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기타 치는 노동조합 위원장을 소개합니다
통기타 치는 노동조합 위원장을 소개합니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1.22 17:44
  • 수정 2020.01.22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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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양진 전국민주일반연맹 위원장

지난 14일 저녁 6시,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 톨게이트 천막농성 현장엔 통기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군가 기타와 앰프를 연결하고 음을 조율하며 어떤 연주를 준비 중이었다. 

주인공은 바로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 이양진 위원장이었다. 이양진 위원장은 이날부터 평일 저녁 6시에서 6시 30분으로 바뀐 '톨게이트 승리 투쟁 문화제' 전에 조합원들에게 노래를 선물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했다. 

30분 뒤, 이양진 위원장의 기타연주로 톨게이트 승리 투쟁 문화제가 시작됐다. 이양진 위원장은 기타반주에 맞춰 '나 어떡해'를 열창했다. 조합원들은 노래를 따라부르며 연주에 집중했고 자리에 함께한 故문중원 기수 부인 오은주 씨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통기타 치는 노동조합 위원장, 이양진 위원장에게 기타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에 대해 물어봤다. 이양진 위원장은 "뭐 이런 걸 기사로 쓰냐"면서도 중학생 때 처음 기타를 접하게 된 일화부터 정년이 되어서 다시 기타를 잡게 된 이유까지 꼼꼼하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이양진 전국민주일반연맹 위원장이 14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  톨게이트 승리 문화제에서 기타 치며 '나 어떡해'를 열창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 기타는 언제 처음 연주했나? 
오래됐다. 중학교 때부터였을 거다. 

- 어떤 계기로? 
처음엔 동네 형들이 기타 연주하는 모습을 봤다. 통기타곡으로 유명한 벤처스 악단의 '상하이 트위스트'라는 노래였는데 그때 나도 한번 쳐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원래 뽕짝을 좀 안 좋아했는데 당시에 윤형주나 송창식, 김세원 이런 분들이 포크송을 불렀다. 그런 신선한 노래들에 심취하다 보니 기타에 자연스럽게 빠졌다.

- 그때부터 독학한 건가?  
책을 보면서 혼자 익혔다. 70년대에는 유튜브같이 동영상으로 기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으니까.

- 통기타의 매력은 뭔가? 
통기타는 줄이 6개다. 베이스부터 중저음, 고음까지 소리를 풍부하게 낼 수 있으니 악기 하나만으로 곡 하나를 충분히 연주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 그럼 언제까지 기타를 쳤나? 
기억하기로는 20대 후반까지만 쳤다. 너무 철없어 보이니까. 그 이후로는 안 쳤다. 

-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뭔지 궁금하다. 
기타 치면서 좋아하는 노래와 노래방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가 다르다. 기타 연주할 때는 10대, 20대 때 자주 들었던 노래를 좋아한다. '나 어떡해', 라이너스의 '연',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 등이다. 

- 노래방에서는? 
가본 지는 오래됐지만 노래방에서는 아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 한승기라는 라이브 가수의 '연인'이라는 노래를 아내가 좋아한다. 라이브 카페에서 몇 번 공연도 같이 봤다. 

- 재미있다. 그럼 60대가 되어 다시 기타를 잡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올해 정년이다. 주변에서 갑자기 일이 없어지면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나름대로 일의 빈자리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색소폰을 불어볼까 생각도 해봤다. 근데 새로운 악기를 처음부터 배우는 것보다 차라리 기억을 더듬으면서 기타를 다시 쳐보는 게 어떨까 싶더라. 그래서 지난해 기타를 샀다. 기타를 보니 다시 연주하고 싶은 욕망이 자연스럽게 생기더라. 기타를 다시 치면서 조합원들에게 톨게이트 투쟁이 끝나면 한번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약속도 했다.

- 아직 톨게이트 투쟁은 끝나지 않았는데 지난달 김천 도로공사 본사에서 한 번, 지난주 광화문 농성천막에서 한 번 조합원들 앞에서 기타 반주에 노래한 것으로 안다. 
사실 조합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올해부터 경기 오산시 환경미화원으로 복직하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줄었다. 또 투쟁이 장기화되다 보니까 생계로 또는 지쳐서 하나둘 떠나는 사람도 생기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힘이 조금 빠지는 시기라 노래로라도 힘을 주고 싶었다. 

- 광화문에서는 '나 어떡해'를 불렀는데
사실 떠나간 조합원들에게 남은 사람들 입장에서 '나 어떡해'라는 뜻으로 부른 거였다. 그런데 그날 문중원 열사 부인 오은주 씨와 유족분들이 오셔서 아차 싶었다. 노래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서 어떡하냐는 의미로 느껴질 수 있으니 우시더라.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마음이 안 좋았다. 

- 그런 사연이 있었는지 몰랐다. 그럼 조합원들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광화문에서는 문화제가 끝나고 출근 때문에 오산으로 바로 이동했고 조합원들은 문중원 열사 추모제로 이동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상황이 아니었다. 김천에서는 조합원들이 바깥에 못 나가고 오랫동안 본사 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노래를 듣고 좋아해줬다. 

- 마지막으로 새해 소망 한 말씀 부탁드린다. 
일반연맹 위원장으로서는 톨게이트 투쟁이 전원 직접고용과 도로공사의 조합원에 대한 고소·고발 취하로 결과를 맺었으면 좋겠다. 조합원들이 어렵게 살아왔던 시절을 보상받지는 못하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개인적인 소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정년을 맞이했으니 일단 올 한해가 잘 마무리됐으면 좋겠다. 노동조합 활동을 한 지 37년이 됐는데 여행도 좀 가보고 가족과 시간도 자주 보내고 싶다. 소박한 소망이지만 잘 될지는 모르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