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묵은 문제, 현장에서 풀어야 한다
50년 묵은 문제, 현장에서 풀어야 한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8.08.0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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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간 이해관계 엇갈려 대책도 가지각색
각 주체 제자리 찾기가 관건

1주일 만에 막을 내린 2008년 화물연대의 파업. 화물운송사업 주체들은 파업을 마무리하면서 화물연대가 정부와 합의한 내용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 정부가 약속한 유가보조금 외에 직접비용 인하 등 수익보전을 위한 성과를 남겼지만 운임 인상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변화는 없다는 주장이다.

화물연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들의 주장처럼 세상이 바뀌었을까? 정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범위를 좁게 잡아 2003년부터 올해까지 5년만 보더라도 변한 것은 급등한 비용과 조금 오른 운임, 그리고 약간의 직접비용 인하를 위한 조치뿐이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표준요율제 시행 합의는 했지만

그동안 정부는 다단계 주선을 줄이고 거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화물운송가맹점 사업이나 종합물류기업 인증제, 우수 화물운수업체 인증제 등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는 시장에서 냉대를 받았다. 화물시장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탁상공론’에 그쳤기 때문이다. 우수 화물운수업체로 인증 받아도 특별한 인센티브가 없고, 당장 눈앞의 문제를 덮기 위한 제도로 사후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시장의 반응이다.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에도 불구하고 화물연대는 올해 파업에서 ‘표준요율제’ 시행을 전면에 내세웠다. 표준요율제는 유가 등 원가를 반영해 최저운임 기준을 정부가 제시하고 이를 근거로 시장운임을 결정하는 제도이다. 화물차주에게는 일종의 최저임금인 셈.

화물연대는 올해 파업을 통해 표준요율제 조기 도입을 위해 총리실 산하에 화물운임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연구용역을 시행하기로 정부와 합의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전국화물자동차운송주선사업연합회 한영태 전무이사는 “화주로부터 받는 운임에 상관없이 화물차주는 일정한 운임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라며 “중간에 낀 사업자는 표준운임 이상을 화주로부터 받아야 하는데 만약 화주가 표준운임을 거부하면 법 취지와는 무관하게 사업자만 죽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화물연대 박상현 법규부장은 “2003년에 이어 화물연대가 올해 다시 파업한 이유는 화물차주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라며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운임을 현실화하자는 게 표준요율제”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팽팽히 입장이 맞서는 가운데 화물운임관리위원회에서 어떤 결론이 내려질 것인지에 따라 화물운송시장은 또 한 번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수 있는 불안요소를 품고 있다.

한 전무는 “지입제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두고 또다시 지엽적인 문제를 건드렸다”고 주장한다. 한 전무에 따르면 “지입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어떤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다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 때문에 “이번 화물연대와 정부의 합의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게 한 전무의 생각이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같은 문제 엇갈리는 대책

현재 화물운송사업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단계 및 지입제 등 전근대적 화물운송 시스템이다. 물론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대해서는 화물연대와 주선사업자의 입장이 다르기는 하다. 하지만 이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하고 있다.

박 부장은 “지입제는 기업이 부담해야 할 몫을 지입차주에게 전가시키는 제도”라고 규정한다. “운송사업자가 부담할 비용이 지입제를 통해 차주에게 전가되고 운송사업자는 중간에서 수수료만 챙기는 기형적인 구조”라는 것.

이에 대해서는 한 전무도 같은 생각이다. “각 주체들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화물운송시장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법에 규정된 대로 화주, 운송사업자, 주선사업자, 차주가 각각의 역할을 하면 된다”는 것. 그의 주장은 “운송사업자가 운송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한 전무는 “운송회사는 운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입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하며 “운송회사가 운송은 하지 않고 지입차주에게 수수료만 챙기는 것이 화물운송시장을 왜곡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진단한다.

문제 진단은 같지만 해결방법은 엇갈린다. 박 부장은 “우선 법적으로 인정되는 화주-주선-운송-차주의 4단계로 거래단계가 축소돼야 한다. 주선료를 일정한 비율로 묶으면 불법 하도급 업자는 시장에서 정리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할 수만 있으면 고용돼서 급여를 받으며 일하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기업이 차량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노동자를 고용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기 차를 가지고 지입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모든 문제는 기업이 물류를 외주화 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진단한 뒤 “표준요율제를 통해 운임을 규제하면 화주가 운임을 공개하게 될 것이고 운송알선업자들이 정리될 수 있다. 이것이 화물시장 개선의 단초”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 전무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지입제를 법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지입차주를 보호하지 못한다. 지입제 자체를 없애는 것이 최선이지만 당장 가능하지 않다면 현재 존재하는 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지입제를 법적으로 규정해 지입차주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화주와 차주를 누가 연결하는가? 대부분 주선사업자가 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공차율을 낮추고 긴급한 화물을 처리하는 등 순기능을 담당하고 있는데 주선료 상한제를 실시하게 되면 주선사업자에게 시장에서 나가라는 것 아니냐? 만약 그렇게 되면 누가 화주와 차주를 연결하겠는가? 주선료 상한제는 문제를 잘못 짚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대책이 엇갈리고 있어 화물시장에 고질적으로 굳어진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한 전무의 말처럼 “이미 50년 넘게 굳어진 관행을 한 순간에 고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어디에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지 정부와 당사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박 부장은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은 서로가 기득권을 버리는 것이다. 자기 기득권만 고집하면 문제는 영영 안 풀린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물류의 새 판을 짜기 위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화주를 비롯한 각 주체가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는 화물시장의 현실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책상 앞에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파악하고 이를 반영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