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없으면 ‘사슴’은 떠난다
‘풀’이 없으면 ‘사슴’은 떠난다
  • 함지윤 기자
  • 승인 2007.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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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일터를 위한 바스프 여수공장의 선택
① 흑자와 임금동결, 그리고 외자유치

외투기업 노사의 현실적 고민, 투자와 고용의 상관관계

지난 10년간 출렁인 한국바스프(주) 여수공장 노사관계

 

외국인투자기업(이하 외투기업)은 ‘사슴’에 비유되곤 한다. 처음엔 투자를 통해 고용을 창출하는 등의 좋은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그건 풀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풀이 없어 더 이상 배를 채울 수 없다면 사슴은 더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 손해를 보면서까지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외투기업에겐 없다.


사슴에겐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슴 탓만을 할 수도 없다. 있는 풀을 다 뜯기고 벌거숭이가 될 것이냐, 새로운 풀을 계속 키워 현재 사슴만 잡아놓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슴까지 끌어들일 것이냐. 이것이 현재 외투기업들이 안고 있는 최대 과제다.

 

▲ 한국바스프 여수공장 전경


승승장구, 모든 역량이 성장에 집중

국내에 5개의 공장을 가지고 있는 한국바스프(주) 또한 본사는 독일에 있는 100% 외투기업이다. 한국바스프(주) 5개 공장 중 하나로 여수석유화학산업단지에 자리 잡고 있는 여수공장은 외자유치(4억불)에 힘입어 2001년부터 세계적 규모의 우레탄 생산 공장으로 성장해 왔다. 이것은 독일 바스프 본사가 여수공장을 ‘아시아 우레탄 생산거점기지’로 육성한다는 ‘BASF Global 경영전략’에 의한 것이다.


이런 방침에 따라 공장 신·증설 프로젝트가 진행돼 신규 고용창출 및 원료공급 관계사 증설 등 국가 및 여수지역에 상당한 경제적 유발효과를 발생시켰다. 1988년에 독일 바스프와 한화의 합작투자로 설립된 여수공장은 1997년 바스프가 한화 지분을 인수한 후 승승장구 성장하고 있었다.


공장의 모든 역량은 성장에 집중됐고 2004년 전까지 교육도 직무교육 중심으로 이뤄질 정도로 나머지 소프트웨어는 등한시 됐다.


2004년 파업은 노사 모두에게 전환점

그러다 2004년 7월 여수산업단지 공동투쟁본부(이하 공투본) 차원에서 이뤄진 동맹파업으로 9일간 공장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독일 바스프 본사 경영진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각인됐다. 당시 파업은 한국바스프(주) 여수공장 내부환경 요인보다는 여수산단 내 공투본 차원의 조직적 대응에 동참하기 위해 발생한 파업이었다.


이후 여수지역 공투본에 의한 집단적·대립적 노사환경으로 상시적 노사 불안정 상황이 지속되자 독일 바스프 본사 경영진은 여수공장에 대해 우려의 시각을 갖게 됐다. 따라서 2005년 당시 생산시설 확충을 위해 8만5000평의 여유 부지를 확보하고 있었으나 독일 바스프 본사의 설비투자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에 놓였다.


대신 독일 바스프 본사는 한국보다 제조원가경쟁력이 우수한 중국이나 인도로의 진출을 앞당겨 중국 상하이 남쪽 카오징에 여수공장과 같은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규모가 훨씬 큰 공장을 건설해 2006년 8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결국 2004년도 파업은 노사 모두에게 변화의 전환점이 됐다. 노조는 투자유치가 되지 않아 고용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절박성을 느끼게 됐고, 회사는 그전까지 이뤄졌던직무중심 교육과 노사관계에 대한 경영진들의 생각이 바뀌게 됐다.


달라진 최고경영자 태도와 노조의 현실 직시

2004년 파업 전까지 바스프 여수공장 노사는 대화도 없고 관계가 미진했다. 따라서 상대에 대한 막연한 불신을 하고 있었다. 노조 김현열 위원장은 그간 우리나라 노조활동이 전반적으로 그러했듯이 “그땐 들이박으면 뭐든지 될 줄 알았었다”고 술회한다.


하지만 그해 매년 열리는 세계 바스프 노조 위원장 회의에서 들은 바스프 인도네시아 공장 철수과정은 외투기업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모르면 당한다”란 생각에 그때부터 노조는 사장을 참석시켜 경영설명회를 갖는 등 노조간부들도 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고 노조의 방향성을 설정하게 됐다.


그간의 불신을 깨고 이것이 가능하게 했던 것은 최고경영자의 태도였다. 당시 사장이었던 안청신 사장은 2004년 파업 당시 여수에 상주하면서 “파업을 하면서도 협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냐”며 먼저 대화의 창을 열고 진솔함과 열정으로 노조간부들을 감동시켰다. 최고경영자(CEO)가 먼저 노조 간부를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그 위치나 입장을 이해해주려는 태도를 보여준 것이 노조 간부들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여수공장 노사는 직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고용안정’이고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노사관계의 구조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에 노사는 외투기업에 맞는 새로운 노사문화 정립을 위한 방안들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 한국바스프(주)

 

신규투자 유치를 이뤄내기까지

하지만 노사관계를 대립적으로 설정하고 있던 당시 여수산단 노동조합 정서 때문에 새로운 노사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외부에서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일부 조합원들은 ‘노사협력’이라 하면 어용노조를 떠올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신뢰가 조금씩 쌓이고 외투기업으로서 특성과 여수공장의 현황 및 직원들의 요구에 대한 인식이 이뤄지자 조금씩 변화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005년 8월 한국바스프(주) 여수공장 노동조합은 대립과 투쟁적 노사문화를 지양하고 신규투자 유치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요지의 ‘BASF 2015 실현을 위한 우리의 결의’를 발표했다.


노조가 먼저 의지를 천명하고 적극적으로 신규투자 유치에 나선 것이다. 또 회사가 흑자임에도 불구하고 2007년에 임금동결을 선택해 투자유치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지난 6월 1일 한국바스프(주) 여수공장은 6300만 달러(600억원) 규모의 투자유치를 이뤄냈다.

 

이런 한국바스프(주) 여수공장의 사례를 두고 일부에선 임금동결이나 투자유치 등 단편적인 결과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노사 모두 “그게 전부는 아닌데”라며 안타까워한다. 외부의 우려와 비난 속에서 노사가 고민했던 바는 무엇이고, 어떤 노력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