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가가치 차종, 국내공장에서 생산하자
고부가가치 차종, 국내공장에서 생산하자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5.05.1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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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용 저효율 구조, 비용 낮추기보다 효율성 높여야
위기 닥친 후에 대처하려면 더 큰 피해 따른다
[커버스토리] 해외생산 확대를 통해 본 자동차산업의 현재 (2) 위기 대처 방안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말대로 자동차산업은 대표적인 ‘세계화 산업’이다. 많은 자동차 업체들은 어느 한 나라 안에 머무르지 않고 수요가 있는 현지에서 생산한다는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동차 업체들의 생산 공장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 중 외국계 업체 3사를 제외한 현대·기아자동차도 이 같은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해외공장을 가동하고 있고, 지금도 새로운 해외공장을 짓고 있는 중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서서히 다가오는 위기의 그림자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자동차 업체들이 현지화 전략에 따라 해외공장을 가동하는 것은 국내공장 노동자들에게는 고용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나아가 해외공장 생산 비중은 국내공장 생산 비중보다 더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확대되는 추세이다. 국내공장 노동자들이 느끼는 고용불안은 잠재적인 불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외공장 가동과 신·증설을 무작정 반대할 수만도 없는 실정이다. 자동차 업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현지화 전략은 치열하게 전개되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체들뿐만 아니라 부품업체들의 해외 진출도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완성차 업체의 국내 생산 물량이 당분간은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공장의 생산량을 보면 현대자동차는 2012년에 최대 생산량을 기록한 이후 약간 감소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기아자동차도 매년 근소하게 생산량을 늘리고는 있으나 증가폭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부품업체 역시 해외로 진출하는 완성차 업체를 따라 해외 진출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 같은 사정은 자동차산업 강국인 독일에서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이항구 연구위원에 따르면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향후 5년간 국내 생산설비를 15% 줄이고 생산직 고용도 3만 5천 명을 감축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부품업체의 생산규모 감축은 독일처럼 진행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완성차 업체를 정점으로 부품업체들이 수직계열화 되어 있는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구조 상 부품업체의 생산 규모는 완성차 업체의 국내 생산 물량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체의 국내 생산 물량은 크게 늘어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급격하게 줄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완성차 업체 노조들이 단체협약에 조합원의 고용 유지를 위해 생산 물량 유지를 명시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특별한 사정이 생겨 완성차 업체들이 국내공장의 생산 물량을 급격히 줄인다면 덩달아 부품업체의 생산 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우리나라 제조업의 생산기반이 상당한 정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동차산업은 다른 산업과의 연관성이 높아 연쇄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이렇게 자동차 업체들의 해외 진출에 따라 국내공장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의 위협에 노출되고 국내 제조업의 생산기반이 위축되기 전에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 정부가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고용률 증대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국내공장, 기술 허브로 특화해야

비록 지금은 현대·기아자동차의 생산량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그것이 장기적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장 수요의 감소로 생산량이 줄게 될 경우에 대비한 정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국내 제조업의 생산기반을 유지·확대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노사는 물론 전문가들도 한 목소리로 지적하는 것이 바로 자동차 업체 국내공장의 위상 재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간부는 “국내공장이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고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고급차량, 친환경차량 등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차종을 국내공장에서 생산하는 게 옳고 회사도 그런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도 “국내공장에서 고부가가치 차종이나 부품을 생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김필수 교수는 “현대·기아자동차는 대중브랜드도 만들지만 고급 차종도 만드는 투 트랙(two-track) 전략을 써야 한다”면서 “고급 차량 몇 대 만드는 게 경차 수십 대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이윤도 많이 남기고 고용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필수 교수는 이어 “현재 현대·기아자동차가 생산하고 있는 에쿠스나 제네시스, K9 등은 고부가가치 차종으로 보기에는 약하다”면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을 위협하는 중국 자동차산업과 시장규모로 경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존의 고비용 구조를 저비용 구조로 바꾸는 것도 말이 안 되는 만큼, 중국보다 앞서갈 수 있는 부분에서 현대·기아자동차만의 색깔을 만들어야 하는데 고급 차종을 개발·보급하고 고급 부품모듈을 생산하는 역할을 국내공장이 담당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급 차종, 친환경차량을 중심으로 한 고부가가치 차종을 국내공장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방향에 대해서는 노동조합 역시 공감하고 있다.

엄교수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은 “그동안 노동조합이 계속 주장해왔던 것처럼,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중앙연구소인 남양연구소가 국내에 있기 때문에 남양연구소를 정점으로 국내공장이 기술력과 품질 안정의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엄교수 실장은 “지금은 화석연료 차량보다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 중심으로 자동차산업의 환경이 변하고 있다”며 “친환경차를 개발하고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높은 기술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국내공장이 담당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치일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광주지회 부지회장도 “새로운 대체에너지차가 공론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국내시장의 범위를 넘어선 현대·기아자동차로 하여금 다시 국내 투자로 눈을 돌리게 하려면 국가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박치일 부지회장은 “양산을 위한 수소차를 가장 먼저 만들었던 곳이 현대자동차인데, 이를 국가정책으로 지원한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며 “후발주자인 일본의 자동차 업체들은 수소차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수소충전소를 설치할 경우 국가에서 최대 25억 원의 지원금을 지급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단순 세제혜택을 줌으로써 기업의 현금유보금만 늘리지 않았느냐”고 비판한다.

기아자동차지부가 <함성신문>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아자동차지부는 “해외공장 생산 차량보다 디자인과 품질이 뛰어난 차량을 국내에서 만들어낸다면 고용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해외공장의 물량이 역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단체협약을 확고히 하고, 국내공장의 기술력 향상과 품질, 생산성 향상을 통해 해외 메이커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디자인, 기술력이 앞선 신차종을 개발해야 안정적인 수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기아자동차지부는 여기에 더해 “신차 분배와 디자인 차별 구조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아자동차지부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기아자동차에 대한 투자를 기피해 디자인 차별과 신차종 차별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시장을 해외 경쟁 메이커와 동종사에 뺏길 수밖에 없으므로, 기아자동차 경영진은 책임을 다하는 경영으로 기아자동차의 중장기적 미래를 위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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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화, 투자확대, 구조개선, 그리고…

자동차 업체 노사와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방향을 실현하기 위한 과제도 제안하고 있다.

앞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간부는 “국내공장이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가려면 현재의 고임금 수준에 맞게 공정이나 시스템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고객의 니즈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려면 내부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너무 경직적”이라고 말한다.

이 간부는 이어 “유연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근로자 개인이 여러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다기능화 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투자와 장기적인 플랜도 필요하다”면서 “현대·기아자동차가 10년, 20년 뒤에도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헤드쿼터 공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변화해야 하며,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회사가 노동조합이나 현장 제조직과 가슴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노동조합에서는 고용안정과 투자확대, 그리고 약속 이행을 과제로 꼽았다. 기아자동차지부는 <함성신문>에서 “중장기적으로 국내공장의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측의 적극적인 투자와 노사 신뢰를 바탕으로 노동조합과 함께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면서 “현장 조합원들을 관리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마인드에서 벗어나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인드로 전환이 필요하며, 생산성을 향상시킬 적극적인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아자동차지부는 또 “노사 합의로 작성한 단체협약과 각종 합의서 이행과 실천이 필요”하고 이에 더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하며 주 52시간 근로시간 법개정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하루 빨리 8+8 근무형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아자동차지부는 나아가 현행 8+9 근무형태(1조 8시간, 2조 8시간+잔업 1시간)에서 8+8 근무형태(1, 2조 모두 잔업 없이 8시간 근무)로 전환할 때 9.4만 대의 생산량 감소가 예상되는데, 이를 보전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측이 제시한 방안에 대해 반박하며 투자를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엄교수 실장은 조금 다른 방향에서 고민할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주간연속2교대제에서 3교대제 전환을 고민할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엄교수 실장은 “현재 상시 주간연속2교대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유럽이나 미국의 사례를 보면 시장 수요에 따라 3교대제로 돌리기도 한다”면서 “3교대제를 실시하면 비싼 설비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설비를 가지고 추가 생산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엄교수 실장의 설명에 따르면 기존의 인원을 유지하면서 생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신규채용을 통해 가동률을 높이고, 기존의 주간연속2교대제 적용 인원 외에 심야시간대에 가동하는 인원을 추가로 투입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기업으로서는 설비투자를 최소화하면서 추가로 생산할 수 있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으며, 기존 조합원들의 고용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냐는 것이다.

엄교수 실장은 “조합원들이 고령화되고 있지만 노후 대비는 불안하기만 하고, 정년연장에 따라 청년들에 대한 신규채용은 안 되는 구조여서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다만 “지금 당장 3교대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김필수 교수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고비용 구조를 저비용 구조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현재 낭비되고 있는 요소를 줄이고 R&D 투자를 늘려서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면서 “대중 브랜드는 결국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으므로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 개발도 서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필수 교수는 또 “노사관계의 측면에서는 노사가 서로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적당히 돈으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 한 걸음 양보해야 하고, 정부가 노사정 대화 등을 통해 중재하고 있지만 좀 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선명하게 일처리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부품산업까지 고려하면 개선해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은데, 특히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은 재벌 위주로 수직구조화, 하청계열화가 심하다”면서 “부품산업이 독자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육성해서 독일의 ‘히든 챔피언’과 같은 강소기업을 늘려 산업의 기반을 튼튼하게 해야 하고, 산업 외의 문화적인 부분도 활성화해 균형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직계열화된 자동차산업 구조를 수평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항구 연구위원도 지적하고 있다. 노사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것도 김필수 교수와 다름없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현대·기아자동차에서는 노사분규가 지속적으로 일어나지만 위기를 맞거나 근로자들의 임금이 하락한 경우가 없는데, 이런 인식이 수입차 수요를 촉발하고 있다”며 가장 먼저 노사관계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이어서 “부품업체의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완성차 업체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면서 “현대·기아자동차의 1차 부품업체는 890여 개에 이르지만 세계적인 수준의 부품업체는 10여 개에 불과한 만큼, 부품업체가 완성차 업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는 현대·기아자동차가 정부의 지원 없이도 자동차산업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다른 산업에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자동차산업을 유지하고 강화한 나라만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위기가 닥치고 그때 가서 조정할 경우 더 큰 피해가 예상되므로, 노사정이 국내 자동차산업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선제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현대·기아자동차의 영업이익은 당분간 감소할 것으로 보여 어쩌면 이미 늦었다고 볼 수도 있으므로, 노사를 떠나 국내 자동차산업을 유지·확장할 수 있는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상에서 해외공장 생산 비중 확대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를 살펴봤다. 아울러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도 들어봤다. 그러나 진정한 위기는 당장 눈앞의 이익에 취해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10년, 20년 후의 위기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위기는 훨씬 더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