자가 그러더군요. “예수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지,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다” 현대차도 ‘네 이웃을 사랑’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웃을 껴안아 주는 것, 비정규직 문제, 협력업체 문제가 사회적 연대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노사관계를 바꿔내는 거죠. GRI 보고서 보면 종업원에 대한 책임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사회적 책임의 첫 번째가 종업원에 대한 책임이고 노사관계에 대한 책임입니다. 협력업체에 대한 책임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좋은 차를 만들고 얼마나 친환경적이냐, 성과는 얼마냐 이런 얘기에 앞서서 들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현대차가 국민기업이 되고 현대차 노조가 국민노조가 되는 출발점은 사회적 연대입니다.

-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면 마저 하시죠.

현대차 노사관계는 한 기업의 노사관계가 아니라 사회적인 의제가 됐다고 얘기했습니다. 제가 쓴 책은 특정기업의 노사관계를 마이크로하게 접근했던 일종에 세밀화거든요.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대한 글들이 상당부분 조감도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통계적인 기법을 동원해서 사실을 밝히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통계적 방법, 조감도를 그리는 것은 흔히 연역법 방식이라 부릅니다. 연역법은 어떤 결론을 내놓고 통계적으로 검증하는 방법이거든요. 사례연구(case study)는 기본적으로 귀납적인 방식을 사용합니다. 사전적으로 어떤 의견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현장으로 하여금 나를 통해 말하게 하는 거죠. 현장 연구는 쉽게 말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호흡, 뼈와 살이 거기 들어가 있지만 조감도나 통계적 방식에서는 사람이나 삶이 숫자로 바뀌면서 추상화 돼 버립니다. 호흡이 느껴지지가 않는다는 겁니다.

노사관계에서 현장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현장이 문제의 출발점이고 해결도 현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맑스는 현장은 생산의 은폐된 공간이라고 말하는데 현장은 동시에 노사관계가 은폐된 공간이기도 합니다. 작업장을 말합니다. 그런데 작업장은 접근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노사의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글에 대한 피드백이 곧바로 옵니다. 그래서 지속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어쨌거나 현대차를 가지고 파노라마처럼 하나의 산을 두고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해 본, 그리고 이 관계 사이의 다양한 이슈들까지도 한 번 봐야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출발했던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성공했다고 하기엔 많이 모자랍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출발점으로 해서 논쟁의 공간이 꼭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집니다.

열린 논쟁이 사라진 공간에는 비난이나 인신공격이 들어서죠. 아무 것도 자라지 못하는 불모의 동토에 피어난 독버섯입니다. 현대차 노사관계가 사회적인 관계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사회적으로 논쟁하는 것도 사회적인 의무자 책임입니다. 현대차 노사관계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