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영의 콕콕] 지키지 못할 약속
[김란영의 콕콕] 지키지 못할 약속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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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콕’은 야무지게 자꾸 찌르는 모양을 뜻하는 의태어입니다.
상식과 관행들에 물음표를 던져 콕콕 찔러보려 합니다.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간단한 문제처럼 보였다. 지난해 우정사업본부가 노동조합과 약속했던 것을 지켜달라는 것. 우체국이 적자였던 것은 작년에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올해 새삼 적자가 합의를 지키지 못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5월 전국우정노동조합과 올해 7월까지 토요일 배달을 폐지해 주5일제를 전면 시행하기로 합의하고, 같은 해 10월엔 노사정이 참여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의 권고를 받아들여 올해 집배 공무원 1,000명을 증원 또는 비정규직 집배원 1,000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두 약속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집배원들은 약속을 지키라며 다음 달 9일 총파업을 경고한 상태다.

처음엔 노동조합이 아주 새로운 요구를 들고나온 것이 아니기에 “안 된다”는 우정사업본부의 입장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애초부터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다면 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것이 아닌가?

하지만 노조 관계자는 “사용자측은 노조와 합의를 지키지 않아도 아쉬울 것이 없다”며 “강성주 본부장 임기가 올 10월에 끝이 난다. 일단 합의로 생색을 낸 뒤에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차피 곧 떠날 사람이니 약속을 지킬 이유가 더더욱 없다는 것이다. 괜히 지켰다간, 우정사업본부의 적자 규모를 더 키워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눈치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노동계에 갓 발을 디딘 기자에게나 노사 합의가 깨지는 일이 ‘별일’이지, 돌이켜보면 노사 합의는 물론 노정 합의도 쉽게 깨져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밥을 끊고, 머리를 밀었고, 굴뚝에 올라가지 않았던가. 분명히 별일인데도 우리 사회에선 더 이상 별일이 아닌게 됐다.

누가 사기꾼인지, 누가 무임승차자인지를 사회에 알려주는 일. 그로써 사회를 보호하는 일.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것이 언론인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언론이 본래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신뢰’가 얼마나 뿌리 깊게 중요한 문제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사람! 이 얼마나 든든한 말인가. 반대로 불신이 파다해선 불안하기 짝이 없다. 불신은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다.

약속을 번복하는 일은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다. 동시에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다. 서로 믿을 수 없다면 연인 간의 사랑도, 가족 간의 화목도, 노사 간의 협력도 모두 지속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러한 ‘무의미’가 이어져 사회 전체가 학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엔 지금처럼 노사 합의가 깨져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가 된다.

일례로 ‘설마 삼성인데’, ‘설마 YG인데’. 도리어 이전처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수사하지 않은 검경 수사팀이, 노사 합의를 잘 지켜낸 사업장이 주목을 받게 된다.

다시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친구들과 함께 ‘새끼손가락 고리 걸고 꼭꼭 약속해’를 부르며 신뢰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까? 별일이 아닌 것을 별일처럼, 거짓말쟁이를 사회에 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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