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가?직업인? 우리도 ‘꿈’꾸며 살고싶다
운동가?직업인? 우리도 ‘꿈’꾸며 살고싶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12.10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채용직 간부들의 고민
정체성 혼란·내부 갈등… 채용직 간부는 지쳐간다

“끔찍해요.”

한 연맹의 채용직 간부로 일하고 있는 K씨는 지금 일하고 있는 연맹에서 ‘정년퇴직’ 한다는 생각을 해 봤냐는 질문에 이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스스로 노동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지만 현실의 매서운 벽에 가로막힌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그는 지금 현재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공간은 많은 활동 공간의 한 곳일 뿐이라고 자위하면서 자신이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자문해 보는 일이 잦아졌다고 대답했다.

노동조합 상급단체의 경우 일반적으로 조합원들의 선거로 뽑힌 선출직 임원, 각 노동조합에 적을 두고 일시적으로 파견나와 업무를 보는 파견직, 그리고 연맹 등에서 직접 ‘고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채용직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선출직, 파견직과는 다른 환경에 놓인 채용직 간부들의 고민을 들어봤다.

‘이직률’ 높아지는 채용직 간부들

요즘 채용직 간부들의 ‘이직률’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모든 악조건을 무릅쓰고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신념으로 채용직 간부 일을 맡았던 이들이 왜 떠나고 있는 걸까.

이들을 옥죄고 있는 것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채용직 간부로 일한지 5년이 됐다는 L씨는 “처음 들어올 때는 노조운동이 가지는 역동성과 조직력, 사회적 힘에 기대를 걸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L씨는 점점 회의에 빠져 들었다. ‘활동가’이고 싶었는데 주어지는 일이나 주변의 시선은점점 ‘직원’이 되어가고 있더라는 것. 이러다보니 ‘내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만족을 찾아 여기 왔는데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하는 회의감이 드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고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이 또한 무시할 수만은 없다. 지방에서 사회단체 활동을 하다가 중앙으로 올라왔다는 S씨는 “솔직히 벅찬 것이 사실이다. 아내와 아이 하나가 있는데 채용직 간부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지만 나같은 경우는 혼자 일한다. 아이 학원을 거의 보내지 않고 씀씀이를 줄이는 방식으로 버티지만 가끔 막막할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15년 일하니 빚이 9천만원

15년째 간부 일을 하고 있다는 L씨는 “지금 빚이 9천만원에 달한다. 돈 생각했다면 절대 못 버텼을 것”이라고 씁쓸해 했다.

실제 지난 2000년 조사에 따르면 양대 노총 중앙에서 일하는 채용직 간부들 중 연봉 1000만원 미만이 12.1%였고, 2000만원 미만은 70%를 넘었다. 지방의 경우는 더욱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현실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선출직 일부와 파견직의 경우 원 소속 기업으로부터 임금을 받기 때문에 연봉이 3000만~4000만원을 훌쩍 넘는 경우도 있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파견직은 돌아갈 현장이 있지만 채용직의 경우 그만두면 갈 곳이 없다는 점도 이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의 하나다.

하지만 이런 문제보다 더욱 큰 벽은 자신의 꿈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환경에 있다. 채용직 간부 L씨는 “정치적 입장에 따른 ‘줄서기 강요 문화’가 가장 커다란 벽”이라고 털어놨다. 많은 채용직 활동가들은 정치적 입장 차이에 따른 행태가 비합리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모 연맹의 사무처 직원 징계 문제에서도 이같은 정치적 편가르기 양상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어느 쪽에 잘잘못이 있느냐는 뒷전이고 ‘누가 우리편’인가가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모 연맹 간부 P씨는 “파벌로 인해 정보가 공조직을 통해 공유되는 게 아니라 파벌 내부에서 독점적으로 공유된다. 사업집행도 역시 특정 파벌이 독점하면서 다른 파벌은 배제시켜 소외감을 느끼도록 한다.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아예 전문성과 무관한 다른 부서로 발령내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또다른 연맹의 K씨는 “사조직이 공조직을 넘어서려는 것이 문제”라며 “공조직 내에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줄서기’ ‘자기 조직 감싸기’ ‘지침 따라가기’ 등을 척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용직 간부들은 노동조합의 전문성을 담보하는 기본적인 골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조직 시스템이 재생산,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아울러 이들이 충분한 자기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훈련 기회를 확대하고 재충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도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실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