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 1년 만에 반대로?
‘기울어진 운동장’ 1년 만에 반대로?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7.1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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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 동일적용에 반발, 일부 사측위원 표결 불참
노동계, ‘수정안은 없다’ 경영계 압박 이어가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지난 정부 4년 내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은 노사 간 힘의 균형이 무너져 경영계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진행되면서 ‘반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경영계의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에 노동계는 기대를, 경영계는 우려를 나타내며 이전 정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러던 중 최저임금위원회(위원장 어수봉, 이하 ‘최임위’)는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마련된 노사 간 교섭의 자리였다.

지난달 29일 열린 6차 최임위 전원회의에서 노동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2018년 최저임금 요구안으로 시급 1만 원을 내놓았다. 여태껏 동결 내지는 삭감을 주장했던 경영계는 올해 최저임금(6,470원)보다 155원 오른 6,625원을 요구안으로 제출했다.

3,375원이나 되는 간극을 어떻게 좁혀나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기도 전에 회의 진행방식을 놓고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입장을 달리 했다.

5일 열린 8차 전원회의에서 노측위원들이 ‘사업의 종류별 구분적용(차등적용)’ 안건을 우선 의결한 후 ‘최저임금 수준’을 순차적으로 논의하자고 했으나, 사측위원들은 두 가지 안건을 묶어서 논의하자고 맞섰다.

표결 결과 재적위원 27명 중 18명의 찬성으로 노측위원이 제시한 안이 받아들여지면서 사측위원들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노·사·공익위원 각 9명으로 구성되는 점을 감안할 때, 공익위원들이 노측위원의 안에 찬성표를 던진 셈이다.

이어 최저임금 적용 대상을 놓고 노사가 공방을 벌였다. 사측위원들은 ▲PC방 ▲편의점 ▲슈퍼마켓 ▲주유소 ▲이·미용업 ▲일반음식점 ▲택시운수업 ▲경비업 등에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주장했으나 노측위원들은 동일적용을 내세웠다.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를 놓고 표결에 들어갔고, 17명의 위원이 업종별 동일적용에 찬성했다. 사측위원 5명은 앞서 회의 진행방식 안건 표결 결과에 반발하며 불참했다. 업종별 동일적용에 찬성표를 던진 17명의 위원 중 노측위원 9명을 제외한 8명은 공익위원이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한 사측위원들의 불만은 더 커졌다. 급기야 지난 10일 열린 9차 전원회의에는 사측위원 9명 중 4명이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9차 전원회의는 별다른 소득 없이 양측이 “차기 회의 전까지 수정안을 준비하겠다”(사용자위원), “수정안은 차기 회의 전까지 논의하겠다”(근로자위원)는 입장만 표명한 채 마무리됐다.

8차 전원회의에서 이루어진 두 번의 표결에서 공익위원들이 근로자위원 측이 제시한 안에 손을 보태면서 ‘공익위원이 노동계를 두둔한다’는 사용자위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1년 전과는 반대의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1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1만 원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반면 노동계는 ‘반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 근로자위원은 “어차피 공익위원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구조인데, 지금 공익위원 중 한 명만 빼놓고 박근혜와 황교안이 임명한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오히려 노동계는 일부 사용자위원들이 회의에 불참한 일을 놓고 “후안무치함을 보인다”며 경영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양대 노총은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최저임금 1만 원을 2~3인 가족이 빚지지 않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라면서 “수정안은 없다”는 입장에 못을 박았다.

한편 오는 12일과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10·11차 전원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이미 법정 심의기한을 열흘 이상 넘긴 가운데 11차 전원회의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액이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 1년 만에 노사의 입장이 뒤바뀐 상황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과 더불어 결정구조를 바꾸기 위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지도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