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키워드 : 가족
[언박싱] 이 주의 키워드 : 가족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1.18 07:22
  • 수정 2020.01.18 0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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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 #문중원 #서지윤 #쌍용차복직대기자

설날을 일주일 앞둔 1월 둘째 주 키워드 언박싱(unboxing)입니다. 언박싱은 구매한 상품의 상자를 여는 과정을 의미하는데요. 시청자들은 영상을 보면서 어떤 상품이 나올지 기대하고 상품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재미를 얻습니다.

설 전 <참여와혁신>이 쓴 여러 기사 중 세 기사가 하나의 키워드로 묶였습니다. ‘가족’입니다. 가족에 관한 세 이야기 지금부터 하나씩 시작합니다.

이 주의 키워드 : 가족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자신들의 부조리함을 이야기할 때, 부조리의 중압감에 스스로 하늘의 별이 됐을 때 그들의 곁에는 가족이 함께 있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같이 싸웠고 대신 싸웁니다. 이번 주는 노동자들의 가족이 유난히도 많이 보인 한 주였습니다.

49재를 마치고 헛상여 행진을 준비하는 故문중원 기수의 유족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49재를 마치고 헛상여 행진을 준비하는 故문중원 기수의 유족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1월 16일]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지내는 49재 ... 기수는 말이 없었다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경마 기수였던 故문중원 기수가 한국마사회의 운영 구조 상 부당함을 지적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49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조계사 극락전에서 故문중원 기수의 49재가 열렸습니다. 49일이 되도록 한국마사회와 제대로 된 면담조차 하지 못한 故문중원 기수의 부인, 아버지, 장인은 49재에서 똑같은 다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날 49재에는 부인, 아버지, 장인과 더 많은 故문중원 기수의 가족과 친척들이 함께 했습니다.

부인 오은주 씨는 “따뜻한 곳으로 보내줘야 하는데 미안하고 저 때문인 것 같다”며 “남편의 한을 풀고 일상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터지는 울음을 삼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문군옥 씨는 황망한 아들의 죽음 앞에 목 놓아 울고 싶지만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제2의 문중원이 나오지 않기 위한 마사회 구조개선 전까지는 강해져야 한다며 매일 자신의 혀를 깨물고 울음을 참는다고 합니다. 49재에서는 혀를 깨무는 것도 소용없었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연신 훔쳤습니다.

장인 오준식 씨는 사위의 시신이 놓인 광화문 거리에서 매일 같이 사위의 시신이 보관된 관 속에 드라이아이스를 넣는다고 합니다. 밖에 놓인 시신이 조금이라도 훼손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족들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총 7명의 기수와 말관리사가 자살했습니다. 故문중원 기수가 유서에서 지적한 한국마사회의 부당한 운영 구조와 다단계하도급 문제를 똑같이 유서로 남겼습니다. 가족의 요구도 그들의 유서에서 지적한 내용의 진상을 직접 듣고 싶고 개선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1월 13일] 쌍용차 복직대기자 10명 중 7명 “우울 및 불안장애 있었다”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쌍용자동차 마지막 해고노동자 46명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상태에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이들의 건강상태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10명 7명이 우울과 불안장애가 있었다고 응답했습니다.

2009년 5월 시작한 쌍용자동차 파업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만큼 경찰의 강경한 진압으로 77일 만에 끝났습니다. 이후 당사자 노동자뿐만 아니라 가족도 포함해 30명이 병을 얻어 죽거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원인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국가폭력의 트라우마와 해고 후 무너진 개인과 가족의 삶을 짚었습니다.

이번 설문에도 가족 관한 설문 문항이 들어있었습니다. 설문 문항은 ‘무기한 휴직을 통보받은 귀하와 가족의 현재 심리상태에 대해 적어주세요’였습니다.

몇 가지 답변을 옮깁니다.

/ 해고통지서를 받았을 때보다 더 심한 충격을 받았다. 10년 동안 별 말 없던 와이프가 이번에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나보다 더 충격을 받은 거 같다 / 가족들 모두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애들 엄마와도 떨어져있어 이혼 직전에 와있다 / 무능한 가장으로 인하여, 벼랑 끝에 서 있는 / 나는 견딜 수 있다지만 가족들의 실망감과 배신감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

[1월 11일] “당신을 기억합니다” 고 서지윤 간호사 1주기 추모문화제
지난 11일 시청 앞에서는 소위 ‘태움’이라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죽음을 선택한 故서지윤 서울의료원 간호사 1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추모 문화제에는 가족이 참여했습니다. 故서지윤 간호사의 동생 서희철 씨의 발언입니다.

“누나가 돌아가기 전 성과금을 받아서 몇 십만 원을 ‘엄마 이거 사용해’ 하면서 용돈으로 드렸습니다. 제가 지금 입고 있는 패딩이 저희 누나가 마지막으로 주고 간 선물입니다. 누나가 패딩을 선물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제가 정말 원망스럽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희 누나가 이렇게 된 것은 누나 스스로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9월 6일 진상대책위원회 故서지윤 간호사의 죽음이 반복하지 않기 위해 34개의 권고안도 함께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권고안 중 ‘김민기 서울의료원 원장 사퇴’ 하나만 진척을 보였습니다. 이마저도 아직 사표 수리가 이뤄지지 않았긴 했지만요.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들이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명의 삶이 아닌 여럿의 삶입니다. 그런데 가족들은 자신들의 삶보다도 또 다른 노동자의 삶을 걱정합니다. 가족들이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제2, 제3의 똑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정작 재발 방지 노력은 다른 곳에서 보여야 하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