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부터 월급 안 들어오는 게 제일 걱정이에요.”
“다음 달부터 월급 안 들어오는 게 제일 걱정이에요.”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6.11 17:31
  • 수정 2020.06.1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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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조선해양 순환무급휴직 연장·고정비 절감… 노조, ‘인적 구조조정’ 우려
10일 금속노조 STX조선해양지회 조합원 500여 명 서울 상경 투쟁
금속노조 경남지부 STX조선해양지회 최평정 조합원.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금속노조 경남지부 STX조선해양지회 최평정 조합원.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최평정 씨(36)는 2011년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에 생산직으로 입사했다. 27살에 시작한 첫 직장생활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올해로 입사 9년 차지만, 지난 몇 년간 신입 채용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다가 인적 구조조정을 수차례 겪어 20년 차, 30년 차 ‘형님들’ 사이에서 여전히 막내로 불리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만난 최평정 씨는 ‘STX조선 무급휴직 완전 종결’이라는 손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날 금속노조 경남지부 STX조선해양지회는 무급휴직 연장과 고정비 절감이 또다시 인적 구조조정을 불러올 수 있다며 서울 상경 투쟁을 단행했고, 최평정 씨는 이날 노조의 서울행에 함께한 500여 명의 조합원 중 한 명이었다.

최평정 씨는 밝은 얼굴로 <참여와혁신>과의 인터뷰를 수락했지만, 인터뷰를 통해 들어본 속내는 그렇지 못했다. 6개월 휴직에 들어가야 하는 순서가 ‘또’ 돌아왔기 때문이다.

STX조선해양은 2018년 4월 노사확약 이후 지난 2년간 생산직 정규직 노동자를 250여 명씩 두 그룹으로 나눠 6개월 순환무급휴직을 진행했다. 노조는 지난 6월 1일 전원 복귀를 앞두고 이에 맞는 조직 개편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일감이 없어 전원 복귀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순환무급휴직이 끝나 이제 ‘완전하게’ 현장에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도 잠시, 결국 회사는 순환무급휴직을 연장할 것을 결정했다. 노조는 “지난 2년간 고통을 분담한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무급휴직과 같은 형태의 희생이 요구되면 안 된다”며 6월 1일부터 전 조합원 무기한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최평정 씨는 250여 명씩 나뉜 두 그룹 중 최근 6개월 동안 일을 한 그룹에 속했다. 이제 조선소 밖에서 6개월의 무급휴직을 견뎌야 하는 차례가 또 돌아왔다. 가장 걱정인 건 역시 생계 문제다.

“직장인들은 매달 나오는 월급으로 먹고살잖아요. 무급휴직에 들어가면 그 월급이 끊긴다는 게 제일 힘들어요. 당장 다음 달부터 월급 안 들어오는 게 제일 걱정이에요.”

회사는 무급휴직 기간에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생계 문제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이중 취업 금지’ 조항을 한시적으로 없앴다. 하지만 취업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얼마 없던 일자리도 코로나19가 터지고 난 뒤에는 구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일자리 구할 때 STX조선 다니고 있는 사람이면 무급휴직 기간에만 잠깐 일하고 갈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안 뽑는 곳이 생각보다 많아요. 더군다나 지금은 코로나19가 터져서 일자리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고요.”

최평정 씨는 무급휴직 기간에 컨테이너 하역작업 일용직, 전선공장 일용직, 라벨공장 일용직으로 지냈다. 그렇다면 조선소에서 일했던 기간에는 상황이 좀 나았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기존 임금에서 40% 삭감된 임금은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었다. 오는 9월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생계 걱정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람이 참 희한한 게 임금이 줄면 줄어드는 대로 거기에 맞춰서 살게 되더라고요. 이거 줄이고, 저거 줄이고 입에 풀칠만 하는 정도…. 지금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그것도 힘들 지경이죠. 앞으로는 더 힘들어지니 산 넘어 산이고요. 지금 결혼 3년 차인데, 아내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소리가 정규직이 아니고 6개월짜리 일용직인 거 같다고 해요. 필요할 때 불러 쓰고 일 없으면 나가세요, 이러니까. 휴직 들어가고 처음 6개월 정도는 삭감된 임금으로 지내기 너무 힘들어서 퇴근하고 피자 배달도 했어요. 신혼인데 아내랑 주말 아니면 대화를 못 할 정도로 바쁘게 지냈죠.”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순환무급휴직 연장도 모자라 700억 원의 추가 고정비를 절감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지난 10일 노조가 서울로 상경해 산업은행 본점을 찾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노조는 산업은행을 규탄하며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노동자들에게 추가로 700억 원의 고정비 절감을 운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비판에도 STX조선해양의 최대 주주이자 채권단 대표인 산업은행은 “STX조선해양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노조에서는 고정비 절감에는 인적 구조조정이 따를 수밖에 없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미 수차례 인적 구조조정을 통한 자구노력을 따랐고, 지난 2년 동안 남은 500여 명의 조합원들과 순환무급휴직을 견뎌냈다. 노조는 여기서 또다시 인적 구조조정이 발생하게 되는 미래를 두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회사는 “고정비를 줄여 수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STX조선해양은 회사가 보유한 현금 안에서 수주를 해야 하는 제한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또한, 선박 건조 대금이 에스크로 계좌(3자 중계 매매방식)에 묶여 있는 등 현금 유동성 확보가 어려워 수주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STX조선해양 관계자는 “현재로선 임금으로 나가는 고정비를 줄여 선박 건조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노조는 수주잔량, 일감 부족 등 현실적인 문제로 전원 복귀가 어렵다면 정부 고용유지지원금을 통한 ‘유급 휴직’이라도 가능하게 해달라며 요구했지만, 회사는 ‘고정비 절감’을 위해 이 역시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 이해는 하죠. 코로나19라는 악재를 만났고 수주하기 힘든 상황인 거 이해는 하는데…. 그렇지만 조합원들도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고 희생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임금 올려 달라는 거 아니에요. 중단된 복지 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내 직장에서 매달 고정적으로 월급만 받을 수 있게, 일만 할 수 있게만 해달라는 건데….”

최평정 씨는 회사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다가도 회사가 하루빨리 정상화됐으면 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회사가 정상화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조합원 외에도 협력사분들도 다 같이 더불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상황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열흘 넘게 이어온 노조의 전면파업은 ‘무기한’으로 진행되고 있다. 노조는 12일 창원시청에서 경남도청까지 삼보일배 행진을 진행할 계획이다.