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손으로 풀을 뽑을 수 있겠습니까?"
"이 손으로 풀을 뽑을 수 있겠습니까?"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07.02 20:00
  • 수정 2020.02.21 01: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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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들, "본질은 정부의 정규직전환 정책 아닌 불법파견"

 

동광산영업소 요금수납원 윤서구 씨의 손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동광산영업소 요금수납원 윤서구 씨의 손.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그는 뭉툭한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이 손은 무안-광주고속도로 동광산영업소 용역업체 소속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윤서구 씨의 오른손이다. 11년 동안 일한 그는 어제(1일) 해고됐다. 한국도로공사가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설립해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정규직 전환 방안에 거부했기 때문이다. 혼자 키우는 두 아들을 집에 두고 서울에 올라온 그는 어제부터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 중이다. 그가 원하는 건 고용안정, 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이다.

그는 눈물을 훔치던 뭉툭한 오른손을 내밀며 “이 손으로 풀을 뽑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도로공사 측은 자회사 전환을 거부하고 직접고용을 원하는 노동자들에게 일정 기간 직접 채용을 제안하기도 했다. 도로정비, 풀 뽑기 등 조무업무다. 그가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정 기간이라는 단서가 붙은 이유는 현재 그가 도로공사 측이 항소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어서다. 대법원 판결에서 그가 승소하면 직접고용 형태를 유지하고, 패소하면 다시 해고다. 고용안정이 간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가 고용안정을 바라는 다른 이유는 도로요금소의 '장애인 고용지원금 장사'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는 장애인 노동자의 고용촉진을 유도하기 위해 의무고용률(민간: 3.1%, 공공: 3.4%)을 넘겨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지원금을 지급한다. 장애 등급에 따라 남성은 30~50만 원, 여성은 40~60만 원이다.

그런데 도로요금소가 이 제도를 악용해 보조금 최고액을 받을 수 있는 수급 기간이 지난 장애인들을 내보내고 다른 영업소 장애인 노동자로 대체해왔다. 그는 "나는 3년마다 대체되는 물건이 아니다"라며 "이건 인신매매나 다름 없다"고 호소했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도로요금소의 장애인고용률은 25.1%다. 요금수납원 4명 중 1명이 장애인이며 이들은 3년마다 해고의 불안을 마주하는 셈이다.

윤서구 씨를 비롯한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이하 민주일반연맹) 소속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 300여 명은 1일 도로공사의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일어난 대량해고 해결을 정부에 촉구하며 서울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2박3일 노숙농성 중이다.

도로공사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에 따라 지난해 9월 자회사(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설립해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방식의 정규직 전환 방안을 내놨다. 6,500여 명의 수납노동자 중 5,100여 명이 자회사로의 소속 전환에 동의했으나 1,400여 명은 이를 거부한 채 도로공사 본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자회사 전환에 거부하고 자동 해고된 이들은 문제의 본질이 정규직 전환 정책보다 도로공사의 '불법 파견'이라고 본다. 용역업체 소속인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2013년 도로공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 1,2심 재판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법원이 수납노동자들이 사측의 근로감독과 지휘를 받고 있어 파견법 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 소송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민주일반연맹은 "대법원 판결만 남겨둔 상황에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발표가 있었고, 한국도로공사는 불법파견이라는 불법을 피하기 위해 자회사를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며 "도로공사가 사용자라는 판결이 났기에 정규직 전환 정책과 상관없이 국가 파견 문제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면 되는 문제인데, 정규직 전환 정책을 활용해 자회사 전환으로 법원 판결까지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도로공사 측은 <참여와혁신>과 통화에서 "대법원 판결은 내년으로 예상한다"며 "그 전까지 장애를 가진 노동자분들도 조무업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방안 등에 대해 추가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자회사 전환 비동의자들의 합류 기회는 열려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