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노동자가 주목한 이탈리아 필수유지업무제도 어떻길래?
공공부문 노동자가 주목한 이탈리아 필수유지업무제도 어떻길래?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12.18 19:55
  • 수정 2019.12.18 2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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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과 쟁의권의 조화’ 당초 입법취지 무너져
공공운수노조, “내년 ILO에 추가 제소할 것”
17일 오후 공공운수노조 교육장에서 열린 필수유지율 결정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17일 오후 공공운수노조 교육장에서 열린 필수유지율 결정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노동조합법 제42조와 제43조는 필수유지업무에 관한 조항이다. 흔히 필수유지업무제도라고 말하는 이 법률은 2006년 노동조합법 개정으로 도입됐고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개정 취지는 쟁의권 행사와 공익보호가 조화를 이룰 수 있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필수유지업무제도가 개정 취지와 다른 과도한 쟁의권 제약이라 비판한다. 이들은 필수공익사업 범위와 해당 사업의 업무 범위가 너무 넓고, 필수유지업무비율(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업무를 유지하는 인원 비율)이 지방노동위원회에서 객관적 기준 없이 높게 결정된다는 것을 주요 이유로 들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이탈리아 필수유지업무제도에 주목했다. 17일 오후 공공운수노조는 교육장에서 운수산업협의회 4차 연중워크숍을 열고 ‘필수유지율 결정제도 개선 방안’을 토론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신수정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위원은 이탈리아 필수유지업무제도에 주목할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했다. ▲이탈리아도 공공부문 파업에 대해 별도의 규제법을 두고 있다는 것 ▲대한민국과 가장 유사한 필수공익서비스의 개념을 사용하는 것 등이다. 이렇듯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노동자들은 파업권을 상당히 보장받고 있다.

이탈리아는 필수업무보장위원회를 두고 필수유지업무비율을 결정할 때 비율의 상한선이 있다. 통상 제공하는 필수공익서비스의 평균 50%, 통상 사용되는 인원의 평균 1/3이 상한선이다. 보통 60%~100% 사이로 필수유지업무비율이 정해지는 대한민국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필수업무보장위원회 위원들의 결정을 돕기 위해 노동 현장을 아는 전문가들이 전문 연구원이 참여한다. 토론회에 참여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우리나라 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들이 현장 업무 특성을 알지 못해 객관적 기준 없이 사용자 편향적으로 유지비율을 정하기도 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심지어 공익위원 중 유아교육과 교수도 있다는 지적이 토론회에서 오고갔다. 결국, 이탈리아 사례처럼 업종별 전문성을 노동위원회가 담보해 공익과 노동자의 파업권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우리나라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자들은 사측과 필수유지업무협정을 맺거나, 노사 자율로 협정이 불가능해질 경우 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이 있기 전까지 파업에 들어갈 수 없다. 불법파업으로 간주되고 노동자들은 손해배상청구 등의 압박을 받는다. 이탈리아의 경우는 불법파업은 아니다. 다만, 필수업무보장위원회의 결정을 30일 이내에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 벌금이나 노동조합 활동 3개월 정지 등의 조치는 있다.

이탈리아 등 해외 각국의 필수유지업무제도 사례를 종합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토론회 참가자들의 중론이었다. 특히 현행 필수유지업무제도는 공공부문 신생노조의 노동조합 활동에 큰 제약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토론회에 참여한 이석주 공공운수노조 용인경전철지부장과 정문성 공공운수노조 서해선지부장은 신생노조에 현행 필수유지업무제도가 어떻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하는지 설명했다.

그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신생노조가 필수유지업무협정을 처음 맺게 되면 법령상 갱신 의무를 따로 두고 있지 않아 첫 결정이 평생 따라다니기 때문에 첫 결정에 상당한 고심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대부분 노사 자율로 협정을 맺지 못한다. 결국 지방노동위원회 결정을 따르는데, 지연 결정으로 파업 동력이 약해진다고 지적했다. 파업을 결의했지만 파업을 할 수 있을지, 몇 명의 인원이 함께 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결정이 된다더라도 사용자 편향적 유지비율 결정으로 파업권을 강하게 발휘 할 수 없고, 이는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약하게 만든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토론회는 임월산 공공운수노조 국제국장이 필수유지업무제도 개정 정책사업을 발표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공공운수노조는 필수유지업무제도로 인해 쟁의권을 제약받는 사업장 사례를 모으고 이탈리아 등 해외 사례를 연구해 내년 ILO 결사의자유위원회에 제소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