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73일 맞은 가스점검원 "2인 1조 도입 정부가 나서야"
파업 73일 맞은 가스점검원 "2인 1조 도입 정부가 나서야"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07.31 18:42
  • 수정 2019.07.31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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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도시가스노조, "최소한의 안전 대책인 2인1조 제도 정부가 마련해야"
울산 도시가스노조 소속 안전점검원들이 31일 오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울산 경동도시가스 안전점검원의 안전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울산 도시가스노조 소속 안전점검원들이 31일 오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울산 경동도시가스 안전점검원의 안전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가스 안전점검원의 노동이 이뤄지는 장소는 고객의 '집'이다. 사적 공간인 집에서 혼자 일하는 1인 가구방문 노동자인 가스 안전점검원은 고객의 성폭력, 감금, 욕설 등 위협에 대처하기 어렵다. 

지난 4월 울산 경동도시가스 안전점검원이 고객에게 감금당한 채 성추행 위협을 받았던 곳도 고객의 원룸이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해당 노동자는 5월 17일 자살까지 시도한 바 있다. 동료의 극단적 선택을 목격한 가스 안전점검원들은 더 이상 혼자 근무할 수 없다며 경동도시가스에 2인 1조 근무제도 도입을 요구하며 5월 20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이 73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가스 안전점검원들이 31일 청와대 앞에 모였다. 정부에 도시가스 점검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울산지역지부 경동도시가스센터분회(분회장 김대진, 이하 도시가스노조)는 이날 오전 11시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같은 1인 가구방문 노동자들의 고객에 의한 폭언 및 폭행 등의 문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보고되어 왔다"며 "더 이상 1인 가구방문 노동자에게만 안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정희 울산 도시가스노조 여성부장에게 울산 시청 앞에서 두 달 넘게 파업 투쟁을 이어나가는 중에 왜 청와대까지 왔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 등을 물어봤다.  

지난 5월 자살 시도했던 안전점검원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병원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받으며 집에서 쉬고 있다. 지난달 산재신청을 한 뒤 결과도 기다리고 있다. 해당 노동자는 정직원이 되기 전 잠깐 아르바이트할 때 아랫도리를 벗고 있는 고객을 만난 적이 있고, 4월 초 고객에게 감금을 당한 뒤에도 꽉 달라붙는 팬티만 입고 있는 고객을 마주쳤다. 트라우마가 심각한 상황이다. 파업 현장에 온 적이 있는데 우리에게 굉장히 미안해하더라. 그런데 파업은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다. 피해자와 똑같은 조건에서 일하는 우리도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다.  

파업 73일 차다. 청와대 앞까지 온 이유는? 

임금 인상이나 특혜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건데 이렇게 시간을 오래 끌 줄 몰랐다. 경동도시가스는 울산시나 정부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다. 자치단체장인 울산시장은 정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눈치를 본다. 어디에서도 우리의 2인 1조 안전대책 마련 요구에 제대로 답을 해주는 곳이 없다. 수 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찾아가서 증언대회도 했다. 지난 9일에는 국무총리비서실에서 간담회도 진행했지만 답이 없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청와대까지 온 거다. 

가스 안전점검 업무 2인 1조 운영이 사회적 비용/편익 관점에서 합리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동안 우리는 안전에 무감했다. 업무량이 워낙 많다 보니 고객이 밤늦게 오라고 하면 가고, 팬티만 입고 문을 열어주는 상황 정도는 반복돼 위험한 업무 환경에 무뎌진 상태였다. 동료가 쓰러지고 스스로 목숨까지 끊는 상황은 상상도 못 했다. 그때 머리에 뭐 하나 맞은 것처럼 멍했다. 그런데 노동자의 안전 말고 무엇이 편익이란 말인가. 경동도시가스는 지난해 340억 원에 달하는 순이익을 남겼다. 연간 20억 원이면 울산지역 2인 1조 안전점검을 운영할 수 있다. 이윤의 6%다. 

댓글 중에 안전점검원을 여성이 아닌 남자로 바꾸라는 의견도 있더라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여자 남자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웃긴다. 여자든 남자든 어떤 고객을 만날지 모르는 일이다. 들은 얘기인데 울산 경동도시가스에서도 초기엔 남성 안전점검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혼자 사는 여성 등 고객들이 문을 잘 안 열어주는 경우가 많아 여성으로 바뀌었다고 들었다. 지금 울산 경동도시가스에서 일하는 안전점검원 71명은 모두 여자다.  

앞으로 계획은? 

아무 결과물이 없는데 업무에 복귀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요즘 날도 더워서 숨이 턱턱 막힌다. 회사에서는 우리가 쓰러질까 봐 걱정한다는데 쓰러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빨리 대책을 내놓았으면 좋겠다. 우리뿐 아니라 수도검침, 방문상담, 재가요양보호, 방문간호, 다문화가정 상담 등 가구방문 노동자들은 정신적 신체적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안전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싸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